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호 다시 만난 세계]
비아(Via)는 라틴어로 ‘길’ ‘방법’이라는 뜻이다. “책은 끝나지 않았고 탐구도 끝나지 않으니 길은 계속 이어진다”라는 문장으로 소개되는 비아 출판사(이하 ‘비아’)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신앙의 공통 감각을 새기는” 신학서들을 출간해왔다. 성공회와 협력해 한 달에 한 권꼴로 책을 내왔고, 교파 구분을 넘어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숙을 돕는 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독서운동’을 이어간다.
비아가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민경찬 편집장의 공이 크다. 그는 2014년 9월부터 기획위원으로 비아에 참여했고, 2015년부터 편집장을 맡아 책을 만들고 종횡무진 기독 출판계에 비아를 알렸다.
10월 25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종교개혁 기념행사에서 그와 마주쳤다. 그는 캠퍼스 행사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천막 부스에서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운동’ 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비아 출판사를 알아봤고, 테이블에 깔린 책들을 구매했다. 판촉 흥행을 축하하며,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비아의 책을 만들어온 시간 동안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들을 수 있었다.
- 오늘 많은 분이 비아 부스를 다녀가신 것 같아요. 복음과상황 부스도 옆에 있었는데, 비아 쪽으로 직진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저희는 낙담하면서 그 모습을 바라만 봤습니다.
언제는 복상 부스에만 사람이 몰릴 때도 있을 것이고, 언제는 비슷비슷하게 두 부스를 찾는 경우도 있겠죠. 낙담하면 지는 겁니다.(웃음)
- 비아가 생긴 지 10주년 되는 해입니다. 기념 예배를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죠? 어떤 길을 걸어오셨나요?
기독교 교양의 함양, 신앙의 공통 감각을 새기는 길을 걸어왔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성공회 정신을 나누는 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건 교파로서 성공회를 전하고 알리는 일과는 다릅니다. 교파로서 성공회를 전하려 했다면, 로마가톨릭교회, 정교회, 장로교, 감리교 등과 성공회가 무엇이 다르며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설명하는 책들을 내려 했을 거예요. 하지만 성공회의 장점은 그런 ‘교파로서의 구분됨’이 아니라 ‘모든 교파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토양’에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 교양의 함양, 신앙의 공통 감각을 새기는 것이 그 토양이라 할 수 있겠지요. 비아는 이 길을 걷고, 나누려 애를 써왔습니다.
- 그게 제작되는 책으로 어떻게 드러납니까?
일단은, 저자 선정에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비아 저자군은 성공회, 장로교, 정교회, 로마 가톨릭, 감리교 등 다양한 교파에 속한 신학자들입니다. 물론 성공회 저자들 비중이 높지만 말이죠. 그런 다양한 교파에 속한 신학자들이 다룬 책들은, 그들의 ‘교파적 색채’가 드러나는 저서보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주제들(예수, 십자가, 부활, 성서, 예배, 믿음, 동·서방을 아우르는 교회의 역사) 혹은 누구나 알면 좋은 주제들(종교와 과학의 관계, 성서 형성사, 성서 해석 문제, 역사적 예수 연구 문제, 교부들, 사막 수도 운동)과 관련된 저서들입니다. 이 방식이 다양성 가운데 일치를 이루고, 공통 감각 속에서 다양성을 되새기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출간된 책이 쓰이는 곳에서도 저희 방향성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비아에서 낸 책은 개신교 신학교에서도 교재로 쓰이고, 일반 대학교의 기독교학과 교재로도 쓰이고, 가톨릭 신학교의 영성 지도 과정 교재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각 교파 신학교 교재를 펴내는 곳도 있고, 종합대학 기독교 수업 교양 교재에 적합한 책을 내는 곳도 있고, 가톨릭이야 가톨릭출판사와 분도출판사 같은 대표적인 가톨릭 출판사가 있지만, 셋 모두에게 읽히는 책을 내는 출판사는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 그게 저희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고요.
- 7년 전 복음과상황과 인터뷰했을 때와 달라진 게 있습니까?
책의 종수가 다르지요.(웃음) 처음 인터뷰했을 때는 제가 편집장이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그때는 출간된 책이 15권이었는데, 지금은 95권이죠.
- 당시에도 성공회와 비아의 관계를 묻는 말과 답변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비슷하게 말씀해주시고, 그 태도도 유지하고 계시네요.
편집장으로서 제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그때는 기획 도서 목록에 성공회 범주가 있었고, 교회 운동 관련 도서 목록도 있었습니다. 브랜든선교연구소라는 교회 운동 관련 연구소가 따로 책을 펴내고, 성공회 공식 교단 출판사인 성공회출판사가 활력을 찾으면서 그쪽 관련해서 책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었죠.
- 비아는 전체적인 출간 계획을 갖고, 한 권씩 순차적으로 펴낸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독서운동 회원이 되어서 매달 비아의 출간 순서를 따라 책을 읽어볼 수 있어서 유익하겠고요. 그런 계획이 지금은 어디쯤 와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책을 만드는 것 이외에 비아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 인생 목표가 300권의 책을 기획 편집하고 30권의 책을 번역하고 3권의 책을 쓰는 것이라 말하곤 하는데요. 현재 95권을 펴냈으니 그중 1/3 지점에 와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이건 제가 그리는 비아의 모자이크에 한해서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이 모자이크에 새로운 모자이크를 덧입히길, 그런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비아의 길이 단단해지길 애쓰고 있습니다.
10주년을 맞으며 들었던 생각은 다른 기독 출판계 단체와 서로 연결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를 알리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비아 특유의 색채를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비아뿐 아니라 전체 생태계가 살아야죠. 워낙 위기니까요. 기독 출판 생태계, 나아가서는 거기서 나오는 담론에 좀 더 기여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단체가 있다면 어디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콘텐츠를 생산하고 나누고 싶어요.
-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단체라고 하셨는데요. 비아와 다른 기독 출판 생태계의 교집합이라면, 신학이 삶에 주는 유익함이 아닐까 싶어요. 신학서, 신학이 독자들에게 주는 도움이 있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쨌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우리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우리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거울에 비추어 판단하고, 거기서 구심점과 나아갈 길을 찾고 주어진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데 있잖아요. 그럴 때 신학적 사유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위험한 건 우리가 기독교 문화에 오래 노출되었다는 이유, 오래 몸담았다는 이유로 당연히 기독교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우리는 성서, 전통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문화의 진부한 답을 되풀이하는 유혹, 그렇게 하고픈 유혹에 잘 빠지는 것 같아요.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일치의 감각은 높아지고, 응답하는 방식은 다양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유혹에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응답은 획일화되고, 대화는 가벼워지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신학은, 적어도 좋은 신학은 성서 및 전통과 대화를 깊이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응답의 다양성을 열어주는 데 기여합니다. 그래야만 하고요.
- 어떻게 보면 기독교 문화에 길들어진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자유라고 할 수 있어요. 죄에 얽매인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우리가 더는 죽음, 필멸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에 얽매일 필요 없이 자유롭게 되었음을 선포하는 종교죠.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물로 받은 자유를 온전히 입어서 각자의 모습대로, 함께 빛나는 게 아니라 자꾸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틀, 아니면 그 속에서 사회집단으로서 교회가 암묵적으로 만들어놓은 틀(진보적인 틀일 수도, 보수적인 틀일 수도 있습니다)에 우리를 스스로 가두려 한다는 거죠.
정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기독교인은 좌파도 될 수 있고, 우파도 될 수 있지만, 어느 쪽이 되더라도 통념적인 좌파, 우파와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기독교인이 기업 경영을 할 수 있고, 시장 질서를 어느 정도 긍정할 수도 있지만, 이에 무비판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이웃사랑과 하나님의 경영이라는 대원칙이 있기 때문이지요. 전체주의를 경계하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해 이를 상대적으로 좀 더 강조하는 사회체제, 경제체제를 옹호한다 해도 기독교인은 또 다른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좌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등을 아무리 중시하고, 이를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사회체제, 경제체제를 지향한다 해도 기독교는 ‘영혼’으로 표현되는 영적 차원, 실질적 자유의 차원을 좌시할 수 없어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되, 또 다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생각의 자원이 필요하고요. 그럴 때 신학 도서들이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 비아에서 일하시는 동안 편집장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 민망한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더 진지하게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려 하지요. 어른이 된다는 건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내게 주어진 일에 책임지는 법을 익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향한 여러 부정적 시선에 대해서도 무던해지는 것. 달리 말하면, 나의 한계와 자리를 깨닫고,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 지금까지 만드신 책 중 편집장님에게 큰 영향을 줬던 책들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로완 윌리엄스가 비아의 대표 저자이고, 제가 번역자로도 가장 많이 참여한 저자인 만큼 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해야겠지요. 로완 윌리엄스 책 중 한 권을 꼽기는 힘들 것 같네요. 그의 책을 제외하고 한 권을 고르자면 《신앙의 논리》를 꼽을 것 같아요. 제가 그때까지 알아왔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신앙의 전체 풍경을 하나씩 그려나가는 방식에 감탄하기도 했고, 다른 무엇보다 ‘나도 저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 책이었어요. 저자 마크 A. 매킨토시는 몇 년 전 돌아가셨는데, 온몸이 수축한 상태에서도 신학 강의를 이어갔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지요. 누군가 보기에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런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삶, 감사와 기쁨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편집장님은 저자를 소개하실 때 늘 그 사람의 삶의 맥락을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요. 거기에 감동하시는 것 같고요. 편집장님의 여정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셨고, 대학원에서 철학적 신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그때는 어떠셨어요?
버릇없었죠. 오만했고.
- 오만했고…?
오만했죠. 세상의 고통을 전부 다 짊어진 척했고요.
- 많이 힘들었습니까?
그때는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을 잘 감내하기보다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스스로 되게 힘들다고 생각하고 고뇌하면서 그런 자신을 은밀히 남들 위에 올리고 쾌감을 얻는 독에 빠져있던 거죠. 책을 읽더라도 내 현재 생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그 확증 편향을 심화시켜주는 방식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경청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이야기와 삶을 듣기보단 그냥 표층적인 논쟁에서 이기는 걸 좋아했어요.
- 책 만드는 일 말고는 무엇을 하며 지내십니까?
딱히 없습니다. 일하는 동안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잠시 산책을 하거나. 그게 다죠. 이 모두가 일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요즘에는 이 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어요. 10주년 기념 행사 때도 많은 분이 조언해 주셨습니다. 향후 10년은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고요.
- 여유와 밸런스를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요?
여유, 밸런스 그런 건 바라지도 않고 적어도 주일은 멈춰야 한다는 거죠. 일상에서 딱 하루라도 완전히 숨을 고르는 시간이 제게 필요하다고요. 아이러니하죠. 기독교 출판사 편집장인데 일요일에도 안식을 충분히 못 하고 있다는 게요.
- 편집장님은 비아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걸 하고 계셨을까요?
교수는 못 되었을 것 같고, 이 대학교 저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강사 생활을 하고 있었겠지요. 원래는 박사학위 받은 후 사서교육원이나 관련 대학원에서 사서 자격증을 따고 사서가 되려 했으니 도서관에서 사서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 야간 강의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무엇이 되었든 책, 신학과 연관된 삶을 살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웃음)
- 더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신학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신학 쪽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글쎄요. 저는 신학 전공을 하게 되면서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그전에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흐릿했고요. 수능 성적과 부모님의 강권이 맞물려서 신학을 택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시간이 흐르면서는 하나님, 세계, 인간을 좀 더 깊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비아가 복상과 인연을 맺은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편집장님께서 복상과의 인연을 우정이라고 표현해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의 조짐이 많았죠. 이범진 편집장님과는 꽤 오래전부터 팟캐스트 ‘슬기로운 독서생활’을 함께했으니까요. 김진혁 교수님의 《신학의 영토들》을 기획할 때 아직 쓰이지 않은 서평들을 실을 매체로 먼저 떠오른 곳도 복상이었습니다. 복상 구성원들을 만나면 언제나 편한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편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더라고요. 어쩌면, 비아 구성원이나 복상 구성원들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점도 연대 의식을 느끼게 해주는 데 한몫했을지도 모르죠.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친구들이 친해진 이유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웃음) 그저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런 우정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에요.
진행 정민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