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호 에디터가 고른 책]
이 책은 ‘읽은’ 책이 아니고 ‘고른’ 책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내가 그동안 ‘에디터가 고른 책’에 썼던 글 중에서 가장 코너명에 걸맞은 글일 수 있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 책과 같이, 허무한 세상과 인생 가운데서 삶의 의미를 묻는 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지금도 책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혀있는 《삶은 왜 의미 있는가》·《모든 것은 빛난다》 같은 책들이, 아직 남아있는 관심의 방향을 알려준다(이 책을 휘리릭 넘기다 《삶은 왜 의미 있는가》를 인용한 내용을 30쪽에서 발견했다. 역시 비슷한 결의 책이 맞나보다).
과거에는 정말로 생이 허무하게 느껴져서 그랬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에밀 시오랑의 저서나 어설픈 반출생주의 담론에 끌렸던 시절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어느 순간 그런 허무감에서 놓여났기 때문이다. 사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허무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빠진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삶에 필요한 근육이 조금이나마 붙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은 왜 이런 책을 찾느냐. 삶의 의미를 파고드는 깊은 글을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생의 허무함에 맞서는 책은, 대체로 이 세상과 인생은 허무하다는 부정할 수 없는 결론에서부터 시작해 그럼에도 ‘잘 사는’ 법을 탐구하는 까닭에 실망하기가 쉽지 않다.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허무감의 깊이만큼 반작용하여 빛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아느냐고? 맨 뒤 페이지를 펼쳤을 때 나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읽어보라.
“우리가 읽은 《잠언》, 《욥기》, 《전도서》, 《야고보서》는 행복감을 가르치지 않는다. 도리어 행복감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일갈한다.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이 고전들의 삶을 가꾸는 지혜는 혼돈에 맞서 의미를 창조하고, 고통을 넘어서는 품격을 키우며, 허무에 굴복하지 않고 삶에 충실한 지혜를 가르친다. 이를 통해 모자람 없이 옹글고 단단한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격려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지혜로 삶을 조형해 나갈 때 행복감은 보상처럼 혹은 촉진제처럼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 지혜가 가져온 경외와 감사, 연민과 인내, 창조와 충실성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환희를 우리 삶에 선물한다.”
강동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