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호 특집]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선교는 사람들과 함께(With) 대화하는 것이며, 선교는 사람들 간에(Between) 만나는 것이며, 선교는 사람들 속에서(Among) 집(a Home)을 찾는 것이다.”1)

연이은 비가 그치고 바깥 공기가 다소 쌀쌀해진 날이었다. 10월 30일 아침, 우정과 동행의 선교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아둘람의 집’(House of Adullam)을 운영하는 박보경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학)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다. 차가 양평 군내에 들어섰을 때, 내비게이션은 10킬로미터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안내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지나자, 건물이 뜨문뜨문해졌고, 풀과 나무가 곳곳에 초록의 기운을 뻗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높아진 길을 따라가니, 넓적한 삼각 지붕이 크게 솟은 목조 주택 앞에 다다랐다.

이곳 아둘람의 집은 ‘은신처’ ‘피난처’를 뜻하는 이름(아둘람)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다윗이 사울 왕과 블레셋 왕을 피해 숨었던 회복의 장소인 ‘아둘람 굴’에서 따왔다. 성경을 보면, 이때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 400여 명이 다윗 주변에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전하고 있다(삼상 22:1-2). 2024년 7월에 오픈 1주년을 맞은 아둘람의 집은 “영적 구도자들을 위한 재충전의 공간”을 표방하며, 신학생·목회자 등 ‘하나님의 일꾼’ 정체성을 가진 사역자 중에 지쳤거나 격려가 필요한 사람을 위로하는 곳이다. 박보경 교수는 그중에서도 주변인의 정체성을 지닌 일꾼들을 우선해서 받아왔다. 미국에서 트럭 운전을 하며 이민 사회에서 소외된 주변인을 위한 목회를 하다가 과로사한 남편의 유산을 정리하면서 마련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2023년 안식년을 맞아 아둘람의 집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아둘람의 집 ‘주모’(周母)를 자처하는데, ‘주모’라는 명칭에는 ‘두루[周] 여러 사람의 어미’로서 이곳에서 환대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 담겨있다. 차 소리를 듣고 마중을 나온 그는, 목조 주택 앞마당 아래쪽과 연결된 ‘환대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나오는 넓은 공간으로 본지 기자들을 인도했다. 한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채플실 ‘독대의 공간’이 나왔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예배가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는 익숙한 손짓과 말투로 공간과 조형의 의미를 설명해나갔다. ‘위로의 벽’ ‘통찰의 벽’ ‘하나님의 피난처’ 바위, ‘경청의 창’ ‘임재의 테이블’ ‘환대의 창’은, 방문자가 그 의미를 되새기며 하나님과의 ‘독대’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독대의 공간’에서 나와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보이는 목조 주택은 ‘환대의 공간’으로, 이곳에서는 환대의 식탁을 통한 공동 식사 등이 이루어진다. 통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방에서 기도할 수도 있고, 주변 산책로를 이용해서 자연을 묵상할 수도 있다. 박 교수는 이 과정 가운데 동행자로서 영성 지도를 통해 곁에서 도움을 준다.

인터뷰는 2시간여 진행되었는데, 박 교수는 이날 방문한 본지 기자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공간을 내어주었다. 복음과상황 기자들도 ‘주변인’ 정체성을 가진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냐고 하면서. 그의 배려 덕분에,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자연과 공간을 살피며 기도하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실 박보경 교수는 본지가 2024년 제4차 로잔대회 한국 개최를 맞아 기획한 연재 ‘로잔 1974-2024’를 준비하면서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필자/인터뷰이였다. 그는 로잔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2012년 한국로잔위원회 산하 로잔교수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로잔운동에 나타난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관계〉·〈로잔운동의 관점에서 본 교회 개혁〉·〈르네 파딜라의 총체적 선교 연구〉 등 로잔운동 내 ‘통전적·총체적 선교’를 비중 있게 다루는 논문들을 발표해왔다. 박 교수는 세계선교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Mission Studies, IAMS) 회장이기도 하다. IAMS(얌스)는 전 세계 모든 대륙의 선교학자들이 참여하는 ‘유일한 글로벌 선교학회’로, 2022년 당시 그가 회장으로 선출된 사실 자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얌스펠로쉽 대표로서 신진 학자를 인큐베이팅하고 국내 선교학자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아둘람의 집을 중심으로, 로잔운동, 세계선교학회 등 박보경 교수가 하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래는 일문일답.

▶ 아둘람의 집은 ‘환대의 계단’을 기준으로 두 가지 공간으로 나뉜다. 위쪽에 있는 2층짜리 목조 주택은 ‘환대의 공간’(사 진 위·아래: 외관과 내부 모습)이고, 아래쪽에 있는 채플실은 ‘독대의 공간’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br>
아둘람의 집은 ‘환대의 계단’을 기준으로 두 가지 공간으로 나뉜다. 위쪽에 있는 2층짜리 목조 주택은 ‘환대의 공간’(사진 위·아래: 외관과 내부 모습)이고, 아래쪽에 있는 채플실은 ‘독대의 공간’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아둘람의 집은 ‘환대의 계단’을 기준으로 두 가지 공간으로 나뉜다. 위쪽에 있는 2층짜리 목조 주택은 ‘환대의 공간’(사진 위·아래: 외관과 내부 모습)이고, 아래쪽에 있는 채플실은 ‘독대의 공간’이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아둘람의 집이 지난 7월에 1주년을 맞았잖아요? 이곳은 한마디로 어떤 공간이며, 그 가운데 교수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아둘람의 집은 여럿이 함께 만들어가는 실험적 공간이에요. 처음에는 ‘회복과 치유의 공간’ 아둘람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이곳에 있는 독대의 공간이나 환대의 공간도, 제자와 같이 모새골에서 기도하다가 나온 단어들로 만든 것이죠. ‘잔치’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어떨까, ‘환대’가 더 낫지 않을까 대화하면서요. 저는 아둘람의 집이 하나님의 일꾼들이 길을 잃었을 때 잠시 머물러 재충전하는 주막집 같은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주막집에는 음식도 있고, 주모의 이야기도 있고, 휴식을 위한 숙박 공간도 있잖아요?

미국에서 이중직 이민 목회를 하던 남편은 주말이면 10명 정도 되는 교인을 목양했고, 주중에는 트럭 운전을 했는데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목회를 감당하다가 내적 갈등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실패한 목회자인가?’ 스스로 질문도 많이 하고,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죠. 그때마다 저는 “당신은 실패한 사람이 아니야. 당신은 진짜 목회자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사모이기도 하지만, 신학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남편의 이민 목회가 다른 목회자들 눈에는 ‘실패’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신학적 조명 작업을 해준 셈이죠. 이런 신학적 성찰을 통한 위로와 격려를, 지금은 이곳에 오는 독대자들을 환대하며 해줍니다. 저는 목사였던 남편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걸어갔던 전 과정을 신학 여정이라고 봤어요. 그 여정을 가던 중에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나는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는가’ 질문을 던지게 될 때가 있잖아요? 여정 중에 방황하거나, 상처를 입거나, 길을 잃어버리기도 할 텐데, 그럴 때 자기 질문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계속 가던 길을 가도록 돕는 일이 신학의 역할이에요. 이곳에서 그런 신학적 성찰이 이루어지죠.

아둘람의 집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나니까 공간에 대한 인식 전환이 새롭게 일어났어요. 이곳이 신학 교육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저는 신학교에서 지식 전달 혹은 목회자 양성을 위해 신학 교육을 해온 사람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삶의 자리까지 포함한 신학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신학 교육자는 위에서 아래로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여정을 함께 가는 동행자여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나오잖아요?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며 걸어가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이 팩트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문제였죠. 이때 두 사람이 좌절한 것은 절망적 해석을 했기 때문이에요. 거기서 문득 낯선 자,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정체를 모른 채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면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해석하게 되죠. 은연중 찾아온 예수님을 환영하며 환대의 공동체로서 식탁을 나누는데, 거기서 눈이 열리는 경험을 합니다. 저는 이 전체 여정을 신학 여정으로 본 거죠. 그 사람의 삶의 과정을 듣고 동행하면서 마음의 힘을 회복하는 과정에 함께하는 일이 주모의 역할이 아닐까요? 공적 교육이 아닌, 사적 여정을 함께하는 ‘동행’이죠.

박보경 교수는 경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받았으며, 미국의 와트버그 신학교에서 석사학위(S.T.M.)를, 풀러 신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교회, 여성, 하나님의 선교》 《통전적 복음주의 선교학》 《한국적 복음주의 선교학》 등이 있으며, 여성 선교사나 로잔운동, 현대 선교학 관련 다수 공저와 국내외 학술지에 기고한 수십 편의 논문을 썼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박보경 교수는 경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받았으며, 미국의 와트버그 신학교에서 석사학위(S.T.M.)를, 풀러 신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교회, 여성, 하나님의 선교》 《통전적 복음주의 선교학》 《한국적 복음주의 선교학》 등이 있으며, 여성 선교사나 로잔운동, 현대 선교학 관련 다수 공저와 국내외 학술지에 기고한 수십 편의 논문을 썼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교수님 약력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생물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으셨다는 사실이었어요. 어떻게 목회자와 선교학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아버지는 목회자로 헌신했으나, 너무 가난하게 사셨어요. 신학교 4학년 때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결국 신학의 길을 포기하셨고요. 장로로 사시다가 47세에 돌아가셨죠. 엄마는 42세에 과부가 되셨는데 당시 딸만 일곱 명 쭉 있고, 제가 다섯 살 막내였습니다. 험한 세월 다 보내시고, 막내인 저를 목회자로 키우신 셈인데요.

이 길로 가야겠다고 헌신한 때는 대학교 1학년이었어요. 당시는 학교를 관두고 신학을 바로 공부하는 것을 별로 권장하지 않았어요. 시작한 공부는 마쳐야겠다는 마음으로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죠. 사실 용기가 없어서 신학이 아닌 생물학을 택한 것이죠.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열망은 있었어요. 인생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질문하면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나 자신을 의미 있는 삶에 드리고 싶다는 분명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여성에게 목사 안수가 허락되는 시절이 아니었어요. 두 가지 옵션만 보였죠. 하나는 독신 여자 전도사로서 수녀처럼 살아가는 길, 다른 하나는 결혼한 권사님으로 교회에 헌신하는 모습…. 신학을 주변에서 반대하고 내적 갈등을 겪다가, 생애 처음으로 기도를 받아봐야겠다 싶어서 기도원에 갔어요. “자네는 왜 왔나?” 그러더라고요. “신학교에 가고 싶어서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자네는 사명이 없네” 하더라고요. 슬펐죠. 신학교에 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나는 예정된 사람이 아닌가?’ 싶어 좌절했습니다. 그랬는데, 1학년 1학기 때 기도하던 중 이렇게 고백하게 되더라고요. “주님, 제가 인생을 다 끝마친 다음에, ‘너는 내가 신학의 길로 부르지도 않았는데, 인생을 왜 그렇게 허비했니?’라고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다만, 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싶어요.” 그때가 신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죠. 주님이 부르신다고 하기 전에, 저 자신을 먼저 드렸습니다.

당시 제 멘토였던 분이 나중에 저와 함께 저희 엄마를 찾아갔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친구가 신학을 하면 좋겠습니다. 사명의 씨앗이 심겼는데, 싹이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부터 마음에 흔들림 없이 지금까지 왔습니다. 제 인생을 이렇게 사는 게 좋습니다. 제 나이가 이제 60세인데요. 자녀들이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다 컸고, 오늘에서야 저 자신을 순도 100퍼센트 주님께 드리는 여정에 이르지 않았나 싶어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 근래 발표하신 논문들을 보면, 작은 이야기 공동체로서의 ‘선교적 교회’, 변혁적 제자도를 구현하고 ‘우정과 동행의 선교’를 실천하는 현장에 대한 교수님의 관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둘람의 집도 그런 공동체일 텐데, 선교학 이론과 선교적 실천의 유기적인 연결을 중요시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선교학자로서 연구 활동과 연계된 실천을 통해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제 소망은 어떻게 보면 큽니다. 종교개혁을 우리 시대에 이루는 종교개혁자가 되고 싶어요. 저는 신학이라는 학문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요. 신학은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국교회가 썩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안을 주지는 못하죠. 에클레시아가 탄생하는 좋은 모델, 작은 공동체를 많이 만들어서 벨트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2020년에 한국얌스펠로쉽을 만들 때 2026년이 되면 문을 닫겠다고 선언한 이유입니다. 제도화해서 덩치가 커진 많은 단체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다가 변질하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지요.

아둘람의 집은 처음부터 펀드레이징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둘람의 집 같은 사역이 대안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독대의 공간과 환대의 공간에서 코이노니아를 통한 하나님 나라, 초대교회 공동체를 맛보는 거죠. 음식을 가져다주면 나눠 먹고, 여러 사람이 찬조하는 물건 등을 통해 작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요. 자기 삶에 어려움이 있어 울면서 찾아온 이들은 에클레시아를 경험하죠. 저는, 선교적 존재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곳에서 에클레시아가 탄생한다고 해석해요. 서로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연대해야 합니다. 작은 공동체들이 가끔 같이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감정을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선교적 공동체를 논할 때 ‘우정’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은 감정적 차원을 배제하는 신학을 추구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몸을 강조하고, 연대하고, 교제를 나누고, 흩어지는 경험을 쌓아가야 합니다. 이런 우정이 교회 개혁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교수님께서, 한국교회 개혁은 문제 제기의 방식이나 현실의 제도권 교회를 향한 비판의 방식이 아니라, 작은 에클레시아 공동체가 서로 연대하고 확장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는 취지로 쓰신 글이 생각납니다.

저도 문제 제기를 왜 안 해봤겠어요. 요즘도 절망합니다. 며칠 전에도, 그 절망에 답답한 마음을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었죠. 저는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주변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성을 많이 강조하죠. 누구든 힘을 가지면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스스로 ‘주변인’이 될 것을 권하고, 주변성의 정신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누군가에겐 제가 기득권자처럼 보일 거예요.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주변인이기도 해요. 학교에서 학과 시니어 교수이자 대학원장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계의 유리 천장을 종종 경험하곤 합니다. 눈물도 나지만, 그게 제 주변성을 지켜주기도 해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은 중심이 아닌 주변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아둘람의 집에 가난하고, 상처를 입은 분들이 와요. 그런 분들에게, 스스로 보기에 보잘것없는 모습일지라도 ‘당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라는 위로와 격려를 드리려 합니다. 이게 핵심 사역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곳이 우정과 동행의 선교 공동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비판만 하면 마음이 황폐해지더라고요. 무언가를 묵상해도 균형 있게 긍정성을 갖고서 의미를 부여하자고 마음먹었죠. 부정적 사건이 일어나도, 무엇을 배웠고 어떤 성장을 일궈냈는지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그렇지만 종교개혁이라는 표현도 거침없이 쓰려고 합니다. 제도권에서 이런 주장을 하기는 쉽지 않아요. 제도권에 존재하기 어려운 분들과 함께 연대하고자 합니다.

환대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나오는 공간으로, ‘환대의 창’이 보인다.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독대의 공간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돌아 아래로 나가면 자연 산책로로 이어진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환대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나오는 공간으로, ‘환대의 창’이 보인다. 왼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독대의 공간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돌아 아래로 나가면 자연 산책로로 이어진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교수님께서 쓰신 ‘로잔운동의 “교회 개혁”의 목소리를 찾아서’라는 글을 보면요. 3차 로잔대회에 참석해 “로잔운동 안에서 총체적 선교를 옹호하는 신학적 입장을 나의 신학으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면서, ‘신학적 회심’이었다고 회고하시는데요. 교수님께서 오랫동안 참여하신 로잔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에 장신대 교수가 됐습니다. 젊은 나이였죠. 저는 장신대의 에큐메니컬 선교보다 보수적이고 온건한 신학을 가르치는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더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한 번도 듣지 못한 학자 이야기가 동료 교수들 입에서 나오더라고요.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 현주소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저 자신의 신학을 확장하기 위해 10년 가까이 에큐메니컬 선교 영역을 공부했죠. 당시 ‘로잔’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꼴통 보수’라 생각했죠. 제자리를 못 찾고 있던 시기였어요. ‘사울 갑옷을 입은 다윗’처럼, 안 맞는 옷을 입고 제가 남자 교수들 흉내를 내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나다운 신학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했죠.

‘나는 여성이고, 아줌마이고, 교회 중심 신앙을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꼴통 보수도 아니다.’ 고민의 여정 중 2010년 3차 로잔대회에 우연히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총체적 선교 관점에서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강연했는데요. 정중하면서도 예언자적이고, 황폐하지 않으면서도 지혜롭게 문제 제기를 하더라고요. 한여름에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느낌을 주는 저 사람이 누구일까, 주목하게 됐죠. 제가 예상치 못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복음주의 진영에서 들었던 셈이죠. 복음주의가 감상적 태도로 교회를 강조하게 되면 교회지상주의로 가는 경우도 있고, 에큐메니컬은 세상을 강조하다가 교회론이 좀 약화되는 것 같아요. 이 둘을 아우를 방법이 뭘까. 교회가 약화되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어도 세상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교회가 강조되면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처럼 인식되니까, 두 가지를 아우를 만한 자리를 찾았어요. 그게 로잔운동 내 총체적 선교의 자리였어요.

- 인천 송도에서 열린 4차 로잔대회에도 참석하셨는데, 소회가 어떠셨는지요?

저도 대회를 준비하고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런 대회 개최가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무작정 비판하기만 할 수는 없죠. 그렇더라도 낭만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로잔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고, 긴 과정을 거쳐 개최하고 무사히 끝마치기까지 한국로잔위원회의 수고와 헌신이 컸어요. 제가 동료 교수들과 함께 10년 전부터 한국로잔교수회에서 노력해온 것들도 분명 대회 개최에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봅니다. 굳이 문제를 제기하자면, 지나치게 대형교회 위주이었다는 점이겠죠. 대회 기간 중 한국교회 역사를 설명하는 순서가 있었는데요. 그것을 설명한 사람들이 나이가 많은 남성 대형교회 목사들이었어요. 여성은 한 분뿐이셨죠. 한국의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교회를 잘 반영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고요. 국제 로잔을 향해서는 조금 더 비판적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총체적 선교를 발전시키지 못했어요. 전도 우선성을 많이 강조했어요. 일방적인 선교 이해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다중심적 선교’(polycentric mission) 담론을 해당 갭(Gap)에서 다루었지만, 4차 대회의 실제 신학 흐름 안에서는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어요.

- 4차 대회 때 나온 서울선언문은 어떻게 보셨나요?

로잔운동은 신학적 정교성을 발전시키는 그룹이 아니에요. 문서를 살필 때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죠. 현시점에서 확신 있게 단정 짓기에는 빠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말씀드릴게요. 미래 지향적으로 디지털 미래 세대를 위한 세계 복음화 전략을 제시한 것은 긍정 평가를 할 수 있어요. 교회론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세상 이해를 약화한 부분, 지역교회에 충성해야 한다는 표현이 들어간 대목은 불편하죠. 완성도 높은 문건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젠더나 LGBTQ 이슈에 관한 한국교회 정서가 많이 반영되어 군더더기가 많은 문건이 만들어졌다고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동의가 됩니다. 다만, 서울선언문뿐 아니라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 등 다른 문건들도 함께 보고 4차 대회를 판단해달라는 요청도 있더라고요. 이제 제게 남은 과제는 이 모든 문건에 대해 정돈된 관점으로 아주 정확한 학문적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독대의 공간’ 내부 모습(위·아래). ⓒ복음과상황 정민호
‘독대의 공간’ 내부 모습(위·아래). ⓒ복음과상황 정민호

- 4차 대회가 끝나고, ‘포스트-로잔 창조세계돌봄 국제포럼’에도 참석하셨잖아요? 이 대회에서 다룬 창조세계돌봄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지구적 문제에 대응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이 주제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보고요. 저도 그렇게 하려 합니다. 앞으로의 선교 방향은 생태 문제여야 합니다. 아둘람의 집에서의 생활도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일과 관련이 있어요.

저는 이 산속에 들어오면서 두 가지 변화를 겪었어요. 하나는 독대의 공간이라는 채플실이 생겨 항상 기도의 삶을 실천하게 됐죠. 들뜨고 복잡한 마음,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삶이 고요해졌어요. 다른 하나는,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달았다는 거예요. 저는 생태적 삶, 생태 교육, 지구온난화가 다 선교적 과제라고 해석합니다. 이제는 이것을 교실에서만 가르치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 보게 됐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다 퇴비로 만들고 있고요. 텃밭을 가꾸어 반찬을 해 먹고, 고기 소비를 줄이고 플라스틱도 덜 쓰면서, 단순하게 생활하려 합니다.

- 앞으로 중점적으로 해나가려고 계획한 바를 나눠 주신다면요.

학교에서 은퇴할 때까지 남은 5년여 동안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치려 해요. 이때 신학 교육은 지식 전달의 차원이 아니라 대안적 새로운 신학 교육, 그러니까 몸으로 삶의 여정에 동행하는 가르침이어야 하죠.

세계선교학회가 2026년 남아공에서 개최하는 대회의 주제는 ‘Walking Together in Mission’입니다. 앞으로 선교의 세계적 방향은 ‘함께 걸어가는 동행의 선교’라고 봐요. 로잔에서 강조한 ‘다중심적 선교’도 이와 연결됩니다. 이제는 선교 영역에서 가는 곳, 보내는 곳, 받는 곳의 구분이 없어졌어요. 가장 선교를 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그 선교지가 선교 파송국이 돼요. 이때 중요한 선교 태도가 바로 ‘함께’입니다. 특정 누군가만이 주도권을 쥐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을 담고 있죠.

저는 세계선교학회 회장직을 맡을 때 세 가지를 제안했어요. 첫째, 비서구 신진학자를 육성하겠다. 세계선교학회에서는 여전히 서구가 선생이고, 비서구 다수 세계가 학생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 신학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다수 세계 목소리를 드러낼 학자가 필요합니다. 이를 잘하기 위해 제가 만든 한국얌스펠로쉽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 아카데믹 인큐베이션이죠. 둘째,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도 소중히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만들겠다. 학회가 최근 경향을 따라 언어적 장벽을 넘어가야 한다는 거죠. 동시통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비전을 던졌더니 마침 AI가 발전하면서 이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어요. 셋째, 젊은 세대 사역을 위한 새로운 학문적 연구방법론을 준비하자. 시각화(Visualize)의 중요성을 강조했고요. 유튜브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신학적 성찰을 나눌 수 있도록 소통 플랫폼에 신경 써야 한다고 했어요. 이 비전들을 구현해내는 일을 하고 싶어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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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1) 박보경, 〈우정과 동행의 선교: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함께 걸어가기”〉, 《선교신학 No. 72》(2023), 151쪽에 인용된 필리핀 선교학자 안토니오 페르니아(Antonio Pernia)의 말 재인용.


진행 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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