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한마디로 신학은 내게 ‘대유잼’이다.”

이번 호 김자은 필자의 글을 읽다가 멈칫했습니다. ‘대유잼’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기 때문인데요. 몇몇 온라인 사전에도 등록된 신조어였습니다. 아무도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걸 봐서는, 에디터들 중 저만 모르는 단어가 분명했습니다. 본문에 각주를 달면, 글의 분위기를 해칠까 봐 그냥 두었는데요. 저처럼 대유잼의 뜻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 지면을 통해 짧게 설명을 드립니다. 대유잼, 발음은 [대ː유잼], 형태는 [大+有+재미]입니다. 즉 ‘노잼’(No+재미)에 대비되는 ‘아주 재미있음’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물론,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재미가 단순 ‘유희’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소중한 사람을 잃고, 이해 안 되는 상황들과 부닥치지만, 예수를 진정 사랑하게 되는 경이에 가깝다고 할까요. “교회도 다니지 않고 기독교계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신학을 전공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하면서도 “진정으로 예수에게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게 됐다”라는 그의 신앙 여정이 곧 신학의 줄기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이어 지난 2월호에서 인터뷰했던 김용균 재판 유족 대리인 박다혜 변호사가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실렸습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관점으로 법을 해석하는 그는 우리 사회에 차별과 배제, 폭력과 착취는 늘어만 가고 ‘신은 어디서 뭐 하고 있느냐?’는 부르짖음도 그치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신학을 하고 또 계속할 것”이라 다짐합니다. 여성에게 ‘직업으로서의 신학’이 가능하다는 암시조차 없을 때부터 신학을 시작한 구미정 교수는 그동안 (《한 글자로 신학하기》, 《두 글자로 신학하기》, 《그림으로 신학하기》 등을 쓰면서) 모든 신앙인이 신학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마중물을 쏟아부어 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자기 신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신학자”라는 그의 이번 글 제목은 무려 ‘나 지금 되게 신나’이네요. 대유잼?

‘다시 만난 세계’에서 만난 이철빈 본지 이사의 신앙 분투도 눈여겨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참사를 당해 힘겨운 시기를 보내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일선에 나선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활동들은 제 신앙생활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력도 생기고, 조금 더 멀리 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 늪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기도하면서 얻은 위로 때문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하나님이 계속 제게 물어보시는 것 같아요. 그럼 저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제게 맡겨진 일을 하겠습니다’ 다짐하게 됩니다.”

자기 신앙에 책임지고자 애를 태우고 있을 독자들에게도 위로와 신명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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