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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 랜드> : 가까이서 보면 재료가, 멀리서 보면 이미지가 보입니다
[346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346호] 2019년 08월 28일 (수) 13:41:41 최은 goscon@goscon.co.kr
   
 

주께서 용서하실까?: <퍼스트 리폼드>와 <월-E>의 ‘타락’
폴 슈레이더의 영화 <퍼스트 리폼드>(2018)에는 ‘마이클’이라는 이름의 급진적인 환경운동가가 나옵니다. 마이클은 아내 메리(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임신중지를 요구해요. 환경오염과 이상기온으로 지구는 곧 폐허가 될 것인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세상에 생명을 ‘허락’하는 것은 큰 범죄라고 믿었거든요. 툴러 목사(에단 호크)와 상담을 하면서 마이클이 묻습니다. “주께서 용서하실까요, 우리가 세상에 한 짓을?”

영화에는 툴러와 메리가 상징적인 합일을 이룬 판타지 장면이 있는데요. 둘이서 몸을 포개고 날아가는 동안 그들은 찬란한 시원의 풍경을 지나 잿빛 쓰레기 더미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의 타락이 곧 세계의 황폐함이 되는 거지요. 픽사 애니메이션 <월-E>(2008)에서도 지구는 그렇게 쓰레기로 가득 덮여 있었죠. 청소 로봇 월-E 하나와 바퀴벌레만이 남아서 지구를 지키고 있던 황량한 이미지를 기억하실 겁니다. 책임을 져야 할 인간들은 우주여행을 떠나 버렸고요.

그것이 혹시 타락이고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라면, 그건 쓰레기 더미 자체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퍼스트 리폼드>의 마이클은 결국 자살을 택하는데요, 툴러 목사는 그로 인해 ‘퍼스트 리폼드’와 ‘풍성한 삶’ 교회의 가장 막강한 스폰서가 환경오염의 주범인 ‘바크’사의 회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더욱이 ‘바크’는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월-E>에서는 초호화 우주여행사 BnL이 “5년만 여행 다녀오시면 우리가 지구를 다 청소해 놓겠다”고 장담했죠. 하지만 승객들은 영원히 우주 미아가 될 형편이고, 본디 BnL은 환경오염을 조장한 상술로 거대해진 기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던가요.

그러므로 편의를 가장한 유혹, 선의나 대안으로 포장된 상술, 그리고 부당한 이윤의 면죄부가 되어주는 종교적인 행위(기부금이나 헌금)야말로 <퍼스트 리폼드>와 <월-E>에서 가장 돌이키기 어려워 보이는 타락의 형상입니다. 특히 <퍼스트 리폼드>는 이 구조적 모순에 교회가 깊이 개입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점을 아프게 폭로합니다. 마이클이나 툴러는 그래서 순교자와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보았겠지요.

반면 <월-E>는 뼈가 흐무러질 만큼(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 골밀도가 낮아졌다는 설정이었죠)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인간들에게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편을 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유사 이래 디스토피아 SF영화들이 주장했듯이 ‘대안은 사랑이다’라고 말하지만, 그 자리에 인간이 아닌 기계들의 사랑을 채워 넣었거든요. 그러니 어쩌면 이 귀여운 영화 <월-E>가 훨씬 비관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한 때 ‘쓰레기’라 불렀던 것들의 ‘구원’: <웨이스트 랜드>
그런가하면 영화 <웨이스트 랜드>(2010)의 주인공들은 성급히 ‘주의 용서’를 논하거나 희생양을 자처하지 않습니다. <노 임팩트 맨>(2009)처럼 우리가 각자 쓰레기 배출 없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고 설득하지도 않죠. 대신 쓰레기 문제가 왜 계급의 문제이고 내가 버린 것들이 어떻게 나를 설명하고 규정하는지, 에둘러 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쓰레기라고 여겼던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것을 지켜보게 하죠. 브라질 태생의 예술가 빅 무니즈(Vik Muniz)가 하는 일입니다.

빅 무니즈는 예술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재료들로 작품을 만들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설탕과 다이아몬드, 먹다 남은 스파게티나 장난감 같은 것들이죠. 무니즈를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이끈 것은 캐리비안 세인트 키츠 섬의 사탕수수 농장 아이들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해맑던 아이들이 점점 서글픈 어른이 되는 이유를 생각했다고 해요. 답은 설탕이었답니다. 어른들이 열여섯 시간 일하는 사탕수수 농장은 곧 아이들의 미래이기도 했습니다. 달콤한 설탕이 만들어지는 곳에서 아이들의 달콤한 행복은 지속될 수 없는 거였죠. 그래서 무니는 설탕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설탕 아이들(Sugar Children)”이라는 프로젝트입니다. 이처럼 무니즈의 작업에서 재료는 곧 의미였어요. 가까이서 보아야지만 ‘재료’와 질감이 보이고, 그것은 그 작품의 가장 고유한 생명력이 된다고, 그는 믿었던 것 같아요.

<웨이스트 랜드>에서 무니즈는 이제 자신의 고국 브라질로 갑니다. 세계 최대의 쓰레기 매립장이 있는 리우데자네이루 근교의 자르딤 그라마초에서 그는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카타도르(catador)’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크게 확대해서―그들이 주워온 재활용 쓰레기로―그들과 함께 모자이크를 만들어―다시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무니즈의 작업이었어요. 이 모든 과정에서 카타도르 본인들은 모델이면서 재료 제공자이기도 하고 공동작업자이면서 판매된 작품의 수익자가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해외 전시여행을 떠나기도 했죠. 빅 무니즈의 예술로 인해 그들은 달라졌습니다. 물론, 그들이 ‘예술가 무니즈’를, 특히 그의 위상을 달라지게 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우린 쓰레기가 아니라 재활용품을 주워요”
영화 말미에, 무니즈와 티앙이 대화를 나누는데요. 무니즈가 묻습니다. “현대 예술이 뭐라고 생각했죠?” 티앙이 답해요. “쓰레기라고 생각했죠.” 그런 티앙이 바로 그 ‘쓰레기(예술)’의 주인공이 됩니다. 반면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불렀던 것을 티앙은 ‘재활용 자원’이라고 고쳐 부르기를 즐깁니다. TV 토크쇼에 출연한 티앙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린 쓰레기가 아니라 재활용품을 주워요.” 티앙은 무니즈를 만나기 전에 이미 모두가 부질없다고 여겼던 ‘카타도르협회’를 창설했던 인물입니다. 
 

   
 

돌이켜보면, 무니즈의 예술 이전에도 그의 주인공들은 ‘삶’을 살고 있었고 나름대로 자존감과 존엄을 지키려고 애썼던 사람들입니다. 동료들과 먹을 스튜를 준비하면서 “다들 즐겁게 살아요, 쓰레기 더미에서 고기도 구워 먹으면서”라고 말하던 아르마가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그들의 자존감이란 자주 “그래도 나는 마약은 안 하잖아” “나는 최소한 몸을 팔지는 않지”와 같은 상대적인 평가에 의한 것이었어요. 쓰레기가 예술이 되고 자신의 주름진 얼굴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작품인 것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고, ‘다른 선택지’가, 또는 선택의 주도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죠.

스스로 변화와 가능성을 목격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인간과 창조세계의 존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누군가에게 예술이 되고 꿈이 되고 쓸모가 있는 무엇이라면, 그건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겠지요. 버리기 전에 손에 들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웨이스트 랜드>에서 ‘쓰레기’는 엄연한 현실이고 실재이면서 동시에 은유이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이지만 매우 ‘영화적(극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입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영화이론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CBS TV 아카데미 ‘숲’에서 강의했다. 영화평론가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공저인 《영화와 사회》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가 있다. 영상문화연구소 ‘필름포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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