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호 에디터가 고른 책]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펴냄 / 16,800원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펴냄 / 16,800원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모든 노동에는 가치가 있다.’ 정말 그러한가? 덴마크의 인류학자, 철학자인 이 책의 두 저자는 시사 프로그램에 우파와 좌파 패널로 섭외될 만큼 정치적 성향이 다르지만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가짜 노동’이 존재한다고. 이는 “단지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허위인 노동”이자 “실질적인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지는 무의미한 업무다. 형식적인 보고서 작성, 잦고 긴 회의 참여, 밀려드는 참조 메일 체크, 할 일을 다 끝냈음에도 눈치가 보여 퇴근할 때까지 허송세월….

가짜 노동은 어떤 업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로, 사무직(관리직) 일자리에서 늘어나고 있으며(이 가운데는 사회적 지위나 명예, 소득 수준이 높은 이들도 포함된다), 노동에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적 영혼을 파괴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노동 전문가와 종사자들의 인터뷰, 실질적 통계자료를 보면 유럽과 미국 사회는 늘어나는 가짜 노동을 심각하게 여기는 듯하다. 국내 온라인 서점 리뷰에 달린 공감하는 댓글도 적지 않다.

문제의식이 같은 다른 책 《불쉿 잡》(민음사)이 가짜 노동의 원인으로 ‘금융자본주의’를 꼽는다면,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과잉노동’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에 따르면, 종교개혁과 산업혁명 이후 인간 사회는 노동을 신에게 선택받은 증거로 보고 그 자체로 숭배하며, 생산물의 가치가 아니라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다는 인식이 당연해졌다. 노동을 측량하고 감시하며 가속화해온 테크놀로지 발전도 원인 중 하나로 언급한다.

대안은?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새로운 일이나 옛일이 정말 필요한지 토론하기, 회의 축소나 주 4일제 시행 등으로 무의미한 노동시간 줄이기, 더 많은 정규직이 아닌 더 많은 여가 요구하기, 사람을 믿고 과도한 점검과 규제를 철폐하기. 나아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조심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대신 비정규직에게도 동일임금 지급)는 관점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다단계 하청구조와 연공서열제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 의미 있는 노동을 하면서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개인이 가질 수 있을까? 여백이 많은 책이라, 반박하고 상상할 여지가 많다.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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