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 에디터가 고른 책]
‘과학과 종교, 그 얽히고설킨 2천년 이야기.’
책등에 부제가 없었다면, 이 책을 고르지 못할 뻔했다. 책 제목 ‘마지스테리아’는 너무 생소한 단어였기에 그냥 지나쳤기 때문. 한동안 가톨릭 수사로 살았다는 역자에 따르면, 이 단어는 ‘교도권’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마지스테리움’의 복수형이다. 교황을 비롯한 주교들의 ‘권위 있는 가르침’이나 ‘가르치는 권한’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을 기준으로 종교의 어리석음을 비꼬는 뻔한 제목인가?
그렇지 않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이 개념을 가져와 과학과 종교가 서로 겹치지 않는 ‘마지스테리아’라고 주장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려 했던 시도를 상징한다. 저자는 이런 주장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과연 과학과 종교가 전혀 겹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그 얽히고설킨 2천년 이야기’를 풀어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과학과 종교가 얽힌 역사적 사건들을 살핀 결과는 둘의 관계가 경쟁적이면서도 상보적이었다는 것이다. 둘은 한 인간이라는 존재 안에서 얽히기도 하고, 한 사회의 권력 구조 안에서 뒤섞인다. 늘 부정적인 관계였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과학과 종교가 충돌한다는 현대의 서사가 ‘신화’에 가깝다고 본다. 그는 서두부터 대중에게 오랫동안 유통된 ‘종교에 대한 과학의 승리 서사들’(갈릴레오의 지동설 철회, 헉슬리-윌버포스의 진화론 논쟁, 스코프스의 ‘원숭이’ 재판)의 비과학적 면모를 들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며 신화 깨기에 들어선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를 매혹하고 끌어당기며, 대화를 멈추면 안 되는 관계다!
책의 첫머리에는 특별한 설명 없이 파스칼의 《팡세》가 인용되어 있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큰 축이 되어주었다. 부러 《팡세》를 찾아 해당 부분을 읽으며 마음에 새겼다.
“인간의 위대함을 지적하지 않은 채 인간이 짐승과 얼마나 비슷한지 지나치게 낱낱이 설명하는 것은 위험하다. 저열함을 말하지 않고 위대함만을 과하다 싶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양쪽을 다 모르게 내버려 두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지만, 둘 다 제시하는 것은 더없이 유익하다.”(최종훈 옮김, 두란노)
이범진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