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호 로잔 1974-2024] 무엇을 새기고, 무엇을 넘어설 것인가?
로잔운동 5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제4차 로잔대회’가 2024년 9월 한국에서 열립니다. 4차 로잔대회를 전후하여 로잔운동을 둘러싸고 교차하는 관점과 평가, 의의와 유산을 짚어보는 글을 게재합니다. ‘다시 로잔을 생각하다’(이강일, 7월호), ‘‘화해의 나라’를 가리키는 로잔운동’(이강일, 8월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 편집자 주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선교 대회는 1989년 마닐라에서 2차, 201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3차 대회로 열렸다. 내년 9월에 한국 송도에서 “2050년까지 모든 열방 제자화와 세계 형성”이라는 목표와 4중 비전(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 모든 사람과 장소를 위해 제자 삼는 교회, 모든 교회와 영역에 그리스도를 닮은 리더 양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향 미치기)을 내걸고 4차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로잔언약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은, 어떻게 한국이 로잔대회 개최지가 되었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한국 제도권 교단이나 선교단체가 로잔언약을 자신의 선교 노선으로 삼는다고 공식 선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NCCK 가입 교단은 WCC에 속했거나 그 노선에 동조하며, NCCK 밖의 보수 교단들은 로잔언약 이전 시대 선교관, 즉 거의 19세기 선교관(교회 중심 타 문화권 및 불신자 선교, 최후 심판에 구원을 약속하는 구령 복음전도,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로잔언약과는 다른 선교 노선을 취해왔던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나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 등이 한국 로잔대회를 주도하는 직분자들이다. 한국 로잔대회는 과연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한반도 평화 혹은 동북아 평화가 서울대회의 열쇠 주제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이나 2대 해외 선교사 파견국으로서 원동력을 캐묻고 연구할 것인가? 한국 로잔대회 조직위원회는 로잔언약을 과연 이해하고 있을까?
이 글에서 우리는 로잔을 넘어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15개 항으로 된 로잔언약 규약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세계 교회 및 한국교회에 끼친 로잔언약의 영향을 다룬 후에 로잔이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과업(5항)을 논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로잔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계승할지를 고민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1974년 로잔 선교대회와 로잔언약 개관
1974년 로잔 선교대회가 채택한 로잔언약은, 개인전도 중심의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복음주의와 존 스토트가 대변하는 영국 성공회의 성찰적 복음주의, 그리고 중남미 해방적 복음주의(르네 파디야, 오를란도 코스타스, 사무엘 에스코바르)가 ‘세계 복음화를 위한 복음주의자 광폭 연대’를 다짐하는 언약이었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모두 15개 항으로 된 언약은 빌리 그레이엄이나 랄프 윈터 같은 세계 복음화 선교운동가들의 관심을 우세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언약은 과거 선교사역 분석, 현재 상황 진단, 다짐과 자기 책려적 성찰을 담고 있다.
로잔언약 입안자들은 1968년 웁살라 WCC 대회(총체적 구원=정치사회 경제적 해방)를 보면서 우려를 표하면서도 동시에 도전도 받았다. “우리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 대회 후계자를 자임하는 WCC는 1966년경에 이미 세계의 모든 회원 단체/교단들의 교회와 선교 지도자들과 직접 접촉했으며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신생 독립국가들에도 지부 조직을 결성했고, WCC의 미래를 담당할 지도자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했던 대학생 및 청년 운동 단체들(존 모트의 후예들)과도 역사적 연결 고리들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다층적으로 여러 나라 선교단체들 및 교회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WCC는 1950년부터 1979년에 이르는 약 30년 동안에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을 주창했다. ‘하나님의 선교’는 거룩한 세계 변혁 활동 자체가 하나님의 선교이며, 교회는 이 하나님의 선교에 초청받은 동반자일 뿐 주체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WCC는 예수님의 마지막 대위임령이 단지 개인적 복음전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총체적인 해방·정의·화해 사역에 입체적으로 참여하는 일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존의 개인 복음전도는 식민 통치 시기가 끝난 세계가 주는 도전들을 소화하기에는 너무 협소한 선교 이해라는 점을 주지시키며 이런 전통적 개인전도(구두 복음전도)에 위기가 왔음을 공론화했다.
WCC 같은 에큐메니컬 선교운동가들은 이처럼 역사 속에 벌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해방적 사역, 정의를 위한 관여, 인간 존엄을 파괴하는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차별 철폐, 그리고 창조질서 보전 등을 하나님의 선교로 본다. WCC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성경의 권위, 삼위일체 등의 기독교 중심 교리를 희생하거나 기독교 정체성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이 다채로운 해방적 행위에 동참하는 데 투신하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고등종교들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복음전도나 해외선교를 자제하려고 하며, 오히려 종교포용주의나 다원주의 입장을 취하여 종교 간 평화를 도모한다. WCC는 하나님의 참다운 본질은 기독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거룩하게 포기하고 해체할 때 드러난다고 본다. WCC는 일찍이 마르틴 부버가 “하나님은 유혈 낭자한 단어이다”라고 갈파한 데서 드러나듯이, 제도화된 기구로서 기독교회는 선교와 복음전도의 이름으로 인류 사회에 식민지 압제와 약탈 등 불의한 서구의 비서구 지배나 전쟁 및 폭력 행위들을 옹호해왔음을 자기비판적으로 성찰한다. 특히 19세기 식민 제국주의 시대의 중심 이데올로기에 편승했던 지난날의 선교적 과오를 뉘우치려고 한다. 이런 기여에도 1910년 제1회 대회 이후 WCC는 제도적 종교들 간의 대화와 문명 교류적인 공존정책을 앞세우는 경향 때문에 전통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전파하는 데는 미온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WCC는 또한 개인 회심의 필요성을 폄하하며 미전도종족 선교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세계 평화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본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그에 비해 1974년 로잔에 모인 복음주의자들은 단지 기구적으로서가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 될 필요를 느꼈다. 성서의 권위, 개인 구원에 대한 투신, 복음전도를 위한 최선의 도구들과 실천 방안 개발, 전 세계를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게 할 수 있는 희망적 관점의 견지라는 으뜸 원칙들에서 일치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처음으로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의 “철저한 탈사회적 구령 복음” 선교 대신 사회정의 추구를 수용하는 선교관으로 이행했다. WCC를 의식해서였든 아니었든 상관없이, 로잔언약 5항이 개인적 복음전도와 사회정의 추구를 위한 행동을 동반자 관계로 정의한 점은 근본주의적 19세기 선교관에서 진일보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로잔언약 15개 항 거의 대부분은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의 관심사를 충실히 대변한다.
로잔대회 대주주는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이며, 대회 기획자도 빌리 그레이엄이었다. 로잔대회는 19세기 서구 중심적 선교관을 거의 그대로 존치하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비서구 교회, 남반부 신생 교회들을 세계선교 파트너로 초청하여 세우려는 빌리 그레이엄과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의 의도를 대변했다. 빌리 그레이엄은 WCC의 영향력 확장,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드러난 로마 가톨릭의 유럽 개신교 침투에 대항하는 한편, 동서 냉전 체제 아래서 공산주의 침투에 노출된 2-3세계 신생국들의 교회 보전 등을 위하여 웬만한 차이들은 다 극복하고 “우리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 성취하기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대동단결”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에 존 스토트 등 영국 복음주의자들, 중남미 사회정의 추구적 개신교 선교학자들과 교회들이 호응해 로잔대회가 열렸다. 15개 항으로 된 로잔언약은 대부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의 세계 복음화 비전과 서구 중심적 선교관을 가진 사람들의 선교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5항과 6항 정도가 존 스토트나 르네 파디야 등 중남미 복음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1항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이 선교 주체임을 명백히 선언하며 하나님이 주도하는 선교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 확장,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건설,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천명한다. 1항은 전체적으로 이런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지난날 교회가 범한 실패와 불순종을 언급하는 겸비함과 자기 책려적 성찰을 담고 있다. 2항 “성경의 권위와 권능”은 성경이 핵심적으로 옹호하는 바(하나님의 세상 창조, 세상 구원, 세상 회복 등 구원 계획,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자성 등)에 있어서는 오류가 없는, 신앙과 삶의 유일 무오한 규준이라고 확언한다. 3항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은 개혁교회의 제한속죄론을 천명하며 신정통주의 개신교의 보편적 만유화해론과 종교다원주의를 반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세주로 선포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동적 혹은 궁극적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제공한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님을 강조한다. 4항 “전도의 본질”은 복음을 믿으라는 초청은 제자도 실천 요구를 담고 있으며 예수께서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오라는 요구를 받는다는 점을 상기한다. 복음전도가 이뤄진다면, 복음화된 개인은 그리스도께 인격적으로 순종하며, 그의 몸 된 교회의 일원이 되며, 세상에서 책임 있는 봉사자로 살도록 요구받는다는 말이다.
5항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만민의 창조자이자 심판자인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인은 정의와 화해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공유하며 모든 종류의 압제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하나님의 해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로잔언약 서명자들은 복음전도와 사회적 관심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보았던 지난날의 허물에 대한 참회를 피력한다. 사회적 행동이 복음전도 그 자체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은 아닐지라도 복음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본래 의무임을 확언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거듭 태어나는 자들이기 때문에 불의한 세상에서 의를 보이고 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는 구원은 개인 생활상의 책임들과 사회적 책임들을 수행하는 데 있어 우리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를 인용하며 5항은 끝난다.
6항 “교회와 전도”는 세계 복음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규정한다. “세계 복음화는 ‘전체 교회’(서구와 비서구 교회 다 함께)가 ‘통전적 복음’(구령의 복음과 사회적 책임 수행)을 ‘전 세계’(특히 27억 명 미전도종족)에 확산하는 것이다(World evangelization requires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 이 조항에서 로잔언약은 스스로 십자가를 진 교회만이 복음전도의 주체가 되며, 십자가를 거부하는 교회는 전도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진지하게 경각시킨다. 7항 “복음전도에서의 협력”은 복음전도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임을 강조한다. 8항 “복음전도를 위한 동반자 교회들”은 서구 중심 선교관을 탈피하고 신생 비서구 교회들이 세계 복음화를 위한 동반자로서 세계 복음화에 참여할 것을 강조한다. 9항 “복음화 과업의 긴급성”은 인류의 2/3가 넘는 27억 명 이상이 복음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한 채 방치된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을 토로한다. 아울러 “우리 모두는 수백만 명이 겪는 빈곤에 경악하며 그것을 야기시키는 불의에 대한 심란함을 느낀다. 우리 중 부유한 나라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구호 기금과 전도 활동을 위해 계속적으로 기꺼이 재정 기부를 하기 위해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고백한다. 10항 “복음전도와 문화”는 모든 문화가 죄와 타락으로 오염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선교의 이름으로 특정 문화를 강요했던 지난 세기 서구 교회의 일탈된 선교 행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문화를 변혁하고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1항 “교육과 지도력”은 교회의 질적 성숙보다는 양적 성장에 치중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며, 양육과 분리된 전도 활동의 한계를 비판한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충분하고 합당한 교육 훈련이 제공되지 못했던 점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12항 “영적 갈등”은 교회와 세상 복음화를 대적하고 방해하는 악의 세력들과 정사들과의 부단한 영적 전쟁을 강조한다. 여기서 로잔언약은 교회 밖의 거짓 이데올로기들에서뿐 아니라 성경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는 거짓된 복음들 안에서도 악한 대적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12항은 결미에서 교회의 외형적 성장 추구 과정에서 범한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한다. 13항 “자유와 박해”는 유엔 인권 선언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세계 각 나라 지도자들이 사상, 양심, 신앙 실천과 전파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촉구한다. 14항 “성령의 권능”은 세계 복음화는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고 고백하며 성령 강습을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한다. 선교에 투신되지 않는 교회는 선교의 영인 성령을 질식시키는 교회라고 지적한다. 15항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의 재림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이 약속을 세계 복음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인정한다. 또한 지상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꿈을 추구하는 자들의 사상을 거부한다.
이런 언약 조약을 바탕으로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을 대동단결하려는 빌리 그레이엄의 야심에도, 로잔대회는 태동 시기부터 지금까지 다소간의 불협화음과 긴장 가운데서 “어렵게” 일치를 유지해오고 있다.
세계 교회에 끼친 로잔의 영향
1) 복음주의자들의 소박한 일치
그레이엄은 1974년 로잔대회에서 WCC의 선도적 비서구 신생 교회 포섭 노선에 응답하려는 듯이 새롭게 태동된 비서구 신생 독립국가 신생 교회들의 열심에 주목해 전 세계적인 선교운동을 태동시키려 했다. 그래서 1974년 로잔대회는 상이하고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는 견해들을 융합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피터 와그너, 랄프 윈터 등은 세계에 흩어진 복음주의자들의 복음전도 활동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미전도종족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모든 복음주의자가 그 노선에 동의한 것도 아니요, 그것이 수반한 원칙들에 합의한 것도 아니었다. 존 스토트와 영국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하여 다루는 것이 복음전도(evangelism)의 본질적 내용이라고 말하며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전도만큼이나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한편 르네 파디야와 오를란도 코스타스 같은 중남미 신학자들은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일을 등한시하는, 즉 문화적 제국주의의 현실들과 유리된 복음전도 행위나 사회적 문제 공론화로는 불충분하고 이를 순진한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신학적 성찰이 아니라 복음화 전략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로잔대회 선교운동의 약점이라고 보았다.
로잔운동에 내재된 이런 분열들을 드러내는 가장 의미 깊은 집담회는 태국 파타야에서 열린 1980년 세계 복음화 로잔 집담회(LCWE)였다. 이 대회는 하나님의 선교 대행자들(주체들, agents)로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고 서구 교회 중심의 해외선교 행태를 비판했던 멜버른 WCC 선교대회 몇 달 후에 열린 집담회였다. 파타야 집담회는 로잔운동이 과연 사회적 책임도 복음전도만큼 본질적인 선교의 일부라고 여기고 사회적 책임 수행에 대한 투신을 견지할 것인지, 피터 와그너나 랄프 윈터 등이 주창한 “미전도종족들”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의 선교 본질을 이해하는 데 타당한지에 대한 논쟁에 휩쓸렸다. 오를란도 코스타스 등 200명의 중남미 대표자들이 집담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으나 로잔대회 지도부는 “차갑고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1982년에 열린 집담회 “복음전도와 사회적 행동의 관계”가 복음전도와 사회적 행동의 삼중적 관계성(사회적 행동은 복음전도의 결과인가? 파트너인가? 교량인가?)을 인식하면서 사회정의 추구와 복음전도 활동이 상승적 보완 효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파타야에서 코스타스와 파디야가 제기했던 주제, 즉 서구 교회 중심의 선교관 극복과 가난한 자들을 하나님의 선교 주체로 보는 관점 채택(1980년 멜버른 WCC의 주제 중 하나)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았다.
2) 로잔 2: 마닐라 대회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차 로잔대회는 처음으로 은사 운동과 세계적 오순절 운동과 관련된 복음주의자들도 참여한 대회였다. 그러나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이 복음전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전체강의들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대회는 파타야 집담회처럼 “복음화가 안 된 자들”을 북위 10-40도에 사는 “미전도종족 집단들”로 정의하고, 2000년까지 “전 세계를 복음화”하겠다는 목표에 의해 지배당했다. 사무엘 에스코바르가 대변하는 2-3세계 출신의 많은 지도자들 관점에서 보면, 마닐라 대회는 1974년 로잔에서 천명된 선교에 대한 통전적 이해로부터 다소 심각하게 후퇴했다. 마닐라 대회는 아직도 작동 중인 제국주의(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주변부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중심부 세력),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시장 지배 전략, 그리고 지구적 문명 생활을 위협할 수 있는 첨단 기술 문명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로 일관했다. 에스코바르는 가난하고 주변화된 자들을 단지 복음전도와 선교의 수혜자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선교 주체들로 보며, 이들을 특히 중시하는 2-3세계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대변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세계 상황과 에스코바르가 지적한 문제들과 동떨어진 채 복음전도 과업이 우선시되면서, 마닐라 대회는 로잔언약 5항에 대한 충성심이 점차 와해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결정적인 분열에 이르지는 않았다. 긴장과 불협화음의 약점을 드러내긴 했어도 로잔대회를 난파시키지는 못했다.
2010년 케이프타운 3차 로잔대회 전에 열린 중간 행사로 2004년 세계 복음화 포럼(the 2004 Forum for World Evangelization)이 있었다. 이 모임은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대회가 공동 후원한 행사였다. 여기서도 여전히 창조적 불협화음은 감지되었다. 이 포럼은 먼저 31개의 우선적 쟁점들을 식별했는데 그중 많은 것은 미전도종족들의 사회적 위상 및 특징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온 세계가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은 즉시 확언되었다. 인류를 구원받은 인류나 구원받지 못한 인류로 구분하거나, 혹은 복음화된 문명인과 특이한 문화를 가진 미전도종족으로 나누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주장임도 역시 확언되었다. 이 포럼에서 눈에 띌 정도로 새로운 지도자들이 세계 복음화 로잔대회 지도부로 충원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2010년 케이프타운 로잔대회를 예고하는 전환점을 의미했다.
3) 로잔 3: 남아공 케이프타운 대회
2010년 케이프타운 대회는 이전 로잔대회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무엇보다도 2-3세계 지도자들과 대표들에게 발언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2-3세계 지도자들이 전체강의 강사로 활약했을 뿐 아니라. 상이한 주제들과 토론거리들을 다루는 19개 복합 논의 세션들에서도 집중적으로 활약했다. 로잔언약과 마닐라선언을 재긍정한 케이프타운 대회의 특징은 로잔대회 관심사들이 다극적·다중심적 양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로잔대회에 참여한 구성원들이나 회원 단체들이 긴장을 느끼거나 갈등에 빠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복음주의적 일치보다는 복음주의적 느슨한 연대(파트너십)가 더 두드러졌다.
그 결과, 어떤 아젠다나 전략 혹은 세계 상황에 대한 어떤 신학적 평가도 대세를 이루지 못했다. 이 풍성한 다양성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순기능을 할지 역기능을 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 2024년 4차 로잔대회는 과연 어떤 어젠다로 세계 복음주의자들을 실체적으로 대동시킬 것인가?
근본주의적 서구 기독교 선교 행태 극복 시도
앞서 언급한 한계에도, 지난 50년의 로잔 선교대회 발자취 개관에서 드러났듯이, 로잔대회는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비서구 침략을 복음전도의 문으로만 생각한 탓에 하나님 나라 정의 측면에서 비판적 성찰을 하지 못했던 1930년대 이전의 미국 근본주의 선교관에서는 분명히 진일보했다. 1974년 로잔언약은 구두 복음전도만을 선교의 핵심 방식으로 생각하던 ‘복음전도주의자들’(evangelists)로 하여금 복음 전파의 총체적 함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도전했기 때문이다. 로잔언약은 “세계 변혁으로서의 선교” 개념에 의거해서 사회정의 추구를 교회 선교 행위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회 지향적 복음주의자들까지 품은 세계적 복음주의자 연대를 산파했다. 구두 전도 행위에만 주력하던 빌리 그레이엄(미국 대중전도주의자)과 사회선교적 관심으로 현대 사회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을 주려던 영국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랭엄 파트너십)로 대변되는 로잔언약 주창자들은 1974년에 로잔언약 5항을 앞세워 외견상 복음주의자들의 대동단결을 성취했다. 이는 WCC의 세계적 확산과 도전에 응답하려는 시도였으며, 또한 비서구 기독교 세계(2-3세계)로부터 발원한 신학적 목소리들을 경청한 결과 안출되었던 선교 개념이었다.
이처럼 세계 교회 입장에서 볼 때, WCC에 맞서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선교관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지난 50년간 한데 뭉치게 했다는 사실이, 1974년 로잔대회가 이룬 결실이라면 결실이었다. 특히 중남미권 오순절 계통 교회들이 로잔언약에 적극 호응한 점은 또 하나의 열매이다. 중남미 교회나 선교단체 85%가 로잔언약을 받아들이고 따른다는 통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느슨하고 소박한 일치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로잔언약 주창자들이 치른 대가도 있다. ‘복음주의자들의 대동단결과 일치’를 명분 삼아 1974년 이후 로잔대회들이 로잔언약 5항이 천명했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서 이탈하였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존 스토트의 후배 동역자이자 랭엄 파트너십 국제 본부 책임자였던 구약학자이자 윤리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 백성의 선교》를 통해 로잔언약이 지향하던 통전적 선교가 무엇인지, 5항이 말하는 사회적 책임과 복음전도가 어떤 점에서 동반자 관계인지를 예증하기 위해 분투했다. 이 두 책에서 라이트는 개인전도를 통해 복음화율이 높아지면 사회가 점점 하나님 나라의 이상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는 인습적인 전도 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세 가지 지역 사례를 들어 반증했다. 인도 나가랜드, 르완다, 북아일랜드는 복음화율이 매우 높은 기독교 사회였으나, 실상은 세 지역 모두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부패·불의·차별·압제·증오가 가득 찼더라는 지적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 같은 이들의 분투에도, 로잔대회 주도자들은 지난 50년간 5항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오히려 로잔언약 5항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곳은 뜻밖에도 로잔언약이 나온 지 10년 후 그것을 발견하고 호응했던 한국의 소수 청년 복음운동가 동아리였다.
한국교회에 대한 로잔언약의 영향과 몰(沒)영향
19세기 한국에 왔던 미국 선교사들은 대부분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침략, 압제, 식민지 통치 등 국제정치적 사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신학적 안목이 거의 없었다. 예를 들면, 한일병탄 직후 선교사 곽안련은 창경원(창경궁) 앞에서 백만인구령운동을 벌였으며, 그가 썼던 6권 이상의 성경주석서 어디에서도(심지어 시편이나 욥기 주석에서도) 식민지 조선 백성이 겪던 고통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서구 선교사들은 일제가 자행한 불의·약탈·압제 등 불의를 보고도 비판하고 견제하기보다 일제 조선총독부 협조를 얻어 조선인들에게 구령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데 전력투구했다.
그들은 히브리 노예들을 이집트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큰 팔을 펴신 하나님의 해방적 정의에 무감각했다. 모든 압박당하는 자를 구원하고 땅에 정의·공의·사랑을 펼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다(시 103:6-7; 렘 9:23-24). 이런 보수적 구령 복음 활동이 선교의 중심이 된 한국교회에 로잔언약이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소개되었다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리라. 박정희 유신독재나 전두환 군부독재 아래 신음하던 한국민들에게 한국교회는 위로와 소망의 등대가 되었을 것이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에 의거해 유신독재나 군부독재 권력으로부터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에큐메니컬 진영을 백안시하거나 단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1974년 로잔대회 참여자 35명 중 누구도 선교대회 직후 로잔언약을 한국교회에 소개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 주류 교회는 지난 50년간 로잔언약 영향을 거의 받지 못했다. 1980년대에 영국 유학을 다녀온 이승장 ESF 대표가 1985년에 만든 ESF 무크 저널 〈소리〉에 처음으로 로잔언약과 그 유명한 제5항이 실렸다. 로잔대회에 직접 참여했던 서울신학대학 교수 조종남은 1990년에 가서야 로잔언약 관련 책을 출간했다. 이 5-6년 기간 사이 광주 기독 청년들 중심의 선교단체 겨자씨의 박철수, 강경민, 이문식과 ESF 간사였던 김호열, 김회권, 영국 유학 중 로잔언약에 대해 들었던 IVF 고직한, 아마도 필리핀 유학 중에 로잔언약에 대해 들었을 한철호가 1987년 복음주의 청년연합을 결성할 때 처음으로 로잔언약이 자신들의 신학적 토대임을 표방하였다.
그리고 4년 후 이들은 로잔언약의 기치 아래 〈복음과상황〉을 창간했고 창간호 부록에 로잔언약 전문을 실었다. 로잔언약을 공개적으로 환영하고 명시적으로 표방하여 열렬히 영접한 한국교회 대표는 놀랍게도 〈복음과상황〉이었다. 이 로잔언약은 이후에 전개된 복음주의 청년 선교 동원 운동인 성서한국의 기치가 되었다. 한국교회에 끼친 로잔언약의 가시적 열매는 아직도 청년 기독 저널로 건재하고 있는 〈복음과상황〉과 성서한국이며 그와 관련된 많은 청년 사회선교운동 단체들이다. 기독법률가회, 좋은교사운동,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경영연구원, 희년함께, 평통연대, 평화한국, 한반도평화연구원 등은 명시적이건 암묵적이건 로잔언약 5항에 응답하려는 과정에서 산파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 매년 혹은 격년으로 치러진 성서한국 대회를 통해 한국교회는 ‘사회선교’ ‘사회선교사’ 개념에 익숙해졌고 유급 사회선교사를 세우는 교회들이 늘어가고 있다.
심지어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도 사회선교의 불가피성을 잘 의식하고 한국교회의 사회선교적 전향을 외쳐오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보수 주류 교단이나 기관 어디에서도 로잔언약을 공개적으로 환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재훈 목사는 지난 3월 포항 로잔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사회선교’를 불온시하는 한국교회 주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참여’에 대한 오해도 있다. 선교는 ‘타문화권 선교’만이라는 인식이 있다. 교회가 선교적 공동체로 존재할 때, 타문화권에 선교사를 보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지역사회에 선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노숙인 문제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함께 복음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소위 ‘좌파’라며 이념적으로 공격하는 것 역시 오해다.”1)
분명한 사실은 로잔언약에 근거해 한국교회에서 시작된 사회선교는 WCC의 통전적 선교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사회선교는 “하나님의 선행적(先行的)인 구원을 맛본 하나님의 백성이 성경적인 규범과 가치에 따라 기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활동”이다. 개종이나 전도 자체를 다소 폄하하는 WCC와 달리 로잔언약을 따르는 한국 사회선교사들은 ‘사회’를 복음을 듣고 개종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다. 그들에 따르면, 기독교의 규범과 규범에 대립하거나 그것을 대체하는 사회 활동들과 이를 주도하는 정치사회적 조직들과 기구들이 사회선교 대상들이다. 그런데 일군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사회’가 마치 한 인격체처럼 복음을 듣고 회심 결단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선교의 목표는 한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집단적 개종이나 사회구조의 전적 변화가 아니라, 기독교적 규범이나 가치와 충돌하는 한 사회의 중심 죄악이나 폐습들을 척결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최대한 반영하는 사회로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2)
한국교회의 사회선교는 확실히 WCC의 통전적 선교관3)보다는 1974년 로잔 복음주의자들의 선교 개념에 착근하고 있다.4) 이런 점에서 로잔언약은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들을 근본주의 선교관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이재훈 목사나 유기성 목사가 4차 로잔대회를 앞장서서 주도하는 데는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럼에도 로잔언약 5항의 정신을 구현하기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 로잔대회가 1974년부터 2010년까지 폭발적인 임팩트를 창조하지 못하여 다극적·다중심적 선교 박람회처럼 변해가는 데는 5항에 대한 언약적 투신을 보이는 교회와 선교단체가 복음주의 선교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잔이 이루지 못한 과업: 5항에 대한 언약적 투신 실패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로잔언약 5항은 1974년 로잔대회에서도 일부 참여자들에게 걸림돌이었다. 마지막 날 전체강의에서 존 스토트는 150개국 2,400여 명의 참석자들에게 로잔언약을 천천히 읽어보고 서명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제발 읽어보기도 전에 펜을 다시 거둬들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5항 때문에 로잔언약 서명을 거부하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서명 거부자들의 태도를 아서 존스톤이 잘 대변했다. 그는 1910년 에든버러 선교대회가 신약성경 “원래의 복음전도”에서 이탈해 혼합주의적 선교관을 채택했다고 보며, 로잔언약도 정통 선교에서 이탈했다고 주장한다.5) 존스톤은 WCC의 선교는 “구원”을 “영생”으로 보지 않고, “땅 위에 임하는 평화”라고 간주한다고 비판한다(117쪽).
세계 복음주의자들의 대동단결을 위해 빌리 그레이엄과 랄프 윈터 등이 나름대로 양보해서 5항을 언약에 포함시켰는데, 이후 로잔대회들은 5항을 은근히 주변화하거나 무시했다. 중남미 복음주의자들과 영국 복음주의자들이 간헐적으로 이 점을 지적하며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사회적 책임과 사회정의 추구를 복음화의 필요 요소로 포함할 것을 촉구했으나 로잔대회 주류는 별다른 응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 결과, 2010년 케이프타운 대회는 다극적·다중심적 선교 박람회 수준으로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각기 소견에 좋은 대로 선교와 전도를 규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회가 거듭될수록 5항에 대한 충성도는 이완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성경과 기독교의 중심 복음인 하나님 나라 복음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이해 빈약,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로잔언약 어디에도 “하나님 나라”가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한두 번 “그의 왕국(his kingdom)의 확장”이라는 어구가 나온다. 신구약 66권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기획하는 드라마이다. 창세기 1:26-28은 아담을 통해 하나님은 지구 피조물을 통치하시려고 한다. 타락 이후에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하나님은 “큰 민족” “강대한 나라”로 만들어 이 땅을 회복하고 구속하려 하신다. 큰 민족, 강대한 나라 둘 다 히브리어 고이 가돌(gôy gādôl)의 번역어이다(창 12:2; 18:18-19; 신 4:6-8; 10:12-18). 고이 가돌은 이웃 나라에게 의와 공도(‘체데크’와 ‘미쉬파트’)를 행하여 천하 만민에게 복이 되는 존재이다. 이 의와 공도를 행하는 강대한 나라, 큰 민족 이스라엘을 통해 천하 만민은 하나님의 복과 구원의 2차적 수혜자가 된다. 이스라엘은 세계 열방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호 4:6)을 확산해서(사 11:9-10)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제사장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가복음 1:15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언하셨다. 이 개역개정 구절은 이렇게 번역되어야 더 정확하다. “그 하나님 나라 가까이 왔다.” 아브라함부터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약속되고 대망되던 그 나라가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 나라였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때마다 아브라함과 모세, 예언자들에게 알려진 그 나라, 고이 가돌을 염두에 두고 계셨다. 고이 가돌의 수혜자는 가난한 자들이었다(마 11:4-5). 누가복음 4:16-20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1-4을 인용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이 바로 마태복음 5:3이 말한 가난한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전해진 복음임을 확증하셨다. 가난한 자들에게 전해진 그 복음은 바로 희년의 복음, 즉 땅 회복의 복음, 인신 해방의 복음, 채무 탕감의 복음이었다. 글렌 스타센과 데이비드 거쉬의 《하나님의 통치와 예수 따름의 윤리》가 잘 밝혔듯이, 이사야 61장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팔복 선언의 토대 본문이다. 예수님은 이 산상수훈의 복음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고 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빌리 그레이엄 같은 복음전도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하는 마태복음 28장 대위임령은 참된 복음전도란 바로 천하 만민에게 산상수훈으로 집약된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쳐 지키는 제자로 삼으라는 대위임령 외에 다름 아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6-20).
16절에 나오는 “지시하신 산”에서 “지시하신”은 헬라어 ἐτάξατο이다. 에르탁사토(ἐτάξατο)가 “명하다” “임명하다” “할당하다”를 의미하는 τασσω 동사의 3인칭 남성 단수 부정 과거 시제(단 한 번 일어난 동작 묘사)임에 비추어볼 때, 16절이 말하는 갈릴리의 그 명하던 산은 산상수훈을 명하던 산임이 분명하다. 마태복음 전체를 보면 “산”에서 가르치는 교훈은 산상수훈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구두 복음 전파와 사회정의 추구가 조금도 분리되지 않으며 분리될 수도 없다. 둘 다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의 부분일 뿐이다. 이상의 주석적 관찰의 결론은, 예수님이 위임하신 선교 명령은 산상수훈의 평화 복음, 의와 온유의 복음, 위로와 치유, 해방과 신원의 복음임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입성해서 가르친 복음도 결국 주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다. 이 하나님 나라 복음에는 구두 복음 전파 행위와 사회정의 추구를 분리할 여지가 전혀 없다.
빌리 그레이엄이 두꺼운 자서전 《Just As I am》에서 술회하듯이, 양육이 따르지 않는 단발성 전도 집회 형식을 통한 복음화 사역은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추구할 정도의 성숙을 기대할 수 없다. 선포 행위만 있지, 양육과 그 이후 전도된 사람들과 교회가 지역사회의 당면한 정의 추구 사역이나 사회적 책임 수행을 계속 이어갈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라이트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중심성을 염두에 두고 쓴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5항에서 이탈해가는 로잔대회를 재활시킬 통찰력을 풍성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2024년 서울 로잔대회를 준비하는 주최 측 로잔대회 이해를 보면, 5항 없는 대회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심화한다. 비록 로잔언약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목회자들을 상대로 한 발언이긴 하지만, 이재훈 목사는 4차 로잔대회가 “순수 복음주의 선교대회”가 되리라고 지나치게 강조하고, 유기성 목사는 “로잔대회가 한국교회 부흥의 기폭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두 지도자의 발언들 어디에도 5항의 진정성 있는 복원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이나 결의가 보이지 않는다. 2024년 로잔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부디 하나님 나라 복음의 큰 그림 안에서 세계 복음화를 자세하게 논의한 라이트의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 백성의 선교》를 정독하여 로잔대회의 내적 긴장과 불일치를 해소하는 결정적 전기를 마련해줄 것을 기대하고 고대한다.
1) 송경호, ‘이재훈 목사 “로잔운동은 이단? 사회참여는 좌파? 큰 오해”’, 〈크리스천투데이〉(2023.4.11.)
2) 크리스토퍼 라이트, 정옥배·한화룡 옮김, 《하나님의 선교》(IVP, 2010), 27쪽. 라이트는 ‘선교란 피조물을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활동에 하나님의 백성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3) 이형기, 《세계교회협의회와 신학》(북코리아, 2013), 343-356쪽.
4) 하도균·이경선, 〈다종교사회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의 전도전략 - 세속화와 탈세속화 이론을 근거로〉, 《신학과 실천 No. 56》(2017), 630쪽.
5) Arthur P. Johnston, 《The Battle for World Evangelism》(Tyndale House Publishers, 1978), 46쪽.
김회권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공부했으며, ESF(한국기독대학인회)에서 회심하고 신앙 훈련을 받은 뒤 11년간 ESF 간사로 섬겼다. 장신대 신대원을 나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모세오경》 《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이사야 40-66장》 등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