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호 커버스토리] 영화로 만나는 ‘순교자’ 로메로

▲ 존 듀이건 감독의 <로메로>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지 말라?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작년 8월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 방문 과정에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교종이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가진 기자회견 때였다. 방한 기간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을 여러 차례 만났는데 이로 인해 정치적 논란이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리본을 떼고)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있었지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실제로 교종은 방한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노란 추모리본을 건네받은 뒤 이를 왼쪽 가슴에 계속 단 채로 연이은 미사에 참여했다. 그런데 추모리본을 달고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교종에게 다가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리본을 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4박5일의 방한 기간뿐 아니라 귀국행 기내에서도 왼쪽 가슴에 추모리본을 계속 달고 있었다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남긴 말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 연민과 긍휼과 연대감을 품기보다는 ‘정치적 포지션’을 먼저 따지는 냉담함과 무감정에 대한 질타로 다가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을 두고 ‘정치적 중립’을 부르대는 언사야말로 실로 정치적이지 않은가.

오래전 꽤 인기를 끈 사극의 주인공이 던진 대사 한마디가 오랫동안 회자된 적이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상대방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는 이 말이 굳이 연모의 대상에게만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도 결국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롬 12:15)

예수께서는 이 말을 몸소 보여주시지 않았던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장례가 다 끝난 3일 후에야 찾아간 예수를 만나자,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도 울고 그녀를 따라간 사람들까지 모두 비통한 눈물을 쏟았다. 그들을 바라보시며 예수께서도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셨고 기어이 눈물을 쏟으셨다.(요 11:33, 35)

홀로코스트 문학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나이트》(예담)의 작가 엘리 위젤이 쓴 희곡 《샴고로드의 재판》(포이에마)은 ‘신에 대한 모의재판’을 극중극 형식으로 다룬 작품이다. 집단학살과 성폭력이 휩쓸고 간 샴고로드라는 마을의 어느 여관을 배경으로, 마을에서 일어난 집단학살과 폭력을 하나님은 왜 방관하셨는지, 이 비극에 대해 하나님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모의재판에서 다툰다. 이 희곡에 인상적인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모의법정에서 하나님의 변호인을 자청하고 나선 나그네 샘이다. 그의 변호는 상당히 차분한 데다 꽤 논리적으로 들려서 반박하기가 쉽지 않게 느껴진다.

“신은 의로우시며, 그분의 길은 공정”하다고 말하는 샘은, 정작 마을 주민들이 당한 처참한 고통에 대해서는 지극히 무심하게 무감각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 그를 향해 여관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는 마리아는 단호하게 외친다.

“그는 심장도, 영혼도, 감정도 없어요! 그는 사탄이에요, 정말이라고요!”

신의 변호인인 나그네 샘은 시종일관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신을 옹호하는 논지를 펴면서 마치 ‘합리주의 신학자’다운 면모마저 내보인다. 그러나 마리아가 말한 바에 따르면, “비애감이 없는 것, 감정과 열정과 공감과 연민이 없는 것”이야말로 ‘악’이다.(《샴고로드의 재판》, 202쪽)

극의 마지막에 가서 샘의 숨겨진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에서 그의 “합리적인 신학”에 속아넘어간 등장인물들(그리고 무대 밖 독자들)은 모두 경악한다. 인간의 고통에 대한 비애감, 공감, 연민이 없는 것이야말로 다름 아닌 사탄의 실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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