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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가, 희망일 수 있을까?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인 더 더스트〉(2018)의 파국적 상상력
[339호] 2019년 01월 30일 (수) 13:16:55 최은 goscon@goscon.co.kr
   
 

창문을 열기 겁이 납니다. 어제보다 오늘은 더 두텁게 뿌연 하늘이네요. 기어이 〈인 더 더스트〉(Just a Breath Away)를 보아야 할 것만 같은 날입니다. 작년 말 개봉했는데요. 영화에서까지 미세먼지를 보고 있어야겠나 싶어 미뤄두었던 프랑스산 재난 SF영화입니다.

진도 6.7의 강진이 파리를 뒤흔든 날, 외출을 했던 마티유(로맹 뒤리스)는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흙먼지에 놀라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마티유에게는 과학교사인 아내 안나(올가 쿠릴렌코)와 딸 사라(팡틴 아흐뒤엥)가 있는데요. 사라는 ‘스팀베르거 증후군’이라는 유전적 호흡기질환을 갖고 태어나서 12년째 투병중입니다. 철저한 정화 시스템을 갖춘 캡슐에서 살고 있어요. 같은 질병을 앓는 친구들과 화상으로 새로 획득한 로키산맥의 3D 영상을 나누며 서로 안위를 확인하는 것이 사라의 일상이었습니다.

단숨에 거리와 건물 아래층을 모두 덮은 흙먼지가 서서히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자, 마티유와 안나는 자신의 집 캡슐에 사라를 남겨두고 노부부가 사는 꼭대기 층으로 몸을 피합니다. 미확인 독성물질이 포함된 이 먼지로 인해 파리 인구의 60%가 사망한 가운데, 아직 안전한 몽마르뜨와 상층부를 서로 차지하려고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들려와요. 여느 재난 가족영화가 그렇듯이, 딸에게 헌신적인 이 아빠와 엄마는 캡슐의 건전지가 소진되기 전에 정전 상태의 회생불능 도시에서 딸을 구해내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재난, 파국의 상상력
리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2012)에서 위기와 재난의 순간에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반드시 파국을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이래 100여 년 재난의 역사에는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고 일종의 ‘재난 유토피아’를 이루며 위기를 극복해 왔던 허다한 사례들이 있다고 그는 말해요.

가장 큰 능력과 이타심을 발휘한 이들은 부족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집을 고치고 몸을 써서 일하며 사람들을 돌보는 법을 알았던 평범한 주부들과 노동 계층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사망자와 수만의 이재민이 발생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빨리 직업을 얻고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도 가정부와 같이 생존에 필요한 노동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이들이었어요. 반면 가정부를 부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일이 없었던 부유층은 가장 민폐인 구성원이었겠지요. 쓸모없이 느꼈던 존재가 가장 긴요해지고, 조금 전까지 중요했던 모든 것이 일시에 폐허가 되는 경험이야말로 재난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충격이자 혁명이었을 겁니다.

솔닛에 의하면, ‘재앙catastrophe’이라는 단어는 본디 그리스어 ‘kate(아래)’와 ‘streiphen(뒤집어지다)’에서 나왔답니다. ‘반전’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지요. ‘재난disaster’은 또 어떤가요. ‘멀리’ 또는 ‘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dis-’와 ‘행성’을 뜻하는 ‘astro’의 결합입니다. ‘별이 없는 상태’인 거지요. 정전이 되면 그간 인공 불빛에 가려졌던 오래된 천제들이 재출현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제야 그것이 상실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재난이라는 정전, 즉 ‘(만들어낸) 별 없음의 상태’를 겪은 후라면, 잠시나마 우리의 수고와 무관하게 주어진 빛의 생멸에 맞춰 눈을 감고 뜨게 될 겁니다.

   
 
   
 

숨을 참고, 캡슐 밖으로 나와야만 알 수 있는 것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읽으시면 좋아요.) 홍수도 지진도 화재나 행성 충돌도 아닌, 공기 자체가 재난이 되어버린 이 영화에서는 어땠을까요? 영화 초반부터, 청명한 공기를 가르며 노란 들꽃이 피어오른 들판을 뛰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우리는 여러 차례 보게 됩니다. 누구보다 사라가 가장 원했을 것 같지만, 사실 딸을 캡슐 밖 세상에서 마음껏 숨 쉬게 하는 것은 마티유의 꿈이었어요. 놀랍게도 그 꿈은 이루어집니다. 마티유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방식은 아니었어요. ‘전복된’ 아래와 위(catastrophe), 캡슐 내부와 외부가 뒤바뀐 ‘반전’에 의해서였습니다. “내가 반드시 널 꺼내줄게, 아빠만 믿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을 마티유는 마지막에 “딸만 믿어”야 하는 의존 상태로, 캡슐 안에서 깨어납니다. 먼지의 독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면역체가 스팀베르거 환자들에게 있었던 겁니다.

거슬러 생각해보면, 노인과 중증 환자에게나 요긴한 산소마스크가 젊은 경찰의 총보다 힘 있는 생존 장비가 되고, 어미개가 죽었지만 어린 강아지는 살아나오고, 거리에서 마티유 부부를 공격하던 맹견이나 산소마스크 없이 거리로 튀어나와 마티유의 오토바이에 치일 뻔했던 소년의 존재는 모두 복선이었어요. 재난의 폐허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생을 이어갑니다. 헌데 여기서도 강자와 약자, 돌보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가 뒤바뀌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어떻게 적시에 마티유를 구할 수 있었을까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 노아 때문이었지요. 노아를 사랑하는 사라는 앞서 부모에게 노아를 찾아가봐 달라고 부탁했어요. 노아가 자신의 캡슐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자기 딸을 구하기도 벅찬 마티유와 안나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할 수 없었던 일을 노아가 해냈던 거예요. 스스로 캡슐을 나와 사라를 구하러 왔으니까요. 정확하게는, 캡슐을 나와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러 왔겠지요. 사라의 부탁대로 마티유와 안나가 노아를 구하러 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반면, 캡슐을 나서는 노아의 첫 발걸음은 어땠을까요? 숨을 참고 첫발을 뗀 노아의 사랑 덕에 사라도 캡슐 밖으로 나설 용기를 얻었을 겁니다. 평생 벗어날 수 없을 줄 알았던 캡슐을 떠난 아이들은 그렇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설국열차〉(2013)에서 열차 문을 폭파하고 얼어붙은 땅을 처음 밟은 요나와 어린 티미가 그랬던 것처럼요. 

일상이 재앙이라고 느낀다면
우리를 둘러싼 미세하고도 미세한, 하지만 이제는 가시화되어 그 두터운 가스층과 썩은 내를 눈과 코로 확인할 수 있는 ‘먼지’는 재난이 제공하는 파국적 상상력으로만 정화할 수 있는 독성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 점점 심해지는 미세먼지 속(〈인 더 더스트〉)에서 약자가 강자되고 강자가 약자에게 의존하는 재난의 유토피아를 상상해봅니다. 해방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오는군요. 어떤 부분에서 저는 약자보다는 강자의 위치에 서있고, 부끄럽게도 자주 그 자리를 욕망하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이 세계에서 누가 완벽하게 약자이고 누가 완벽하게 강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벌어진 일상의 재난이 대재앙이 되는 일을 우리가 다 같이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요. 아직은, 산소마스크 없이 KF94의 미세먼지 마스크로 버티고 있는 이 폐허의 도시에서 말입니다.

저는 지금 특별히, 지진 후 땅속에서부터 올라와 지붕 꼭대기까지 차오른 미세먼지 구름 같은, 오늘날 허다한 한국교회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일상화된 악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폐허를 희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그런 파국의 상상력이, 배터리가 다해가는 캡슐을 뛰어나올 용기가 있을까요?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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