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 커버스토리]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 이끄는 이설아 작가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이설아 작가의 책은 본지에 두 차례 소개됐다. 《가족의 온도》(2019)와 《모두의 입양》(이상 생각비행, 2022). 두 번 모두 ‘에디터가 고른 책’을 통해 비중 있게 소개되었다. 입양에 관심이 없는 내가 고른 책은 아니었고, 당시는 이설아 작가를 ‘입양에 대해서 주류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분’ 정도로 인식한 것 같다. 다시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지난해로, ‘정원의 길, 교회의 길’을 연재했던 이성희 뉴욕식물원 가드너에게서다. 그는 이설아 작가가 이끄는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를 통해 글쓰기를 배웠고, 그를 ‘글쓰기 선생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모두의 입양》을 내면서 비로소 작가로의 정체성을 맛보았다는 이설아 작가는 신생아 입양, 큰 아이 입양, 개방 입양으로 세 자녀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입양의 아름다운 이야기뿐 아니라, 어둡고 처절한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다. 2022년 겨울, 15년 동안 몸담았던 입양계를 떠나 ‘정원의 길’에 들어서기 전까지 그는 어려움을 겪는 입양 주체들을 지원한 전문 활동가였다. 지금은 글쓰기 공동체를 꾸리며 정원 민박을 준비한다. 인터뷰는 6월 3일, 경북 예천에 있는 그의 집에서 진행했다.

- 강연이나 강의를 자주 하셨을 텐데, 전형적인 자기소개 멘트가 있으신가요?

최근 하는 일에 맞춘 소개는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 입양계에서 강의하거나 상담할 때는 입양 실천가나 입양 교육 전문가 정도로 저를 소개했지만, 이제 거기를 나와 정원 쪽으로 넘어오고 나니 제가 어떤 소개나 설명이 필요 없는 완전 신인이더라고요. 그래서 딱히 제 일과 맞춘 소개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네요. 아직도 입양 관련 인터뷰나 강의 요청이 오지만, 다 거절하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은 《모두의 입양》에 다 쓰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입양 생태계를 떠나왔으니 인터뷰할 일도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복상에서 ‘문해력’을 주제로 인터뷰 요청이 와서 놀랐어요. 기자님이 ‘문해력’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간의 제 활동과 글에서 그런 모습을 봐왔다고, 입양 분야 활동, 다정한 우주, 정원 가꾸기, 신앙 등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스스로 건네본 적 없던 ‘문해력’을 키워드로 그동안의 제 삶을 꿰어보는 작업이 왠지 새로운 통찰을 줄 듯해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어요.

- ‘다정한 우주’라는 글쓰기 공동체를 하고 계시죠? 벌써 10기가 진행 중이고요. 글쓰기 모임이나 클래스가 아닌 ‘글쓰기 공동체’를 표방하고 있는데요.

‘다정한 우주’ 활동이 문해력과 비교적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거 같아요. 3년 전 제가 아는 만큼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함께했던 분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과 화해를 경험하고 자기 안의 고유한 언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걸 보며 저도 뭉클했어요. 6주간의 입문 과정을 들었던 분들이 계속 글쓰기를 하고 싶다며 다음 기수에 여러 번 신청하는 것을 보면서, 심화 과정도 만들었고요. ‘북극성’이라는 이름의 11주 과정이에요. 이 과정부터는 자기 인생의 주제를 정해 목차를 잡아 글을 쓰는 거예요. 비로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간 무엇을 붙들고 어떻게 살아왔나를 읽어내는 ‘문해력’의 시간인 거죠. 저는 ‘다정한 우주’를 치유하는 글쓰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인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써가는 과정을 밟다 보면, 놀랍게도 치유가 따라오기도 해요. 되게 신기하죠.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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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한 자기표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결국 자기 존재가 진실하게 담긴 글인데요. 대다수는 솔직하게 쓸 때 받게 될 피드백이 두려워서 대충 얼버무리거나 그럴듯하게 마무리 짓고 싶어 해요. 또 위대한 문장가의 책만 보면 내 문장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니까 자신감이 더 떨어지고요. 문장이 아름답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좋은 문장은 어떤 아름다운 문장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과 느낌을 담은 글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진솔하게 자신을 마주하지 않고는 독자의 가슴을 두드리는 글은 나오기 힘들겠죠. 그래서 11주 북극성 과정에서는 자기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서 아주 진솔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글을 쓰는 연습을 이어가요.

- 사회복지 일을 하시던 분이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를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모두의 입양》이 저의 세 번째 책인데요. 그 책을 쓸 때 제게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이전에 쓴 두 권의 책은 모두 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 가족들이 허락하면 얼마든지 꺼내고 쓸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입양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다 보니 외부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어두운 면, 변화가 필요한 부분까지 깊이 다뤄야 했거든요. 입양은 늘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믿음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 그런 책을 낸다는 건 무척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래도 입양전문가로 활동한 기간에 내가 경험하고, 보고, 치열하게 고민한 부분에 대해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 또한 직무 유기라고 생각했어요. 용기 내어 쓰고 그다음은 독자에게 맡기자 마음먹으니 왠지 비장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어쩌면 이 책이 내 마지막 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책이 나온 후의 반응은 다양했어요. 제 책을 불편해하는 분도 계셨지만 많은 분이 이 책을 써주어 고맙다고 하시는 걸 들으며 ‘아, 나는 이제 작가구나. 세상에 흘려보낼 이야기가 있는 작가구나’라고 정체성을 새로 새기게 되었어요. 작가라는 정체성이 생기고 나니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쓸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함께 글을 써보자는 게시물을 SNS에 올렸는데요. 사실 올리곤 5분 만에 후회했어요. 아무도 등록 안 할까 봐요.(웃음) 그런데 10분도 안 되어서 한 분이 등록비를 입금하셨더라고요. 아, 한 분하고 수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두 시간이 채 못 되어 마감되었어요. 제가 가장 많이 놀란 시작이었죠.

이설아 작가가 쓴 책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이설아 작가가 쓴 책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입양 관련 인터뷰는 이제 안 하신다고 하셨지만, 저서인 《모두의 입양》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네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생모’에 대한 분량이 많은 점이었어요.

입양 가정에 대한 사후 서비스는 확대되는 추세인데, 아이를 떠나보낸 생모(birth mother)를 위한 사후 서비스는 매우 부족한 현실이고요. 제가 특별하거나 초월한 입장이라서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생모는 우리 아이랑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내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할수록, 아이가 자라갈수록 아이 옆에 홀로그램처럼 생모가 늘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완전히 제 아이이고, 사랑하는 자녀이지만 이 아이를 있게 해준 존재가 분명히 이 땅에 살고 있잖아요. 단지 만나지 않았을 뿐이지, 아이 마음속에도 살아있거든요. 제가 그 존재를 먼저 지워버리고 없는 것처럼 여기면, 아이는 그런 저를 거스르고 싶지 않으니까 또 눈치 보며 거기에 맞춰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요. 아이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로막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 리 없죠. 저는 항상 생모에 대한 대화를 열어두고, 아이가 생모에 대해 궁금해할 때 서로 편하게 대화하려고 해요. 세 아이를 입양하고 가장 아쉽고 아픈 때를 꼽자면, 아이의 생일날 태어나던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줄 수 없다는 거예요.

- 책에 입양인, 입양 부모, 생부모가 함께하는 ‘입양 삼자 자조 모임’을 만들어 토크 콘서트를 해오신 이야기가 있는데요. 입양계 분위기를 생각하면 굉장히 파격적인 모임이었을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많이들 자조 모임에 오고 싶어 하셨어요. 근데 다 맞이할 수는 없었어요. 삼자가 비율이 어느 정도는 맞아야 했거든요. 모두가 동등한 개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자리여야 하는데, 이를테면 입양 부모가 너무 많이 참석해서 목소리를 더 많이 내는 상황이 벌어지면 안 되죠. 동시에 생부모가 너무 적게 와서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피해야 하고요. 서로의 얘기를 균형 있게 듣고 나누며 다 같이 입양이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임이 3년 정도 이어졌고, 기존 입양계에서 들려지지 않던 이야기를 세상에 많이 흘려보낸 것 같아요.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켰고요.

- 입양 청소년 토크 콘서트도 진행하셨죠. 당시 큰딸이 무대에서 “입양이라 해서 뭐 대단한 거 아니니까 입양된 거 때문에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새로운 인생 잘 살아라!”라고 쿨하게 말한 일화가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많이 울고 힘들어했던 아이예요.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쿨한’ 말이었어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면 그건 부모나 사회가 말한 것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것에 불과했겠죠. 낳아준 분이 자신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슬픔이 무척 컸던 아이였고, 나이를 먹고 머리가 커갈수록 여러 질문도 하고 고민도 하며 많이 울었어요. 그 과정을 거쳐 도달한 이 삶이 얼마나 안정감 있고 행복한지 이제는 아니까,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견해요.

- 입양의 이면을 알리는 작업도 결국 작가님의 처절한 경험에서 출발한 것일 텐데요.

큰딸을 다섯 살 때 입양했는데요. 그때부터 저의 밑바닥을 봤어요. 처음 입양했던 아이는 갓난아이였고 제 마음에 흡족한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다섯 살에 입양된 큰딸은 제 상상을 많이 빗나가는 아이였어요. 이제껏 저란 사람은 내게 만족을 주는 사람만 사랑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 아이를 사랑하지도 못하고, 내치지도 못하면서 몇 년을 계속 씨름했어요. 그 시절이 저한테는 완전히 부서지는 시간이었고, 내가 사랑이 없는 사람이구나 깨닫게 된 때였어요. 하나님 앞에서 처음으로 저의 민낯을 보게 된 것 같아요. 선한 것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죠.

- 상상이 안 되는데요?

아이가 너무 미워서 어떻게 하면 등짝을 한 대 더 때릴까 궁리한 시절이 있었어요. 괜히 한글을 일찍 가르치면서 매의 눈으로 아이를 혼내곤 했죠. 이게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고요. 제가 2015년에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건센)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관련된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 그때부터 위기 가정을 지원하러 다녔던 거고요. 가장 사랑이 많고 선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사실은 그렇지 못하구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이를 입양했지만 부모 자신의 약함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알게 되었죠. 가장 안타까운 건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많은 분이 아이 탓을 한다는 거예요. 아이 탓을 하면 문제의 원인이 명확해지고 깔끔하잖아요. 우리는 선한 결정을 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잘못했을 리 없고, 아이에게 뭔가 나쁜 유전자가 있는 거라 결론을 내려요. 아이와 생부모 탓을 하는 거죠. 이런 어른들의 모습 탓에 아이가 한 가정에 정착하지 못하고 옮겨지기도 하고요. 인간은 선한 동기만으로 선한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배운 시간이었어요.

- 책에는 신앙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는데요. 곳곳에 신앙 성찰로 보이는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고백하는 부분에서요.

아이를 키우며 제 안에 사랑이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느끼며 매일 밤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저는 이제껏 생각해온 그런 착한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기도하며 내 민낯을 고백하고 나면 다음 날 아이를 안아줄 힘이 겨우 생겼어요. 따뜻하게 눈 맞추는 건 어려워도 안아줄 수는 있었어요.(웃음) 아이에게 사랑이 차오를 때까지 영혼 없는 칭찬이라도 많이 했어요. 우습지만 저는 그것도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거요. 앞이 잘 안 보이지만, 이 아이의 엄마 자리에 들어왔고 난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계속 가는 거라고 결심하면서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사랑이었어요. 선함과 사랑은 내 안에서 저절로 퐁퐁 솟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흘려보내려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며 하루하루 버텼던 것 같아요. 그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기까지 5년 걸렸어요.

-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모태신앙으로 자랐고요. 큰 어려움 없이 지내다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두 번 위기를 겪었어요. 하나는 앞서 얘기한 큰딸을 입양하고 나서 크게 깨어질 때였고요. 다른 한 번은 제가 고3 때 그간 만나던 교회 오빠가 아무런 언급 없이 자기 생명을 포기한 때였어요. 대입 학력고사를 바로 앞두고, 장례식이 다 끝난 뒤 소식을 전해 들었던 저는 정말 부서지는 느낌이었어요. 부모님처럼 나를 아껴주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버려졌다’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느꼈고, 어디에도 이 사실을 얘기할 수 없어 소화하기 더 힘겨웠던 것 같아요. 애도 기간이 4년 걸렸어요. 대학교 생활 4년 내내 참 많이 방황했고, 그 결과 졸업 못 하고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그때야 정신이 좀 들더라고요.

- 앞서 ‘입양계를 떠났다’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작가님 역할이 아직 그 생태계에 필요한 것 같아서요.

2022년 겨울, 그간 해온 일들을 마무리하고 운영하던 센터를 접으면서 내가 진심으로 후회 없이 일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죠. 마지막 4년간은 위기 입양 가정을 지원하는 일을 했었는데 보람된 일도 많았지만 참 많은 슬픔과 아픔을 마주해야 했어요. 결정적으로 제가 오랜 시간 위기 지원하던 입양 엄마를 아동학대로 직접 신고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심적으로 무너졌던 것 같아요. 부모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아동의 안녕을 매번 확인하는 일은 살얼음판 걷는 듯 위태로운 상황이었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그때 결심이 섰어요. 원 없이 최선을 다한 시간이어서인지 돌아서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나도 이제 나를 돌보며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입양 관련 인터뷰와 강연을 하면 비판도 받았지만, 대부분 ‘대단하다’ ‘멋지다’는 칭찬을 자주 듣거든요. 그런 피드백들이 이젠 제게 부담스럽고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물론 진심으로 지원하고 진실하게 글을 쓰긴 했지만, 사실 제가 정말 그분들 말씀처럼 대단한 사람인 건 전혀 아니거든요. 그저 그 분야에서 그 역할을 한 모습이 그렇게 보인 것뿐이죠. 이젠 그런 말들 상관없이 그냥 이설아로 돌아온 것 같아 좋아요. 약간은 초라해졌지만, 더 많이 홀가분해졌달까요? 자연인으로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를 만나는 시기라서 좋아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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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정원 분야 공부를 하고 계시죠? 복상에 ‘정원의 길, 교회의 길’을 연재했던 이성희 필자가 ‘다정한 우주’ 수강생이었는데, 지금은 작가님께 정원에 대해 알려준다고요.

제가 정원 가꾸기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아신 이성희 선생님께서 정원 공부를 하자며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몇 주간 선생님과 정원 공부를 해봤는데 너무 유익한 거예요. 그래서 이성희 선생님께 이걸 정식 프로그램으로 만들자 제안했죠. 요즘 정원에 관심 있는 분들도 많고 정원 공부를 통해 더 큰 자연, 더 큰 생명 시스템에 눈뜨는 과정이 된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과정을 열었는데 역시 많은 분이 좋아하셨어요. 정원을 주제로 공부하면서 생명이든 사람이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다르게 세워가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부터 전국 정원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있다 보니 저를 ‘정원과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정리하게 돼요. 아직 정원 쪽에서는 완전한 신인이고, 아직 배울 게 많은지라 정원과 자연에 대한 서적들을 많이 읽고 있어요.

- 원래 정원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책에서 ‘선한 의지’를 묘목에 비유해 표현하신 것을 봤습니다. 선한 뜻에는 적절한 햇빛과 양분이 필요하고, 그렇게 자라나 거대한 연결로 숲을 이루는 상상을 하신다고요.

베란다 가드닝을 할 때였어요. 위기 가정을 지원하느라 마음이 많이 부칠 때, 베란다 정원에서 아침저녁으로 힘을 받았죠. 그 공간이 건네는 생명력에 저는 인공호흡을 받듯 치유되었어요. 이 작은 베란다도 내게 생명력을 건네는데, 차원이 다른 대자연에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영감을 받을 수 있겠구나 기대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시골에서 넓은 땅에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이 시작되었어요. 물론 남편과 아이들에게 동의를 얻어 실제로 내려오기까지는 많은 물밑 작업이 필요했지만요.(웃음)

- 실제로 지금 정원을 꾸리고 계시죠?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 영주에 아버지가 일구는 정원이 있어요. 흔한 시골 풍경과 익숙한 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8년 차 정원인데 요즘엔 그 풍경조차 아름답게 느껴져요. 아버지는 정원을 특별히 디자인하며 가꾸신 것은 아니라서, 어느 곳은 풀이 무성하고 또 다른 곳은 꽃이 너무 밀집되어 있거나 정리가 좀 필요해요. 이곳 경북으로 이주할 때만 해도 아빠의 정원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마음에 여러 땅을 보러 다녔는데 아버지께서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되니 이곳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하셔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빠가 만드신 공간을 제 계획대로 가꿔가려면 어떤 부분은 훼손되기도 하겠지만, 우리 가족의 추억이 있는 곳을 이어가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과 상의 끝에 이곳에서 정원을 이어가겠다고 했더니 정말 기뻐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갈아엎으려고 하니 아버지께서 애지중지 키운 것들이라 아까우신가 봐요. 이건 약초라서 안 되고, 이건 또 뭐라서 안 되고.(웃음)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어느 정도 존중하고 협의하면서 제가 만들려는 정원의 방향도 자주 말씀드리고 있어요. 저도 제 고집이 있지만, 지난 8년간 이 정원을 일구며 자식들이 언제든 와서 충전하기를 바라셨던 그 마음이 읽혀서 수용하고 양보하게 되더라고요. 곧 3개 동을 짓기 시작해요. 거창한 곳이 아니고, 2인이나 4인 들어가는 작은 오두막 같은 숙소예요. 말 그대로 정원이 있는 작은 시골 민박. 올겨울에는 이틀이든, 사흘이든 ‘다정한 우주’의 오프라인 버전을 시험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설아 작가가 준비 중인 정원.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
이설아 작가가 준비 중인 정원.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

- 입양계 활동, 글쓰기 공동체, 정원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결국 생명을 소생시키려 애쓴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다정한 우주’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냥 소박하게 앞마당 가꾸는 정도로도 만족했을 거예요. ‘다정한 우주’가 어느새 공동체를 이뤄가고 있고, 함께한 분들이 자기 삶과 화해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봐왔기에 하나님이 제게 원하는 그림이 무엇인가 점점 깨달아가면서 이 꿈을 그려가고 있어요. 나름의 공동체 실험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거죠. 공간이 주는 힘이 있잖아요. 자연 안에서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새로운 영감을 받으며 채워지는 경험들을 하잖아요. 이곳이 정말 놀라운 경험을 건네는 곳이 되길 바라요.

지금 생각하면, 15년 동안 경험했던 입양계에서의 날들이 사람과 인생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어서 너무 감사해요. 특별히 빛과 어둠을 아주 깊이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대학 때는 미술을 전공했는데요. 데생(dessin)할 때는 어둠을 얼마나 깊이 있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입체감이 달라져요. 빛과 어둠 사이 중간 톤이 얼마나 풍부하냐에 따라서 대상이 정말 실제 모습에 가까워지죠. 그동안 입양의 빛과 어둠, 인생과 사람의 양면을 보는 법, 그사이에 존재하는 풍부한 중간톤을 읽어가는 훈련을 한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해서도 아름다움만 본다면 그것은 납작한 단면일 뿐이죠. 그가 가진 어둠을 읽을 수 있어야 더 입체적으로 진실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어요.

《가족의 온도》에 수록된 그림. 이설아 작가가 직접 그렸다.<br>
《가족의 온도》에 수록된 그림. 이설아 작가가 직접 그렸다.

- 솔직한 글을 쓰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인가요?

맞아요. 글을 읽다 보면 진솔한 부분과 그럴듯한 부분이 다 구별이 되잖아요.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니라, 서툴더라도 용기 있게 지금의 자기를 꾹꾹 눌러쓴 문장이 울림이 있다는 걸 함께 경험해요. ‘다정한 우주’를 통해 그간 다룰 수 없었던 자신의 두려움, 차마 꺼내지 못했던 깊은 어둠을 꺼내 마주하는 분들이 계세요. 내 인생과 화해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죠. 그래서 더 진지한 마음으로 잔뜩 긴장하며 준비해요. 매번 줌을 통해 라이브로 진행하기 때문에, 실수가 없어야 하잖아요. 모임 시작 전에 정말 간절하게 기도해요. 내가 전하는 말이 상처로 남지 않고, 글 쓰는 이가 자신과 만나고, 더욱 성장하는 기회가 되게 해달라고요.

- 말씀하시면서 ‘읽는다’라는 표현을 정말 많이 쓰셨어요. 결국 문해력은 사람을 읽어내려는, 이해하려는 진실한 마음 자세에서 솟아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정말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발견해요. 가지고 태어난 부분도 있고, 환경에 영향을 받아 드러나는 모습도 있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 고유한 하나님의 디자인이 있어요.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집어넣기보다 아이 안에 있는 고유한 결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해요. 저는 어른이든 아이든 자신의 감정을 읽고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심어주신 다양한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훈련은 고유한 나를 만나는 지름길인 것 같아요. 내 감정들을 민감하게 인식할 때 내 생각과 느낌에도 힘이 실리고 상대의 마음에도 공감하는 능력이 키워지니까요. 글쓰기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 같아요. 나의 감정을 진실하게 마주해본 이의 글에서는 고요하고도 단단한 힘이 느껴져요. 위대한 성공 신화나 화려한 이력가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실재의 존재가 건네는 고민과 성찰, 진솔한 고백은 그 글을 더 그만의 세계로 이끌어가죠. 나를 읽고, 내 삶의 주제를 읽어가는 모든 과정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요.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많이들 우려하는 이 시대, 가장 먼저 나를 만나고 읽어가는 글쓰기부터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웃음)

진행 이범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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