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호 커버스토리]

Ⓒ복음과상황 정민호

“제발 그만들 좀 하세요~! 이놈의 집구석 지긋지긋하다고요!”

〈개그콘서트〉(개콘) ‘풀하우스’ 코너에서 나오던 코미디언 정승환 씨의 유행어다. 유행어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 ‘제발 그만들 좀 하세요’라는 문구는 당시 정치권을 비판하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쓰였다. 인기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정승환 씨는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개그맨이 된 2011년부터 개콘이 폐지되는 2020년까지 무대에 올랐다. 공중파 무대가 사라진 후 크고 작은 공연과 행사를 맡거나, 교육 방송 출연, 유튜브 콘텐츠 제작 등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공개 코미디를 할 수 없어 아쉬워하던 차에 올 11월, 드디어 다시 편성된 〈개그콘서트〉 무대에 오른다. 폐지 당시 KBS는 “달라진 방송 환경과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그리고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새로운 변신을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고 밝혔었다. 다시 공개 코미디 무대가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변화된 모습을 선보여야 하는 코미디언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직업적으로 남에게 웃음을 줘야 하는 부담을 늘 끌어안고 사는 코미디언에게 웃음의 의미를 물었다.

-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자랑해왔는데, 섭외 거절당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반갑고 고마웠지. 희극인 이야기는 어디서든 많이 하고 싶고. 내가 성경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신앙생활이 나를 지탱해주는 중심이기 때문에 기독교 잡지라고 들었어도 전혀 거부감 없었어. 근데 인스타그램 메시지(DM)로 연락을 줘서 확인이 늦었어. 알다시피 내가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잘생긴 중학생보다도 팔로워가 적기 때문에 DM 확인을 잘 안 하거든.

- 넌 고등학교 때부터 남달랐던 것 같아. 수학여행 장기 자랑 때 여자 분장하려고 치마까지 챙겨왔던 게 기억난다. 남자 고등학교였고, 아주 보수적인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에 그 공연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파격적인 공연이었어. 다른 장기 자랑을 다 지워버린.

내가 원래 소심한 면이 좀 있어서 수학여행 가는데 소품까지 바리바리 챙겨놓고, 못 웃기면 어떻게 하나 하루 내내 걱정하는 스타일이거든. 그래도 꿈이 코미디언이었기 때문에, 넘어서려고 일부러 그런 자리에 나갔어. 내가 여기 7백 명 앞에서 못 웃기면, 나중에 전 국민을 상대로도 못 웃기는 거니까. 군대에서도 그랬고, 대학에서도 그랬다. 기회가 있으면 손을 들고 하겠다고 했지.

- 그때 자유자재로 방귀를 배출하는 개인기(?)도 있었어. 원할 때 열몇 번 연속으로. 수치는 정확하게 기억 안 나지만.

아주 수치스러운 기억이네. 내가 그걸 사람들 앞에서 했다고? 미쳤었나 봐. 그러고 보니 그때 복도에서 처음 보는 애들이 ‘방귀 뀌어보라’고 했던 적도 있었네. 신기하고 웃길 수는 있는데, 지금 하면 아마 대다수는 불쾌해하겠지. 흑역사다.

- 왜 코미디언이 꿈이었어?

사람들 웃기는 게 좋았어. 특별히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멋있게 표현할 수도 없는 게 나한테는 그냥 자연스러운 욕구 같은 거였던 것 같아. 유치원 때부터 친구들 웃기는 거 좋아했고, 〈유머 일번지〉 같은 거 보면서 따라 했고, 〈개그콘서트〉를 보면서는 저 무대에 꼭 서고 싶다 느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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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 2011년에 KBS 26기 공채 개그맨이 됐잖아. 그때가 서른이었으니까 늦은 나이였어. 서른 살 때 신인 개그맨이라고 네가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결국 해냈구나라는 마음 뒤엔 고생 많았겠구나 싶은 마음도 들더라고. 왜 이렇게 데뷔가 늦은 거야?

코미디언이 되려면 무조건 연극영화과 입학해야 하는 줄 알고 삼수했어. 그땐 왜 그렇게 생각이 없었는지 몰라. 개그맨 시험도 성인이면 다 볼 수 있었는데, 왜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 25살 때 연극영화과 졸업 공연을 하는데, 내가 좀 재밌는 캐릭터 연기를 했어. 그때 어떤 분이 개그맨 할 생각 없냐면서 대학로 극단을 소개해준 거야. 거기서 오디션 보고 합격해서 개그맨이 됐어. 기쁘면서도 개그맨이 이렇게 쉽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가 저물어가는 회사였어. 거의 동시에 문화방송(MBC) 개그맨 시험 원서를 내놓은 게 있어서 시험을 보러 갔어. 그때 같이 팀을 결성했던 동생이 누구냐면, 나중에 MBC 개그맨이 된 김경진이야. ‘너의 사랑 나의 사랑 김경진.’ 오전에 1차 붙고, 최종 2차에서는 경진이만 붙고, 난 떨어졌다.

- 서른 살 때까지 계속 시험에서 떨어진 것인데? 당연히 힘들었을 거고.

일고여덟 번 정도 떨어졌을 거야. 극단에서 배우면 배울수록 더 코미디가 너무 하고 싶은데, 시험은 계속 떨어지니까. 4년의 세월이 지나버렸어. 눈물 참 많이 흘렸다. 20대 청년이 장례식장 아닌 곳에서 울 일이 뭐가 그렇게 많겠어. 근데 그때는 정말 많이 울었어. 한번은 MBC에서 시험 보고 나왔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야. 또 떨어진 거지. 그때 복장이 1990년대 아이돌 스타 콘셉트였거든. 은박지로 된 옷을 입고 방송국 로비에서 정말 펑펑 울었어. 왜 나만 안 되냐고. 이미 개그맨이 된 경진이가 커피 가져와서 ‘형은 언젠가는 될 거야’라고 위로해주는데 위로가 안 되지. 나이가 드니까 같이 준비했던 동기나 후배들 다 합격하고 잘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안 되는 것 같고 그렇더라고. 웃기는 건 그때 같이 팀으로 준비했던 형이 또 울면서 시험장에서 나오더라고. 지드래곤 복장을 하고. 같이 울었어. 그 사람이 요즘 뜨는 임우일이야. 나중에는 같이 KBS에 붙었는데, 그 형은 ‘개콘’ 때도 별로 빛을 못 봤어. 몇 년 또 유튜브 콘텐츠 만드느라고 고생 많이 하다가 이제 인기를 끌잖아. 아무튼 당시에는 하나님 원망도 많이 했어. 그 힘겨운 시간을 정확하게 해석하려면 신앙적으로 볼 수밖에 없어. 하나님께서 정말 적절하고 좋은 때 합격시켜주신 것 같아.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달걀 받고 나가기 시작한 것 같아. 공짜로 받아먹었는데 예배는 한번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나갔더니, 달란트를 주는 거야. 그걸 모으면 돈처럼 쓸 수 있대. 얼마나 좋아. 그때부터 다녔지. 더 깊이 믿게 된 것은 지금 아내를 만나면서부터인 것 같아. 신앙심이 돈독한 아내랑 연애하면서 ‘하나님이 날 또 적극적으로 부르시는 건가?’ 싶더라고. 사실 내가 유명해지면서 불안장애가 같이 왔거든.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불면증도 있었고, 겨우 잠들어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고. 무대에서는 사람들을 웃기지만, 정작 나는 우울증이 온 거야. 근데 그때 아내를 만나서 신앙생활 함께하면서 극복이 되더라고. 내 입으로 말하는 게 민망하지만, 나이 들면서 확실히 신앙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 내가 간증도 몇 번 했어. 처음에는 나보다 신앙심 깊은 사람도 많고, 나는 열두제자 이름도 다 모르니까 섭외가 와도 거절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기회가 되면 하려고 해. 내가 만난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야. 내 말투로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 사람을 웃겨야 하는 직업을 가졌으나 우울증이 찾아온 웃픈 상황?

나도 모르게 상처를 좀 받았던 것 같아. 바로 앞에서 무시를 당한 경험들도 있고, 식당에서 밥 먹다가 갑자기 다른 테이블로 끌려간 적도 있고. 이런 작은 에피소드들이 쌓였던 것 같아. 당시에는 연예인이니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는데, 상처가 났던 거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또 무대를 올라야 하니까 상처가 더 깊어지고 곪아지면서 어려운 시간이 좀 있었어. 잠을 못 자니까 안 좋은 생각들만 계속 드는 거야. 미래에 대해 불안한 느낌만 더 강해지고. 지금도 트라우마가 좀 남아있기는 해. 아주 가끔이지만 어두운 기분이 올 때가 있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확실히 나아진 것 같아. 지금이 그때보다 상황이 나을 건 없거든. 그때처럼 불안하지는 않아.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믿게 된 거 같아.

- 인기를 비교하게 되는 경우는 없는지?

당연히 비교하지. 이 분야는 인기가 들쭉날쭉하니까 더 심한 것 같아. 비슷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엄청나게 잘나가면, 나도 페이스가 꼬이더라고. 우리는 다 우리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하고 비교하잖아. 내 페이스대로 가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아. 그래도 난 개그맨 시험 준비하면서 워낙 힘들었고, 인기도 누려봤기 때문에 지금 내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아, 마흔둘의 내 위치는 여기구나. 하나님이 그걸 바라시는구나. 인생이라는 게 누가 이기고 지는 경주가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지금도 물론 그래, 그렇지만 신앙생활이 내 중심이 되니까 다른 사람 시선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보게 되는 것 같아.

- 사실, 신앙 얘기는 별로 기대를 안 했어.

남들한테 막 티를 내거나 하지는 않아. 지방에 일정이 있어서 혼자 운전하면서 가야 할 때, 나도 모르게 혼자 기도하고 그런 정도지. 예전에는 저 사람이 내 신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부담도 좀 있었지. 근데 요즘엔 내 진심이 중요한 것을 아니까 크게 신경 안 쓰게 되더라고. 남들이 내 신앙의 깊이를 각도기나 자를 대서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진실하면 된 거지. 물론 그게 제일 어렵지만.

- 주요 무대였던 ‘개콘’이 폐지되고 힘들지는 않았어?

3년도 더 됐지? 난 사실 당시에는 덤덤할 줄 알았어. 그랬는데 마지막 방송 녹화할 때 출연자들이 정말 많이 울더라고. 나도 울었어. 후에는 후련한 마음이 컸어. 우리도 이 안에서 계속 도태된 측면도 있으니까, 발전하려면 한 번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거든. 우물 안 개구리로 오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홀가분했지. 오히려 ‘개콘’ 폐지 이후에 코미디언들을 다소 애잔하고 불쌍하게 꾸미는 방송 때문에 좀 불편했던 것 같아. 공연하는 사람도 있고, 유튜브 콘텐츠로 더 성공한 사람도 있고, 이런저런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나름대로 이 분야를 발전시켜 왔거든. 그런데도 희극인들 굶어 죽는 것처럼 너무 불쌍하게 내보내는 그런 콘텐츠들이 주목받는 것 같아서 불편하더라고.

- EBS에서 많은 프로를 했지.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한자로 통하는 삼국지〉에서 관우로도 나왔고, 〈시간을 달리는 세계사〉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을 했고. 확실히 코미디언들이 출연하니까 아이들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는 있었던 것 같아. 한편으로는 좀 아쉽더라고. 코미디언들을 교육 방송에서 봐야 하는 현실이 과연 긍정적인가 싶어서.

감사하게도 나는 공연이나 행사를 할 수 있었고, 어린이 프로그램도 맡아서 했지. 좋은 시간이었고, 많이 배우는 기회였는데 뭔가 허한 기분은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이 휑하다? 개그를 하면서 교육 방송에도 참여하면 이런 생각을 안 했을 텐데, 개그 프로는 못 하고 이것만 하니까 내가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만 하는 사람이 된 느낌?

- 유튜브 〈꼰대희〉에 나와서는 ‘개콘’ 끝나고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에 눈물을 흘렸는데.

희극인들 불쌍하게 보지 말라고 얘기하고는, 내가 거기서 울어버려서 내 꼴이 더 우스워졌지. 방송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야.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개콘’을 같이했던 김대희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서 ‘요즘 뭐 하고 지내냐?’라는 질문을 듣고 눈물이 터진 거야. 1분 넘게. 다들 당황했지. 처음 있는 일이었거든. 집에 와서 생각해봤어. 왜 울었지? 내가 ‘개콘’에 진심이었구나.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불평도 하고 그랬는데, 결국엔 내게는 고향 같은 곳이었구나. 10년을 무대에 오르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결국 나는 개그를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 작년에 〈개승자〉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 코미디 부활을 선언하겠다는 취지로 서바이벌 방식을 도입한 거였는데, 희극인들이 우는 모습이 많이 나와서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

그때 팀장이 있고, 팀원을 섭외해서 팀끼리 서바이벌을 하는 방식이었지. 이름이 벌써 ‘개승자’(개그로 승부하는 자)잖아. 나는 민경 누나랑 대희 선배에게 제안받았는데, 민경 누나한테 먼저 전화를 받아서 그 팀에서 하겠다고 했지.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막연하게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막상 녹화하면서 보니까 기분이 아주 이상한 거야. 거기서 희극인들이 울었던 이유는 자기 팀이 졌기 때문이 아니야. 희극인들은 가족 개념이 크다고 해야 하나? 이 사람을 이기고 올라가는 상황 자체가 너무 싫은 거야. 동료를 탈락시키고 가는 게 찝찝한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잔인했던 배틀이었어. 개그는 결국 같이 무대를 꾸리는 작업이다 보니까, 이긴 사람들도 카메라 밖에서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 꽤 있었어. 더군다나 ‘개콘’이 없어지고 새롭게 부활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대결하는 관계로 만났다는 게 안타까웠지.

- 두 사람에게 섭외받을 정도였으면 선배들한테 꽤 인정받나 봐? 〈개승자〉에서는 너를 연기력이 탄탄한 희극인으로 소개하더라고. 자랑 좀 해봐.

내 입으로 얘기하려니까 좀 그렇네. 안상태 형이 어디서 인터뷰할 때 연기력과 아이디어가 완벽한 후배로 나를 뽑아 주셨더라고. 감사하지.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추다 보니까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기 때문에 더 좋게 얘기해준 것 같아. 민경 누나도 마찬가지고.

- 〈개승자〉를 보다 보니까 다큐멘터리 요소도 있더라고. 희극인들의 고충을 알 수 있었던 계기였어. 특히 공중파 방송이다 보니까 심의나 규제가 계속 늘어나는 것 때문에 아이디어를 짜기가 어려웠던 것 같더라고. 방귀 소리 종류에 대해서도 규제가 있었다고 해서 놀랐어.

사실 방송 심의를 준수하면서 개그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워. 기준이 너무 불분명하거든. 대사 써놓고 이것은 되고, 이것은 안 되고… 다 들여다보면서 확인을 할 수가 없어. 자기 검열을 하다 보면 ‘말맛’이 뚝 떨어져. 우리나라에 협회는 또 얼마나 많은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면 연락이 와. ‘그거 우리를 비하하는 겁니다.’ 형사 역할을 하고 있는데 경찰청에서 연락이 와. 그렇게 근무 태만인 형사는 없다고.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부조리를 꼬집기도 점점 어려워지지. 옛날에 이주일 선생님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을 깔깔깔 웃겼는데, 이제는 그런 코드는 다 외모 비하라고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지. 세상이 바뀐 거야. 대중의 감수성에 맞추기 위해 희극인들도 당연히 노력해야 하지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남을 조롱하려고 무대에 올라가는 희극인은 한 명도 없을 거야. 그런데 심의나 시청자 의견을 반영하다가 대사의 말맛을 살릴 수 없게 되고, 그 대사 갖고 무대 올라가려면 희극인은 벌써 창피해. 큰 숙제지.

- 공중파 바깥의 개그는 더 자극적으로 가는 것 같아.

공중파의 한계가 분명히 있겠지. 공중파 무대에 오르는 희극인들은 단순히 성적인 코드를 더 넣게 해달라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쓰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야. 참신한 것을 시도할 여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거든. 유세윤 선배의 ‘복학생’이나 윤형빈 선배의 ‘왕비호’가 자극적이어서 뜬 건 아니었잖아. 서로 여유가 좀 없는 것 같아. 물론 합리적인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적어도 익명의 악플러가 하는 말에 공중파 무대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캐스팅에도 특정 외모 숭배 측면이 있고, 외모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내용이 많은데 유독 개그에 대해서 사람들은 더 민감한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

우리도 그런 불만이 없지 않았지.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는 정극이잖아.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정서보다는 희열과 감동을 추구하잖아. 반면에 코미디는 웃음이 목표이니까 더 예민한 것 같아. 이를테면, 드라마에서는 흉악한 외모를 지닌 사람을 범죄자로 캐스팅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 거기가 스토리의 종착지가 아니니까. 개그는 그 외모라는 개성을 웃음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활용한다는 데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 특히 사람들에겐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니까 더 예민해지는 거고.

- 자기 외모를 개성으로 웃겨왔던 희극인들은 좀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오지헌 선배, 정종철 선배, 박휘순 선배 같은 분들은 이제 그동안 해왔던 개그를 못하는 거야. 오지헌 선배가 어디서 그런 인터뷰를 했더라고. 내 얼굴로 내가 웃기겠다는데 왜 못 하게 하느냐고. 그래서 송영길, 박휘순, 오지헌 선배랑 같이 ‘외모 비하’에 대해서 정면으로 얘기하는 코너를 짜서 무대에 올려보기도 했어. 결국 더 검토하기로 하고 불발됐어. 코미디언들이 고민이 참 많아.

- 개콘이 다시 시작될 예정인데 희극인으로서 어려움도 있겠고, 부담도 클 것 같아. 이제는 선배로서 역할도 해야 하잖아.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거잖아. 걱정도 많지. 대중의 기대치에 맞출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서 대본을 만들지만, 그런다고 결과가 늘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러나 코미디언이 공개 코미디가 좋아서 다시 하러 온 거고, 눈치 보는 게 싫다고 포기할 것도 아니고 잘 준비하고 있어. 오랜만에 모이는 거라서 몸도 풀고 감각도 익혀야 해서 지금 윤형빈소극장에서 코너들을 계속 올리고 있어. 무대에 올려서 사람들이 많이 웃으면 일단 픽스, 별로면 계속 보강하는 식으로. 글쎄, 공개 코미디가 이제는 새로운 구성은 아니라서 얼마나 반응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방영 시간대가 과거처럼 온 가족 모이는 때는 아니야. 일요일 오후 10시 넘어서 방송을 할 것 같거든. 코미디를 즐길 분들 위주로 보는 프로가 되지 않을까? 오히려 그게 좋을 것도 같고.

- 희극인들 사이가 매우 돈독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또 ‘군기 문화’ 폭로 콘텐츠가 유튜브에서 계속 떠돌고 있잖아.

군기 문화 있었지. 없었다고는 말 못 하지. 그런데 별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지금은 그런 게 없어. 나 때 부조리를 이야기하면 정말 많지. 이미 문제의식이 충분히 공유되었고 지금은 그런 문화가 다 사라졌는데, 그 얘기를 계속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 결국엔 지금 코미디를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거든. 대다수는 끈끈하고, 이제는 형제 같고 남매 같아. 경조사 때 거의 모든 사람이 와서 축하와 위로를 해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까도 말했지만 개그는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고, 받쳐주고, 웃기기 위해 서로 몇 년을 공동 작업을 하면서 우정이 쌓인 거 같아.

- ‘나무위키’에 보니까 후배들에게 심부름 한 번 시킨 적이 없다고 쓰여있던데,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지. 소품 가져와라, 뭐 이런 심부름은 많이 시켰어. 근데 개인적인 심부름은 시킨 적이 없는 것 같은데?

- 조사해보니까 유행어가 생각보다 많더라.

신기해. 나는 유행어 만들려고 밀었던 적이 거의 없었거든. 유행어가 된 것을 보면, 어쩌다가 우연히 튀어나온 말이었거나 크게 욕심내지 않았던 대사들이야. 감사하지.

- ‘대중’에 비교해서 ‘관객’은 또 다르게 보일 것 같아. 관객은 실제 호흡을 같이하니까. 웃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기도 하고.

‘개콘’ 폐지될 때쯤 시청률도 떨어지고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관객 반응은 좋았거든. 관객과 같이 호흡하는 게 좋기도 하지만 긴장되기도 하지. 개그가 들어갔는데 잘 안 먹히면 그때부터는 이제 멘탈이 흔들리는 거야. 신인 때는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 이래도 안 웃어? 계속 기술이 들어가는 거지. 다른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개그도 기술직인 것 같아. 경험을 통해 데이터가 쌓이면서 기술을 연마하는. 

- 제일 크게 관객을 웃겼던 때는?

하나 꼽으라면 ‘대학로 로맨스’라는 코너를 할 때 분장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 허안나, 서태훈이 연인으로 나오고, 내가 삼각관계 만드는 콘셉트였지. 내 코너도 아니었는데, 원래 역할을 했던 배우가 너무 바쁘다고 해서 하게 된 거였어. 그때 힘들기도 했지. 한번은 나무 분장을 하는데, 공연 전 옷에서 나뭇잎이 다 떨어진 거야. 무대에 바로 올라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 옷 입은 채로 뜨거운 글루건 이용해서 나뭇잎 하나하나 붙였지. 화상 직전까지 갔을 거야 아마. 아무튼 그 코너 할 때, 관객들이 많이 웃었어. 특히 아기차에서 아기 분장하고 나왔을 때는 관객이 너무 웃어서 한 20초 정도 기다렸다가 대사를 해야 할 정도였어. 뿌듯하지, 그러면. 

- 우리 사회에 웃음이 필요한 이유는?

질문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을 그냥 말해보자면, 살기 위해서? 먹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웃음이 필요하지 않나?

진행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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