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호 에디터가 고른 책]

수도회, 길을 묻다 / 최종원 지음 / 비아토르 펴냄 / 20,000원<br>
수도회, 길을 묻다 / 최종원 지음 / 비아토르 펴냄 / 20,000원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게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하는데, 왜 이들이 정치에 참여할수록 상황은 악화되는 걸까?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전체 맥락에서 보면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교회가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보다 “사회 속에서 개신교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고 영향력을 가져야 교회다움이 유지된다고 오해하며, 그 영향력을 상실하는 현실에 발을 동동거린다”는 저자의 말이 신선했다. 그는 이어 말한다. 

“종교가 잃은 것은 영향력이 아니라, 다른 이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성찰성이다. … 지금은 억울함을 토로하고 변명할 말을 찾을 때가 아니다. 먼저 입을 닫고 침묵하며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 그것이 수도원 전통이 가르치는 진정한 거룩한 독서다.”

수도회 정신과 역사가 어떻기에 왜, 지금 이에 주목하는 것일까? 유럽중세사를 연구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글쓰기를 이어온 최종원 밴쿠버세계관대학원(VIEW) 교수의 신작인 이 책은 ‘수도회 운동’을 키워드 삼아 기독교 역사가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살핀다. (본지에서 동일 제목으로 연재된 글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연재 때는 실리지 않았던 글도 수록되어있다.) 동방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시작한 초기 수도회, 라틴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나타난 수도회의 모습들을 지나 신수도회주의 운동까지 살펴볼 수 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챕터는 여성 수도회 이야기를 담은 ‘닫힌 공간에서 피어난 영성’이었다.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탄생한 수녀원은 당시 여성 혐오에서 출발한 공간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여성들이 문해력을 갖추고 저술을 하고 권위를 가지는 등 전통적 성 역할을 넘어선 활동을 한 역설적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근거를 통해 저자는 수도회는 세상에서 고립을 추구한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변혁을 꿈꾼 급진적인 저항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변혁은 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생성되었다는 것도.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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