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호 무브먼트 투게더] 2014년의 반핵운동을 돌아보며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한국의 반핵운동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처해 있다. 핵산업계와 시민사회 간의 갈등을 약간 과도하게 단순화하자면 원전 개수를 둘러싼 갈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한데, 그 갈등이 첨예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둘러싼 갈등이고, 다른 한쪽은 신규 원전을 둘러싼 갈등이다. 핵산업계는 수명 연장 및 신규 원전 건설을 통하여 원전 개수를 증가시키려 하고, 시민사회 측은 이를 저지하고자 한다. 현재 월성1호기의 수명 연장과 삼척, 영덕 신규 원전 부지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다.

원자력 대국, 기로에 서다
월성1호기는 지은 지 32년이 된 노후 원전으로 2년 전에 이미 수명을 다하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해 돈을 더 벌고자 시도하고 있고, 시민사회는 노후 원전은 위험하니 폐쇄하자는 주장이다. 여론은 시민사회의 편이지만 결정권은 한수원의 입김이 더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정부에 있으니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 알기 어렵다.

신규 원전을 둘러싼 갈등은 이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정부는 이미 삼척과 영덕을 신규 부지로 결정하여 각각 4기의 원전을 지어서 우리나라 원전 개수를 40개 이상으로 늘리려 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몇 년 전 정부가 광고한 대로 ‘세계 3위의 원자력 대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프랑스를 이은 세계 3위가 되는 것이다. 아마 한국 다음으로 32개의 원전을 가진 러시아가 4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서 반드시 신규 원전 부지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 확보된 울산의 신고리와 울진의 신울진 부지로는 40개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자체의 신청을 받아 삼척과 영덕에 원전 부지를 선정한 것이다. 그런데 2014년, 대단한 사건이 일어났다. ‘삼척의 반란’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었다.

삼척의 반란
인구가 7만 명밖에 되지 않는 강원도의 작은 도시 삼척은 이전에도 이미 원전을 막아낸 경험이 있다. 이곳에 전임 시장이 재임 당시 원전 유치를 신청하였으나 시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시민들은 반핵 여론을 주도하면서 지방선거에서 핵발전소 유치신청을 백지화하겠다는 후보를 시장으로 당선시켰다. 또한 당선된 신임 시장은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70%가량의 투표율에 약 80%의 반대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면서 선거관리도 해주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스스로 투표를 관리해가면서 자율적으로 주민투표를 해냈다. 정말 대단한 성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민주적인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관계 공무원은 ‘설문조사’ 정도로 이 사건을 폄하하고 있고, 검찰은 주민투표 이후 신임 시장을 선거사범으로 기소하였다. 신임 시장은 선거에서 단 한 가지 공약만을 내세웠던 인물이고, 삼척 경찰도 이미 이 사건에 대해서 ‘혐의 없음’을 인정하였는데, 주민투표 이후 검찰이 나서서 기소를 한 것이다. 공권력의탄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척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 원전 부지 신청의 철회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바람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렇게 민심이 확인된 이상 정부로서도 강제로 핵발전소를 짓는 일을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짐작된다.

삼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곳은 삼척과 함께 원전 부지 신청을 했던 영덕이다. 삼척의 소식을 들은 영덕 군민들 역시 주민투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영덕에서도 주민투표가 진행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민심이 움직이고 있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원전 주변 주민들 ‘반핵운동’에 나서
또 하나의 큰 사건으로는 부산에 있는 고리원전 주변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 원인에 한수원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장애를 가진 균도라는 소년의 어머니가 갑상선 암에 걸렸고, 아버지는 직장암, 같은 동네에 사시는 외할머니 역시 갑상선암에 걸렸는데, 균도의 어머니가 한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고, 해당 재판부(부산지법 동부지원)가 한수원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국책사업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한 사건이라서 의미가 크다. 이 판결에서 인용한 근거자료는 정부가 지난 20년 동안 실시했던 원전 주변지역 암 발생에 관한 역학조사 결과였다.

 

   
▲ <그림1> 세계 핵발전소 개수. (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 2013, Mycle Schneider Consulting)



20여 년 전, 영광, 경주 등의 원전 주변 지역에서 기형 송아지가 많이 태어났고, 영광원전 근무자의 아내가 무뇌아를 두 번이나 출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방사선 피폭의 영향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정부는 여론에 밀려서 원전 주변 암 발생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였다.

약 1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과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사한 결과 원전 주변에서는 여성갑상선암 발병률이 비교 대상 지역보다 2.5배 더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유방암도 50% 정도 증가하고, 남성의 간암과 위암도 증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의학적으로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원전 주변 방사능 오염실태 보고서>를 살펴보면 원전 주변의 농산물, 수산물 등에서 방사능 물질이 꾸준히 검출되고 있고, 공기로 배출되는 방사능 물질 역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 주변 주민들은 기준치 이하의 소량 방사능 물질에 계속 피폭되고 있는데, 소위 방사능 기준치라는 것은 안전기준치가 아니다. 의학적으로 피폭량과 암 발생(혹은 유전병)은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역치 없이 피폭량에 비례해서 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것이 세계 의학계의 결론이다.

 

   
▲ <그림2> 전세계 연도별 신규 발전시설 현황. 풍력 발전(두 번째 막대)은 매년 20% 이상, 세 번째 막대인 태양광은 50% 이상 성장하고 있다. 반면에 첫 번째 막대의 핵발전은 전혀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12, Green Peace 자료 인용)

 


원전 주변은 방사능 물질로 오염되어 있고, 주변 주민은 피폭되고 있으며, 이 피폭으로 인하여 암이 발생했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국책사업의 책임을 묻는 판결은 없었기에, 이 판결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한수원은 즉각적으로 항소하였지만, 이 판결 이후 수백 명의 갑상선암 환자들이 집단 소송에 나섰다. 향후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핵 발전소)는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림 1>에서 보다시피 1954년 시작된 세계 핵발전소 건설은 1990년에 정점에 달한 후 25년간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이 기간에 선진국은 원전을 지속적으로 줄여왔고 아시아의 개도국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왔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세계 원전 개수는 줄어들고 있다. 사실상 원자력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성장이 없었던 소위 ‘사양 산업’이다. 선진국들은 원전 대신에 재생가능에너지인 태양광, 풍력, 지열, 수력 등을 선택하였고, 이러한 재생가능에너지는 이미 원자력이 생산하는 전기의 2배를 넘어섰다. <그림 2>에서 보다시피 세계적 추세가 이미 탈원전과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되었음에도 유독 아시아의 4국(한국, 인도, 중국, 러시아)이 원전 건설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핵운동에서 2015년은 특히나 중요한 시기이다. 기독인으로서 우리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된 에너지 문제를 깊이 성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 매우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이다. 


김익중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다. 경주핵안전연대 운영위원장이며, 후쿠시마 재앙 이후 지금까지 600회 넘는 대중강연을 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탈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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