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호 커버스토리]

한국 사회가 큰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이 전편이라면,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후편에 쏠려 있다. 19대 대통령선거가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보니 후회와 미련이 많이 남는다. 촛불정국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정지(整地)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면 좋을 뻔하였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비교적 국민적 합의가 공감대를 이루기 쉬운 시기였고, 흔히 말하는 적폐세력이 낯을 들지 못하던 때였다.

그런데 대선국면을 맞이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반성도 성찰도 없이 한동안 사죄를 구하던 이해당사자들이 거칠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가 수족처럼 부리던 몇몇 수하의 사람들을 구속시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른바 ‘적폐 청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과연 대선의 혼란 속에서 합리적이고 대안적인 한국 사회 청사진이 제안될 수 있을지, 국민적 합의를 통한 정책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을지, 갈 길은 먼데 전망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청산이 시급한 친일·분단·독재·냉전의 낡은 체제
시대적 과제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내가 살아온 시대를 거슬러 짚어보게 된다. 대체로 그런 깊은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방 후 식민주의 지속부터, 전쟁 후 여태껏 계속되는 휴전 상태며, 대학생 때 경험한 4·19, 중견 목사로서 지켜 본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그리고 90년대 중반 IMF 국가부도와 수평적 정권교체 등 우리 세대는 긴 좌절과 짧은 희망을 두루 겪었다. 과거의 묵은 짐이 청산될 듯 될 듯하다 그냥 주저앉은 경우가 거듭 반복되었다. 행여 이번에도 되풀이될까 근심하는 이유이다.  

우리 또래의 사람을 흔히 4·19세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청년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노인들의 지독한 편견만 남았다. 1960년에 나는 스무 살이었고, 불우한 시대의 아들이었다. 당장 커다란 변화가 물밀 듯 찾아오는 줄 알았다. 순진하게도 나는 역사의 교훈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피의 교훈은 당장 나타나는 열매가 아니라, 씨앗에 불과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씨앗을 마치 열매처럼 급히 따 먹으려고 하였다.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씨앗을 지키기 위해 눈물과 피를 뿌렸다.

분명한 것은 지난 ‘3월 10일의 탄핵 인용’은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어서가 아니라, 4·19를 부정한 군사정권과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만든 경고라는 점에서 대단한 사건이었다. 부녀 대통령 박정희와 박근혜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80%가 넘는 국민이 환호했다. 그동안 침묵했지만, 누구나 그들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 진절머리를 앓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를 꼽으라면 단연 구시대 청산이다. 이미 폐지되었으나, 얼마 전까지 핵심적인 국정과제처럼 추진되던 국정역사교과서의 경우를 보면 그 의도가 잘 드러난다. 거기엔 음모랄 것도 없는 뻔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 시시비비 과정을 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나라가 해방 72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친일의 역사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했구나’였다.

식민주의 잔재를 청소하지 못한 결과 변신을 거듭한 기득권자들이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해왔고, 역사의 걸림돌이 되었으며, 진실과 정의를 짓밟아 왔다. 그것은 한마디로 분단체제요, 독재체제요, 재벌체제요, 냉전체제였다. 마치 그것이 정의인양 오도되었고, 억압적 사회구조를 만들어 왔다. 이제 쟁기질을 하고 다시 건강한 씨앗을 뿌려야 한다. 반듯한 역사 청산 없이는 모든 개혁이 양비론과 양시론에 머물러 반쪽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 규모와 민주적 시민 의식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도 구시대의 묵은 땅을 제대로 갈아엎지 못해서이다. 우리 사회에는 악한 밭을 갈아서, 죄의 열매를 거두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 거짓 열매로 사람들의 삶을 속이고, 거짓 희망으로 미래를 가로막는 묵은 세력들이 존재한다. 가장 우선 과제는 그런 묵은 땅을 깊이 갈아엎어서 새로운 시대를 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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