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호 무브먼트 투게더 1]
누구나 ‘처음’은 쉽게 잊지 못하잖아요. 인권활동가를 업으로 삼은 제 ‘처음’은 2018년 파인텍 굴뚝 아래와 콜텍 끝장투쟁 농성장이었습니다. 파인텍 노동자들 이야기를 다음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학교 조교님과 현장심방 프로그램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를 진행하는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영향으로 그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투쟁 현장을 알게 된 후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휴학하고 매일같이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투쟁이 무엇인지, 연대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지 못했지만, 자기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모습은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체제에 대해 제게 가장 먼저 알려준 이는 파인텍과 콜텍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한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 권력의 행태를 증언하고 있었으니까요.
농성장에서 투쟁 당사자, 연대자들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연대하기 위해 온 다른 해고노동자들도 만나며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자본주의를 피부로 느꼈습니다. 여러 활동가를 만나며 페미니즘을 접했고, 빈곤·장애인 등 다양한 운동 의제를 배웠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노동운동이 인권운동으로 확장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존재를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보는 시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아닌 땅에 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도 그곳에서부터였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성육신 예수의 복음, 신앙은 뒤집혔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호흡한 예수, 권력에 맞서는 사랑의 예수, ‘나’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억압받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신앙이 그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신과 다시 관계를 맺고 지금 제가 하는 활동의 초석이 되어준 이는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아저씨입니다. 이제는 그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2022년 12월 29일 오전 11시 36분, 재춘 아저씨의 부고 소식을 받았습니다.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에이플러스에셋 보험설계사 김옥경 님의 피켓시위 연대를 위해 가는 길이었어요. 재춘 아저씨 번호로 본인상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스미싱이 아닐까 하는 의심과 사실일지 모른다는 불안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몇 번이나 부고 문자를 다시 보다가 지하철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피켓시위를 하고 있을 다른 사람들을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피켓시위를 하던 이들은 제가 도착한 뒤에야 부고 소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김소연 동지를 붙잡고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재춘 아저씨와 함께 투쟁했고 지금은 꿀잠 상근자로 일하는 김경봉 동지를 급하게 찾았습니다. 장례식장과 재춘 아저씨 자녀분과 통화한 후에야 저는 그의 죽음을 인지하게 됐습니다.
저는 무너졌습니다. 눈물이 나는데, 세상이 진공상태가 되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고 머리가 아팠습니다. 저의 ‘처음’을 아는 사람들이 위로해주었고 함께 슬퍼했습니다.

투쟁에 희망을 품고 있던 사람
2018년 여름 영등포산업선교회 현장심방팀이 광화문 광장 옆 해고사업장들이 공동 투쟁하고 있는 농성장을 방문했을 때, 재춘 아저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연대자들은 표정으로 반가움을 드러냈지만, 그때 아저씨 목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네요. 그런데 어느새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고, 가끔은 장난도 치는, 말 많은 관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잘 웃고 재밌는 사람이며, 누구보다 투쟁에 진심인 사람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에 사인해주시며 “사회 나와서 대화를 만이 해 조금만 신경 써도 변화가 와”라고 적어주셨어요. 변화가 올 것이라는 희망, 희망 있는 사람이 어떤 표정을 가질 수 있는지 아저씨를 통해 보았습니다. 아저씨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자부심을 자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자부심이 단식으로 연결된 게 아닐까요.
콜텍 복직 투쟁은 13년 동안 투쟁의 자리를 지킨 아저씨의 단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저씨는 웃음을 잃지 않고 42일 단식하며 명예복직을 이끌었습니다. 투쟁 4,464일, 단식 42일 만에 합의하고 긴장이 풀려 몸이 더 아플 법도 한데 아저씨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언론 인터뷰를 했지요.

자존심 있는 노동자
2019년 1월 8일부터 콜텍 투쟁은 ‘끝장투쟁’을 선언했고 그해 3월 12일 재춘 아저씨는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저는 점심 피켓시위를 하면서 단식하는 아저씨와 산책도 자주 했지요. 함께 산책할 때면 아저씨는 13년 동안 투쟁하면서 있었던 일보다 사업장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해주셨습니다. 부당해고로 노동자를 절망하게 만드는 구조와 더불어 투쟁하는 한 사람에 대해 관심 있던 저는 질문이 많았지요. 아저씨에게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기계 만질 때”라고 했습니다. 그때 반짝였던 눈빛, 씰룩거리던 수염, 볼이 파이게 웃는 입꼬리, 그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아저씨는 기계를 만지는 듯 손으로 날을 세운 동작을 하며 신나게 말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기술을 배워 성음악기부터 덕영산업을 거쳐 콜텍에 이르러 30년 기타 장인이 된 이야기였습니다. 산책하는 내내 아저씨는 본인의 노동사를 줄줄이 풀어냈습니다.
지난해 3월 31일에 개봉한 영화 〈재춘언니〉는 13년 콜텍 투쟁 중 일부분을 보여줍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투쟁을 정리한 후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아저씨는 원래 살던 대전으로 돌아가 영화처럼 건설 일도 하고 아파트 경비 일도 하고 도로 주변 풀을 깎는 일도 했습니다. 〈재춘언니〉 시사회에서 만난 아저씨는 하루 쉬고 하루 일하면서 수면 시간이 불규칙한 경비 일을 하고 있다며 힘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요.
아저씨는 13년 전 본인이 만졌던 기계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투쟁을 정리한 후 쉬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요. 아저씨는 일하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자랑스러워하던 멋진 노동자였습니다.
즐겁게 투쟁했던 사람
재춘 아저씨 장례를 치르고 만난 김경봉 동지는 “재춘이는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몰라. 재춘이는 다 해봤어”라고 말했습니다. 콜텍이 기타를 만드는 회사여서 그랬는지 문화예술인들의 연대로 다채롭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13년 동안 다양한 투쟁 방법들을 도전하는데 아저씨는 두려움이 없었나 봅니다. 기타 장인인 아저씨는 밴드도 하고 책도 내고 연극도 하고 영화 주인공도 했지요.

아저씨는 글씨를 예쁘게 잘 쓰지 못한다고 하지만 단식하면서 자신의 노트에 하루하루 좋은 글을 찾아 필사했습니다. 그리고 투박한 글씨로 책도 썼어요.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아저씨가 쓴 ‘농성일기’를 담고 있습니다. 1인 시위 풍경과 연극에 도전하는 이야기 등 3,000여 일 투쟁한 아저씨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아저씨는 밥을 차려주며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고 새로운 일에 걱정하더라도 부딪치면서 견뎌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단식하면서 이 책을 다시 홍보하고 싶다며 제게 홍보 문구를 적어보라고 했지요. 어떤 문구가 좋을지 고민하다가 2019년 버전의 ‘농성일기’를 재구성하는 짧은 글을 쓰기로 했어요. 그러기 위해 예전 농성장에서 식사 당번을 할 만큼 밥 먹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아저씨가 단식하는 이유에 관해 오래 이야기를 나눴어요. 함께 대화하고 글을 쓰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영화 〈재춘언니〉의 주요 사건이기도 한 연극 〈구일만 햄릿〉에서 아저씨는 ‘오필리어’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를 보면 아저씨는 열심히 연극을 준비합니다. 언젠가 놀림받진 않을지 걱정될 수도 있는데, 여장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합니다. 평소 성격이 급해 말을 더듬지만, 대사를 외우고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때의 아저씨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던데, 저는 아저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제가 재춘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인 〈재춘언니〉 시사회에서 저는 아저씨에게 프리지어를 안겨 드렸습니다. 꽃말이 딱 아저씨 것이었어요. ‘천진난만’ ‘너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국내 최장기 투쟁사업장 콜텍 복직 투쟁을 마치고 새로운 노동의 시간을 채워갈 아저씨에게 어울리는 꽃이었습니다.
프리지어 향이 아저씨에게 오래 머물지 못해 슬프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저씨가 남긴 웃음과 예술 작업을 보며 아저씨와 짧지만 끈끈했던 투쟁의 시간을 잘 기억할 거예요. 아저씨가 노동자로서 갖고 있던 행복과 당당함을 모든 노동자가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재춘 아저씨께
재춘 아저씨, 안녕하세요. 이 인사가 아저씨에게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슬프네요. 저는 이제 함께 투쟁하는 사람들과 책임과 마음을 나누리라고 다짐하며 그들을 ‘동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아저씨께 동지라고 불러보지도 못했네요. 저는 아저씨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노동의 의미를 배웠고 각자도생을 벗어나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꿀 줄 아는 연대를 배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끝까지 저를 환대해주었던 아저씨를 잊지 못할 겁니다. 단식하기까지 굳건하게 긴 투쟁의 자리를 지킨 아저씨 모습을 잊지 못할 거예요.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칠 법도 한데 웃음을 잃지 않은 아저씨 모습이 아직도 제게 큰 울림으로 남아있어요. 자기 일을 자랑하고 사랑하던 재춘 아저씨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아저씨와 소주 한잔했어야 했는데, 항상 먼저 전화해주던 아저씨가 자주 연락하라며 툴툴대던 목소리가 떠오르네요. 더 자주 안부를 묻지 못했고 만나지 못했던 후회는 계속 갖고 있을 것 같아요. 잘 가시라는 인사는 못 하겠어요. 가끔 떠올리고 그저 기억하겠다고 할게요. 모든 노동자의 존엄을 위한 투쟁의 자리에, 아저씨처럼 계속 있겠다는 다짐을 전합니다.
웃음이 포근했던 재춘 아저씨, 재춘 동지, 제 삶 한순간에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나
마음껏 사랑하고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로 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