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호 월간 에디터의 도전]
연말연시가 되면 기존의 후원처를 정리하거나, 새 후원처를 찾으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복음과상황도 후원구독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새해를 맞아 일시후원이나 정기후원 의사를 밝히는 고마운 분들의 연락을 받고는 하지요. 이분들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물질을 의미 있게 흘려보내고자 복상 에디터들도 2024년 새 후원처를 정하여 후원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다들 이미 몇 개씩 정기후원을 하고 있었는데요. 이번 도전을 계기 삼아, 각자 어떤 마음을 품고 후원을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후원처를 정하게 되었는지, 특별히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후원을 시작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정민호 -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여러 단체 상황을 잘 알고, 후원도 많이 하실 것 같은 분들을 만날 때마다 얘기를 꺼냈죠. 대체로 시원하게 대답해주시지 않더라고요. 직접적으로 ‘어디 후원하면 좋다’는 말은 듣기 어려웠습니다. 조심스러우셨겠지요. “영역별로 후원 단체를 생각해보세요.” “후원하는 보람이 있는 곳을 찾아보세요.” “누구는 이번에 이동환 목사님 쪽에 후원하기로 했던데요?” 직접 찾아보고 결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후원처를 추천해주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노느매기 협동조합 후원해주세요.” 그분이 노느매기 협동조합 실무자는 아니었어요. 조합 상황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었죠.
노느매기 운영 상황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2013년 창립한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는 주거 취약계층의 자립과 자활을 위해 1인 가구 및 노숙인들에게 교육, 일자리를 제공하고, 마을 관리와 주거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입니다. 10주년을 맞은 2023년, 마을의 지원과 일자리가 줄면서 사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고 해요. 영등포에 사무, 비누 작업, 재활용 매장 용도의 공간도 있는데 말이죠.
무엇보다 제가 2년 전에 노느매기 박상호 이사장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후원할지 말지 고민되지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바로 정기후원을 시작했죠. (앞으로도 계속 후원할 수 있었으면….)
제가 후원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실무자분들과 단체를 운영하는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많은 후원자 중 한 명일 뿐이고 후원금은 크지 않지만, 노느매기라는 단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감당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사회적 협동조합 파이팅!) 후원처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 후원처는 소개하지 않고 이런 원론적인 얘기를 해주신 분이 있었어요. “후원하면 좋아요.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처럼 그쪽으로 마음이 생기기도 해요.” 후원을 시작했더니 갑자기 노느매기가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강동석 - 청어람ARMC
마음 쓰이는 단체가 적지 않았어요. 다들 어렵다고 하니까요. 이번 정부 들어서 지원이 끊긴 곳들도 있고, 상황이 여의찮아 구구절절 사연을 담아 공지를 띄운 곳들도 있더라고요. 눈에 밟힌 곳은 청어람ARMC였습니다. 운동 방향에 동의하지만, 그동안 후원은 안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청어람 로고는 하루에 최소 두세 번은 봤던 것 같아요. “청어람ARMC는 다양한 담론, 폭넓은 상상력, 새로운 신앙을 공유하는 기독 시민 플랫폼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아내에게 선물받은 청어람 굿즈 ‘세속성자 기도문 책갈피’ 세트 때문인데요. 책갈피 뒷면에 로고와 소개 글이 적혀있지요. 2023년, 제게는 가장 유용했던 상품이었어요. 색깔이 아주 다양해서, 깔맞춤을 좋아하고 여러 책을 함께 읽는 저로서는 책들의 표지와 어울리는 색상의 책갈피를 고르는 재미가 있었죠. 왠지 책도 더 잘 읽히는 느낌? 색깔에 맞춰서 그때그때 책갈피를 고르면 또 다른 이점도 있는데, ‘부활’ ‘향유’ ‘노동’ ‘평화’ 등 책갈피 앞면에 적힌 다양한 주제의 기도문을 읽을 수 있어요. 책을 읽다가 집중이 잘 안될 때, 기도문 한번 읽으면 마음도 다잡고 뜻깊은 기도도 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쓰면 ‘책갈피 때문에 청어람을 후원하게 되었다’고 읽힐지 모르겠네요. 언제고 후원을 늘린다면, 후원하고 싶었던 단체였습니다.
복음과상황 382호(2022년 9월) 사람과 상황에 실린 김주련 대표님 인터뷰 내용 중 계속 마음에 담아둔 말이 있어요. ‘복음과상황’이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잇는 매체라고 했을 때 ‘복음’ ‘상황’ 사이의 ‘과’에 관심을 갖고 ‘과’를 충일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요. ‘복음을 상황 속으로 잘 가져오고, 상황을 복음 속으로 잘 연결하려면’ 복음과 상황 사이의 경계인 ‘과’를 넓히고 꽃피워야 한다는 얘기였죠.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의 지향점을 잘 짚어낸 말이라고 생각하고, 콘텐츠를 만들 때 이 부분에 신경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와 사회의 경계에서 신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질문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주목하여 “경계에 서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2024 청어람 후원 캠페인’의 선언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질문하며 서로 배우는 학습공동체’ ‘환대와 공존을 향하여 열린 신앙 운동’ ‘동시대적 신앙 실천을 위한 담론 제안’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연결하는 열린 공간’, 이 네 가지를 2024년에 얼마나 의미 있게 펼쳐나갈지 지켜봐야겠지만요. 단체 존재 이유에 스스로 ‘힘찬 YES’를 보내며 재정의 어려움을 넘어서도록 함께해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보게 되자, 작게나마 응할 수밖에 없었어요.
주변을 돌아보면, 필요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이들의 존재와 헌신은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나마 냉소하지 않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아요.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아서, 충분한 돈으로 많은 단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죠. 여러 후보 단체 중 한 곳을 골라 적은 돈으로 정기후원을 시작해놓고서 너무 주저리주저리하는 듯하여 민망하기도 해요. 그래도 십시일반의 손길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기도하는 마음을 함께 보내며, 복상을 후원하는 분들에게도 감사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이범진 - 기후위기기독인연대
이번에는 좀 충동적으로 정한 것 같아요. 대표님의 열정에 설득되었다고 할까요? 제가 가는 곳마다 기후위기기독인연대 김영준 대표님이 계시더라고요. 때마다 단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대여섯 번 만났을 때, 제가 대표님 앞에서 일회용 컵을 쓰고 있었거든요. 그때 후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물론 ‘월간 에디터의 도전’이 아니었다면 더 망설였겠죠.)
사실 이번 ‘도전’을 기회 삼아 새롭게 후원할 기독교 시민단체를 찾고 있었어요. 기독교로 제한한 이유는 뭔가 동병상련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좁은 판에서 공존하려면, 물질이든 마음이든 품앗이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김영준 대표님이 일반 시민단체에 있다가 기후위기기독인연대를 꾸린 것으로 아는데요. 소개하시면서 “그래도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이 있지 않을까?” 말씀하셨어요. 저 ‘그래도’ 안에 굉장히 많은 함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라는 접속사에 호응하고 싶었어요.
아직 후원하기 전이고, 일단은 1월부터 1년 동안 후원할 예정인데요. 여지없이, 존재만으로 기후에 악영향을 끼치는 저 자신을 면죄하는 마음도 들더라고요. 소액 후원이라서 사실 평생을 후원해도 온전한 면죄에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요. 일종의 ‘기후 수수료’를 내듯이 많은 분이 후원에 동참하셨으면 좋겠어요.
김다혜 – 김민희의 미니레터
지난해 한 친구가 메일링 서비스를 해서 ‘월 1만 원 구독’으로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단체가 아니라 개인을 후원한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적은 금액이지만, 단체를 후원할 때와 또 다른 마음이 들더라고요. 저는 특정 정당을 후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 시민이 정당이나 시민단체를 후원하면 자기 의사를 대변하거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운동에 동참한다는 자기 효능감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반면, 개인을 후원할 때는 상대방 의사를 더 존중하게 되고, 의제가 아닌 사람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사실 저와 대학 시절 같이 신앙생활한 친구인데요. 이 친구가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직장 선배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어요. 현행법상 강간 피해가 인정되려면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입증하지 못했어요. (2019년 1-3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를 통해 접수된 강간(유사 강간 포함) 상담 사례를 보면 ‘직접적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가 성폭력 피해 사례 총 1,030명 중 735명, 71.4%) 가해자의 진정 어린 사과나 반성도 없었고, 도움이나 수사를 받으며 2차 가해 발언들도 접했습니다. 3년간 힘들어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는데요. 피해 및 수사 과정을 글로 쓰고 싶어 했죠. 그게 메일링 구독 서비스가 되었고요.
글을 쓸 때는 과거를 자꾸 상기해야 하니까 오히려 그 친구에게 해가 될까 봐 많이 걱정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연재하면서 매일 괴로웠다고 하더라고요. 위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또 다른 측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다른 지인들도 그렇고 그 친구 글을 매일 받아보면서, 자꾸 답장을 쓰게 되더라고요. 고작 한 줄이라고 하더라도. 그럼 친구가 또 답장처럼 인스타그램에 매번 공유했는데, 그 과정이 이 친구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싶더라고요.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즌 1, 2가 끝나서 친구는 연재를 쉬고 있고, 내년 연재는 아직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재개되면 후원/구독을 이어가려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