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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국가우상주의는 ‘정권우상주의’ 입니다”
[316호 커버스토리] 개신교 해방신학자 홍인식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 인터뷰
[316호] 2017년 02월 22일 (수) 11:29:21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 순천중앙교회 홍인식 목사 ⓒ복음과상황 이범진

국정농단 사태로 국회에서 탄핵당해 헌법재판소 심리를 받고 있는 ‘피소추인’ 박근혜 대통령을 수호하려는 목사와 교인들이 있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서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와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장을 만났고, 이후 구국기도회를 준비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탄핵 무효 태극기 애국집회’에 참석한 교인들은 ‘주여 삼창’을 외치며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집회 단상에서 목사들은 ‘애국 시민’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한다. 교회 이름으로 목사 가운을 입은 이들이 대형 십자가를 매고 집회 행진을 했다(이중엔 정식 목사가 아닌 이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대통령쪽 법률 대리인인 서석구 변호사는 대통령을 ‘십자가 지는 예수’에, 이승현 평강제일교회 목사는 대통령을 다윗에 비유하기도 했다. 

촛불을 든 기독교인들이 시민들과 함께 ‘정의’와 ‘공의’를 외칠 때, 태극기 집회 참여 교인들이  (불법적 국정농단의 책임도) 덮어놓고 수호하여 지키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권력)과 국가다.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권력’을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애국’을 말한다. 이쯤 되면, 국가가 거의 신앙이 된 지경이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보수 개신교가 국가조찬기도회로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한 전력이 있는 만큼, ‘기독교와 국가’라는 지독한 주제가 상기된다.

이 주제를 두고, 개신교 지도자로는 국내 유일하게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배우고 가르쳐온 홍인식(60)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불의한 상황에서 태동하고 불의한 권력에 순교하며 자라온 ‘리베라시옹’(해방)의 신학은 과연 국가와 그 권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홍 목사는 개신교 해방신학의 아버지인 호세 미게스 모니노 박사의 제자로,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그에게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기독교인은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부터, 해방신학이 말하는 해방의 참 의미까지 물어보았다.

― 최근 저서 《홍인식 목사가 쉽게 쓴 해방신학 이야기》(신앙과지성사)에서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이 중요시 하는 것은 “우상 숭배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서구신학과 비교하여 말하자면 서구신학은 주로 신의 존재 양식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철저히 철학으로 신학을 해석해왔습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되기도 했지요. 자연히 신의 부재라는 주제가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됐는데, “홀로코스트로 수백만 유대인이 죽어가는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신학에서는 그런 철학적 주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철학적 주제보다는 사회와 만나는 것이 중요했지요.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억압적인 정권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군사독재 정권에서 자행된 수많은 박해, 납치 불법감금, 인권유린, 고문과 살해 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곤 했어요. 억압 정권의 최고 권력자들이 매주 미사에 참석하고 지역 추기경, 주교들과 사귐을 가졌습니다. 그들로부터 훌륭하고 고귀한 가톨릭 신자임을 인정받기도 했지요. 라틴아메리카 신학은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 가난한 삶의 현장 가운데서 하나님 존재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을 보여줍니다.

― 좀 더 풀어주신다면요?
라틴아메리카 신학은 “어떤 신을 믿고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넘어 하나님의 내용에 대해 묻는 것이지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존재 양식, 혹은 부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 현존과 그 현존의 내용을 묻는 겁니다.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매우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가난한 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바로 그것이에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어떤 신을 믿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신앙 문제 역시 어떤 신을 믿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생명의 하나님을 믿느냐, 혹은 맘몬이라는 거짓 신을 믿느냐가 우리 관심사지요.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신을 믿고 살아가고 있나요? 이 시대 신앙의 문제는 곧 우상 숭배의 문제입니다.

― 요즘 태극기 집회 참석 교인들은 스스로 기독교 정체성으로 나온 애국자를 자처합니다.
그들은 국가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어요. 국기우상주의, 국가우상주의입니다. 국가란 사실 인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지요. 그러니 성경 기자들도 국가 권력과 기독교인의 관계를 정립하게 되었고요. 국가는 우리 현실에서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의 최고 가치가 국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꽤 오래된 책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 국가권력에 매인 기독교의 문제를 다루는 책인데,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한국신학연구소·절판)입니다. 부제가 이데올로기의 승리죠. 콘스탄틴이 핍박받던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 기독교가 어떻게 국가 권력에 예속되어 가는가를 드러내는 고전적인 책입니다. 왜 교회가 그렇게 국가권력에 매였는가, 교회의 신앙이 어떻게 변천되어 갔는가를 알 수 있어요. 청년들과 함께 읽은 마커스 보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비아)도 권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의 거의 모든 주제들을 다루면서 오늘날 믿음의 내용을 교정해줄 수 있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요. 사실 지금 한국교회의 국가우상주의는 ‘정권우상주의’ 같아 보입니다.

― 특검 수사로 정권의 잘못이 계속해서 드러나는 상황인데, 현 정부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나는 목사 입장에서는 신학적 입장을 갖고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노선을 넘어서서 무엇이 성경의 사상에 가까운지 꾸준히 이야기해야지요. 기독교인이라면 대통령을 볼 때 기독교적인 가치를 구현해내고 있느냐를 봐야 합니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 나라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등과 공의의 시각에서 볼 때,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문제나, 특정 세력과 기업의 이익에 가담한 문제 모두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정직하지 않아요. 세상을 더욱 불평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전의 강정 해군기지 문제도, 사드배치 문제도, 기독교인이라면 다 반대해야 합니다. 국가가 밀어붙이는 것, 그 정책들이 실제로 진행되더라도 끝까지 반대해야죠.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반대해야 합니다.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던지라고 하지 않았나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천군천마를 동원할 수 있는 분이지만 십자가에 달리셨어요. 북한을 그렇게 품는 것이 기독교의 방향이자 행동입니다.

   
▲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 나라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국가 권력을 옹호할 때 ‘로마서 13장’이 여전히 단골 성구로 인용되는데요.
모든 권력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 권력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올바른 권력일 것이고, 거기 순종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권력이라면, 그것은 하늘로부터 온 권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낼 뿐입니다. 불의한 권력엔 순종할 수 없습니다. 저항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바울도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권력에 반항하는 경우가 있었지요. 국가우상주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했던 물음에 예수가 한 대답도 살펴볼까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에 예수는 그들을 꾸짖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답했습니다. 이 답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요. 당시 유대인들 사고에서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가이사에게 가는 세금 역시 하나님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말씀은 가이사에게 바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쓰여야 합니다. 권력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반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저는 로마서 말씀의 의미도 이와 같이 여깁니다.

― 한국 사회에서 주류 기독교는 그와 반대로 목소리를 내온 건 왜일까요?
한국교회는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고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명박 땐 잘 살게 해준다고 하니 뽑아줬습니다. 거기에 기독교인이라니까 더 뽑았지요. 트럼프는 단적으로는 낙태와 동성애를 강하게 금지하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성서의 가르침인 인류애, 생명과 평화, 공존과 조화 같은 중대한 가치는 무시하고 지엽적인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성경의 핵심을 무시하는 거예요. 신학 없이 신앙만 하는 것이지요. 이는 (목사) 자격증 따는 데만 관심이 있지 신학을 목회에 적용하기 위해 공들이지 않는 목사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특히 적지않은 대형교회 목사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 교회 안에서 당회를 운영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짐작합니다. 그들도 몇몇 비선 실세를 움직여 당회를 좌지우지 하고 있지 않을까요? 또한 사업가 교인들을 축복해서 헌금이 많이 걷히면 교회에 돈이 많아진다는 계산을 하겠지요. 자기들과 똑같은 스타일의 대통령을 옳지 않다고 하면, 자기 행실을 아는 교인들도 비판하고 나설 테니까요.

― 우리 근현대사 속에 ‘애국지사’로 불린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나라 사랑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요.
당시 우리 민족은 극악무도한 일본제국주의의 억압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억압에 맞서 해방운동에 뛰어들었지요. 모세의 민족해방운동이 히브리 민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민족해방운동을 한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억압된 자들을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을 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믿고, 희망했을 거예요. 오늘 한국의 대형교회가 현 정권을 옹호하는 이유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어떤 신을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의 의미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처럼 만들어가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해방신학이 말하는 바도 바로 그렇습니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요. 죽어서 천당 가는 구원이 아닙니다. 오늘 흙수저 금수저의 나라로 전락한 한국의 상황을 볼까요. 가난은 절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지요.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구조의 문제이지요. 가난이 구조적이라는 건 구조의 억압이 있다는 거예요. 기독교인이라면 그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오는 길을 가야지요. 그리고 국가적 경제적 정치적 억압뿐 아니라 이념으로부터도 해방되어야 합니다.

   
▲ "가난이 구조적이라는 건 구조의 억압이 있다는 거예요. 기독교인이라면 그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오는 길을 가야지요." ⓒ복음과상황 이범진

―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요?
태극기 집회에 유난히 노인들이 많은 것을 두고 ‘인정받으려는 몸부림’(인정 투쟁)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노인 세대와 젊은이 세대의 괴리가 너무 크지요. 노인들은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데, 도통 소통이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다는 해석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35%가 60세 이상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분들도 많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그분들과 대화하는 건 안아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목사라고 하면서 고급으로 굴지 않고 성도들에게 같이 밥 먹자면서 짜장면만 먹고요. 해방신학을 한 내가 우리 교회에 부임하는 걸 반대했던 그분들이 지금은 얼마나 지지해주시는지 몰라요. 노인들과 불통의 벽을 뛰어 넘어서, 우리가 더 넉넉함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맞불집회라는 언어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조롱하기보다는 너그럽게 받아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지요. 이게 이념으로부터의 해방,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 해방은 나에게 전율의 경험을 주었습니다.

― 어떤 전율이었나요?
어릴 때 학교 등록금을 내지 못할 만큼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어머니가 남미로 이민을 결정할 정도였지요. 이민가면서 저는 세상에 복수하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이민 현장에서 행상을 했어요. 그리고 성공하려고 대학에 가서 경영학을 선택했지요. 그런데 대학생 시절 서점에서 우연히 구티에레스 신부의 해방신학 책을 발견한 것이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생각의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나만 성공한다고 가난이 해결되는 게 아니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바꿔야 했으니까요. 말 그대로 온몸이 전율하는 경험이었고, 그때 비로소 성공주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해방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고, 개신교 해방신학의 아버지인 호세 미게스 모니노 박사를 찾아가 그 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 "또 다시 일치를 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독선이라고 생각해요. 다양성 속의 조화로 내버려 두면 어떨까요." 사진은 홍인식 목사가 모은 다양한 십자가들. ⓒ복음과상황 이범진

― 해방의 신학,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그럼 어떤 모습일까요?
조화, 다양성 속의 조화겠지요. 흔히 조화 대신 일치라는 말을 쓰는데, 난 이것 또한 피해야 할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시 일치를 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독선이라고 생각해요. 다양성 속의 조화로 내버려 두면 어떨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여러 가지 비유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비유들일까요? 예수님은 그분 자체가 방황을 많이 했던 분이에요. 30년간 방황하다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지요. 그렇게 하나님과 통한 분입니다. 방황자, 일탈자, 방랑자였지요. 오죽했으면 가족들이 미쳤다고 했겠습니까.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의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그건 예수님이 얼마나 번민했는가를 의미해요. 예수님은 일용 노동자로도 사셨을 것이고, 농부 계약직으로도 일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니 포도원 품꾼 비유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가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음성을 듣게 되었을 것이고, 삶과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가르침을 얻었을 겁니다.

   
▲ 홍인식 목사는 개신교 해방신학의 아버지인 호세 미게스 모니노 박사의 제자로,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 나라는 결국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한 존재론적인 논쟁보다는 해방적인 그의 실천과 그리스도가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해방자 예수는 진정한 생명의 주인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짜 생명을 되돌려 주려고 오늘도 고난받고 있고 죽임의 세력에 대항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부활의 목적이고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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