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호 에디터가 고른 책]

기독 시민교양을 위한 나눔 윤리학 / 김혜령 지음 / 잉클링즈 펴냄 / 16,500원
기독 시민교양을 위한 나눔 윤리학 / 김혜령 지음 / 잉클링즈 펴냄 / 16,500원

학생 시절, 한 선배에게 예상치 못한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필요했고 호의를 믿었기에 받았는데, 이후 곤란을 겪었다. 개인적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상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위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관계가 멀어졌는데, 이후에도 일방적 나눔이 오래 이뤄지는 관계는 길게 가지 못했다. 역으로, 내 의도를 오해받은 순간도 많다.

물론 내 곁에는 뭔가를 요청하면 기꺼이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고, 뭔가를 받았을 때, 그리고 줄 수 있어서 기쁜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나눔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능력 있는 자들이 더 많은 보상을 얻는 게 당연시되고, 아픈 가족을 돕다가 황폐해지고, 성차별로 돌봄이 지탱된다. 교회는 나눔 대상을 선별하고, 복지제도에서 차선으로 밀려나거나 사각지대에 놓여 목숨을 잃는 사람들 소식도 빈번하다. 어떤 나눔이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지, 누구를 먼저 도와야 하는지, ‘판단 기준’이 절실한 시점이다.

서론이 길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최초의 나눔 윤리 입문서’인 이 책을 펼치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논쟁적 주제들이다. 10여 년간 이 주제를 연구하고 강의해온 기독교 윤리학자인 저자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본지에 연재한 〈새로 쓰는 나눔 윤리학〉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나눔에 대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펼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한 신앙인의 치열한 고민이 담겼다.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란 “국가만이 아니라 교회를 비롯한 모든 조직이 현재 실행하고 있는 제도화된 나눔의 관습과 원칙을 끊임없이 위반하는 일”이라고. 그 이유는 바로 “예수가 시대의 관습과 종교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도움받을 권리가 없던 자들에게 도움주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외를 창조하는 일이 예수 사역의 핵심이었다.”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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