[376호 네 생각이 났어]

이 편지 수신자 ‘형석’은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이들을 반영한 가상 인물입니다.

H님, 이메일로 나눈 상담내용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무례한 부탁인 줄 알면서도, H님 이야기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되었기에 조심스레 의향을 물었어요. 처음 H님의 길고 긴 이메일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일면식도 없는 저를 믿어주고 마음을 활짝 열었다는 점이었어요. 그동안 저는 주로 면대면 만남을 통해 친숙해진 학생들의 고민만 들어왔거든요. 제가 까탈스럽게 내담자를 제한했다는 말은 아니에요. 내담자라는 말도 부적절하네요. 저는 상담 전공자가 아니니까요. 그저 교수자요 인생 선배, 신앙 선배로서 조언했다는 말이 맞겠네요.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에요. 전공마저 ‘윤리’이다 보니 학생들은 제게서 어떤 선택이 옳은지(진), 좋은 것인지(선) 답을 얻길 기대한답니다. 그래서 늘 어려운데, 전혀 알지 못하는 분에게서 친밀하고 깊은 편지를 받으니 얼른 답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답신이 늦었던 건 그 때문이에요.

H님은 제게 물었어요. “저는 이제 순결하지 않은 사람인가요?” 성폭행도 비자발적인 성관계도 아니었다고 했죠. 5년간 지속된 오랜 관계였고 요즘 청년들의 ‘대세’를 따라 육체적 관계까지 있던 사이라고 했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상대방 요구로 헤어지게 되었다고요. 결혼할 거라고 믿었던 그의 부재 상태에서 홀로 남게 된 외로움이나 두려움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나는 순결을 잃어버렸나’ 하는 죄책감이었다고 했어요. H님의 질문은 제게 10여 년 전 기억을 떠올리게 했어요. 학교 연구실에 앉아있다 보면 종종 학생이 느닷없이 뛰어 들어와서 ‘고해성사’와도 같이 외치는 말이 있거든요. “교수님, 제가 순결을 잃었어요!” 초짜 선생이던 당시는 놀라서 함께 당황했는데, 어느덧 대처법을 알게 되었죠. 펑펑 우는 학생을 진정시키며 두 손을 잡고 차분하게 물어요. “어디서 잃어버렸니? 두고 온 데는 기억나?” 물론 의도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여지없이 눈물도 채 닦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제게 묻거든요. “네? 순결이 물건인가요? 어디 두고 오게…” “그러게 말이다. 순결이 잃어버릴 수 있는 건가? 누구에게 건네주거나 두고 오거나 혹은 빼앗길 수 있는?” 영리하고 슬기로운 제자들은 금세 선생의 의도를 알아차리죠. 그리고 이내 자신의 ‘불운’ 혹은 관계의 파탄을 곧장 ‘순결 이데올로기’와 연관시켜 불안해하던 마음을 추스릅니다. 이론으로 배운 것들과 자기 삶을 연결하기 시작하는 거죠.

이 편지 수신자 ‘형석’은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이들을 반영한 가상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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