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호 비하인드 커버스토리]
개신교 신앙에서 목회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복음과상황〉 콘텐츠 중 많은 부분이 목사 이야기였다. 이번 커버스토리 ‘목사의 쓸모’를 준비하며 에디터들이 함께 찾아 읽은 과월호 기사들 중 오늘의 현실에 잇닿아 살펴볼 만한 글을 추려보았다(※각 기사 제목을 누르면 해당 과월호 기사 본문으로 이동합니다).
#296호(2015년 7월) ‘무브먼트 투게더’
한국교회, ISO 26000이 절실하다 | 박제민
2014년 12월 8일부터 2015년 1월 11일까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부교역자를 대상으로 ‘생활 및 사역 현황’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글이다. ‘열악한 경제적 사정’ ‘신분의 불안정성’ ‘비인격적 대우’을 짚어내는데, 약 7년 전에 나온 분석이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교역자의 인권과 노동권 문제 역시 잠깐 생각해봐도 수많은 사안들과 결부되어 있다. 담임목사와 일부 당회원들이 교회의 모든 권한을 사실상 독점하는 문제, 이 바닥에서 한 번 찍히면 재기가 불가능한 패거리 문화의 폐해, 담임목사가 되면 다 보상받을 수 있다는 성공주의, 목회자 후보생들의 수요와 공급 법칙이 깨져버린 문제,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그리고 대형교회와 미자립교회 사이의 극심한 빈부 격차,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교회세습 문제 등이 그것이다.”
#315호(2017년 2월) ‘커버스토리’
목회자에게 ‘현장’은 어디인가? | 황정현
‘목사들의 현장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글이다. 목사인 필자는 기독교 기업 사목으로 일하고 청와대 앞에서 정기적으로 세월호 피켓을 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평일이면 직장에서 분투하는 교인들 삶에 무관심해 보이는 기성교회 모습을 보며 느낀 점들, 세월호 이후의 한국교회와 목사에 대해 말한다.
“늘 위기의 때엔 처음으로 가면 된다. 우리의 처음은 어디인가. 우리의 처음은 예수님이다. 예수께로 가면 된다. 예수가 길이고, 예수가 진리고, 예수가 생명이다. 예수가 답이다. 예수께선 사람을 돌보셨다. 예수의 현장은 사람이었다. 열여덟 해를 하혈하던 여인도, 일평생 늘 그 자리에서 구걸하던 사람도,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온 아비도, 심지어 동족의 세금 징수로 부자가 된 녀석도 모두 예수께는 현장이었다. 한국교회의 현장은 어디인가. 목사들의 현장은 어디인가.”
#319호(2017년 6월) ‘사람과 상황’
“교회 세습, 맘몬에 자아를 빼앗긴 결과지요” | 설훈
올해 초에도 대형교회 세습 소식이 전파를 탔다.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여수은파교회 이야기다. 교계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일자 교회는 소속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을 탈퇴했다. ‘빨리 세습금지법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과 함께…. 5년 전, 319호에 실린 이 인터뷰의 인터뷰이는 ‘교회 세습’을 주제로 다룬 최초의 박사논문을 쓴 설훈 목사다. 그의 말에서 우리가 성찰해야 할 ‘종교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종속된 권력도 시간적 제한이 있습니다. 이 유한한 권력을 무한한 권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세습입니다. 종교권력을 지속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는 중세시대 로마 가톨릭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신 사제직으로 세습할 자녀가 없었지만, 조카나 사생아를 낳아 권력을 이어가게 했습니다. 종교성이 강할수록 세습은 정당화되기 쉬워요. 불멸, 영생, 부활, 윤회 등 종교의 핵심은 영원한 삶입니다. 권력자는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신도들이 계속 숭배하게 합니다.”
#366호(2021년 5월) ‘내 인생의 한 구절’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개척교회 이야기 | 손주환
코로나 이후 예배당은 비었고,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더욱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개척하는 교회가 있을까 싶은데, 있다. 왜 이 어려운 때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지, 예배할 장소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며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등, 코로나와 함께 교회를 시작한 목사의 경험담이다.
“걷는교회는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다 같이 모여본 적이 없다. 그러니 성도 수가 몇 명인지 알 수도 없다. 그래도 유튜버인 성도의 전도를 통해 오거나 교회 유튜브 채널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알음알음 모이면서 멤버가 조금씩 늘고 있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걷는교회는 꾸역꾸역, 간신히, 지지리 궁상의 모습으로 이름처럼 ‘걸어’가고 있다.”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