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호 나의 최애들]

십자가의 길, 즉 하나님의 하향성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고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살아있는 그리스도들로 변화되기 때문에 우리의 길이 된다. 영적인 삶은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의 삶이다. 이 삶은 우리로 하여금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사로잡힌 가운데 자유롭게, 고통 가운데 즐겁게, 가난한 가운데 부요하게 해준다. 또한 상향성의 사회 한가운데 살면서도 구원에 이르는 낮아지는 길을 가게 해준다.
―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2003), 32쪽.

다시 읽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데 이제 막 진로를 결정해야 했던 대학 4학년생이 이 글을 읽었을 때는 어떠했겠는가. 그동안 헨리 나우웬이 어떤 인물을 이야기했고(《아담》), 어떤 삶을 살았으며(《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상처입은 치유자》), 어떤 영성을 추구했는지(《마음의 길》·《영적 발돋움》) 오랫동안 귀 기울여온 나는 이 책을 만나며 내 삶의 초점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피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단 하나의 길로 들어서고 만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걸어가게 된 길이었다.

헨리 나우웬.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헨리 나우웬(1932-1996).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누군가는 ‘나의 최애들’이라는 이 연재를 일종의 ‘작가론’으로 보기도 하지만, 어떤 ‘론(論)’을 쓰고자 이 글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론’이 되었을지라도 이 글은 그저 울분 섞인 질문에서 시작한 책 읽기가 2020년대라는 시대를 만나 빚어진 아웃풋 정도로 보면 적당하겠다. 그래서 이 연재는 어느 한 시기의 나와 책 사이에 이루어진 ‘케미의 기록’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다. ‘케미’를 ‘화학작용’이라 쓸 수도 있겠지만 굳이 ‘케미’라 칭하고 싶다. 그래야 나와 책 혹은 작가 사이에 일어난 격정의 시간이 정확히 표현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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