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호 시사잰걸음]

하나의 악마가 한국교회를 배회하고 있다. 세습이라는 악마가. 

영화 <검은 사제들>에 등장하는 악마는 자기 이름을 감춘다. 어떤 악마이든지 그 이름을 부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하면 쫓겨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습도 마찬가지. 세습은 세습을 세습이라 부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래서 세습은 자신을 ‘승계’ ‘계승’ ‘민주적 청빙’ ‘개교회의 권리’ ‘큰 십자가의 고통’ 등으로 속인다. 

세습은 어느 늙은 목사의 초심을 잃게 만들었다. 어떤 젊은 목사의 미래도 앗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교회를 점령했고 교회들의 모임인 노회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교단의 최고기구인 총회를 현혹시켜버렸다.

명성교회 세습을 허용한 통합 총회
2019년 8월 5일, 총회재판국은 명성교회가 김삼환의 아들 김하나를 담임목사로 세운 것은 총회헌법을 위반한 불법이므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법대로 결정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이로써 거의 2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끌어온 명성교회 불법세습 사건이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올해 9월에 열릴 총회가 재판국의 결과를 받아들이면 완전하게 매듭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세습은 치밀하게 총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총회 하루 전인 9월 22일, 김삼환이 갑자기 입장문을 발표했다. 얄궂은 말들뿐이었다. 불법인 세습을 저질러 교계와 교단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도 자기들은 끝까지 법대로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죄송한 마음’ ‘깊은 유감’ ‘부덕의 소치’ 같은 표현을 썼지만 어디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아가 이번 총회에서는 어떻게 좀 봐주면 안 되겠냐고 추파를 던졌다.  

저희 교회는 위임목사 청빙과 관련하여 당시 102회기 총회에 보고된 헌법위원회의 해석을 근거로 당회와 공동의회, 노회의 절차에 따라 진행했습니다. 그럼에도 교계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고 저희 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한국교회에 많은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제104회 총회가 더 이상 혼란 없이 은혜와 화합과 발전의 총회가 되도록 엎드려 기도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2019년 9월 22일, 김삼환 입장문) 

그런데 이 입장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과문으로 둔갑했다. “김삼환이 사과했대!”라는 소문이 퍼지자 결연했던 총대(총회 대의원)들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명성교회 불법세습 때문에 시작된 서울동남노회의 분쟁을 수습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수습전권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수습하기 위한 전권, 즉 모든 권한을 갖는 기구이다. 교단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습전권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위원이 된 사람들 다수는 대단한 일을 맡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근엄하게 일을 진행했고, 결국 그르쳤다. 

위원장을 맡은 채영남 목사는 화해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총회장을 하던 시절에는 이단과도 화해하자며 특별사면을 추진하다 거센 항의를 받고 탄핵 위기에까지 몰렸었다. 본인이야 임기가 끝나는 마당에 잇따라 웃으며 사과해서 어떻게 넘어갔지만, 애꿎은 사무총장은 총회장을 잘못 보필했다는 핑계로 공격을 받아 연임에 실패했다.

   
 

그래도 기왕 맡았다면 제대로 수습을 했어야 했다. 무조건 화해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법과 질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다. 명성교회 세습파들이 법을 어겼고, 한편에서는 법을 지키겠다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영남은 기계적인 화해를 주장하며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노회는 명성교회 세습파가 다시 장악해버렸다. 수습이 아니라 세습을 도와준 꼴이 돼버렸다.

채영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총회 현장에서 수습전권위원회 결과를 보고하면서 자신이 교회끼리 싸우는 동안 흑암의 권세가 몰려오는 환상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회에서 반드시 명성교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김삼환에게 한마디 할 기회를 주자고 했다.

그리고 진짜 김삼환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깜짝 등장. 입장문까지 더해 김삼환은 총회 기간 내내 정말이지 열심히 일했다. 앞으로 나온 그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어렸을 때 몰래 목욕했는데, 아버지에게 들켰고, 맞았고, 피가 났고, 그러자 아버지가 때리기를 멈추고 피를 닦아줬고,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됐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 전개가 이러냐 싶었는데, 탁월한(?) 설교자답게, 이런 예화를 통해서도 핵심으로 치고 들어갔다. 명성교회가 많이 맞았고 피투성이가 됐으니 이제 그만 품어달라는 것이었다. 명성교회의 불법세습을 반대하는 분들이 맞았다는 이야기는 왕왕 들었지만 명성교회 세습파가 맞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그는 이어서 ‘예장합동 교단은 없던 법도 만들어서 오정현을 살려줬다’며 은근히 총대들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노련함도 발휘했다. 사람들이 교단을 탈퇴하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갈 곳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와 총회와 어른들을 잘 섬길 수 있게 해달라며 읍소도 했다. 김삼환이 고개를 숙이자 총대들은 대단한 일을 맡은 대단한 사람이 된 듯 만족해했다.

그리고 다시 채영남이 등장해 원래 자료집에 실려 있던 명성교회 수습안과는 다른 내용을 갑자기 제안했다. 그놈의 수습전권위원회를 또 만들자는 것이었다. 위원은 총회장이 알아서 7명을 임명하고, 7명이 수습안을 만들면 이러쿵저러쿵 토론하지 말고 바로 결정에 부치자는 것이었다. 졸속도 이런 졸속이 없었지만 피곤하고 귀찮은 총대들은 압도적으로 찬성해버렸다.

총회 마지막 날인 9월 26일, 7명의 수습전권위원회가 수습안을 내놓았다. 이래저래 중재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핵심은 총회헌법에 있는 세습금지법에 예외를 적용해 김삼환의 아들 김하나가 2021년부터 명성교회를 세습하도록 허용해주자는 것이었다. 토론 없이 표결에 들어간 수습안은 역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명성교회 불법세습이 합법으로 바뀌는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총회헌법에 위배되는 총회결의는 무효
세습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에게 일개 교단의 헌법은 물론 헌법시행규정까지 찾아보게 한다. 모르는 것을 앎은, 그른 것을 고치는 힘이 되리라 믿고 뒤적여본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예장통합) 헌법시행규정 제3조(적용범위) 제2항은 이렇게 적고 있다.

적용순서는 총회헌법, 헌법시행규정, 총회규칙, 총회결의, 노회규칙(정관, 헌장, 규정 등 명칭을 불문한다.)과 산하기관의 정관, 당회규칙(정관, 규정 등 명칭을 불문한다.) 등의 순이며 상위법규에 위배되면 무효이므로 개정하여야 하며 동급 법규 중에서는 신법 우선의 원칙을 적용한다.

총회헌법이 최고이고 그다음, 다음, 다음에서야 총회결의를 쳐준다는 얘기다. 하위 규칙이 상위법에 어긋나면 무효라는 거다. 그러니까 총회헌법에 위배되는 총회결의는 무효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헌법을 초월해서 명성교회 세습을 허용해주자는 ‘총회결의’ 따위는, 세습을 금지하는 ‘총회헌법’에 위배되므로 간단하게 무효가 되시겠다. 

명성교회 세습파는 2018년 제103회 총회에서도 총회결의로 다 뒤집어 놓고 이번에는 왜 딴소리냐고 말한다. 무식한 소리다. 103회 총회결의는 총회헌법에 위배되지 않았다. 오히려 총회헌법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었다. 즉 명성교회 세습을 허용한 재판국 보고를 받지 않고, 그릇된 재판을 한 재판국 전원을 교체했으며, 김삼환이 은퇴한 목사이므로 세습을 해도 괜찮다는 똘똘한 논리를 들이 민 헌법위원회 보고를 받지 않은 것이므로 유효다. 

이의를 제기한다!
104회 총회 스스로도 자신들의 결의가 겸연쩍었던지 마지막에 이런 단서조항을 억지스럽게 적어놓았다. 

이 수습안은 법을 잠재하고 결정한 것이므로 누구든지 총회 헌법 등 교회법과 국가법에 의거하여 고소, 고발, 소 제기, 기소 제기 등 일절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

같잖아서 우스운 데가 있다. 총회헌법을 어겨서 무효인 총회결의를 왜 따라야 하나? ‘명성교회는 세습을 해도 된다’는 엉망진창의 결의에 대해 일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명령을 왜 따라야 하지?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김삼환의 아들인 김하나가 명성교회에 얼씬거리는 것 자체가 여전히 불법이다. 총회를 바로잡아야 한다. 

총회가 끝나자 세습의 태세전환이 빠르다. 김삼환은 총회 다음날 구역장들을 모아놓고 ‘총회에 가기 싫었는데 하도 와달라고 해서 갔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세습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강도”라고 표현했다. 명성교회는 자기 것이니 그것을 빼앗으려는 이들이 그의 눈에 ‘강도’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세습 악마에게 완전히 현혹된 늙은 목사, 그를 해방시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명성교회 세습파들은 총회의 수습안을 무시하고 김하나를 설교목사로 세워서 계속 설교를 하겠다고 했다. 세습 악마에게 휘둘리는 젊은 목사에게도 자유를 되찾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세습 악마에게 사랑하는 교회를 빼앗긴 성도들에게 다시 교회를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곳곳에서 자매와 형제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고 세습 악마에 맞서 싸움을 시작했다. 교회들은 이번 결의가 잘못됐으니 바로 잡으라며 결의를 이어가고 있다. 신학생, 신학자, 목회자들도 자기 이름을 걸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계 시민단체인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는 한국의 성도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여럿이 모이는 촛불기도회도 곧 열린다.

세습은 1년이 넘는 시간을 남겨 놓았다. 훗날 세습은 이것이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깨닫고 치를 떨게 될 것이다. 세습에 실패를! 세습에 실패를! 세습에 실패를! 지금 우리에게 시간이 있고, 무언가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박제민
20대 끝자락에 기독시민운동 판에 들어와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다. 낮에는 기독 시민단체 실무자, 밤에는 ‘동네교회청년’ 활동가로 살아가는 30대 청년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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