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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의 '조크'와 '웃음'에 대하여
[348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348호] 2019년 10월 28일 (월) 17:45:27 최은 goscon@goscon.co.kr

“깊이 파헤치면 해로운 사건이야. 겉껍데기에서 멈추자. 웃어라, 아들아.”
-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우르수스가 그윈플레인에게.

   
▲ 조커, 2019


조커는 어떻게 웃는 얼굴이 되었나
울어야 할 순간에 웃는 사람은 그로테스크합니다. 엄숙한 순간에 웃으면 무례하지요. 시도 때도 없이 웃으면 어떨까요? 그건 병이랍니다. <조커>(2019)의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걸린 병입니다. 원하는 때를 선택해서 웃을 수 없다면 차라리 항상 웃는 편을 택하기로 한 걸까요. 아서의 직업은 광대입니다. 언제 발작적으로 웃게 될지 모르므로, 아서는 사악할 수도 그로테스크할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울 수도 가련할 수도 있는 난감한 캐릭터입니다. 이 난감한 캐릭터 덕에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히어로물 최초로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서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었지요. “너는 세상에 웃음을 주기 위해 태어났어.” 아서의 노모 페니 플렉(프랜시스 콘로이)은 그가 어릴 때부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아직까지도 아서를 ‘해피’라고 부릅니다. 정작 아서가 행복할 일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아서는 우울증과 망상 등으로 일곱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복지 예산이 삭감되면서 상담서비스와 처방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동료 랜들이 손에 쥐어준 권총 때문에 실직을 하게 됩니다. ‘지하철 금융맨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고요. 점점 꼬여만 가는 사태는 그를 악명 높은 ‘조커’로 변모시킵니다. 출생의 비밀과 학대의 상처가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DC 최고의 악당은 탄생했죠.

물론 이것은 <조커>의 감독 토드 필립스와 명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해석이 새롭게 만들어낸 버전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2008)에서, 이제는 전설이 된 히스 레저의 조커는 자신의 흉터를 매번 다르게 설명했었죠. 그는 범죄단을 위협하면서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엄마가 부엌칼을 들고 방어하자 아빠가 엄마를 죽였다고 말합니다. “Why so serious?(왜 그렇게 심각하지?)” 이렇게 물으며 이 아빠는 아들의 입에 칼을 넣고, “웃게 만들어주마” 했다지요. 반면 이런 설명도 있습니다. 갱단에게 칼침을 맞은 아내를 위로하려고 스스로 얼굴에 칼을 대서 웃는 얼굴을 만들었는데 흉터가 무섭다며 정작 아내는 도망가버렸다고요. 팀 버튼의 <배트맨>(1989)에서 잭 니콜슨 버전의 조커는 화학약품에 의한 화상으로 얼굴이 망가진 경우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988년판 코믹스 <The Killing Joker>의 조커가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았다고 보아도 좋겠어요. “내가 조커가 된 이유가 단 하나여야만 하나?”

이 모든 조커들의 원형으로 알려진 것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입니다. 소설 속에서 젊은 광대인 그윈플레인은 ‘콤프라치코스’라 불리는 아동 매매업자들에게 납치당해 학대를 당했고, 항상 웃는 입을 갖게 되었습니다. 17세기 무렵 유럽에 실존했던 콤프라치코스는 주로 빈곤층의 아이들을 납치해서 귀족들에게 팔아넘겼답니다. 기형적인 인간들을 사육하고 수집하는 당대 귀족들의 ‘취미’를 위해 아이들의 외모를 최대한 변형시켜서 말이지요.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그윈플레인은 정치적인 희생양이 된 경우였습니다.

이야기마다 버전마다 조커의 정체나 사연이 불분명한 것은 조커의 자리에 어떤 ‘현실적인’ 악당이 들어앉아도 좋은, 폭넓은 변형과 해석이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조커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영화 <조커>에서조차 그의 출생이나 웃는 얼굴을 하게 된 사연이 반드시 하나의 정답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던 거겠지요. 웃는 입을 물리적인 흉터로 남길 필요도 없었을 만큼요. 구순열의 흔적이 있는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과 그의 23kg이나 감량한 마른 몸은 더할 수 없는 미장센(장면 연출)이 되어주었습니다.

   
▲ 점점 꼬여만 가는 사태는 그를 악명 높은 ‘조커’로 변모시킵니다.


진실은 우습고 농담은 슬프고
DC 히어로물인데 히어로가 없고, 주인공이 ‘조커’라는데 변변한 조크 하나 들을 만하지 않은, 암울하고 리얼한 영화 <조커>. 영화를 보며 베르베르의 긴 농담을 떠올렸습니다. 그의 소설 《웃음》은 프랑스의 ‘국민 개그맨’ 다리우스의 돌연사를 취재하는 기자들 이야기인데요.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 혹은 의지로 뛰어든 젊은 기자(뤼크레스)는 허구의 기사를 남기고, 진실을 밝혀야 할 저널리즘의 병폐에 염증을 느낀 중년의 기자(이지도르)는 쉽게 허구라고 인정되는―그러나 실상은 진실인―소설을 남겼어요.

진실을 말하면 웃고, 농담을 건네면 정색을 하는 이상한 세계. 그게 우리가 사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해요. 아무도 믿지 않을 진실의 기사를 써서 우스꽝스러워지느니, 언제든지 그건 농담에 불과했다고 허허 웃으며 빠져나갈 수 있는 소설 방식으로 나름의 진실을 말하겠다고 작심했던 거겠지요. 결국 이 소설은 허구의 형식만이 진실을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농담이고 역설인 셈입니다.

   
▲ 진실을 말하면 웃고, 농담을 건네면 정색을 하는 이상한 세계. 그게 우리가 사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해요. 


영화 <조커>에서 왜 그렇게 웃느냐는 병원의 심리상담사에게 아서는 답합니다. 농담이 생각났는데, 당신은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요. 그리고 곧 결코 농담일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에 앞서 로버트 드니로가 진행하는 생방송 코미디 쇼에 출연해서도 그랬죠. “조크 하나 더 해 볼까요?” 물론, 그것도 조크라고 하기엔 너무 끔찍했지요.

조커의 비극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꿈인 코미디언으로서 웃기려고 작심하고 던진 농담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조롱한 반면, 직업과 생계를 위해 광대로서 겪어야 했던 불운에 대해서는 도리어 환호했다는 것이지요. 가진 자들을 없애야 한다고 몰려드는 그의 추종자들과 그들의 폭력은 조커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어버렸죠. <조커>의 ‘농담’이 뼈아픈 것은 오늘 우리 현실의 수많은 ‘농담들’ 또는 ‘농담이었으면 하는 사실들’ 때문입니다.  

   
▲ 입은 웃지만 마음으로 웃지는 못하는, 혹은 울고 싶은데 웃고 있어야 하는 조커처럼 말이죠.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밀란 쿤데라는 웃음이란 본디 악마적인 것이라고 말했어요. 기본적 질서에서 벗어난 부조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이 ‘기본적 질서’란 흔히 ‘원’으로 표현되는 동질감과 일체감, 조화와 연합의 모양새를 의미합니다. 공동체의 연합을 깨뜨리고 원을 찌그러뜨리거나 끊어내는 어떤 존재들을 향한 우리의 웃음과 조크가, 정확하게 우리의 잔인함의 지표이겠지요. <조커>를 골똘히 생각한 요 며칠 동안 호아킨 피닉스의 명연기에 매혹되었지만 동시에 웃기지 않은 농담 같은 폭력의 잔상에 우울해지는, 분열적인 얼굴로 살고 있습니다. 입은 웃지만 마음으로 웃지는 못하는, 혹은 울고 싶은데 웃고 있어야 하는 조커처럼 말이죠. 요 사이 들려오는 우울한 뉴스들이 차라리 모두 농담이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고, 농담과 비웃음으로 둔갑한 현실이 아프기도 한 요즘입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영화이론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CBS TV 아카데미 ‘숲’에서 강의했다. 영화평론가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공저인 《영화와 사회》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가 있다.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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