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 에디터가 고른 책]

시에나에서의 한 달 / 히샴 마타르 지음 / 신해경 옮김 / 열화당 펴냄 / 16,000원
시에나에서의 한 달 / 히샴 마타르 지음 / 신해경 옮김 / 열화당 펴냄 / 16,000원

나는 그림 액자를 두 점 갖고 있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과 렘브란트의 〈갈릴리 호수의 폭풍 속 예수〉. 충동적으로 구입한 인쇄본이었다. 몇 해 전, 이따끔 위로가 필요한 이 삶을 조금이라도 더 잘 살고 싶었다. 저 그림들과 함께라면, 한결 수월할 것 같았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으나, 진실로 위로를 받았다. 사실 둘 다 그리 밝은 작품은 아니다. 밝거나 명암이 뒤섞인 지점조차도 ‘희망’보다는 ‘절망’과 ‘고독’이 더 부각되는 듯하다. 하지만 두 그림이 삶을 잘 견뎌내는 데 몇 퍼센트라도 도움이 됐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암담한 현실 인식을 품고도 밝은 영역을 찾으려는 분투가 나만의 것이 아님을 각인시켜주는 그림들이어서 그렇다.

어떤 그림이든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서있는 공간이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래 들여다보면 그림이 불러내는 시공간을 유영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 묘한 위로를 얻고자 몇 시간씩 시간을 내어 전시를 보러 가곤 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책의 다음 문장에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었겠나.

“바라보다 보면 그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달라지곤 했다. 나는 그림이 시간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그림으로 옮겨 가기까지 서너 달은 기본이고 일 년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동안 그 그림은 내 삶의 물리적인 거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거처가 된다.”

리비아계 영국 작가인 저자는, 카다피 독재정권의 반체제 인사로서 이집트로 망명했다가 납치되어 끝내 실종된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귀환》으로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귀환》의 집필을 마치고, 자신이 매료돼있던 13-15세기 시에나 화파 그림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 시에나로 떠난다. 이 책은 여기서 한 달 동안 머물며 그림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애도를 하고, 마침내 ‘길’을 찾는 독특한 에세이 모음이다.

시에나 화파를 둘러싼 이야기도 흥미롭고, 〈눈먼 사람을 치유하다〉 〈다윗의 승리〉 〈수태를 알리는 천사〉 등, 어쩌면 익숙할지 모를 ‘종교화’를 시원하게 들어간 도판으로 보는 맛이 있다. 비기독교인 저자의 글이지만 기독교인 독자 입장에서 ‘종교적 시각 문해력’을 넓히는 데 색다른 도움을 받았다.

강동석 기자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