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호 에디터가 고른 책]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고린도전서 15:54-55, 새번역)
죽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단호하다. 고린도전서 구절을 제목 삼은 알렉산더 슈메만(1921-1983)의 이 책은 그 점을 똑바로 짚는다.
작년에 교회 파송 선교사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셨을 때도, 성경의 시선으로부터 오랫동안 거리두기한 채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사님이 저 말씀을 빌려, 투병 도중 반복해서 언급하셨다는 “죽음 네까짓 게 뭐냐”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왔다.
정교회 신학자이자 전례신학 대가인 저자가 구소련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유럽자유방송’ 강연들, 그리고 죽음과 부활에 관해 풀어낸 이야기들을 엮은 이 책은 두 가지 태도를 꾸짖는다. 우리는 죽음을 거부하고 현 세상에 집착하든지, 죽음 이후를 선호하고 삶을 덧없게 여기든지 양자택일에 놓이기 쉽다. 부록으로 실린 글 제목 ‘유토피아와 도피 사이에서’가 이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스도교는 두 관점에 ‘아니오’라고 응답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성경을 근거 삼아 논증한다. 돌아보면 나는 후자 쪽 성향이 강했던 것 같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신앙을 핑계 삼아 도피처로서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삶이 바쁘니, 죽음에 관한 질문을 한쪽으로 제쳐두기도 했었다. 죽음을 둘러싼 성경 속 표현들과 만났을 때 느낀 생경한 감각은 여기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평이한 언어로 죽음과 부활을 해설해 나가지만, 글이 주는 여백의 미가 상당하다. 죽음을 둘러싼 본질적인 질문을 진중하게 던지고, 문학인·신학자·철학자·사상가의 글, 무엇보다 성경의 고유한 관점을 통해 스스로 사유하고 묵상할 여지 또한 남겨두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인간은 죽음이 없는 세계,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인간은 이 세계를 죽음에 내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생명의 내용을 완전히 왜곡해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왜곡에서 돌이켜 그리스도교의 죽음 이해로 돌아갈 때만, 다시금 새로이 죽음의 멸망을 선언하는 부활의 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습니다.”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