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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예수가 속했던 나라는?
[316호 커버스토리]
[316호] 2017년 02월 22일 (수) 11:48:38 조석민 기독연구원느헤미야 연구위원, 에스라성경대학 goscon@goscon.co.kr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국가우상주의의 다양한 행태를 보고 있으면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태극기 사랑과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애국가 제창을 통한 국가우상주의 및 국수주의적 행태의 복종을 요구하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국민의례라는 대통령 훈령을 통해 전 국민에 일정한 양식으로 의례를 강요하는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일까?1

이런 독특한 사회현상이 이 나라에 등장하면서 여러 원론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민주주의 나라에서 ‘국가’에 대한 시민의 태도와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국가관에 대하여, 복음서가 교훈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오늘의 현실을 토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예수는 과연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하여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으며, 어떤 행동과 태도를 보여 주었을까?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국가관과 관련된 사상과 행동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신약성서의 복음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예수의 국가관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국가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간략하게 정의할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 저자들이 묘사하는 국가에 대한 예수의 사상과 태도를 고찰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국가관과 관련된 실천적 교훈과 적용을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에서 살펴보려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예수의 국가관을 살펴보기 전에 국가에 대한 간략한 정의가 필요하다. 국가에 대한 정의 및 논의는 이미 플라톤의 《국가》, 존 로크의 《시민정부론》 등을 통해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2 최근 유시민 작가도 2011년에 초판을 낸 《국가란 무엇인가》 개정판을 내면서 현재 이 땅에서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로 말미암은 촛불민심과 태극기 숭배로 나타나는 극단적인 국가우상주의라는 현상 속에서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시 환기시킨다.3

‘국가’ 또는 ‘나라’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영토를 차지하고 조직된 정치 형태, 즉 정부를 지니고 있으며 대내 및 대외적 자주권을 행사하는 정치적 실체이다.”4 이런 점에서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라는 요소를 통해서 구성되는 국가의 정치적 실체 속에서 국가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신약성서에서 ‘국가’ 또는 ‘나라’로 번역할 수 있는 헬라어 단어는 ‘폴리테이아’(참조. 행 22:28; 엡 2:12)와 ‘바실레이아’(참조. 막 1:15; 눅 6:20; 마 4:17; 요 3:3, 5)이다. 여기서 ‘폴리테이아’는 ‘폴리스’에서 유래된 단어로 ‘폴리스’(참조. 마 8:33; 눅 10:8, 10; 요 4:8, 28, 30)는 ‘도시’를 의미한다. 더욱이 ‘폴리스’는 단순히 도시를 의미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포함한다. 플라톤은 그의 국가론에서 국가를 ‘폴리테이아’라는 헬라어 단어로 묘사한다. 이것을 라틴어는  ‘Respublica’라고 번역하고, 영어로는 ‘republic’으로 번역한 것이다. 


‘국가’에 대한 예수의 사상과 태도

1. 예수 당시 유대의 정치 상황

이 주제를 논하기 전에 예수 당시 유대의 정치 상황을 간략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수 시대를 알려주는 신약성서 구절은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 1:17)이다. 이 구절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참조. 마 2:1) 또한 이 시기에 대해서 누가는 좀 더 자세하게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눅 3:1-2)라고 묘사한다. 이것은 예수 당시의 시대가 주전 4년부터 시작해서 주후 66년까지임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 시기를 일반적으로 ‘예수와 사도시대’로 이해한다.5

이 시기에 당시 유대 백성들은 로마제국의 식민 통치 아래 살아가고 있었다. 주전 4년 헤롯이 죽은 후 유대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주전 48-주후 14년)와 그 뒤를 이은 황제들의 명령에 따라 헤롯의 아들들과 총독들에 의해 다스려졌다.6 마태는 예수 탄생을 묘사하면서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마 2:1)라고 기술한다. 예수는 당시 자신의 조국인 유대가 로마제국에 의해서 정복당한 이후 헤롯이 그 땅을 통치하던 시기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성장한 곳은 나사렛이며 사역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참조. 마 2:22-23)

2. 유대에 대한 예수의 사상과 태도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자신의 현실과 국가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했을까? 예수는 자신을 유대인으로 요셉과 마리아의 자녀로 인식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복음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이 보내신 마지막 선지자인 메시아로 인식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을 사복음서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7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가 선지자로서 자의식이 있었음을 기록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막 6:4; 참조. 마 13:57; 눅 4:24; 요 4:44)

분명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조국인 유대가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기대하고 노력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상과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압박당하고 있는 유대의 회복과 해방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예수는 조국의 해방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심과 관심이 우선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 1:6-8은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한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유대 백성들을 무시하거나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연민의 정과 눈으로 보고 실제적으로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기를 따르는 많은 유대 백성들이 병들고,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 예수는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며,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그들을 먹이셨다.(참조. 요 6:1-15)

하지만 그의 관심은 현실 정치와 관련하여 정치적 왕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기적의 떡과 생선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를 억지로 정치적 왕으로 옹립하려고 했을 때 그것을 분명히 거부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요한복음 기자는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 6:14-15)라고 기록한다.   

그뿐 아니라 예수의 사상 속에서 조국 유대와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다른 나라와 민족보다도 우선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흔적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4:22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는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는 로마제국의 압박 아래에 있는 유대를 위한 애국심과 국수주의적 태도보다는 더 넓고 큰 나라인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이 세상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했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로마제국의 반역자인 정치범으로 몰아가서 십자가 처형을 선고 받게 하려고 빌라도에게 요청했을 때, 자신을 심문하는 빌라도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분명하게 밝힌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우리는 예수의 이 대답에서 그의 관심과 국가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예수께서 죽음을 앞에 두고 심문을 당하면서 분명히 밝힌 자신의 국가는 유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나라를 고대하며 예수는 그 나라를 위하여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갈 것을 요구한 것이다. 예수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제국의 압박 속에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자기 조국의 해방을 위해 칼을 들고 혁명을 일으키거나, 나라의 해방을 위하여 희생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을 잡으려고 온 사람들을 향하여 칼로 대항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참조. 요 18:5-11)라고 말한다.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단순히 유대를 해방하시기 위한 국수주의적 행동이나 태도를 보인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큰 가치와 목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선포하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였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대중들에게 선포한 첫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였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런 사실을 한 목소리로 증언한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마 4:12-15; 눅 4:14-15)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를 소개하면서 단순히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기보다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으로 소개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소개하면서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요 3:31-32)라고 증언한다.

예수는 개인적인 만남의 기회를 얻었을 때에도 단순히 개인의 필요나 요구를 들어주기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교훈하셨다. 이런 사례를 우리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밤에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라고 했고, 또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라고 교훈했다. 복음서 저자들이 예수를 소개할 때 유대를 구원하고 해방하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소개하지만 그 내용은 유대인들의 영적 구원과 해방을 의미한 것이지, 유대의 정치적 해방을 의미하지 않았다. 예수의 관심은 자기 조국 유대의 해방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포임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다시 말해서 당시 로마제국과의 정치적 관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금 문제와 관련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도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라고 대답하신다. 이것은 예수께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제시하신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황제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성전에 신성모독의 주화를 바칠 수 없음을 가르치신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고와 태도를 보여주신 사건이다.8 예수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유를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가르쳐 준다. 아울러 정당한 국가는 법과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봉사하지만, 인간의 구원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친다. 예수의 관심은 로마제국으로부터의 유대 해방보다는 온 세상의 구원과 해방에 있었다.

   
▲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라고 대답하신다. 이것은 예수께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제시하신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황제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성전에 신성모독의 주화를 바칠 수 없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고대 로마 동전. (ko.wikipedia.org 사진: Macquarie University photograph)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복음서에서 소개하는 예수는 유대에 대한 국가우상주의에 빠지거나 자기 나라의 해방을 위하여 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유대만을 위하여 일하지 않았고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을, 다시 말해서 온 세상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다.(참조. 요 3:1-21; 4:1-42)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인의 ‘이중 시민권’을 교훈한다. 빌립보서 3:20-21에서 바울은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라고 교훈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느 국가와 어느 민족에 속해 있던지 자신의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자기 민족과 나라를 등지거나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일 그 개인이 속한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 나라와 배치되는 사고와 가치관으로 행동하고 그런 삶을 요구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등을 질 수밖에 없다. 이런 예를 우리는 세계 각처에서 일어난 비인간적이고 무차별적인 학대와 폭력의 잔인함, 그리고 대량 학살 사건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실례가 유태인의 학살과 코소보 사태, 시리아 난민과 학살 등 아직도 세계 각처에서 멈추지 않는 인종 차별과 학살, 종교의 차이로 인한 비인간적인 행동과 사건들이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어느 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평화로운 삶을 보장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폭력적 조직이며 그런 점에서 비폭력적인 국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언제나 시민사회의 감시 대상이며, 한 나라의 국민은 끊임없이 국가의 권력 사용을 주시하고 감찰하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고 할 때 아낌없이 채찍을 들어야 한다. 또한 시민의 삶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보장하도록 맡겨진 권력을 정의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민사회의 자각과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필수적이며, 이렇게 할 때에만 국가가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9 하지만 국가를 감시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속한 나라를 번영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 추구와 확산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한다면 국가우상주의에 빠지거나 국수주의적 행태를 벗어나서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 속하건 상관없이 사랑과 정의, 평등과 화평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소한 사회 정의와 평등과 화평을 실천하여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그리스도인은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행동으로 표출해야 한다. 이것이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며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자기 조국인 유대의 해방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유대의 구원과 해방을 가져온다는 확신가운데 살아간 것이다. 비록 로마제국의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의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 심문의 순간에도 예수는 자신의 국가가 유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임을 분명히 선언하였다.(요 18:36)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속해 있으면서 한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개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한 국가의 통치를 받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서 사고하며 행동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때에 올바른 시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흔들며 마치 자신만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국가우상주의에 빠진 이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란 무엇인지, 그 속에서 어떤 사상과 가치를 기준으로 행동하며 실천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각주
1) 국민의례는 1941년 일본기독교단에서 정한 의례 양식에서 기원한다. 당시 양식에 의하면 궁성요배, 기미가요 제창, 신사참배 등으로 이루어진 의례였다. 지금은 대통령훈령 제272호(2010년 7월 27일)로 공표되었고, 그 내용은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고, 애국가를 제창하며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예를 갖추도록 한 의식이다. 국민의례와 관련된 정보를 다음 웹사이트에서 참조하라.
https://ko.wikipedia.org/wiki/%EA%B5%AD%EB%AF%BC%EC%9D%98%EB%A1%80 (2017년 2월 14일 접속). 
2) 플라톤(Platon), 《국가》 (도서출판 숲, 2013); 존 로크(John Locke), 《시민정부론》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14)을 참조하라.
3)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게, 개정신판, 2017)를 참조하라. 개정신판은 저자도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말이 개정신판이지 그 내용은 초판과 같다.  
4) https://ko.wikipedia.org/wiki/%EA%B5%AD%EA%B0%80 (2017년 2월 14일 접속).
5) 
보 라이케(Reicke, Bo Ivar), 《신약성서 시대사》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6), 122-128쪽을 보라.
6) 
아우구스투스 이후의 로마 제국은 티베리우스(주후 14-37년), 가이우스(칼리굴라‧주후 37-41년), 클라우디우스(주후 41-54년), 네로(주후 54-66년)로 왕위가 계승되었다. 로마황제와 관련하여 수에토니우스(Suetonius), 《열두 명의 카이사들》 (서울: 다른세상, 2009)를 참조하라.
7) Sukmin Cho, Jesus as Prophet in the Fourth Gospel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06), 144-153쪽을 참조하라.
8) 김근주 외 3인, 《복음과 정치》 (대장간, 2016), 49-74쪽을 참조하라. 
9) 홉스(T. Hobbes), 《리바이어던: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 (파주: 살림출판사, 2005), 96-129쪽;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29-35쪽을 참조하라. 

 

조석민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에서 〈요한복음의 선지자 기독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기독연구원느헤미야 연구위원으로,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로 사역하며 성경 말씀이 인간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드러나기를 고민하며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린도후서 주석》 《요한복음의 새 관점》 《그리스도인의 세상 보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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