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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부’ 창설을 기대하며
[319호 민통선 평화 일기 03]
[319호] 2017년 05월 24일 (수) 17:26:00 정지석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goscon@goscon.co.kr
   
▲ 농사짓기는 땅바닥에서 하는 영성 훈련이다. (사진: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농사는 기도다
국경선평화학교 수업 중에는 ‘유기농사’ 과목이 있다. 유기농사법을 배워서 북한 땅에서 실천적 평화봉사활동을 하자는 목표를 갖고 실행하는 강좌인데, 농사를 짓다 보니 우리 스스로 깨닫고 배우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영적으로 매우 유익한 체험이다. 좋은 먹거리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선물이다.

아마추어 농사꾼인 우리는 3월 한 달 동안은 친환경 유기농사에 관한 책을 읽고 무엇을 심을지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한다. 4월부터는 본격적인 농사짓기에 들어간다. 밭을 정리하고 마른 풀을 태운다. 올해 농사는 각자 심고 싶은 작물을 두 가지씩 정해 ‘책임 재배’하기로 했다. 상추를 비롯한 쌈 채소들,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을 심기로 했는데 내가 맡은 작물은 당근과 시금치이다. 감자와 고구마는 공동 재배 작물이다.

우리 밭은 천연 자연농이다. 2년째 풀을 안 뽑고 농사를 지었다. 풀을 아예 안 뽑은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풀 뽑기를 포기한 것이다. 매년 여름 장마비가 고비이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게 자라는 왕성한 풀들의 생명력 앞에서 두 손 들었다.

풀을 뽑을 때는 뿌리까지 다 뽑지 않으면 곧 다시 나온다. 풀을 뽑으면서 뿌리가 중요함을 배운다. 풀을 뽑으면서 나는 함석헌 선생님의 풀뿌리 민중 사상을 체험한다. 풀을 뽑아보면 그냥 몸으로 다 알게 된다. 뿌리가 살아 있으면 아무리 억누르고 짓밟아도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뿌리는 결코 완전히 뽑히지 않는다. 땅 속에는 수없이 많은 뿌리들이 있다. 뿌리를 뽑아도 다시 땅 속에서 다른 뿌리로 생존하기 때문에,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린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왜 풀을 꼭 뽑아야 하나, 풀도 생명인데 왜 꼭 뽑아야 하는 걸까? 사람의 먹거리가 아닌 풀들은 몽땅 잡초가 되어 뽑힌다. 잡초라니, 누가 처음 이렇게 불렀는지 모르지만, 이 풀들도 제 이름이 있을 것이다. 잡초도 생명이란 생각에 이르면 손에 힘이 빠지고 그냥 일어서게 된다.

먹거리 풀과 먹지 않는 풀 모두 그냥 두지 싶다. 먹거리 풀만 키우는 것은 사람이 더 많이 먹으려는 거니까, 덜 먹자 하면 잡초들도 뽑을 필요 없다. 밭에 쭈그리고 앉아 풀 뽑기를 하면서 별별 생각이 일어난다. 이런 별별 생각이 농사짓기의 매력이다. 

농사짓기는 땅바닥에서 하는 영성 훈련이다. 땅을 파고 씨를 뿌리면서 신학 공부를 다시 하는 느낌이다. 흙 속의 온갖 생명체를 발견하면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경험한다. 예수님이 왜 하나님을 농부라고 했는지 알게 된다. 신학교 교실에서만 하는 신학은 부족하다. 신학생들이 연중 세 번은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보길 바란다. 봄에 와서 밭 갈고 씨 뿌리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와서 추수하면, 농사짓기만 한 신학 공부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흔히 농부들은 보수적이라 한다. 땅을 갈고 씨 뿌리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밭에서 일한다. 씨를 심고 열심히 가꾸다 보면 어느새 열매가 맺혀 결실을 얻는다. 갑자기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농부들은 체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변혁운동이 농부에게는 익숙치 않다. 농사는 매일 같은 일 같지만 매일 다르고, 매년 같은 일이지만 지루한 반복이 아니다. 흙에 엎드려 살다 보면 어느 새 해가 지고, 고단한 몸은 단잠을 잔다. 농작물이 깨어나는 새벽에 농부도 깨어 일어나 밭으로 간다. 세상 돌아가는 일은 그저 세상이 그런가 보다 한다. 농부에게 진보적인 일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 해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일이다.

오늘 아침 유기농사 수업시간에 우리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협업이다.
하나님이 매일 아침 해를 주시듯
매일 매일 하는 일, 농사는 기도다.  

‘평화통일부’ 창설을 바라며
미국의 핵폭격기를 실은 항공모함이 한반도를 향하고, 한반도 전쟁설이 흉흉하다. 오늘 아침 미국에서 목회하는 후배 목사는 혹시라도 전쟁이 날까 봐 최전방 마을에 살고 있는 내가 걱정됐는지 전화를 해왔다. 미국 언론은 한국 전쟁 위기설을 심각하게 보도하고 있다면서 한국 사정은 어떤지 물어보길래, 최전방 군인들은 농민들 모내기 준비를 도우러 대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전쟁 위기 같은 징후는 이곳 최전방에서는 느낄 수 없다. 민통선 넓은 들판에는 농사 준비로 분주한 농민들의 활기로 가득하다. 미국 언론은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남북한은 서로 전쟁할 의사가 추호도 없을지라도,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기라도 하면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한국전쟁은 휴전 협정으로 멈췄다. 휴전(休戰)이란 전쟁의 종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쉬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협정의 주요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다.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하면 우리나라는 언제든지 전쟁 상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유이다. 한반도 운명이 미국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물론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와 아무런 상의 없이 전쟁을 일으키진 않겠지만, 우리의 살고 죽는 일이 우리 의지와는 관계없이 결정될 수 있다는 현실은 답답하고 비통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의 뜻을 잘 따른다면 미국이 전쟁할 리 없을 터이니 결국 문제는 북한에게 있다고 비난해야 하는가? 소이산을 오르며 우리 운명이 미국 대통령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있길 기도한다.

소이산에서 이꼬 신부가 내려온다. 그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매일 철원 민통선 마을 길을 걷는 일본 신부이다. (이꼬 이야기는 본지 316호 159쪽 참고 - 편집자) 언제부터인가 소이산을 오른다고 한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전쟁을 걱정한다. 늙은 일본인 어머니와 함께 최전방 마을에 와서 살고 있으니 만약 전쟁이 난다면 어떡하나 염려가 되나 보다. 특히 일본 언론은 과도하게 한반도 전쟁 위기를 보도하는 것 같다.

이꼬는 내게 전쟁 나면 어디로 피난할 거냐고 묻는다. 갑작스런 질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 다만 전쟁은 안 일어날 것이니 염려말라고 대답해준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를 생각한 적이 없다. 전쟁은 죽음이다. 나는 이꼬에게 우리나라에서 전쟁은 일어날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준다. 그는 안심된다는 듯 웃으며 내려간다.

우리나라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 한반도 금수강산이 다시 불타고 폐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은 절대 불가다. 이 신념이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의 가슴속에 있는 한 전쟁은 없다.

남북한의 분단 상황에서 전쟁 위기는 늘 있을 것이다. 분단을 넘어서 통일의 길을 가야 한다. 통일은 남북한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길이다.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려면 통일해야 한다.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하자는 정신 나간 사람들도 꽤 있다. 안 될 일이다. 우리 통일은 평화적 통일이어야 한다.

이번에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는 통일부를 평화통일부로 바꾸고, 평화를 중심으로 통일정책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평화통일이 헌법 정신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과 제4조는 평화 통일 정신을, 제5조는 국제 평화를 위해 일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평화 국가 정신을 밝히고 있다. 헌법 66조 ③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했고, 그 정신에서 제69조는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평화헌법이다. 평화통일부의 창설을 기대한다.

기숙사 이사하는 날
그동안 정들었던 기숙사, 관전리 집을 떠난다. 전세계약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학생들이 숙식했고, 종종 방문객들이 오면 머물렀다. 정든 집인데 작별이 아쉽다.

아마도 남한에서는 최북단 마을의 북쪽 끝에 있는 집일 것이다. 이층 창문을 열면 북녁 땅이 보이고, 밤 하늘 별들은 보석처럼 빛나는, 민가의 불빛이 없는 깜깜한 밤을 가진 집이었다.

그동안 10여 명 피스메이커 학생들이 이 집을 거쳐 갔다. 같이 살면서 밥 해먹고 공부하고 노래 부르고, 모임을 가졌다. 남북한 평화운동가로 평생의 동지가 되는 시간을 보낸 집이다. 주일이면 함께 예배드리고, 많은 손님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우리들의 철원 이야기는 관전리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우리 학교 기숙사를 마련할 때까지 좀더 머물고 싶었으나 집주인은 집을 팔고 싶어했다. 시골 마을에서 화장실 딸린 방 4개, 넓은 거실과 테라스를 갖춘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적절한 집이 구해지기까지 우리 집으로 짐을 옮겼다.

농사 창고로 쓰던 공간에 방과 식당과 화장실을 만들었다. 예배 장소로 사용하려고 정리해둔 공간이다. 17세기 영국의 종교개혁 시절, 퀘이커들은 주로 농가 창고에 모여 앉아 하나님을 예배했다. 지금도 미국 퀘이커 영성평화학교 펜들힐의 사람들은 곳간으로 쓰던 반(Barn)에 모여 예배 모임을 갖는다. 종교개혁가들은 겉모양보다는 속마음에서 믿음의 진정성을 구했다. 겉모양은 되도록 단순하고 소박하게, 속마음도 단순하고 소박하게 할수록 믿음은 풍요롭고 진리에 가까워진다. 이런 마음으로 마련해둔 예배처소 공간이 임시 기숙사 방으로 만들어졌다.

기숙사 짐이 꽤 많다. 살림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책과 옷, 침대와 이불, 책상과 작은 옷장들, 그리고 3년 동안 쌓인 살림살이가 꽤 된다. 이웃 농민들이 용달차 두 대를 끌고 와서 도와주셨다. 농민들이 우리 하는 일을 좋게 보고 있었구나 싶어 고맙고 기쁘다. 

아랫집 심술궂은 할머니는 피부 색깔이 다른 아르센과 엘나를 보며 ‘시커먼 애들이 왜 우리 마을로 오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한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엘나가 겁에 질려 집안으로 숨었다. 참 마음이 아프다. 마을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긴장되는 날이다.

며칠 지난 후 마을 잔칫날이라며 이장이 전갈을 보내왔다. 마을 노인들을 위한 잔치란다. 처음 이사 온 친구들 인사를 시킬 겸하여 음료수를 사고, 찬조금 봉투를 들고 마을회관에 간다. 엘나와 아르센도 같이 간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인 방에 들어가 인사한다. 시커먼 엘나와 아르센이 철원 시골 마을까지 무슨 일로 왔나 모두 궁금하고 신기해하시면서 큰 박수로 환영해준다.

대다수 시골 마을 사람들은 선하고 착하다. 피부색 다른 두 청년을 반갑게 환영해주신다. 이사 첫 날 아랫집 할머니로 인한 불안과 긴장은 봄눈 녹듯 사라진다.

이방인을 잘 대접하라는 성경 말씀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원한 진리이다. 분단의 국경선은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신의 장벽이 더 높고 큰 국경선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욕하고 비방하고 차별해도, 인내심과 온유한 마음을 지키며 살면 땅을 얻을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은 실현될 것이다.


정지석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비롯, 전 세계 분쟁지역을 섬길 ‘평화 일꾼’(peacemaker)을 키워내는 국경선평화학교 설립자이자 대표. 한신대 신대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했고, 아일랜드 평화에큐메니칼대학원에서 에큐메니칼 평화학 석사(M.Phil in Trinity College), 영국 버밍험 우드브룩 퀘이커대학원에서 평화학 박사(Ph.D in Sunderland Univ.)를 마쳤다. 이후 한신대 신대원과 성공회 대학원에서 평화신학을 강의하고 새길교회 등에서 사역했다. 2010년 새로운 소명의 삶을 찾고자 미국 퀘이커 영성평화학교 펜들힐(Pendle Hill)로 갔고, 기도 가운데 ‘철원으로 가서 남북한 평화를 일구라’는 소명을 받고 2011년 9월 무작정 철원으로 들어와 2013년 3월 1일 국경선평화학교를 열었다. 본지 315호(2017년 2월호)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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