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얼마 전 크리스천의 성(性)에 관해 솔직하고 리얼하게 담았다는 책이 화제였다. 저자는 바람직한 ‘성생활’을 즐기길 바라며 썼겠지만, 독자들은 다른 이유로 ‘화끈’ 달아올랐다. 내용이 문제였다. 주옥(?) 같은 구절이 많지만 하나만 소개하겠다. “아내는 남편의 눈을 기쁘게 해줘야 합니다. (중략) 남편과 관계를 원할 때는 남편의 시각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아무리 고단해도 아내가 아름답게 하고 있으면 남편은 금방 성욕이 오릅니다.” 물론 이런 관점은 그리 새롭지 않다. 

그 책은 남성 중심 가부장사회가 지겹도록 강요한 ‘성담론’의 기독교 버전일 뿐이다. 그 책이 왜 문제인지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추천사 부분이다. 무려 열 명의 한국교회 주요 인사들이 썼는데 모두 30대 이상 남성이다. 게다가 대부분 목회자거나 기독교 연관 일을 갖고 있다. 저자는 70대 남성, 추천자들은 중년·남성·목회자로 수렴된다. 이들이 서로 극찬하며 생산하는 담론이란 게 고작 “여자의 특권은 아름다움이며 남편이 (성관계를) 원할 때는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애써 외면한 내밀한 주제인 성을 과감하게 이야기했다는 측면에서 그 책은 약간의 쓸모가 있으나, 그렇게 야심차게 내놓은 ‘성담론’이 실패한 이유는 결코 ‘솔직하고 리얼해서’가 아니다. 편향되어서다. 책엔 남성은 있지만, 여성은 없다. (성)관계에 관해 여성이 어떻게 생각하고 즐기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거룩하게 쓰였다 하더라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마치, 사랑할 준비가 안 된 여성의 질에 무리하게 제 성기를 삽입하여 오르가즘을 강요하는 남성과 같다.

▲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 김재희 옮 / 김미디어일다 펴냄 / 2017년

여기 전혀 다른 관점으로 ‘솔직하고 리얼하게’ 성을 이야기 한 책이 있다.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는 독일의 페미니스트 저널 <엠마>의 알리스 슈바르처가 15인의 여성과 함께 나눈 ‘섹스 이야기’다. 1975년 출간 당시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이 책에는 극빈층 노동자 여성, 생계형 성 판매 여성, ‘매일 원하는’ 남편을 위해 감정 없이 자세를 취하는 여성, 남편의 ‘삽입 강박’ 때문에 괴로운 여성 등의 인생에 섹스, 결혼, 가정이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 다양한 경험이 담겨있다. 놀라운 건 40년 전의 유럽 사회와 2017년의 우리 현실이 너무 닮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화자(話者)인 앙케, 힐데가르트, 소냐 등의 이름에 우리가 흔하게 만나는 여성의 이름을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때문인지 그녀들이 겪은 고단하고 위험한 이야기를 읽으며 종종 울컥했다. 저자 말대로 “여성들의 개인적 ‘운명’이라는 게 사실은 가부장사회의 ‘보편적’ 현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보편적’ 현상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여성과 남성의 너무나도 불평등한 현실을 외면한 채 ‘아주 작은 차이’일 뿐이라는 이야기만 반복한다면, 그건 하루하루 부정의를 쌓는 일”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다. 여성은 자신을 속이며 억압했던 ‘성담론’이 얼마나 남성 중심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고, 남성은 그동안 ‘잘한다고’ 우쭐댔던 (성)관계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겸허하게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을 《크리스천의 性 TALK》 저자 박수웅 장로와 추천사를 쓴 한국교회 남성들, 그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성(性)은 남성, 당신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수경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글쓰기 울렁증이 있고, 책을 많이 사지만 읽지는 않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이지만 수다스럽고, 나이 먹다 체한 30대, 비혼, 여성이다. 사훈이 ‘노는게 젤 좋아’인 청어람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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