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호 시사 꼬리잡기]

20201230, 이재용은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했다.

오늘 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삼성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입니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증여, 에버랜드 전환사채 매입

1995년 이재용은 이건희로부터 약 60억 원을 증여받았다. 그 과정에서 증여세 16억 원을 성실납부했다. 잘한 일은 잘했다고 해주자. 잘했다! 그런데 왜 주고, 왜 받았을까?

이재용은 증여세를 내고 남은 돈, 45억 원을 가지고 아직 증권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삼성 계열사 주식을 샀다. 갑자기 그 회사들이 다음 해 증권시장에 상장되는 바람에, 이재용은 560억 원 정도 차익을 남겼다. 요즘 말로 성투’(성공적인 투자)한 것이다. 될 사람은 된다고 했던가. 되니까 된 사람인가. 이재용의 투자 성공은 계속됐다.

199610, 갑자기 에버랜드 이사회는 이건희를 비롯한 주주들에게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전환사채란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이다. 전환사채의 가격은 1개당 7,700원이었다. 당시 에버랜드 주식이 1주당 85,000(증권시장에 상장되기 전, 장외시장 가격)이었으니 헐값이었다.

증권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회사의 전환사채는 주주가 받기를 거부할 경우 특정인에게 임의로 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건희를 비롯한 에버랜드 주주들은 전환사채를 받을 권리를 사양했다. 이리도 욕심이 없다니! 그 권리를 넘겨받은 이재용은 전환사채를 사들여 단숨에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된다. 에버랜드의 주인이 됐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환상의 나라로 오세요 / 즐거운 축제가 열리는 곳 / 모험의 나라로 오세요 / 영원한 행복의 나라 에버랜드

 

- ‘에버랜드 주제가중에서

당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순환출자 형태였다. 순환출자는 아무개 씨가 A 회사의 대주주이고, A 회사가 B 회사의 대주주이고, B 회사가 C 회사의 대주주이고, C 회사가 D 회사의 대주주가 되는 형식이다. 즉 아무개 씨는 A 회사만 가지고 있으면 회사 B, C, D를 모두 지배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무개 씨가 이재용이고, A 회사가 에버랜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것은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을 갖는다는 것이고, 그 가능성을 거머쥔 사람이 바로 이재용이었다. (2014,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꾼다.)

 

제일모직(에버랜드) 삼성물산 합병

다시, 이재용의 최후진술.

“20145월 이건희 회장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이건희가 갑자기 쓰러졌다. 아직 삼성 경영권을 세습하려면 멀었는데, 이재용은 서둘러야 했다. 그러려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야 했고, 또 그러려면 삼성전자에 지분을 가진 삼성물산을 차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재용이 가진 것은 에버랜드에서 이름을 바꾼 제일모직이 대부분이었다.

언제나 방법은 있다. 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옷을 만드는 제일모직과 건설회사인 삼성물산을 합치면 되는 일이다. 언제나 장애물은 있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보다 3배나 큰 회사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방법은 있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을 제일모직에 3배 유리하게 정하면 되는 일이다. 그야말로 역발상이었다. 대신 회사 이름은 삼성물산으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갑자기 삼성물산의 대주주 중 하나였던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찬성한 것이다. 국민의 코 묻고 피 묻은 돈을 모아 운영되는 그 국민연금공단이 맞다. 그래서 제일모직이 자기보다 덩치가 큰 삼성물산을 흡수하면서 이름만 삼성물산인 희한한 회사가 탄생했다. 이 합병으로 국민연금공단은 손해를 봤고, 이재용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다시, 이재용의 최후 진술

경황이 없던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결단코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재용은 박근혜와 2014912일과 915, 2015725, 세 차례나 따로 만났다. “지금 같으면 결단코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을”, 그 일은 무엇일까?

재판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이재용이 경제공동체인 박근혜-최순실에게 뇌물을 갖다 바쳤고, 그 대가로 경영권 세습을 도와달라고 청탁했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인정된 이재용의 뇌물액수는 약 86억 원이었다. 그 돈이 삼성전자 회삿돈이었기 때문에 횡령이다. 국회 청문회에 나갔을 때 모른 척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위증까지 더해졌다.
 

〈연합뉴스〉 화면 갈무리<br>
〈연합뉴스〉 화면 갈무리

원래 횡령액이 50억 원이 넘으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재용에게 징역 26개월을 선고했다. ‘작량감경’(酌量減輕),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것이다.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는 이재용이 초범이라는 것과, “대통령이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거절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배가 고파 동네 슈퍼에서 빵을 훔친 노인이 전과 20범이어서 징역 5년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법은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다.

이재용은 1심 재판 후 약 1년 동안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16개월만 더 감옥에 있으면 된다. 8개월만 더 살면 형의 3분의 2를 채우게 돼 가석방을 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재용 처지에서는 지긋지긋했던 국정농단 사건이 끝났으니 후련할지도 모르겠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하지만 또 하나의 재판,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이 남아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왜 찬성했을까? 재판에서 밝혀진 것처럼,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뇌물의 대가로 경영권 세습을 위한 합병에 찬성해달라고 청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뒷골목 거래도 아닌데 명분이 필요했다. 그 명분이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이재용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는 제일모직이 투자해서 만든 제약회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설립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냈다. 그런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되던 2015년에 갑자기 19,000억 원의 순이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높게 평가해, 그 대주주인 제일모직도 높이 평가했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가 사기로 부풀려졌다는 것이 금융감독위원회와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에서 회사 노트북과 서버를 무더기로 발견해 압수하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노트북과 서버는 어디에 있는가?

또 회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임직원들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조사해 JY, VIP, 합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건들을 폐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JY-VIP-합병, 이 세 단어에 어떤 연관이 있듯이, 국정농단-회계사기-경영권 세습, 이 세 사건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을까?

 

횡령, 뇌물, 위증, 회계사기

다시, 이재용의 최후진술.

제가 삼성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입니다.”

증여, 에버랜드 전환사채 매입,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그리고 국정농단 사건에 가담하기까지, 이재용은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이라는 절대 반지3대 세습하기 위해 살아왔다.

누가 이재용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라고 물으면 말해주자. 횡령해서 뇌물을 줘놓고는 안 했다고 거짓말했다가 지금 감옥에 가 있다고. 회사의 회계사기를 지시했을 것이란 의심도 받고 있는데 어쩌면 또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또 누가 그는 몰랐을 것이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한 걸 거다라고 우기면 말해주자. ‘글로벌 삼성이 이재용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면, 이 모든 범죄도 이재용 모르게 돌아가지 않았을 거라고. ,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도 말해주자, 민주공화국에서는.

 

 

 

박제민
낮에는 정치를 하고, 밤에는 정치학을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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