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 월간 에디터의 도전]
새해를 맞아 매일 큐티(QT)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1월 한 달 동안 빠짐없이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묵상 과정을 통해 생긴 변화를 공유하고, 더 깊이 묵상하는 방법을 찾아 보았습니다. 에디터들이 각자 큐티를 하면서 느낀 점을 나눕니다.
정민호: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순〉으로 시작했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 청년들이 공동 구매하는 큐티집인데, 두 달에 한 번씩 구매만 하고는 잘 보지 않았거든요.
제게 큐티는 말씀 묵상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분주한 일상에서 책상 앞에 앉아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바쁜 일들이 있어도 잠시 멈추어 비생산적이면서도 놀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이니까요. 말 그대로 ‘조용한 시간’(Quiet Time)을 보내는 게 큰 목표랄까요.
시작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정말로 조용한 시간을 마련할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큐티를 책 읽는 의식 중 하나로 삼았죠. 그랬더니 둘째 날부터 큐티를 건너뛰고 다른 책을 먼저 펼쳐보고 있더라고요. 조용히 읽으려 하면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 사방에 있었죠. 넷플릭스, 유튜브, 페이스북이 왜 그렇게 보고 싶어지는지….
여간해서는 큐티를 한 날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본문 읽기가 지루하고, 솔직히 내용 파악이 귀찮기도 했어요. 본문을 진지하게 읽는 수고를 조금 덜고자 성서유니온선교회 웹사이트에서 오디오 해설을 듣기 시작했죠. 10분 남짓 낭독-해설을 들으면 쉽게 이해가 갔습니다. 감상과 묵상할 지점까지 제시되어 완결된 묵상으로 느껴졌어요. 성경 묵상이 너무 쉬워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다른 큐티집은 어떨까 해서 〈와플터치〉도 함께 봤습니다. ‘맛있는 QT’를 지향하는 문화예술 큐티 매거진이죠. 본문 옆에 여러 필자가 쓴 짧은 묵상 칼럼이 있었습니다. 소소한 단상을 시처럼 적었더라고요. 본문보다 먼저 눈이 갔어요. 읽으면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진지한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위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QT 해보신 분?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라고 올렸더니, 지인이신 목사님 한 분이 헤른후트 로중 〈말씀, 그리고 하루〉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이 묵상집은 1728년부터 매년 이어온 성경 묵상 전통으로, 구약은 1천 8백 개 구절에서 제비뽑기 방식으로 정해진 본문이 매일 하나씩 실립니다. 신약은 자유롭게 선택되며, 교회력에 따른 다른 두 개 구절과 연결되어 총 네 개의 본문을 매일 묵상할 수 있죠. 디트리히 본회퍼를 비롯한 많은 신앙 실천가가 읽어온 전통 있는 묵상지라니. 더 잘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큐티를 하면 ‘오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이런 본문이 나오다니’ 하는 순간들이 있죠. 내 눈앞에 놓인 본문에 내가 겪고 있는 수많은 상황 중 하나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겠죠. 그런 게 큐티를 이어가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요. 오늘 헤른후트 묵상집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하고,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의 귀와 마을 열어 우리가 말씀을 올바로 ‘붙잡고’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슬플 때나 기쁠 때, 고통스러울 때도 말씀을 등한시하지 않게 하소서. 또한 단지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자가 되어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 다비드 데닉케”
이번 도전을 계기로, 나의 하루와 주변을 차분하게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큐티 시간을 이어가려 합니다.
이예은: 송구영신예배에서 올해의 말씀을 뽑았습니다. 평소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유독 그 말씀이 좋았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누군가 제게 이렇게 축복해준다면, 벅차도록 행복할 것 같았어요. 무조건 올해의 말씀이라고 믿기보다, 맥락을 이해하고 싶어졌죠.
저는 큐티집 없이 도전에 참여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해석을 함께 읽으면, 하나님과의 시간에 누군가 끼어든 느낌이 들어 어색했거든요. 고민 끝에 성경을 직접 읽기로 결심하고, 대학 시절 중고 서점에서 산 ‘메시지 성경’을 꺼냈습니다. 현대적 언어로 쓰여 읽기 편해서요. 특히 편지 형태의 ‘로마서’라 더 술술 읽혔죠.
오랜만에 성경을 읽으며 가졌던 조용한 시간은 전부 좋았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다가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면, 보람을 느끼기도 했죠. 가장 어려웠던 일은 자리에 앉는 것이었어요. 정말 좋은데도, 마음을 잡고 성경을 펴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요? 아마 이 도전에 임한 네 명 중에 제가 제일 못했을 겁니다. 한 달이면 로마서를 두 번은 읽어야 했는데, 한 번도 다 읽지 못했거든요.
슬프게도, 제 도전은 실패에 가까워서 전해드릴 비결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저보다는, 열 번이라도 읽은 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른 번 읽었으면 더 좋았겠지만요. 앞으로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더 알고 싶어서 성경을 매일 찾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에디터 아닌 이예은의 성경 읽기 도전은 계속됩니다.
이범진: 저는 이번 도전에서 한 가지 원칙을 더 세웠는데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말씀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지난해 투자에 대해 자세한 조언과 가르침을 주셨던 어느 교수님이 당신의 투자 원칙에 대해 말씀하실 때 들은 내용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 미국 주식시장 지표를 확인하고 싶지만, 말씀을 먼저 본다! 당시엔 그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요즘 탄핵 정국을 경험하며 정말 어려웠어요.
새벽에 눈이 떠지면 ‘체포됐나?’ 뉴스를 먼저 확인하고, 유튜브에서 낯선 평론가들의 분석을 듣게 되더라고요. 말씀이 먼저다!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말씀을 보려고 했는데요. 평소 큐티책으로 말씀을 읽는 제겐 더 어려운 도전이었습니다. 보통은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잡잖아요. 그래서 성경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기로 했어요. 여러 앱을 비교해봤는데, 일단 광고가 없고, 디자인이 조잡하지 않고, 말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앱을 찾다 보니 ‘닷바이블’이 적격이더라고요. 특히 성서정과 또는 성서일과(聖書日課, lectionarium)라 불리는 교회력에 맞춘 말씀을 매일 띄워주니 좋더라고요.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같은 날 동일한 말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묵상하면서 묘한 공동체 의식도 생겨요. 10년 전 부모님의 첫 해외(베트남) 여행 때, 아내가 성서일과 본문으로 한 설교를 듣고 매우 보수적인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한국 군인들이 한 행위를 참회했던 기억이 있어요. 하나님 말씀에는 분명 골수를 쪼개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출석 교회에서 5주에 한 번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있는데요. 〈매일성경 순〉과 〈하나님 나라 QT〉의 본문을 읽고, 성서일과 본문 중 하나를 더 읽어요. 때마다 웹에서 성서일과를 검색하는 것도 일이었는데, ‘닷바이블’을 깔고 나서는 그런 수고가 덜어져서 좋네요. 매일 아침, 말씀을 읽지 않으면 휴대폰 잠금 해제가 안 되는 기능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율법적이고, 규범적이고, 형식적인 말씀 읽기가 얼마나 신앙에 도움이 되겠느냐, 역효과가 있는 거 아니냐. 근데 딱히 찾지 못했어요. 매일 말씀을 읽는 더 좋은 방법을요.
강동석: 저는 ‘큐티 회의론자’에 가깝습니다. 성경 읽기의 습관을 들이는 차원에서 하는 ‘차선’이라고 봐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청소년 큐티 매거진 〈sena〉(새벽나라), 〈생명의삶〉, 〈매일성경〉 등을 거쳐 꽤 오래 큐티를 하면서 한계를 경험했어요. 일부 텍스트만 발췌해서 읽을 때 특정 구절에 꽂혀 내 욕망대로 성경을 해석하기 쉽잖아요. 예전에 권연경 교수가 쓴 “해석학적 우상숭배”라는 표현이 딱 맞아요. 〈매일성경〉에 연재된 정성국 교수의 ‘큐티를 위한 해석학적 변명’을 묶은 《묵상과 해석》을 읽고 비판적 태도가 조금 누그러지기는 했지만요. 올바른 해석 프레임을 통한 읽기로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가꿔나가는 실천이 중요하겠습니다. 물론 정성국 교수의 비판처럼, 기복신앙·우상숭배를 전수하는 공동체의 메시지를 개개인이 체화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맥락을 도려낸 ‘해석학적 무지’보다 위험하겠죠.
성경 각 권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시각, 읽기와 해석의 방향을 잡아주는 지침이 없으면, 아무리 성령의 영감을 받아도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성경 읽기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매일성경 순〉 1월 본문은 여호수아서였는데, 먼저 본문 전체를 ‘새한글성경’으로 다 읽었습니다. 간간이 ‘갓피플성경’ 앱을 통해 다른 번역본도 살폈죠. 지도 이미지도 참고했고요. 생각을 정리한 뒤, 《하나님의 이야기 주석 여호수아》와 《현대성서주석 여호수아》 ‘서론’을 읽었습니다. 이후 전체 흐름을 담아둔 채로, 그날그날 큐티를 진행했습니다.
처음엔 도전을 잘 이어갔는데, 큐티집 성경 본문 밑에 붙어있는 고정 질문이 거슬렸어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두 질문을 통로 삼아 모든 구절을 다 다룰 수 없잖아요. 작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본문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과 나름의 대답, 오늘날 신앙과 사회문제 앞에서 생각할 지점을 간단히 메모하고 기도로 마쳤습니다. 집중이 안 되면 《하나님의 이야기 주석 여호수아》의 해당 부분을 읽었죠. 이 책 참 좋았어요. ‘이야기 경청하기–이야기 설명하기–이야기 살아내기’ 구성인데 다른 성경 텍스트 및 문헌 자료와의 비교, 신구약 전체 관점에서의 리마인드 및 적용까지…. 문제는, 저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 큐티집은 텍스트만 읽게 되더라는 점이죠. 요즘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찰할 거리를 되새기며 깊이 기도하는 일이 더 절실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