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호 무브먼트 투게더]

공정 시대의 2030세대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둘러싼 갈등과 격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권력층 자녀의 진학·취업을 비롯한 많은 사건이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다뤄졌고 그 여파 속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을 비롯해 사회를 이끌 주요 정치 권력에 대한 선택이 이뤄졌지만 새로운 리더십을 근간으로 사회가 안정을 찾기보다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런 가운데 2030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입니다. 매일 학교에서 20대 학생들을 만나지만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해, 수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상황에 관해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허심탄회하게 공유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학생들이 마음으로는 공감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수긍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대화를 주저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 제안을 받고 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선거 전부터, 그리고 선거 결과로 나타난 2030세대의 생각을 접하며 긴 시간 무력감을 느끼면서, 결국은 많은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험을 가진 2030세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난 대선에서 보수 진영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 경향을 보였던 2030세대, 특히 남성에 대해 ‘보수화되었다’ ‘생각이 없다’ 등의 많은 말들이 나왔습니다. 대선 후 만났던 퇴직 교사 한 분은 “내가 어떤 학생을 길렀는가?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를 어떻게 키웠는가?”라는 생각에 무척 괴롭다고 심정을 토로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선 결과의 책임이 오롯이 청년 세대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분명 답답함을 느꼈던 지점이 있습니다. ‘국가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가치다’라고 했던 철학자 밀의 주장이 맞는 것이라면, 대선의 결과로 나타난 2030세대가 지향하는 가치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적절한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지난 몇 개월간, 오늘날의 2030세대를 낳은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가 각기 다른 삶의 환경에 처해 있지만 적어도 과거의 동 연령 세대와는 다른 경험을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뭔가 늘 부족하고 풍족하지 않았던 1970년대생인 저의 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비교적 풍족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에서부터 체벌이 일반적이었고 중학교에 입학한 후 체육 시간에 ―지금 생각하면 목적을 이해하기 힘든― 제식훈련을 받았던 저의 세대와 달리 형식에 그쳤더라도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학교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높은 자유와 권리 의식을 지닌 세대이기도 합니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유·청소년기를 보내는 한편, 그리 밝지 않은 미래에 대한 전망 속에서 고민하는 세대라는 것도 지금의 청년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혹한 입시 경험을 뒤로 하고 맞이한 험난한 진로와 취업의 여정, 결혼, 주거, 출산, 교육 등의 많은 과제는 2030세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의 삶을 옥죄는 제약이 되고 있습니다.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라고 세상을 비웃었던 또래의 말에 크게 분노했던 청년들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가슴 부풀게 하는 구호로 시작했던 이전 정부에 큰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떳떳하다고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을 시도했던 일부 권력층의 위선과 허위에  분노했습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보다는 비관적 생각이 들게 하는, 무엇보다 점점 더 불의와 거짓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회를 마주해야 하는 2030세대에게 적지 않은 미안함을 느낍니다. 이들이 느끼는 막막함에 깊이 공감하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난제의 해결을 위해 보이지 않는 출구를 함께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나누고 싶은 개인의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구분 짓기를 넘어

2030세대를 비롯한 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간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을 비롯해 많은 의견이 있지만,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만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난제는 수십 년에 걸쳐 사회에 내재해있는 수많은 구조적 문제가 중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IMF 구제금융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에 맞물려 이뤄진 노동시장의 변화,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일자리 감소, 날로 격화되는 국제 경쟁체제,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불평등, 빈부 격차 등의 많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현재의 난맥상에 직면했습니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제한된 자원과 기회를 두고 이뤄지는 경쟁을 피할 수 없지만 문제를 단선적으로 보며 나와 다른 세대, 성별, 집단에 문제의 원인을 전가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위해 매진하기보다 상황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부 정치 세력의 인기영합주의 정책에 편승할수록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하고 구성원 간의 갈등은 더 커지게 됩니다. 우리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나와 다른 세대, 구성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공통분모를 찾아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정 ‘세대 인식’을 넘어

미디어에 의해, 일부 소수에 의해 만들어진 ‘2030세대’를 넘어 2030세대 각 개인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가운데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2030세대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대변하는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좋은 조건을 갖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훌륭한 스펙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취업의 기회를 얻지 못해 좌절하며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청년 세대에 대한 전형적인 설명입니다. 이러한 분석이 틀리진 않지만  그것이 모든 2030세대의 특성을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회의 세대 문제를 다룬 신진욱 교수는 저서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2030세대를 하나의 동질적 특성이 있는 집단으로 분석하는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동일 연령으로 이뤄진 세대 내에서도 개인의 상황에 따라 각기 상이한 특성이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2030세대는 하나의 동일한 특성을 가진 세대로 규정하기 어려운, 개인의 계층, 학력 등의 배경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가진 세대입니다. 일부 집단이나 미디어에 의해 자의적으로 강조된 관점에 근거해 청년 세대의 특성을 일반화하고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세태에 맹목적으로 동의하지 않아야 합니다. 동 연령 세대라는 소속감과 연대감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특정 소수에 의해 형성된 ‘세대 인식’을 깊은 숙고 없이 나의 것으로 수용하기보다 나의 상황과 특성을 고려한 접근을 통해 문제를 분석하고 방안을 찾아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정치권에 의해 형성되거나 때로는 상업화된 개념으로 다뤄지는 관점을 탈피해 자기의 목소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왜곡된 구조에 대한 직시

얼마 전, 대학 서열의 정점에 있는 수도권 대학의 일부 학생들이 노동 환경 개선(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학내 환경미화원의 시위가 학업 분위기를 방해한다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도서관 앞에서 장기간 이뤄진 시위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실제로 환경미화원의 시위가 수업에 큰 지장을 초래했을 수 있고, 학생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안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고 있는 갈등 상황에서 가장 약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미화원을 대상으로 법적 대응을 시도하는 것은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고용시장의 왜곡된 구조 속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누구든 겪을 수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도외시한 채 약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 정말 정당한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 같은, 이웃집 어른 같은 동시대의 사회 구성원이 겪고 있는 구조적 갈등의 문제보다 자신의 피해를 먼저 외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요즘 젊은 세대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라는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세대를 막론하고 자신이 겪고 있는 정당하지 않은 불이익 문제의 해소에 관심을 두는 태도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도외시한 채 자신의 불이익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왜곡된 구조의 문제는 계속 남을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모두가 그 구조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에서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겠지요. 그러나 개인의 이익, 불편을 넘어 문제 원인에 대한 깊은 관심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왜곡된 구조를 바꿔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특정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일부 학생이 보인 태도를 전체 2030세대의 특성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청년 세대에게서 나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이나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무관심과 배타적 태도, 복지에 대한 반대 관점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꼭 무관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기계적 정의를 넘어

슬픈 일이지만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정의, 공정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시대를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나오는, 진학, 취업 등을 둘러싼 부정, 부패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요즘도 저 정도인데 과거에는 얼마나 더 심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2030세대가 공정과 정의에 관심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노력입니다. 그렇지만 2030세대가 가지고 있는 정의, 공정에 대한 인식이 온당한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 상황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생각되는 청년 세대의 정의, 공정에 대한 인식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의 주요 원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고용구조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정부는 공공분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발 시험이라는 경쟁체제를 거치지 않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공정한 것’이라는 강한 반발이 청년층에서 제기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기간제 교사의 정식 발령이라는 유사한 논의가 교육계에서도 있었는데 ‘임용시험을 거치지 않는 정식 발령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큰 반발이 있었습니다. 2030세대의 입장은 시험이 가장 공정하며 시험 이외의 경로를 통한 정규직 진입은 불공정한 무임승차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선발 시험을 통한 기회 배분 방식이 전적으로 공정하다는 주장에는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시험이 가지고 있는 공정성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NCS(국가직무능력표준), 블라인드 채용 등의 다양한 방식이 활용되고 있고, 교사 임용시험의 방식도 변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가 주장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만 정규직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오랜 기간 시험이라는 단일한 제도를 통한 선발이 이뤄졌던 제한된 경험에 기인한 것입니다.

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불의한 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시정할 수 있고, 특히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축적한 현장 실무 역량을 고려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규직 공채 규모, 시기, 일정 등을 적절히 고려하면서 검증된 절차를 통해 실시한다면 말입니다. 오랫동안 실력에 따른 공정한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능력주의’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공정한 경쟁에 대한 많은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도전을 과거의 방식으로 대응한 문명은 실패했다’고 했던 토인비의 지적처럼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합니다. 구조적으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부터 유지되었던 방식에 의한 기계적 공정의 추구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공정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아지지 않는 개인의 상황, 불투명한 미래를 비판하며 급진적 개혁,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단기간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2030세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자유 또한 앞선 세대의 장기간의 노력과 희생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상황에 비관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생각을 모으는 다양한 구성원 간의 연대·협력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특히 끝없이 변화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과 공존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순수한 신앙에 기반한 믿음과 열정을 넘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치열한 학습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2030세대의 문제의식에 진지하게 공감하며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사회 각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로서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가운데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환경을 넘어 지역, 사회, 국가, 세계로 시야를 넓혀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기독인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희망합니다. 시간이 지나 사회에 대한,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세대가 되었을 때, 저와 같은 미안한 마음이 아닌 ‘2030세대를 비롯한 모두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끼며 젊은 세대를 대할 수 있는 2030세대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강구섭
홈볼트 대학에서 ‘독일 통일 후 동서독 주민의 내적통합’이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교육개발원 통일교육연구실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8년 전 ‘복상이 주목한 100인의 그리스도인’에 선정됐고, 본지 2021년 6월호 ‘사람과 상황’에 소개된 바 있다. 저서로는 《독일 통일의 또 다른 이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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