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호 에디터가 고른 책] 《이단》 외 8권

시리즈 도서를 수집하고 싶을 때

G. K. 체스터턴 탄생 150주년 기념 대표작 세트 | G. K. 체스터턴 지음 | 전경훈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nbsp;<br>
G. K. 체스터턴 탄생 150주년 기념 대표작 세트 | G. K. 체스터턴 지음 | 전경훈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해가 갈수록 실거주 면적이 좁아지다 보니 책장도 줄어든다. 그나마 있던 책장도 한 칸 한 칸 자녀들에게 빼앗기고 이제 내 책은 몇 칸 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책장에는 정말 좋아하는, 남 주기 아까운 책들만 남게 된다. 책꽂이는 점점 줄어들지만, 여전히 내게도 취향이 남아있다는 것을 뽐내기에 시리즈 도서만 한 것이 없다. 최근 출간된 ‘G. K. 체스터턴 탄생 150주년 기념 대표작 세트’를 예약 주문했다. 그중 《이단》은 국내 첫 출간이다. 새 책이 들어갈 틈을 미리 마련하면서, 체스터턴의 칼럼 모음집 《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를 꺼내 읽었다. 마침, 책 출간에 맞춰 그의 외모를 언급하는 이런저런 평을 본 터였다.

《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 | 안현주 엮고 옮김 | 북스피어 펴냄
《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 | 안현주 엮고 옮김 | 북스피어 펴냄

“우리는 절벽에서 뻔뻔하게 튀어나온 가파른 바위 벼랑을 보고 싶어 한다. ⋯ 그에 준하는 고상한 열정으로 우리는 불쑥 튀어나온 코를, 친구의 머리통 위에 아주 뻣뻣하게 서 있는 붉은 머리카락을, 산골짜기처럼 넓고 말쑥한 그의 입을 보고 싶어 한다. 적어도 우리 중 몇몇은 이런 점들을 몽땅 좋아한다. 이는 유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소나무나 골짜기를 보자마자 즐거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소나무나 골짜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들이 자연이라는 극적인 고요를, 자연의 대담한 실험을, 자연의 명백한 일탈을,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자연의 떳떳하고 맹렬한 긍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습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주술을 툭 끊어 버리는 순간,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얼굴들이 온 사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온 사방에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영혼들이 있는 것처럼.”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세밑, 정리되지 않는 책장에서 충만한 위로를 받았다.

이범진 기자

영생을 주는 소녀 1·2·3(완간) | 김민석 글 | 안정혜 그림 | IVP 펴냄
영생을 주는 소녀 1·2·3(완간) | 김민석 글 | 안정혜 그림 | IVP 펴냄

만화의 묘미는 다음 화를 기다리게 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몰입도와 전개 방식이다. 《영생을 주는 소녀》는 웰메이드 웹툰을 표방하는 만큼,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영생을 주는 소녀》는 교회 내 여성 폭력에 대한 현실을 미래 과학기술로 해결하는 이야기다. 결국 ‘죄인인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기술을 통해 변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실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해결 방법은 미래로 확장하고 발전시켜 이야기의 스케일을 키운다. 흥미진진한 만큼, 다 읽고 난 후의 여운도 크다.

흥미롭게도, 안정혜 작가의 이전 작품 《비혼주의자 마리아》에 나오는 미성년자 성폭행 가해자 목사가 이 작품 주인공인 윤다라의 아빠, 윤민후로 등장한다. 세계관의 연결은 시리즈물을 더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다.

정민호 기자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만날 때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관하여 | 메릴린 로빈슨 지음 | 조윤 옮김 | 비아 펴냄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관하여 | 메릴린 로빈슨 지음 | 조윤 옮김 | 비아 펴냄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곤 하는 메릴린 로빈슨은 첫 소설을 발표한 1980년부터 지금까지 총 다섯 권의 소설만 펴냈다. 그중 네 권이 한국에 번역된 것은 인기보다는 작품성 때문이리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메릴린 로빈슨의 작품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통찰이 인류 보편의 가치와 삶의 굴곡을 얼마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관하여》는 ‘인문주의’ ‘종교개혁’ ‘두려움’ ‘가치’ ‘형이상학’ ‘한계’ ‘현실주의’ 등 키워드별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종교, 역사, 철학, 정치, 과학의 현대적 담론에 대한 메릴린 로빈슨의 숙고가 돋보인다. 그의 소설이 지닌 주제의식도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미국을 의식해서 썼지만, 최근 한국의 상황 때문에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내용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그만큼 추악한 유혹에 이 세계는 적극적으로 문을 열거나 손쉽게 굴복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에 대한 존중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은 시민들을 경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다. 대다수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것 같은 전망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 본회퍼가 자기 시대의 도전에 맞섰듯 우리도 우리 시대의 도전에 맞서려 한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보다 먼저 배운 쓰라린 교훈, 이런 위험한 변화를 우리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은 자들을 위한 요한계시록 | 스캇 맥나이트·코디 매칫 지음 | 윤상필 옮김 | 성서유니온 펴냄&nbsp;
남은 자들을 위한 요한계시록 | 스캇 맥나이트·코디 매칫 지음 | 윤상필 옮김 | 성서유니온 펴냄 

혼란스러운 시국 때문인지 ‘불의한 체제를 전복시키는 예언자적 상상력’이라는 부제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요한계시록은 음모론적 미래 예측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책이 아니다. 이런 억측은, 그리스도교 영성이 지닌 저항의 날을 무디게 만든다. 현실도피적이지 않은 요한계시록 읽기를 지향하는 이 책의 출간이 시의적절한 이유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음모론에 쉽게 경도되곤 한다. 대체된 현실은 안전하다는 생각을 불어넣고 제 스스로 구축한 환상 속에 머물게 만든다. 권력이 당신의 희망이자 목표일 때, 그 권력이 당신 편이 아니라면 음모나 환상에 빠지기 쉽다.”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서 어린양의 편에 설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을 잘 읽으려면 ‘하나님의 정치’(theo-politics)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요한계시록은 한결같이 제자도와 공공성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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