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호 책과 사람] 《다음세대입니다》 저자, 구선우 목사

《다음세대입니다》(뜰힘)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교회의 젊은이들, 흔히 ‘다음세대’라 불리는 이들에 관한 고찰을 담았다. 저자인 구선우 목사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자 그들의 일상과 언어, 문화와 사회적 흐름, 담론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기성세대에게 그들을 판단하고 교정하려 들기보다 존중하며 공존하기를 제안한다.

구선우 목사는 교회와 NGO 단체에서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나는 일을 해왔다. 그는 현재 선교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으며, 교회 안팎에서 종교, 세대, 성별, 지역, 이념으로 인해 갈라진 집단 사이의 화해와 우정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다음세대입니다》는 그 연구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다음 세대’ ‘MZ 세대’ 등 호칭이 부르는 이의 시선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하는 의미로 ‘다람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와 인터뷰하는 동안도 책의 표현대로 다람쥐라는 용어를 사용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책이 출간된 5월 7일 홍대입구역 인근 북카페에서 진행했다.

- 책에서 어린이, 청소년, 다음 세대, 미래 세대, MZ 세대 등을 다람쥐라고 칭하셨어요. 어떤 고민 속에서 붙인 이름인가요?

처음부터 다람쥐라고 한 건 아니었어요. ‘예수 믿는 요즘 애들’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원고를 쓰고 있었는데요. 책에서 소개하는 대상을 지칭하는 게 참 애매하더라고요. 특정화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요즘 애들’이라는 표현은 좋았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정작 애들이 읽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때 ‘뜰힘’ 최병인 대표님께서 제안하신 게 동물을 하나 정해서 불러보자고 하셨고 두세 달 정도 어떤 동물이 어울릴지 고민했어요. 동물마다 고정된 이미지가 있더라고요. 사자는 무섭고, 돼지는 욕심이 많고, 거북이는 느리고요. 코끼리는 귀여우면서도 한 면만 보면 쉽게 다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적합해 보였는데, 이미 한 방송에서 금쪽이 캐릭터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결정하게 된 게 다람쥐예요. 작고 연약한 이미지도 있지만 어린 세대를 표현하는 말로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다람쥐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했는데, 개구리를 잡아먹는 등 잡식성이고 생각보다 강인한 동물이더라고요. 다음 세대와 같이 ‘다’로 시작한다는 공통점도 있는 데다가, 제가 좋아하는 배트맨의 박쥐처럼 쥐는 아니면서 ‘쥐’라는 글자로 끝나는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동물 다람쥐 자체에도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다람쥐를 도구화하여 지칭한 것이 다람쥐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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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우 목사와 '뜰힘' 최병인 대표 ⓒ복음과상황 정민호 

- 다람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 첫 번째 책 《배트맨 크리스천》(세움북스)은 청소년과 청년의 상황을 위로하며 복음을 소개하는 내용이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배트맨 영화들을 엮어서 책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제 기대와는 다르게 정작 젊은 분들에게는 많이 읽히지 않고, 신기하게도 40-50대, 배트맨과 쌓은 추억이 많은, 저보다 약간 윗세대 형님(?) 목사님들이 많이들 읽으시더라고요. 교회 안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책을 많이 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때 어른들에게 다음 세대를 소개하는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는 아직 박사과정 학생이기도 한데, 사실 제 관심 주제가 ‘화해’입니다. 종교, 세대, 성별, 지역, 이념 등으로 갈라진 집단들이 어떻게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는지 연구 주제 삼아 공부하고 있어요. 세대 문제도 중요한 주제죠.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현상이나 정치적인 현실도 세대 간 차이가 크고, 이것이 교회 안에서도 분명히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학문적으로 풀기에 앞서, 대중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 책을 쓰면서 지금까지 만났던 다양한 신앙 후배들을 떠올렸을 것 같아요.

저는 교회학교 전도사와 목사로 10년 정도 사역을 했고, 대학교 교목실과 NGO 단체에서 대학생들과 청소년을 만나는 일도 했어요. 목회자로 교회 안에서 만나는 청년, 청소년들은 특별한 공통점이 있어요. 착하죠. 반면, 교회 밖에서 만난 이들은 착한 친구들도 있지만, 참 다양했거든요. 자기 필요에 따라 움직이고, 억울한 건 못 참았고요. 그런데 이런 특징들이 모두에게 해당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청소년들도 교회에서 요구되는 ‘착함’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니면 노력하다가 교회를 떠나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죠. 제가 다람쥐들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교회 안팎에서 다람쥐들을 많이 만난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면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MZ세대라고 하면 저 같은 30대 중반 아저씨도 포함이 되니까요. 그래서 용기를 냈지요. 아직 젊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나갔는데, 아무래도 저는 10대들의 문화를 이해하기가 참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청소년, 청년들에게 대화를 많이 걸었어요. “이거 억까(?)예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좌절하고 수정하면서 글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덕분에 모든 문화현상을 다룰 수 있다는 욕심을 내려놓았죠.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책에서 다루진 못했지만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에피소드나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어떤 청년은 예배 시간에 찬양팀 싱어라서 샌들을 신고 단상 위에 올라가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단상 위에서 발가락을 보일 수 있냐면서 어른들에게 혼이 났다고 했어요. 이 일에 대해 교회 안 청년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어요. 예배 시간에 단상 위에서 발가락을 보이는 게 죄라든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은 거의 없었어요. 다만, 어른들이 청년들의 기강을 잡기 위한 행동이 아닌지, 청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만의 문화는 아닌지 생각하는 청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솔직히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어른들 편을 들게 되더라고요. 어디를 가나 TPO(시간, 장소, 상황)가 있듯이, 교회의 전통을 지켜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 세대를 향한 존중도 중요하잖아요. 꼭 진리나 교리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이럴 때 대화를 하지 않을수록 서로 오해만 쌓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문화적인 것들은 서로 대화하면 충분히 타협점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대화와 적용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 돕고 싶고요.

- 오랜 기간 교육전도사로 사역하셨어요. 어떤 사역들을 해보셨는지, 다람쥐들을 가르칠 때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연말에 전도사로 처음 사역을 하게 되었어요. 20대 초반부터 청소년부 담당 전도사를 맡은 거죠. 그때 학생들과 축구하고 피시방에도 가고 떡볶이를 먹으러 다녔어요. 혼자서 중학교 앞에 가서 과자도 나눠주고 교회 친구의 친구들을 만나 친해지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어린이, 청소년, 청년 사역을 다양하게 맡아서 해봤는데요.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같이 노는 게 가능했는데, 점점 멀어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목회자 혼자서 일당백으로 하는 건 한계가 있고 교회학교 교사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주로 학생들이 스스로 신앙을 갖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부모님을 따라 몸만 교회에 왔다가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교회를 떠나더라도, 나중에 힘들 때 혹은 정말 하나님이 필요할 때 교회나 교회학교 공동체를 기억해달라고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돌이켜보면 제 현장 사역이 그리 탁월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제자들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도 저와 함께 교회 생활을 하고, 교회를 떠난 다람쥐들이 언젠가 필요할 때 교회를 기억하고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교회의 수많은 변화를 경험하셨을 것 같아요. 

문화적인 부분들은 많이 변해온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땐, 성형수술 하지 말라고 교회에서 가르쳤던 것 같은데요. 요즘은 그런 말 하면 큰일 나겠죠. 술 문제도 비슷해요. 물론 교회에서 술을 마셔도 된다고 하는 교회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도 예전엔 직장생활을 하다가 음주를 거부하는 게 간증이었다면, 요즘은 그런 간증은 사라졌죠.

문화적인 부분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자연스럽게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명확한 답을 원하더라고요. 한 교회 청년부에 가서 특강을 했는데 특강 이후 질문이 “그래서 술 마셔도 된다는 거예요, 안 된다는 거예요?”였습니다. 그럴 때 저는 어떤 제언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우리가 문화를 바꿔보자’ 이런 얘기는 못 했어요. 대신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키면서도, 실족하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는 게 어떻겠냐고 답했죠. 그 자리엔 청년부 목사님도 계셨고요…. 저부터 변화 앞에 놓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사실 작은 변화일 뿐인 데도요. 

- 책에서 앞으로 교회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다람쥐들에 대한 존중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다람쥐들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정말 변화가 빠르다는 거예요. 다 안다고 생각하면, 또 새로운 것이 생겨나요. 책 원고 교정을 마치고 인쇄를 하니까, 요즘은 MZ세대라고 안 부르고, “젠지세대”라고 부른다 하더라고요. ‘Generation Z’를 줄여서 젠지라고요. M세대와 Z세대의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Z세대가 독립을 선언한 것 같습니다. 하긴 저 같은 M세대도 벌써 30대 중반 아저씨니까 당연하죠. 신조어는 계속 생성되고 있어요. 물론 사라지기도 하고요. 그러니 다음 세대 전문가라고 거드름 피우고 다니려면 정말 부지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겸손한 태도로 존중과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 책을 보면 목사님이 마치 기성세대와 다람쥐들 사이 중간에서 기성세대를 향해 말하는 것 같았어요. 다람쥐들을 이해해달라고요. 

저는 일단 두 세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요. 다람쥐를 다 알려고 하면 다 알 수 없듯이 어떤 특정 세대를 규정하고 일반화하는 일은 사실 위험한 작업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책에선 어쩔 수 없이 젊은 세대의 특성을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주인의식이 약해 끈기가 없어 보일 수 있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개인주의가 강해진 흐름이 있다고요. 취향 존중이라는 문화로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인터넷 혹은 가상 세계를 통해 소개했습니다. 반면 기성세대는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더 강조한 사회적 경험이 많죠.

저는 다람쥐들을 무조건 이해해달라는 것보다는 더 좋은 가치와 전통을 소개해주고 서로 공감하며 대화해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다람쥐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람쥐들이 기성세대를 존중했으면 좋겠어요. 지식을 어른들에게 배워야 했던 예전과는 달리, 인터넷으로 모든 걸 찾아볼 수 있으니 선배 세대들의 위대한 경험을 가볍게 여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레트로를 넘어, 본인들이 경험하지도 못한 뉴트로를 즐기는 다람쥐들을 보면 신구조화가 가능하겠다 싶어요.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이 책의 부제가 ‘요즘 애들에 대한 선교적 고찰’입니다. ‘요즘 애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그들을 새롭게 보는 일이기도 하고, 그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더하는 작업인 것 같아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물음이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워요. 인구도 줄었고, 그것보다 더 다람쥐들이 교회를 떠나갔다고들 하지요. 저는 다람쥐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들만의 신앙생활 양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이 줄다보니 절대적인 어려움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다람쥐들의 목소리, 특히 질문을 들으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 어렵죠.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이 어려움이죠.

또, 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고 그 안에서 뛰놀면서 새로운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데요. 그럼에도 지켜야 하는 선이 존재하더라고요.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니까요. 사실 어디까지가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인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 같아요. 창조론이나 구원론 같은 교리적인 문제로도 여전히 갈등을 겪는 현실을 보면요. 앞서 언급한 음주 같은 문제도 마찬가지죠. 문신해도 되나요? 눈썹 문신은 되고 타투는 안 되나요? 어렵습니다.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는 것, 자유 안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늘 우리에게 긴장을 주지요. 저는 중심이 중요한 것 같은데, 사람들은 선을 따지더라고요. 전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아요.

- 다양한 이유로 교회 안 다람쥐들의 자리와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는 교회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한국문화론 수업에서 1960년대의 사회 변화는 고등학생들이, 1980년대의 사회 변화는 대학생들이 주체였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리고 40년이 지난 요즘 세상을 생각해보면 ‘대학생들이 과연? 얘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이런 생각이 들지요. 대한민국 사회가 성숙하면서 젊은이들의 발랄한 목소리가 힘을 잃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교회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면 저는 희망은 있다고 봅니다. 점점 세대가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어요. 온라인 세상이 강화되다보니, 같은 취향, 성별, 세대 등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살아가도 되는 세상이 되었어요. 그래도 교회는 여전히 모든 세대가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있죠. 이것이 교회의 정말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 이른바 안티 기독교죠. 그리고 목회자들의 타락과 같은 윤리적인 문제들도 있죠. 이런 것들이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보여주는 근거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다람쥐보다는 어른들의 문제이죠. 디지털 사회의 변화를 어른들의 시선으로 해결하려고만 한다면, 위기가 올 것이라고 봅니다. 어른들끼리는 불편해하는데요. 아이들의 세계는 어쩌면 더 순수한 것 같아요. 나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잖아요. 이는 무관심으로도 이어질 수 있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는 너무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재미만 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재미는 교회 바깥에 더 많은걸요.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고 인간적인 사고, 취향 대결만을 하려고 한다면 승산이 없어요. 교회 안에 다람쥐들의 자리와 역할을 준다면 분명 교회의 미래는 긍정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다람쥐들의 행동이나 특성을 상황과 맥락 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후배 세대와 소통할 때 중요하게 여겨야 할 관성적인 질문이나 공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답을 주는 것보다는 질문을 들어주고, 질문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답하기 전에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한번 생각하고 말해야 해요. 아, 그리고 이건 공식이에요. ‘어떠세요?’ 저는 이 질문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꼭 해야 하는 질문이죠. ‘그래서 기분이 어때?’ ‘어떻게 생각해?’ ‘해봤더니 어떤 것 같아?’

여기엔 중요한 마음가짐이 하나 요구됩니다. 상처를 입을 준비죠. 어떠냐는 질문에 다람쥐들은 쉽게 답하지 않거든요. 처음엔 쉽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을 수 있거든요. 기다려줘야 합니다. 답을 듣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대한 것과 다른 말이 나와도 이해해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 최근 교회 내에서 목사님께서 주목한 현상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대할 때의 자세가 어떤지 생각해봤어요. 상대방을 안다고 하면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어떤 면에선 너무 공격적이지 않나 싶어요. 약자를 위한 배려도 사실 자기중심적으로 내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 아닌가하고요. 한 단계 더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은 자신의 책 《관용》에서 서구 사회에서 관용이 새로운 통치 전략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해요. 약자들을 향한 ‘괜찮아’ ‘배려해줄게’ ‘수용해줄게’라는 말도 기득권들이 본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것이죠. 자유를 강조하며, 국가나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넘기는 말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관용이나 배려도 폭력의 도구일 수 있다는 말인데요. 지나친 관용에 대한 지적입니다. 이와 같은 논의가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사회에서 진행되었어요.

약자의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여 힘의 도구로 삼는 것, 재현의 무기화는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회문제의 정치적 도구화, 이분법적 사고와 편 가르기(a.k.a. 갈라치기) 같은 현상들이 왕왕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교회도 보수적인 교회, 진보적인 교회 진영으로 갈라져서 서로를 평가하고요. 결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죠. 이웃을 배려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우리의 것만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다람쥐도 가르치려고 하지, 그들에게 들으려고 하지 않고요. 이렇게 귀찮고 위험한 일은 피하고, 내가 피해를 안 당하는 선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합니다.

타자 혹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대화하고 함께 살아가는 건 상처 받을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사실 일방적인 관용, 이해, 배려보다 상호 간의 대화가 더 어려워요. 환대라는 말을 종종 쓰지만, 진정한 환대는 깨지기 쉬운 일입니다. 상처 입을 준비 없이 상대방에 대해 아는 척, 관심을 기울이는 척하지 말고,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을 수도 있다는 것,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도 늘 은혜만 받는 것이 아니라, 책임이 주어지듯이. 예수님도 상처 입은 인간이 되었듯이.

- 교회 안에 다람쥐들과 어울리고, 친해지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요?

저도 잘 못 어울리는걸요. 전 아무래도 현장 운동가보다는 이론가가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언을 해보자면, 결국 제가 강조하지만, 상처 입고 깨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나와 다른 이들과 만나 어울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그들을 그 자체로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아요.

억지로 우스꽝스러워질 필요는 없어요. ‘라떼는 말이야’라며 꼰대가 될까 두려워하실 필요도 없어요. 라떼를 너도 마시라고 강요하면 위험한데요. 라떼를 먼저 소개하고 다람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이 마지막 질문을 초등학교 1학년 첫째 아들에게 물어봤어요. “어린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요. 그랬더니 “아빠! 그냥 인사 잘해주면 돼!”라고 하던데요? 아이의 말에 몹시 뜨끔했습니다. 먼저 말 걸어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진행 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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