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호 공간 & 공감]
취미가 없다. 요가, 헬스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지도 않았고 그림을 그리거나 프랑스자수를 놓는 것도 한 번 시도했을 뿐이다. 그나마 시간이 날 때 지속하는 활동이라고 한다면, 산책이겠다. 지난 1년 동안 주말이면 남산 둘레길을 걸었다. 남산 하얏트호텔 옆길에서 시작해 동국대학교와 명동과 필동을 지나 후암동 쪽으로 내려오면 한 주간의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풀렸다.
일상이 바빠서 이런 두세 시간 코스의 남산 둘레길 산책도 부담스러울 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정원을 찾는다.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달항아리 등 아름다운 작품들도 좋지만, 박물관 주변으로 펼쳐진 공원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 공원은 일상 속 작은 자연을 만끽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집에서 ‘따릉이’(서울시 공유자전거)를 빌려 타고 달리면, 10분 안에 도착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원은 여러모로 나에게 안성맞춤이다.
대한민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선생이 구성하신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원은 자연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다. 본관 너머로 보이는 남산의 원근감과 달리, 큰 나무와 작은 풀과 꽃들로 구성되었다. 2005년 개관한 이래로 공원 구석구석에서 시간의 흐름이 쌓아 올린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정문에서 시작해서 박물관 오솔길을 통과하면 오두막과 작은 분수, 석조 다리를 볼 수 있다. 석조물 정원을 지나 보신각을 끼고 돌면 용산가족공원으로 연결되는 코스가 내 여가의 기본 구성이다. 공원을 거니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계절을 따라 피는 꽃들과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나비들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공원은 정적이고 단조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매번, 매 계절, 매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역동적이다. 가만히 앉아 바람에 잎사귀 부딪히는 소리와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줄기를 만끽하고 있자면 곧 충만해진다. 문학과 시, 아름다운 음악과 멋진 그림과는 또 다른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으신 것처럼, 자연은 새로운 숨을 뿜어내는 듯하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고, 지치고, 거칠어진 마음이 자연 속에서 쉼과 위로를 얻는다. 공원 산책을 좋아하게 된 건 서른 즈음이었다.
나이 서른에 어학연수를 갔었다. 친구들은 진즉 20대 때 다녀온 어학연수를 나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떠났다. 8개월 동안의 짧은 타지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국에 두고 온 나의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단골 카페도 없고, 책도 영화관도 없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고독과 외로움에 지친 하루가 이어졌다.
낯선 땅에서,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은 공원을 산책하는 시간이었다. 계란프라이처럼 생긴 데이지 꽃이 카펫처럼 깔린 집 앞 공원을 몇 바퀴 돌고 나면 허무하게 보낸 하루에 대한 후회와 자책으로 무거워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꽤 커다란 공원이어서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이 코스라도 ‘완주’해야 뭐라도 한 것 같아 안심되었다.
한국에서의 익숙한 생활과 결별하고 떠나온 목적은 흐릿해지고, 제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답도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퍼부었던 날들이었다. 준비해간 자금은 훅훅 빠져나가는데 ‘어학’에 성취도 없고, 친구 사귀기에도 서투른 내 모습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괴로운 날이었다. 조지 오웰이 잠시 살았다던 동네 뒷산에 올라 도시의 풍경을 한참을 바라보면서 ‘그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잘 해낼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때 도심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 덕분에 갈 곳 없는 이, 찾아주는 사람 없는 이의 서러움을 겨우 추스를 수 있었다. 공원을 걸을 때, 폭신한 잔디 위를 걷기도 하고 벤치에 잠시 앉아 물 위를 헤엄치는 오리 가족들을 구경했다. 또 공원마다 얼굴이 달라서 그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를 찾기도 했다. 거대한 공원은 시원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줬고, 햇볕 쬐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자꾸만 움츠러드는 나 자신에게 ‘너도 인간, 나도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겼다. 한 평 남짓의 작은 공원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은 꽃과 풀들의 넘치는 매력을 보고 ‘그래, 하나님이 너처럼 작은 풀도 입히시는데 나라고 외면하시겠나!’ 생각하면서 외로움에 무너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붙들었다. 내가 살던 도시 서울의 한강처럼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변을 걸으며 한국에 두고 온 내 삶에 대한 그리움을 아낌없이 흘려보냈다. 그 강물에 흘러 바다에서 한강과 만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공원을 걸으며 한국을 마음껏 그리워하기도 했다. 빨간 벽돌로 고추장을 만들고 흙과 물을 반죽해 밥을 짓던 나의 어린 시절 추억에는 나무, 흙, 풀이 자주 등장한다. 레고도 없고, ‘훼밀리’(가정용 게임기)도 없던 탓에 집 밖의 모든 것이 장난감이었고 어느 곳이나 놀이터였다. 청소년 시절엔 한강공원에 하릴없이 삼삼오오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수능 직후엔 용산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대천 앞바다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유와 불안을 느끼며 친구들과 오들오들 떨었던 시간들도 생각났다. 사랑의 쓴맛을 맛본 뒤엔 몸이 힘들면 마음 힘든 것이 잊히겠지 싶어 산으로 가 숨죽여 울었고 타는 가슴을 식혔다. 그렇게 삶의 길목마다 나무와 풀, 꽃과 바람, 하늘과 산이 있었다.

건축가 유현준에 따르면 이제부터 도심 속 소셜믹스(다양한 사회경제적 계층이 어우러지는 현상)가 일어나는 유일한 공간은 ‘공원’이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는 곳, 배우는 곳, 노는 곳… 공간 대부분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구분된다. 지위와 형편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공간 경험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임대주택 결사반대’의 저변에는 차별적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왜곡된 능력주의가 깔려있다.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가 온/오프라인에서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다. ‘SKY’ 진학률에 대한 지역 격차가 매년 커진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을 지나 개천이 사라지고 있다. 하룻밤에 30만 원짜리 ‘호캉스’(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가 유행이라는데, 아직도 독립적 위생시설을 갖추지 못한 한 달 월세 22만 원짜리 주거시설(쪽방촌)에 거주하는 인구가 수천 명이다. 그런데 도심 속 자연인 공원에서만은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씁쓸하지만, 한편 다행이라 여겨진다. 자연은 조건 없이, 배경 없이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여겨진다. 이방인이었던 내게 가장 따뜻한 공간이 되어준 공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람이 불고, 강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모습은 순리대로, 지어진 대로 살아가는 삶을 희망하게 한다. 불안한 마음은 가라앉고, 복잡한 생각을 가다듬어 상처 난 마음을 돌보게 한다. 나도 자연으로부터 왔기 때문일까? 자연이 나의 원류,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이기 때문일까? 곧 여름휴가의 계절이다. 집 앞 공원도 좋고, 강원도 산골, 제주도 숲길… 어디든 좋으니 자연 속으로, 편견도 없고 조건도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 그대로. 다시 충만해질 시간이다.
박진영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책 읽기와 걷기, 여행을 좋아하고 “one life, live it”의 줄임말 ‘올리’로 활동하는 자기(self) 연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