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호 다시 만난 세계]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 김영서 상담가
1. 은수연에서 김영서로
마침내 세상은 그와 만날 준비가 되었다. 목사였던 친부로부터 9년간 성적 학대와 각종 폭력에 시달려온 실상을 세상에 드러낸 ‘은수연’은 그의 필명이었다. 처음 책이 나올 무렵 자신의 성폭력 피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공유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명이 필요했다. 언젠가 필명이 아니라 본명으로, 실루엣이 아니라 얼굴을 드러내도 안전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랐다. 2020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그는 책이 나온 지 8년 만에 필명을 본명 ‘김영서’로 바꾸고,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하며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일까. 그에게 많은 일들과 변화가 있어서였을까. 새로운 출발을 하는 데 영향을 준 사건 중 하나는 아빠의 죽음이었다. 뼛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두려움이 걷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더 큰 용기를 냈다.
2014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본지에 연재한 ‘은수연의 네버엔딩Q’에 실린 글들이 작년에 책으로 엮여 출간되었다. 지은이는 ‘은수연’이 아닌 ‘김영서’이다. 이름만큼이나 많은 것이 달라진 그의 일상이 궁금했다. 그가 본지와 인터뷰한 지는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가 일하는 상담센터 근처 카페를 찾았다. ‘은수연’이 아닌 ‘김영서’를 만났다.
- 복음과상황과 10년 만에 하는 인터뷰입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있는데요. 이번엔 본명으로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드러내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몇 년간 미투가 계속되었잖아요.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준비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실명을 밝힐지 고민할 때 가장 많이 고려했던 건 제가 말을 해도 안전할 수 있을지 여부였어요. 사실 저는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정도가 아니라 미끄럽지 않은지 뒤집어보는 사람이죠. 아무튼 어렵게 발을 내디뎠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 실명을 공개했을 때 어떤 반응들이 있었어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명을 김영서로 바꾼 개정판을 내고, 〈세바시〉에 출연한 게 제 나름의 미투였어요. 반응을 보면서 이런 선택을 하길 잘했다고 느꼈는데요. 악플이 거의 없었고, 응원하는 말들이 대다수였죠. 많은 분이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살아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래서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됐죠. 2차 피해를 당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저는 다른 분들이 앞서가셨기 때문에 뒤에서 편하게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은수연’도 앞서 그 길을 걸어가며 어떤 역할을 한 게 아닐까요?
책이 나오기 전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글을 연재했을 때는 ‘수’라는 이름으로 글을 썼어요. 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책이 나올 때 평범한 이름에 성을 붙여서 ‘은수연’이라는 이름이 탄생했죠. 제 이름을 되찾기까지는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제 이름과 얼굴을 밝히고 나니까 분리되어있던 내가 통합되는 느낌도 들었지요. 어릴 때 상처 입은 ‘은수연’이 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인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네가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인 게 잘 매치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는 이럴 것이다’라는 편견이죠. 이런 편견을 깨는 데 하나의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합니다.
2. 생존자이자 상담가로
그는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이면서,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상담하는 상담가가 되었다. 이는 그가 인생의 멘토들, 친구들의 도움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던 경험과 관련 있다. 아빠라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부터 탈출한 뒤에 도움을 준 은인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만난 언니들이었다. 상담소 언니들 곁에 계속 있고 싶어서 상담소 일을 배웠다.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상담하는 일을 꿈꿨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집을 나와 만난 한국성폭력상담소, 교회, 일터의 친구들 모두 내 상처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친구들의 빛나는 눈들이 내 수치심을 씻어줬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122쪽)
이제 그는 빛나는 눈으로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 작년에 출간하신 《질문하는 사람》을 보면 진로를 고민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떻게 상담 일을 하게 되셨어요?
복상 지면에 연재할 때는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여성학을 공부할 생각이었죠. 그땐 제가 여성운동에 뼈를 묻을 줄 알았어요. 그러다 심리 상담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심리 상담을 전공하고, 자격증도 준비했어요. 시간이 꽤 걸렸지만,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죠. 예전에는 제가 상담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 내담자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거든요. 이것도 편견이었죠. 상담에서 내담자는 본인의 문제로 찾아오는 거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처와 경험이 있는지가 우선되지 않거든요. 이런 편견을 깨고 나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왔다는 것을 느껴요. 그동안 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면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상담하면서 꼭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상처 입은 경험이 있어서 오히려 내담자들이 받은 상처, 고통, 공포와 불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담자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저는 한 번도 ‘우리 얘기 좀 하자’는 식으로 접근한 적이 없어요. 다만 내가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넌 내게 이야기를 해도 되고, 여기는 안전해’라고 말하면서 기다려주죠. 내담자에게는 그런 상담자가 필요하거든요.
- 요새는 줄곧 상담 일만 하시나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폭력 예방 통합교육 강의도 하고 있어요. 제가 다른 강사님들로부터 받는 평가는 ‘너니까 할 수 있는 말들을 하기 때문에 다른 강의들과 다르다’라는 거예요. 당사자성을 가지고 피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죠. 그래서 무얼 하지 말라는 식의 교육은 하지 않으려 해요. 보통 폭력 예방 교육이라면 ‘무얼 하면 안 된다’ ‘하지 마라’는 얘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요. 피해자들 입을 막는 말은 최대한 피해야 하죠. 우리 사회에는 피해자들이 더 편히 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필요해요. 강의를 듣는 분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3. 악이 사라지고 삶은 계속된다
2019년 그의 아버지가 죽었다. 교통사고가 난 그 사람은 8개월 정도 병상에서 식물인간처럼 있었다. 김영서 상담가는 그 사람이 중환자실에 있을 때 그곳을 찾아갔다. 그 사람은 인공호흡기를 낀 채 의식 없이 누워있었다. 더 이상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상태인데도 김영서 상담가의 몸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잘 가시라’고 한마디하고 나왔다. 이제 다른 사람이 나의 공간에 들어오는 것이 편안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상이 시작될 것 같았다.
- 10년 사이에 겪으신 일 중에 가장 큰일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가해자이자 아빠였던 사람이 죽었습니다.
어느 주말 아침, 막냇동생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아빠가 교통사고가 났고, 의식 없이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가고 있다고요. 오라는 말은 아니라고 동생이 콕 집어서 말했지만, 그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가볼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이런 연락을 받으니 당황스러웠어요. 가끔 죽이고 싶다고, 그냥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지만, 언제부터는 그럴 겨를도 없었어요. 사느라 바빴죠. 결국 그 사람은 몇 달을 혼수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 그 후로 달라진 것이 있나요?
아빠라는 사람을 만나서 내 인생이 망하지 않았다고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꿈을 꾼 적이 있어요.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증명할 필요 없어. 그냥 김영서로 충분해” “언니는 이제 자유인. 캡틴 마블이 남긴 유명한 대사가 있잖아. 난 너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어”라고 답을 해주기도 해요.
저는 그 사람이 죽었음에도 아직 억울하다는 감정이 생기거나 ‘이 ××를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이미 죽었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죠. 저는 동생들과 가끔 우리가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얘기해요. 저도 이번 추석 때 알게 된 일인데, 동생은 고등학교 다닐 때 아빠가 감옥 가고 그러는 걸 보면서 학교를 안 갔었대요. 그랬는데도 수능을 보니까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한 일이죠. 그러면서 ‘내가 평범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라고 말하는데, 저도 그런 마음이 있어요. 저는 교육 심리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아빠는 제가 가고 싶은 학교와 학과에 원서를 써주지 않았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죠. 그 사람 때문에 내 인생 커리어가 꼬였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속상함이 불쑥불쑥 올라와요.
- 그런 생각이 들 땐 어떻게 하시나요.
하나님이 내 인생 초창기에 ‘빅엿’을 날리셨으니, 나중에 잭팟이라도 터트려서 보상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웃음) 하나님이 내게 제대로 된 아빠를 주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아버지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시간을 거스르시는 분은 아니잖아요. 아빠라는 사람이 나를 성폭력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죠. 시간을 돌이켜서 내가 그 시절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 하게 할 수도 없어요. 사실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일이죠.
4. 용서는 피해자로부터 시작된다
아빠라는 사람은 죽기 전까지 한 번도 사과한다거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감옥에 가서도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고, 증거나 정황이 모두 드러나 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김영서 상담가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였다.
“용서하려고 애쓰지 마라”는 친한 목사님 말씀은 일상을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김영서 상담가는 용서가 의무나 숙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 용서가 이루어지려면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인터뷰에서 “치유의 과정은 피해 사례별, 사람별로 다르다”라고 하신 걸 보고 생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사실 그 사람에게 사과도 받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이 사과를 안 하기도 했지만, 사과를 받는다고 내가 수동적으로 용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용서가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잘못했다고 하고 회개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용서는 아닌 것 같아요. 내 죄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다만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도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사랑의 존재로 살고 싶죠.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책에 실은 것도 말씀하신 맥락으로 하신 용서인 거죠?
제가 아빠라는 사람을 용서했다고 한 건 나를 위한 일이었어요. 이기적인 용서라 할 수도 있어요. 누구를 미워하면서 분노와 증오를 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런 에너지조차 쓰고 싶지 않은 거죠. 제가 하려는 용서는 관계 회복을 위한 용서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사과를 했다고 해도 저는 받지 않았을 테고요. ‘진정한 사과’와는 상관없는 일 같아요. 저는 가해자가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런 걸 기대하지도 않죠. 깊은 상처를 받은 피해자가 과연 진정한 사과를 바랄까요? 가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바랄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요. “네 아빠가 천국을 가면, 나 지옥 가련다. 그 지옥 가고 말지. 내가 천국 가서 그 인간을 다시 보느니.” 가해자에게 바라는 건 없었어요. 뭔가를 바란다는 것도 또 하나의 기회를 주는 것 같아서 싫어요.
- ‘진정한 사과’라는 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다?
진정한 사과로 기억되는 게 뭐가 있나요. 오히려 진정한 용서라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손양원 목사님도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무리 중 한 명이었던 안재선을 아들로 삼았죠. 안재선이 진정한 사과를 해서 용서를 받은 건 아니잖아요. 위대한 용서가 먼저 있었고, 그 사람이 자신의 죄를 뉘우쳤겠죠. 진정한 사과가 용서를 존재하게 하는 필요조건이나 꼭 선행되어야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피해자를 감동시킬 만한 사과가 어디 있겠어요.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사과가 어디 있겠어요.
- 가벼운 일상에서는 사과와 용서가 자주 요구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람끼리 미안하다고 했는데 왜 받아주지 않냐고 하면서 다툴 때가 종종 있잖아요.
잘못한 사람에게 그런 권리까지 있는 건 아니거든요. 사과했다고 다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니죠. 사과는 언제까지 해야 하냐는 질문에 많은 분이 ‘상대방이 용서를 받아줄 때까지’라고 하는데, 그것도 너무 집요한 행동인 것 같아요. 받아줄 때까지 따라다니면서 사과하면 그건 스토킹이죠. 사과받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사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하게 되지요. 피해자에게는 상대방에게 ‘당신이 가해자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야’라고 할 자유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가해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거든요.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당신과 연락하고 싶거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이런 부분은 피해자가 충분히 정할 수 있어야 해요.
- 사과의 완성은 없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네. 사과의 완성은 가해자 쪽에서 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쪽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 사과를 전적으로 받을지 말지는 피해자 몫이니까요. 백만 번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 사과가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죠.
5. 우리에겐 돌아갈 곳이 있다
김영서 상담가는 험난한 인생사를 지나오면서도 신앙을 놓지 않았다. 신앙은 오히려 그 시기를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다.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그 힘든 시기는 통과했냐는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울면서 기도하는 게 취미였다.”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빼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9년이라는 세월이 존재한다. 그에게 신앙은 매일매일 돌아갈 곳이다.
- 죽음에 관해 생각해본 적 있냐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어려우실 것 같아요.
아녜요. 저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이죠. 삶의 목적지는 죽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매일 죽음으로 한 발씩 다가서고 있죠. 한편으로는 삶이 완성되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이걸 읽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죽음이 별로 두렵지 않아요. 힘든 삶을 살아서인지 하루빨리 하나님을 만나서, 나 너무 힘들게 살다가 여기에 왔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하나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A4 한 장에 적어놨다가 그때 가져가고 싶었어요. 하나님을 만나면 내가 질문도 하기 전에 모든 것이 깨달아졌으면 좋겠어요. 물론 살아가면서 깨닫고 알게 되면 더 좋겠죠.
- 하나님이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시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작가님께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은 제가 어떤 지랄을 해도 다 받아주시는 분이죠. 제가 정말 욕도 많이 했는데, 가장 믿을만한 ‘빽’이고요. 제가 자주 그러거든요. “하나님, 저 아무도 없는 거 아시잖아요.” 하나님이 이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다른 대안이 없어요. 저도 불교, 가톨릭 그리고 여성운동까지 제가 종교처럼 받아들이고 추종했던 것들이 있는데, 무엇도 제게 답이 되지는 못했어요. 남은 건 하나님밖에 없어요. 돌아온 탕자가 괜히 아버지에게 돌아온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돌아갈 곳이 거기밖에 없었겠죠.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