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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까지 없어져야 할 한기총
[344호 시사 잰걸음]
[344호] 2019년 07월 01일 (월) 17:03:34 박제민 goscon@goscon.co.kr
   
▲ 기윤실은 6월 7일 '한기총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조직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미지: 기윤실 성명서)


한기총의 탄생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을 선포하면서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하여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 왔던 일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고백한다.
- 1989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중에서

흔히 ‘엔씨씨’라고 부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NCCK)는 1988년 2월 29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열린 제 37차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 반공 이데올로기를 종교적 신념처럼 우상화한 것에 대한 죄책 고백,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한 정부와 교회의 역할 등으로 이루어진 이 선언은, 정부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던 통일 논의를 민간 부문으로 확장시켰고 그동안 통일 논의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개신교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반향이라는 것이 꼭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보수 개신교 쪽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예장 북한전도위원회, 장로회전국연합회, 한국기독실업인회,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한국기독교남북문제대책협의회, 한국기독교교역자협의회,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등이 줄줄이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은퇴 후 남한산성 근처 영락수련원에서 지내던 한경직 목사는 1989년 1월, 자신의 거처로 보수 개신교의 원로들을 불러 모았다. 이들은 교회협이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교회협을 대신하는 대표기관을 세우기로 결의한다. 이 모임은 1989년 4월 28일 영락교회에서 창립준비위원회 총회를 가졌고, 그해 12월 28일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탄생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언론 기사를 보자. 한기총이 아니라 ‘기총련’이라는, 운동권 조직 같은 약칭을 쓰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개신교가 정치현안과 제반 사회문제에 적극 대처할 보수연합체를 결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 국가문제에 대한 활동 방향은 성직자의 파당정치개입과 권력유착을 척결하고 극한대립, 반민주폭력, 좌경혁명논리를 분쇄하기 위한 강력한 대사회활동을 주요골자로 채택하고 있다. (…) 기총련은 최근의 좌경화 경향과 시국의 혼란 등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최대현안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 문제 대한 교단차원의 대응을 제1차 목표로 잡아놓고 있다. (…) 기총련의 노선과 KNCC의 노선이 정치적 문제나 남북문제에서 실질적인 시각차이가 심해 개신교단 내의 보혁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1989년 5월 1일, 〈경향신문〉 9면, “기독교 보수교단 기총련 결성. 좌경화 등 적극대처”

 “성직자의 파당정치개입과 권력유착을 척결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한기총의 출범에 당시 군사독재정권이 개입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다.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오충일 목사는 한기총 결성에 안기부 종교담당 직원이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한기총 초대 총무였던 한명수 목사도 〈뉴스앤조이〉와 인터뷰에서 문화공보부(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장이 박맹술 한기총 초대회장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무언가를 지시했었다고 말했다.

한기총의 성장과 몰락
태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의 한기총은 좋은 일도 많이 했다. 창립 직후 한기총이 열심을 냈던 일은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이었다. 농촌에 남는 쌀을 사서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자는 운동이었다. 그밖에 유산 안 남기기, 정직·절제·사랑 실천운동, 음란스포츠신문 반대 등 얼핏 듣기에는 이게 한기총인지,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인지 선뜻 구분이 안 되기도 한다.

의의로 정치권과 표면적인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 흔적도 있다. 한국교회가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한기총은 성명을 통해 “교회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행위는 종교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은 도덕성·능력·정당정책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지 후보의 종교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한 사람의 장로 대통령, 이명박 정권 때 치러졌던 2008년 국회의원 선거 때는 임원회 결의로 각 교회에 공직선거법을 준수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개신교 시민단체들이 선거 때마다 하는 것과 똑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한기총 하면 왠지 태극기와 성조기를 동시에 뒤흔드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2002년 주한미군이 장갑차로 우리 중학생들을 치어죽인 사건이 일어나자 우리 정부와 미국을 비판하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한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미국 군사법원이 여중생을 치어 숨지게 한 장갑차 관제병과 운전병에게 내린 무죄 평결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한다. (…) 이번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한국 교회는 정부와 미국에 대하여 공분을 느끼며 유가족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통감하면서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 2002년 11월 25일, 한기총 논평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무죄평결에 대하여” 중에서

흔히 보수 개신교계는 ‘한기총’, 진보 개신교계는 ‘교회협’이 대표한다고 했다. 하지만 분위기상 한기총이 한국교회를 조금 더 대표하는 조직으로 여겨졌다. 역사와 전통에서는 교회협에 비할 바 아니지만 가입교단 규모 등에서 교회협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보수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정치권이나 사회에서 개신교를 상대로 인사를 하거나 의견을 구할 때면 한기총을 찾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한기총 대표회장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악수하고 밥을 먹었고, 한기총 총무는 지상파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신앙을 따졌다. 한기총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안 맞는 정책이 나오면 시청 광장으로 사람들을 끌고 나와 통성기도를 했고 그 기도는 종종 응답되는 것처럼 보였다. 비판의 목소리도 생겨났지만 이때가 한기총의 호시절임은 분명하다. 딱 2011년 전까지.

한기총은 2011년을 기점으로 몰락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 돈 선거 논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서는 돈 선거 소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벌어진 낯부끄러운 다툼 속에서 대형 교단들이 대부분 탈퇴했고, 지금 한기총에는 정체를 알기 쉽지 않은, 다른 뜻이 아니라, 정말로 ‘알기가 쉽지 않은’ 교단들이 대부분이다. 이 와중에 정체를 알만한 이단·사이비들도 많이 들어왔다. 한기총이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것은 옛이야기가 됐다.

   
▲ MBC <스트레이트> 화면 갈무리

한기총의 ‘사실상’ 해체
올해 초에 우스운 뉴스를 접했다. 극우행보와 막말로 유명한 전광훈이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됐다는 것이다. 옛말에 ‘썩어도 준치’라고 했는데, 한경직 목사가 만든 한기총이 이렇게까지 됐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달콤쌉싸름(?)했다.

전광훈은 ‘빤스’와 ‘생명책’이 연결되는 기묘한 서사를 가진 사람이다. 시끄럽고 거칠게 말해 주목을 끄는 달란트로 살아왔다. 목사이면서도 세속정치에 어쩜 그리 열성적인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굳이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도전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것을 보니 그쪽에 소명은 없다. 없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없다.

그 전광훈이 쪼그라든 한기총에 들어앉았고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 매일같이 막말을 내뿜고 보란 듯이 세속정치에 끼어든다. 보수 개신교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던 정교분리는 어디다 갖다 묻었는지.

그의 헛소리에 비판이 쏟아지자 전광훈은 이것을 국가적 탄압으로 규정하고 본인 스스로를 나치 하의 순교자 본회퍼 급으로 격상시킨다.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 시민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착각도 자유다. 그렇지만 국가는 한기총에 줄 관심이 없고, 전광훈은 금쪽같은 나라를 위해 하루 이상 단식할 의지가 없다.

왜 전광훈이 한기총 대표회장이 됐을까? 어쩌면 이것이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2011년 한기총 금권선거 논란 이후, 참다못한 개신교 시민단체들이 모여 한기총 해체운동을 벌였다. 그 후 주요교단들이 대거 탈퇴하면서 한기총은 사실상 해체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이제 ‘사실상’이란 글자를 뺄 때가 됐다. 지금 글 읽는 분들과 그분들의 친구 분들, 그 친구 분들의 친구 분들에게 한기총 해체운동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한다. 올해 연말까지 없어져야 할 것은, 대통령이 아니다. 한기총이다.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 시민단체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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