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월간 에디터의 도전]

ⓒ복음과상황 정민호

지난 10월호(407호)에 제로웨이스트숍 ‘나아지구’가 지면에 소개되었습니다. 지구를 위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물건으로 가득한 곳이었는데요. 그 물건들을 써보면 어떨까 궁금했어요. 과연 제로웨이스트숍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사용하면 정말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지도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에디터들이 ‘나아지구’에서 각자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고 사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나아지구’를 방문해 김요한 점장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고, 각자 5만 원에 해당하는 물건들을 구매했죠. 그리고 그 제품들을 사용해본 소감과 사용 전후 쓰레기양을 측정해 비교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챌린지는 (재)한빛누리 생태회복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받은 예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11월 1일, 에디터들은 나아지구 매장 앞에서 밝은 얼굴로 사진을 찍고 헤어졌습니다. 제로웨이스트숍 제품들을 양손 한가득 장만해 기분이 좋았죠. 그날 밤부터 새로 산 물건들을 꺼내놓고 하나씩 차례로 사용했습니다. 계속 잘 쓰는 것도, 손이 잘 안 가는 것도 있었어요. 어떤 제품은 제가 쓸 만한 건지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사용만으로 판단할 수 있었죠.

접이식 실리콘 컵(5,500원)은 가장 기대했던 제품입니다. 평소엔 납작하게 접혀 부피를 차지하지 않다가, 필요할 땐 쭉 펴서 컵으로 쓸 수 있어요.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게 고민될 때 있잖아요? 이 접이식 컵은 가방에 넣기에 더 유용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 들고 나간 날, 가방에서 꺼낸 이 컵에 입을 대지 못했습니다. 가방에 있던 먼지가 많이 붙어서 왠지 거북했거든요. 이후로 이 컵은 계속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오가닉 코튼 자수 손수건(유기농 면 100%, 5,000원)도 적응하지 못했어요. 비염 환자인 저는 어디에서나 코를 자주 풉니다. 하루는 이 손수건으로 코를 풀고, 집에 와서 빨래통에 넣고 세탁했어요. 다 말랐는데도 어쩐지 제 손에 닿지 않고 있습니다. 제 콧물을 다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빨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요.

양치 용품 세트도 구매해 봤습니다. 대나무 칫솔은 원래 사용하던 탄탄한 플라스틱 칫솔에 비해 솔이 너무 약하고 칫솔모도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플라스틱 칫솔의 시원함을 포기 못 한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작은 불편함도 허용하지 않는 제 행태가 실망스러웠죠. 그렇다고 모든 불편이나 마뜩잖음을 다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제 행동양식과 취향에 맞는 물건을 골라 적응해야겠죠. 고체 치약은 여러 번 써봤지만, 이것도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문제였어요. 양치했을 때 화한 느낌 포기 못 해….

검은콩과 참숯으로 만든 샴푸바(11,000원)는 좋았습니다. 남아있는 다른 삼푸를 먼저 쓰겠다며 플라스틱 통 샴푸로 돌아갔지만요. 이 통 샴푸를 다 쓰면 샴푸바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제가 가장 잘 사용하는 건 치실(병+치실, 생분해 가능, 민트향, 5,800원)입니다. 정말 추천하고 싶어요. 전에는 플라스틱 갈고리가 달린 치실을 사용했는데, 쓸 때마다 플라스틱 조각이 남아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이 치실은 실만 리필해서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작은 유리병에 들어있죠. 실을 손에 둘러 쓰는 치실은 처음 사용해봤어요. 쓰다 보니 적응했고, 사용법도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잘 끊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잘 끊어진다는 건, 비교적 빨리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쓰레기양이 줄었냐고요? 저는 제품 사용 전후보다 쓰레기양 측정 전후에 차이가 더 컸습니다. 제품 사용으로 인한 쓰레기 배출량 차이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았어요. 일주일만으로는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웠고요. 한 달 단위로 측정해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제품 사용 전 평소 쓰레기양을 확인해보려고 며칠간 쓰레기를 모았는데요. 그때 이미 쓰레기양이 평소와 다르게 확연히 줄어들더라고요. 쓰레기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쓰레기가 줄었다는 게 신기했어요. 쓰레기를 줄이려면 내가 버리는 양을 계속 확인하면서 지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도전이었습니다.

ⓒ복음과상황 이예은
ⓒ복음과상황 이예은

이예은: 저는 ‘나아지구’에서 에디터 중 가장 물건을 많이 산 사람입니다. 함께 정한 금액이 있었는데, 혼자 훌쩍 넘어버렸죠. 머쓱하게 계산대 근처만 맴돌았습니다. 다른 에디터들의 배려 덕분에 선택한 모든 제품을 집까지 데려올 수 있었어요.

이번 도전은 당장 변화를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 먼 미래까지 보면 꽤 희망찼습니다. 구매했던 제품 대부분을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거든요.

1. CXP 목재 칫솔: 예전에 대나무 칫솔을 사용했다가, 뻑뻑함에 불편함을 느꼈는데요. 이번에는 버려지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플라스틱과 비슷한 칫솔을 사용해 봤습니다. 결과는요? 대만족이요! 전혀 나무처럼 느껴지지 않고, 왜인지 곰팡이 걱정도 없어요.

2. 세안바, 트리트먼트바, 립밤: 용기 안까지 깨끗이 씻고 말려, 재활용하기 어려웠던 클렌징폼과 트리트먼트를 구매했습니다. 마침, 두 제품이 똑 떨어졌거든요. 건조한 겨울을 대비한 립밤도 미리 사두었죠. 세 가지 제품 모두 친환경이라 그런지, 예민한 제 피부에 딱 맞았습니다. 쓰레기를 줄인 것도 마음에 들지만, 아토피 때문에 환경오염 시대를 살아가기 힘든 저에게 선물 같은 제품들이었습니다.

ⓒ복음과상황 이예은<br>
ⓒ복음과상황 이예은

3. 텀블러: 쓰레기양 측정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보여준 것은 텀블러였습니다. 매일 두 잔씩 커피를 마시기 때문이죠. 하루만 들고 나가도 두 개의 플라스틱 뚜껑과 컵을 줄일 수 있었어요. 친환경 소재여서 더 뿌듯했달까요. 사실 텀블러의 중요성은 너무 많이 들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매번 갖고 다니는 것을 까먹는 게 문제입니다.

제품을 구매할 때, 사용 시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쓸 만합니다. 오히려 제품을 잘 사용하기 위해 한 번 더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좋아요. 물건을 고유 성질에 맞게 잘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가장 많이 산 책임으로 쓰는 글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제로웨이스트 제품들을 추천해요!

강동석: 새삼 불편함,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던 도전이었습니다. 쓰레기양을 측정하는 일은 쓰레기를 의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 도전을 시작하자 쓰레기양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하루는 너무 바빠서, 습관대로 한 끼 음식과 커피를 급하게 배달시킨 적이 있었는데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네 개, 비닐과 봉지 등 생각보다 많은 쓰레기에 놀라고 말았죠. 제가 많이 먹는 사람은 아닌데, 과잉 포장으로 나온 쓰레기를 보면 대식가로 착각할 정도더라고요. 보통 1인분을 시키면 두 끼로 나눠 먹기도 하지만, 잠깐 의식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가 되고 말지요. 확실히, 쓰레기양 자체를 체크하는 일이 많은 선택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더군요. 쓰레기양에 있어서는 제로웨이스트숍 제품을 사용하느냐 마느냐가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측정을 중단하자, 예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왔던 것 같아요.

다만, 유의미한 변화 중 하나는 교회에 가거나 짐이 적을 때 꼭 텀블러를 챙기게 됐다는 거예요. 텀블러가 없지는 않았지만, 마음먹지 않으면 두고 다니게 되더라고요. 원래 손잡이 달린 355ml짜리 텀블러를 몇 년간 쓰다가, 너무 작아서 890ml짜리를 샀다가, 휴대하기에 용이하지 않아, 지금은 아내가 다른 제품을 쓰면서 방치해둔 444ml짜리 텀블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제로웨이스트숍 상품도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자기에게 맞춤한 것들을 구비할 수 있겠더라고요.

제로웨이스트숍을 이용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동안은 제품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선물로 받아서 사용해본 제품들에 관한 기억이 좋지 않았거든요. 선물로 받은 비누의 경우 쓰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하루 만에 다 녹아 없어졌고, 식물로 말려 만든 천연수세미는 너무 딱딱해서 불편했죠. 나아지구에 와서 불편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제품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수세미 몇 종을 만지면서 촉감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면 35% 사이잘 마 65% 수세미를 샀고요. 만족스럽게 사용 중입니다. 천연 라텍스 고무장갑은 교회 김장 날 가져갔다가 잃어버렸고, 접이식 실리콘 컵은 민호 기자님과 같은 이유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죠. 칫솔은 한때 미세모에 집착할 정도로 촘촘한 제품을 선호했어요. 불편을 감수해보자 마음먹었더니 대나무칫솔에도 적응이 되더군요. 대신, 교체 주기를 짧게 가기로 마음먹어 6개 세트를 구입했습니다.

립밤과 곰인형 장바구니도 샀는데요. 립밤은 제가 입 주변이 잘 트는 편이라, 사계절 언제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물건입니다. 퀄리티는 괜찮았는데, 종이 용기라 오래 사용하면 불편할 수 있다더군요. 더 써봐야 알 것 같아요. 장바구니는, 평소엔 키 링이 있는 곰인형이었다가 뒤쪽 지퍼를 열면 가방으로 변신하는 제품이었어요.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 장 보는 일조차 배달에 길들여져있기 때문이겠죠.

번거롭더라도, 생활 습관을 이리저리 따져보면서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구입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감수할 만큼의 불편 정도를 맞춰가는 과정이 주효하겠습니다. 이러려면 주변에 단골 제로웨이스트숍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가까운 곳에 제로웨이스트숍이 많아지길 바라게 되네요. 동구밭, 소락 등 제로웨이스트 관련 브랜드명이 눈에 익기 시작한 것도 이 도전이 남긴 성과 중 하나겠죠?

이범진: 제품을 갖고 집으로 오면서 순간적으로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게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일단 제 딴에는 신기한 제품을 많이 구매해 집에 꺼내놓았더니, 아내가 평소 사용하는 제품이 꽤 있었어요. 그중 수세미는 설거지할 때 쓰는 제품이었는데, 점장님이 샤워할 때 사용해도 된다고 해서 호기심에 가져오기도 했고요. 쓰레기 줄이기도 중요하지만, 생활용품 중 소모품의 경우 자연적으로 썩어 없어지는 제품을 써보고 싶었어요. 치실도 그래서 구매했는데, 앞서 민호 기자님이 말했듯이 잘 끊어져요. 놀랐던 것은 기존에 사용하던 치실도 알고 보니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죠. 물론 그 제품은 이쑤시개처럼 끝이 뾰족하게 생겨, 혹시 바다에 흘러간다면 흉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죠. 완벽하진 않더라도 생태계에 가장 영향을 덜 줄 수 있는 제품을 골라 사용해야겠죠.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면서 가장 큰 걸림돌은 회의감이었어요. ‘이거 갖고 되겠어?’ 주방 비누의 경우, 기름기가 잘 닦이지 않아요. 몇 번씩 반복해서 씻어도 미끈거리는 그릇을 만지며 화가 났어요. 오히려 물 낭비 아닌가? 식기세척기 한 대 들여놓는 게 고효율 아닐까? 사실 몸이 피곤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들어내는 쓰레기 대다수는 탄산수 페트병, 일회용 컵이었는데요. 텀블러를 갖고 다니면서 꽤 줄였던 것 같아요. 다만, 커피는 일회용 컵에 담아 마실 때가 확실히 더 맛있어요. 일회용 컵이지만, 버리지 않고 2회, 3회 이상 사용하려고 책상에 두고두고 썼어요. 요즘은 친환경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카페도 많아요. 종이컵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길게 하는 겁니다.

계속 다른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지인 중 일회용 제품(비닐봉지, 일회용 컵)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주로 비수도권 지역에 공장이 있고, 처우도 열악하죠. 이런 공장이나 제품 생산을 무작정 제재할 것이 아니라 섬세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담론이나 운동들이 ‘서울말 쓰는 사람들’만의 것이 되지 않으려면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제가 이번에 친환경 제품을 쓰다 보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하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레드팀’ 입장에서 제 마음가짐과 현실을 더 돌아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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