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호 사람과 상황] 탈북 17년차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말하는, 북미회담·북한사회·남북관계

   
▲ 1998년 탈북해 2002년 남한에 입국한 후 2003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그는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를 거쳤다. 17년차 기자로 오랫동안 북한 상황과 남북관계, 국제사회를 분석해온 그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복음과상황 이범진

베트남 하노이에서 지난 2월 27일과 28일 양일간에 걸쳐 진행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회담 결력 직전까지도 장밋빛 예측들이 나오고 있었다. ‘4.27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고 1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 진전은 물론이고, 종전선언까지 언급됐었다. 기대가 컸으나 회담은 사실상 아무런 합의도 내지 못한 채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종료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북한도 3월 1일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구체적 합의안까지 논의되던 이번 회담이 결렬된 원인을 양국이 다르게 보고 있음이 확인됐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조건으로 2016-2017년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 해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미국은 영변 외에 ‘+α’를 요구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탄두 무기체계 등도 언급했다. 이번 회담은 양국 간 비핵화 기준의 뚜렷한 차이를 확인시켜준 셈이다.

회담 결렬 후 북한 비핵화는 물론이고 북미관계 예측이 혼란스러워진 상황에서 여러 분석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즈음인 3월 5일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를 만났다. 회담 결렬 일주일 만이었다. 1998년 탈북해 2002년 남한에 입국한 후 2003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그는 사회부, 정치부, 국제부를 거쳤다. 17년차 기자로 오랫동안 북한 상황과 남북관계, 국제사회를 분석해온 그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인터뷰 이후에도 북미회담과 비핵화를 둘러싼 새로운 소식과 양국의 입장은 계속 보도됐다.) 그는 북한 관련 칼럼 ‘서울과 평양 사이’를 5년 넘게 연재하고 있으며, 블로그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를 운영했고, 남북관계를 주제로 10여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다. 작년엔 최근 북한 사회의 모습을 기록한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와 북한의 미래상을 다룬 《조선 레벌루션》이 출간됐다.

―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 남북관계를 누구보다 오랫동안 관심있게 지켜본 기자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북미 간에 어느 정도 쌓인 신뢰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판단 착오가 큰 것 같습니다. 교환이라는 게 등가일 때 이루어진다는 건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앞서 신뢰를 말했는데요. 사실은 양국 간에 신뢰가 높은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교환이 등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20-30%만 내주겠다고 하면서 90% 이상을 미국에 요구했어요.

   
▲ 하노이 북미 회담 첫날 저녁 미팅 (사진: 위키미디어코먼스/백악관)
   
▲ 2차 북미 정상회담 첫날 저녁만찬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 백악관)

― 회담 결렬 후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북한측이 모든 제재를 풀어달라고 했다’고 밝혔는데, 이게 다소 과장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는데요.

북한이 대북제재를 전부 풀어달라고 요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회견에 대해 논쟁이 붙었는데, 제가 보기에도 북한이 해제 요구를 한 제재는 사실상 전부가 맞습니다. 항목으로만 따지면 전부가 아니지만, ‘사실상’ 북한을 압박하는 90% 이상에 해당해요. 실질적 영향력으로는 거의 전부입니다. 외신이 오히려 북한의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2017년 이전의 대북제재, 사업체 설립이나 은행 영업 규제 등은 항목으로는 많아도 사실상 유의미한 것이 아니었어요. 현재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에는 돈줄의 90%에 해당하는 3대 수출 품목인 석탄, 철광석 등 주요 광물, 수산물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제재를 풀어주면 추가적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에서는 사용할 카드가 없겠지요. 게다가 트럼프 정권 임기는 현재로서 1년 정도 남았고, 재선에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북한이 말을 바꿔 다음 과정은 이행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러면 미국은 결국 성과 없이 거의 모든 제재를 풀어준 셈이 되고, 비핵화는 요원해집니다.

― 회담 전부터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가 협상 카드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한 학자도 있었습니다.

사실상 영변 핵시설 폐기는 비핵화에서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영변 핵시설 폐기로 비핵화가 진전된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미국은 기존에 생산한 핵무기들, 핵 생산 능력, 심지어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물론이고 생화학 무기까지 언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생산 능력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이미 폐기됐어야 하는 노후한 영변 핵시설 일부를 내준다는 것뿐이에요. 트럼프가 회담 때 언급한 추가 우라늄 농축 시설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숨기려면 숨길 수 있습니다. 핵 생산 능력의 핵심은 노후한 시설보다는 인력이에요. 사람 머리에 든 것, 그간 쌓인 경험과 데이터는 없앨 수 없어서 언제든 영변 같은 핵시설은 다시 만들 수 있지요.

― 그래도 다음 대화를 위해서 결렬보다는, 북한 요구의 일부만이라도 영변 카드와 교환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요?

영변 핵시설 폐기는 물론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미국도 뭔가를 줘야 하고요. 그런데 이런 식의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면 끝이 없습니다. 영변 핵시설 폐기 이후 다음 단계로서 다른 핵시설에 대한 폐기를 요구할 때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협상 카드가 뭐가 있겠습니까? 북한 계산으로는 이번에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다음에는 몇 백억 달러를 내고 사기 힘든 것을 거래 조건으로 요구하려고 했을 텐데요. 글쎄요, 그런 식으로 계속 공전하다가 어느 순간 또 결렬되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북미 회담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매우 상투적인 태도로 나왔고, 미국은 더 이상은 속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 "사실상 지금의 대북제재에서 가장 불만이 쌓인 집단은 사실 기존 무역으로 혜택을 보던 북한의 상류 10% 계층입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북한이 회담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평가하시는 건지요?

북한측 회담 실무자들 면면을 보면, 과거 오랫동안의 북한 전략에 익숙한 70, 80대들입니다. 머리가 굳어져서 진부한 퍼포먼스 말고는 새로운 게 안 나옵니다. 이를테면 하나의 과제를 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하는 살라미 전술 같은 거지요. 이 이야기는 회담 전부터 예측이 나왔습니다. 그런 참모들이 김정은 옆에서 완고하게 기존의 방식대로 주장했을 거고, 미국을 대할 때도 모험을 택하기보다는 ‘안전빵’을 택했을 겁니다. 융통성이 없어요. 김정은 위원장은 젊지만 직접 회담을 할 수 없죠. 분명 참모들로부터는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들었겠지요.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고요.

― 앞으로도 이번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만.

그렇죠. 그런데 시간을 계속 끌면 불리한 건 김정은입니다. 김정일 위원장 시절엔 이미 60대에 북미회담을 했으니, 죽을 날 얼마 안 남았는데 갖고 있는 거 부둥켜 안고 있다가 죽으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지금 나이든 회담 실무자들도 큰 사고 안 내고 버티는 게 목적이지, 괜히 혁신적으로 뭘 할 필요를 못 느낄 겁니다. 북한과 같은 관료적 시스템 하에서 살아남는 자는 언제나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늙은 것도 문제지만, 그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평생 ‘적을 절대 믿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극단적 포지션을 선택하면서 버틴 사람들이죠. 북한에 비해 훨씬 유연한 미국 구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김정은은 어떻겠어요. 개인적으로는 김정은을 ‘히틀러 아들’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지 않습니다만, 현 상황에서 북한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도 김정은입니다. 그는 독재자입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변화를 만든다면 박수 쳐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북한 구조에서 그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없어요. 그 상황에서 정권이 무너져도 큰일이고요.

― 정권이 무너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체제 유지가 어려워요. 북한은 조금이라도 대리 통치를 할 만한 자라면 모두 숙청해왔습니다. 통치를 넘볼 힘 있는 사람은 다 죽였지요. 군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통치력을 잡을 이가 없는 상황 속에서는 아비규환의 무정부상태로 빠집니다. 북한 실세는 김정은 하나인데, 그가 없어지면 자중지란이 일어납니다. 카리스마적으로 상황을 제압할 인물도 없고,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되겠지요. 국제연합(UN) 차원에서 결의안이 나와서 중국군, 한국군이 들어가서 몇 년간 질서유지하고 나오는 수순이 될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처럼. 그렇다고 북한이 안정되지는 않습니다. 중국과 남한으로 수백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몰려들겠지요. 배고프고, 물불 가리지 않고, 시장경제 이해는 없는, 게다가 군대에서 10년 이상씩 훈련 받은 남녀 주민들입니다. 무기고를 털어서 무기라도 들고 나올 거고, 동북아 치안이 붕괴될 수도 있어요. 지금은 김정은이 북한에서 변화의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부패 문제는 차치하고서, 딱 남한의 박정희 역할 정도로 기초를 다지고 시스템 만들고 물러나면 좋겠습니다.

― 회담이 다시 열려서 합의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지금 스몰딜, 미들딜, 빅딜로 나눠서 안이 나와요. 스몰딜 방식의 이야기를 꺼내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접근하면 벌써 북한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으로 봅니다. 해법은 하나입니다. 빅딜에 속하는 것인데, 북한과 미국이 각자 요구하는 것을 테이블 위에 모두 공개하고서, 단계적으로 어떻게 맞춰갈 것인지를 터놓고 논의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이와 같은 빅딜 이야기가 나와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서로 다 내놓고 단계적으로 맞춰 가면 의외로 간단할 수 있어요.

―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번 회담 결렬은,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중단된 남북경협 주체들에게는 큰 실망을 안겨주었을 텐데요.

남북관계나 북미관계가 부분적으로는 여전히 앞으로 가고 있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문재인-김정은-트럼프, 이 삼자관계에서 신뢰가 자란 것은 사실이니까요. 다만 비핵화 협상 문제를 놓고 볼 때,  미국과 북한이 계산법을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하는 문제가 놓여 있다는 점에서 회담의 기본 틀을 애초부터 다시 짜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경협 문제는 사실상 비핵화 상황과는 논리적으로는 크게 상관이 없어요. 북한에 핵이 있다고 해서 남북경협이 안 될 이유는 없지요. 다만 UN 안보리 차원에서 대북제재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니 우리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이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 작년 여름, 월간 〈인물과 사상〉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폐기와 그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얘기하셨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지금 시점에서는 좀 애매합니다. 나는 김정은이 비핵화로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했고, 그 길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봤어요. 그러나 지금은 김정은이 과연 비핵화 의지가 있나 의심이 드는 상황입니다. 김정은이 이런 생각을 할 가능성이 있어요. 북한은 핵무기라는 유일한 재산으로 바꿔야 할 많은 것들을 다 바꿔 먹어야 하거든요. 북한이 원하는 게 뭐겠느냐 하면, 1단계는 경제제재 해제, 2단계는 북미수교, 3단계는 국제사회의 지원과 국제금융 기구 편입, 4단계는 자연히 일본과 관계 개선 후 막대한 대일 배상금을 받는 그런 그림일 겁니다. 결국은 개혁 개방으로 가야 하는데, 물론 북한은 개혁은 가능해도 개방은 어려울 수 있어요. 아무튼 김정은이 원하는 경제 그림이 있을 텐데,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해야 할 거래는 이렇습니다. 미국과 조건을 맞춰서 경제제재를 풀고, 그다음에 나머지 신고를 하고 수교를 하고, 핵무기 폐기하고 국제 금융에 편입되는 식으로 계산할 만한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은 없어요. 다음 북미 대화 시점에서 이런 계획을 타진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미국이면 그것을 수용할 텐데, 애초 왜 그런 접근을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비핵화 의지마저 의심 받는 상황을 만들다니요. 게다가 사실상 지금의 대북제재에서 가장 불만이 쌓인 집단은 사실 기존 무역으로 혜택을 보던 북한의 상류 10% 계층입니다. 석탄 수출의 가장 큰 수혜자 역시 군부 쪽이었고요. 수출 제재를 풀어야 군부 불만을 잠재울 텐데, 시간이 많이 없어요. 김정은 말이면 다 되는 북한 사회에서 기득권층 불만이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독재에서 기득권층을 챙기는 것은 필수입니다. 다 죽일 수도 없고요. 지금 북한 경제 사정이 말이 아닙니다. 2017년 8월부터 본격 제재가 시작되고 1년여는 잘 버텼으나 이제 체력이 바닥났습니다. 평양 집값이 반값으로, 3분의 1로 하락했어요. 평양의 비싼 집은 다 기득권층 소유인데 말입니다.

― 북한 주민들 상황도 심각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북한이 석유 수입 제재도 받고 있는데, 석유는 북한의 교통 자원이에요. 북한은 전기가 없어서 기차도 잘 안 다닙니다. 결국 석유가 사람들 이동권과 물류 이동을 도맡는 자원이지요. 석유 안 들어가면 물류가 스톱되고, 장마당이 죽고, 인민 경제가 죽습니다.

― 대화가 이른 시일 안에 재개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미국은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압박도 가하고 있고, 북한은 회담 결렬 직후 좀 강경한 입장이었던 것 같은데요.

어쨌든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까지는 양국 정상이 서로 필요한 형편이에요. 트럼프는 재선이 필요하고, 김정은 입장에서는 트럼프 아니면 이후에 상대를 해줄 사람이 있겠어요? 미국 입장에서 북한은 보잘것없는 나라입니다. 급한 건 북한인데요. 그럼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존심 때문이지요. 북한이란 나라가 자존심 하나 빼면 시체입니다. 고난의 행군 때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판에도 그 어투를 유지해왔잖아요. 김정은이 겉으로는 인민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인민들 굶어 죽는 거에 얼마나 영향받겠습니까? 몇 십만 명도 죽일 수 있는 체제가 북한입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 100만 명, 200만 명 굶어 죽는 거야 혁명을 위해 바친 희생이라고 보지 않겠어요? 그건 단지 김정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독재정권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그가 유럽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해서 선진적인 지도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시리아에서도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영국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의사까지 했어요. 아내도 영국 여성이지요. 그가 대통령 됐을 때 시리아에 개혁의 바람이 불 거라고들 예상했지만, 내전 발발하고 체제가 위험에 빠지니까 어떻던가요. 인구 1,200만 나라에서 500만 명은 떠나가고 100만 명은 죽었는데, 독재자가 눈 하나 깜짝하던가요? 자기 목숨 하나가 500만 명 국민 목숨보다 소중한 거예요. 우리 상황을 보세요. 회사 사장이 자기만 안 망한다면 직원을 절반이나 해고해도 끄떡없잖아요. 뭐가 다릅니까? 그 구조 속에 있으면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거고,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우리라고 과연 다를까요?

   
▲ "한국에서 발언의 자유를 보면 박근혜, 문재인 나쁘다고 욕한다고 우리 인생이 행복하던가요? 일상에서 스트레스 90% 이상을 직장 상사들한테 받는 것 아닙니까. 박근혜, 문재인 타도는 외칠 수 있어도 대리, 부장 타도하라고는 말 못합니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북한과 미국을 다 설득해서 양측의 계산법을 맞추고 틀을 바꾸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지금 북한식 계산법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통용되는 논리가 아니잖아요. 남한 정부가 북한을 좀 안심시키고, 협상의 자세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전히 북한과 미국의 계산법에 차이가 있겠지만 삼자가 노력하다 보면 미국도 좁혀가지 않겠습니까. 북한이 사고 틀은 물론이고 교환 방식의 이해가 더 많이 바뀌어야 하지만요.

― 2차 북미 회담이 결렬되었지만, 과거와 달리 이미 판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미 시작된 한반도 변화의 바람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새 판을 짜는 것과, 이해관계가 다른 국가들끼리 합의를 해 간다는 것은 수많은 미묘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과제들을 넘는 과정입니다. 어느 하나가 틀어져도 앞으로 못 나갈 수 있지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또 헛도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큰 틀에서 그 명제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 작년 가을에 쓰신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를 통해 오늘날 북한 사회를 생생하게 확인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정보는 어떻게 입수하시나요? 책을 보면, 북한 사회 빈부 격차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던데요.

최신 정보는 북한 내부에서 듣습니다. 지금 북한 사회 빈부 격차가 너무 커서 남한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통일을 지금 했다가는 같이 망해요. 우리 사회도 조정이 어려워서 여전히 정치인들이 멱살 잡고 싸우는데, 북한을 감당할 수 없지요. 북한은 나름 안정된 시스템으로 돌아가면서 서서히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국제사회의 영향을 받으면서 견제 장치를 세워가야 합니다. 스스로 자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해요. 거듭 말하지만, 김정은이 그 초기 역할을 잘해줘야 합니다. 인권 문제도, 북한이 핵폐기 후 국제사회로 나오는 것이야말로 개선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에요. 북한은 대규모 기업들을 유치하고 싶을 텐데, 미국의 주요 기업은 인권 수준을 문제 삼겠지요. 핵까지 폐기한 마당에 못할 게 뭐겠습니까. 정치범 수용소도 없어질 수 있어요. 핵을 폐기하면 자연히 없어집니다.

― 북한에서 장마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이라는 건 어떤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주 원시적인 형태,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라는 게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부족하나마 나름의 원칙을 갖고 조정해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미국은 1900년대 이후로는 시장에서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막는 조치를 계속 취해왔습니다. 법체계를 계속 정비하면서, 자본의 탐욕을 막는 견제 장치를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왔죠. 한국도 미국보다 많이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든 계속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자본의 탐욕’이란 것은 애덤 스미스 시대와 같아요. 그걸 견제할 장치가 없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할 수가 없죠. 이기심이 아비규환 상태에 이르고, 절제되지 않은 탐욕이 뇌물로 나타나고, 그것이 사회 부패를 촉진해왔습니다. 불과 20년 만에 북한이 완전히 부패했어요. 후진국에서는 뇌물이라는 게 한편으로는 사회 동력이 되어버립니다. 북한이 유지되는 동력도 뇌물입니다. 뇌물이 마치 세금 같은 상태예요. 세금 없이 돌아가는 나라가 없듯이 말입니다.

―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출판 후에 바로 《조선 레벌루션》이라는 책도 쓰셨는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가 현재의 북한이라면, 《조선 레벌루션》은 10년 뒤 북한, 내가 꿈꾸는 북한의 이상향을 담은 책입니다. 꿈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실 지금도 또 책을 쓰고 있어요. 작년 말에 탈북 대학생 두 명과 함께 미국 휴스턴,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를 횡단하는 여행을 했거든요. 최고의 여행이었습니다. 세 명의 탈북 청년이 어제의 원수였던 나라를 횡단하며 느꼈던 소감들을 북한, 미국, 한국 이야기 곁들여서 여행기로 쓰고 있어요. 꽤 재미있습니다.

― 북과 남, 두 사회를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사회 발전에 대한 나름의 견해가 생겼나요?

나름 보는 기준은 생긴 것 같은데, 가령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지 기대 수준이 낮아지는 거죠.(웃음) 개혁을 표방한다고 해도 실제로 이루어지긴 어렵지 않습니까. 문재인 정부도 개혁이란 말을 하고 나왔습니다만, 요즘 화제가 되는 인사 문제만 봐요. 오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중국대사로 임명한 것도 그렇고, 자꾸 자기 편 돌려막기 아닌가요? 임명했다 하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 뭘 했다는 간판이 있는 사람들인데요. 결국 정권 바뀌어도 과거엔 이쪽이 해먹다가 다음엔 저쪽이 해먹는 정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 정부도 국민 열의에 부합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큰 기대가 없어졌어요. 이상적인 나라는 없지요. 사람 사는 동네가 다 여러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거겠지요. 그러다 보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만나기 마련인데요. 철학을 펼치다 보면 끝이 없겠지만, 인간의 삶이란 우주의 범위 속에서는 정말 티끌이기에 허무에 빠지기도 하고, 그렇지만 허무하게 살다 죽기는 억울하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오늘 행복하고, 내일 행복하고, 이게 연결되면 계속 행복해지는 거잖아요. 그러다 ‘오늘 행복주의’에 빠지기도 하는데, 지금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론 어떨지 모르지만.(웃음)

― 특히 언론에 종사하는 직업인으로서, 남과 북의 자유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우리가 북한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발언의 자유니까 그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예전에 탈북민들이 남한에 오면서 자유를 찾아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한 번 살아봐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북한에 자유 발언이 더 있는 부분도 있어요. 북한은 김 씨 일가와 체제에 대해서만 욕 안 하면 됩니다. 어릴 때부터 훈련받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죠. 오랫동안 기독교 배경에서 자란 신자가 하나님 욕 안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발언의 자유를 보면 박근혜, 문재인 나쁘다고 욕한다고 우리 인생이 행복하던가요? 일상에서 스트레스 90% 이상을 직장 상사들한테 받는 것 아닙니까. 박근혜, 문재인 타도는 외칠 수 있어도 대리, 부장 타도하라고는 말 못합니다. 일상에서 쪼는 건 상사인데 ‘까라면 까라’는 갑질 문화가 있는 한국 사회가 과연 발언의 자유가 있는 곳이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오히려 북한에서는 지배인, 사장 타도하라고 하는 건 가능합니다. 지배인이나 사장이 월급 주는 것도 아니니 싸우고 다른 직장 옮겨가면 그만이에요.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 와서 적응 못 하는 데는 그 이유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따지다가 관계가 복잡해지고 회사에서도 힘들어지니까요. 나도 북한 문화가 몸에 밴 상태에서 〈동아일보〉 입사 시험을 봤는데, 면접 때 자유롭게 이야기해서 점수를 높게 받았을지도 몰라요. 기자에게 필요한 면이기도 한데, 당시엔 이 사회를 잘 모르니 겁 없이 이야기한 게 나름 배짱 있다고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이게 문화 차이였던 거지요. 신체적 자유를 놓고 봐도, 사실 몸이 아프면 자유를 못 누리잖습니까. 어디서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 돈 많고 아픈 사람보다는 자유롭죠. 경제적 자유도 따져봅시다. 월급 받고 일하면서 정해진 휴일 아니면 10시간 씩 직장에 붙잡혀 있잖아요. 우리 사회가 북한보다 정말 자유가 많은가요? 총체적으로 풍족하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요.

― 기독교를 언급하셨는데, 탈북하시는 과정에서 교회와도 인연이 있을 듯한데요.

탈북 과정에서 중국에서도 교회를 경험했고 한국에서도 초기에 교회에 다녔습니다.

― 기자님이 쓰신 “왜 순교의 피는 북한 사람의 몫인가요”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탈북민 선교에 대해 정곡을 찌르고 계시더라고요.

중국에 탈북민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사들이 많습니다. 탈북 후에 조선족 목사라는 사람이 집에 교회 비슷한 걸 차려 놓고, 성경 읽는 척하면 돈을 좀 준다고 해서 저도 해봤어요. 한국에서 목회 대표단이 오는데, 탈북자들 10명 불러 모아서 성경 읽는 흉내를 내게 하는 거였죠. 목사 몇 명 정도 들어오니 조선족 목사가 저를 김일성대 졸업생이라고 소개하며 “열심히 성경공부 하고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1박2일 성경 읽는 쇼를 하고서 1인당 300위안 받았습니다. 그 돈이면 당시 중국에선 ‘월급’이었습니다. 조선족 목사는 자신이 후원받은 거에서 일부 줬겠죠. 그렇게 하더니 1년 만에 결국 그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을 샀고, 몇 년 뒤엔 아예 일반 사업가로 변신했더라고요. 그때까지 하나님 장사를 한 거예요. 중국에 있을 땐 그 목사를 참 약아빠진 사람이라고 욕했는데, 나중에 한국 상황 보니까 한국에서 선교비 대는 목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어떤 의미인가요?

교회에서 탈북민 선교를 한다면서 헌금을 받아서, 일부를 중국 선교사에게 주고, 중국 선교사는 또 그 일부를 탈북민에게 준 거겠지요. 일종의 먹이사슬 생태계 아닐까요. 그리고 중국에서 선교한다는 사람 중에 탈북민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자기들은 중국에서 선교하다 잡히면 한국으로 추방되는 걸로 끝이지만, 그 선교사와 연관된 탈북민은 잡히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신중하지가 않아요. 칼럼에도 썼지만, 목사 3명이 지금 북한에 납치됐다면서 평양에서 공개적으로 기자회견하고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이 자백해서 북한에서 잡혀 죽은 사람이 100명은 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자기는 살려달라고 합니까? 탈북민에겐 순교하라고 하면서 왜 자기들은 순교 안 합니까? 자기가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순교도 말할 수 있지요. 자기 불찰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선교비 받아서 선교 활동 좀 하고 그게 스펙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종교인들보다 ‘깨끗한’ 사람은 사회에도 많습니다. 물론 신실한 선교사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 남한에서 경험한 교회는 어땠나요?

교회에 많이 다니진 않았어요. 가끔 가도 설교를 들으면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글을 써서 논리와 증명을 해야 한다는 면에서 목사 일과 기자 일이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끔 방송에서 설교를 들으면, 하나님 말씀을 해석한다면서 맞지 않는 논리를 억지로 끼워 맞춘 경우들이 많아요. 교인들은 덮어놓고 ‘아멘’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이상하게 여겨요. 설교 수준들을 좀 높여야 해요. 제가 뭐든 비판하는 일이 직업이라 이렇게 말하는 게 직업병일 수도 있고, 또 교만한 말일 수는 있습니다. 저는 죽을 고비를 하도 넘기고 인생 밑바닥까지 가 봐서인지, 일부 목사들이 인생에 대해 설교하는 걸 들으면 ‘고생 못해봤구나, 참 곱게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다만 저는 교회에서 찬양가를 부르는 걸 좋아합니다. 갓 내려온 탈북민들과 함께 하나원에서 예배드리던 때의 교회가 참 좋았습니다. 다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똑같은 운동복을 입고 함께 둘러앉아서 예배를 드렸어요. 목사도 우리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교회에선 예배 때마다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진행 오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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