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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햄스테드〉(2017)
[337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337호] 2018년 11월 28일 (수) 15:23:35 최은 goscon@goscon.co.kr
   
 

1년 전 남편과 사별한 에밀리(다이앤 키튼)는 런던 북부의 녹지대인 햄스테드의 고급 빌라에 살고 있습니다. 제법 우아한 생활을 했던 흔적이 보이지만 실상 남편이 에밀리에게 남긴 것은 빚과 세금, 그리고 젊은 애인과 버젓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어요. 배신이었죠. 영화 〈햄스테드〉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삶이 온통 껍데기뿐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노년의 이야기입니다. 중년과 노년 사랑 전문가인 감독 조엘 홉킨스는 전작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2008)에서 그랬던 것처럼, 에밀리에게도 뜻밖의 사랑을 선물합니다. 미국남자 하비(더스틴 호프만)가 영국여자 케이트(엠마 톰슨)를 만났듯이, 이번에는 미국여자 에밀리가 아일랜드남자 도널드(브렌던 글리슨)를 만나는데요. 둘 다 태생적으로 주류 영국 사회의 일원이 되기는 어려운 형편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좀 더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은 한 쪽이 낯선 곳으로 멀리 떠나와서 시작된 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널드는 에밀리의 집 건너편 숲에서 17년째 살고 있었거든요. 그동안 전혀 보이지도, 보려고도 않았던 무언가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순간, 역사는 시작되지 않던가요.

“나, 도널드는 홈리스가 아닙니다”
실직 후 질병수당을 받기 위해 관료사회의 고압적인 제도와 부당함에 맞서야 했던 영국의 노동자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야기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에서 주인공은 이런 글을 남겼지요.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햄스테드〉의 숲에 사는 남자 도널드 호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홈리스가 아닙니다. 내게는 내 손으로 만든 집이 있어요.” 고급 빌라촌과 인접한 공원 부지에서 한 남자가 어떻게 재활용 쓰레기로 집을 짓고 자기 정원을 가꾸며 17년 동안이나 살 수 있었을까 싶은데요. 놀랍게도 이 이야기에는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

해리 헨리 할로스라는 인물이 1987년부터 줄곧 햄스테드 히스의 숲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답니다. 수많은 사람이 산책하는 곳이었지만 이 사람이 발견된 것은 햄스테드 북쪽에 대저택 소유자가 이 지역의 재개발을 추진하면서부터였습니다. 도시계획의 ‘방해물’로 출몰한 거죠. 그에게 곧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졌지만, 할로스는 결국 재판에서 승소합니다. 영국법이 12년 이상 거주한 사람에게 소유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88세로 사망하기까지 해리 헨리 할로스는 햄스테드 히스의 오두막에 살았고, 사망 당시 그 땅의 가치는 200만 파운드(약 30억 원)에 이르렀답니다. 그는 그 돈을 두 곳의 자선단체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켄 로치가 정색을 하고 후기자본주의 세계에 도전했다면, 〈햄스테드〉는 거기에 낭만을 덧입힙니다. 그래서 에밀리와 도널드는 사랑을 하고, 그들의 남은 삶은 조금 덜 퍽퍽해지겠지요. 물론 영화를 보는 우리의 마음도 훨씬 편안합니다. 빚더미에 앉았던 에밀리가 수십 억 자산가가 된 도널드의 오두막으로 훌쩍 날아드는 결말이 아니어서 더 좋습니다. 매사에 ‘관리인’을 두고 타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았던 에밀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신변을 정리하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우겼던 독불장군 도널드는 제 일처럼 발 벗고 뛰어든 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집을 지켜냈어요. 그들은 동등하게 성장했고, 이제 나란한 출발점에 서게 됐다고나 할까요. 

   
 

경계 이쪽과 저쪽, ‘부끄러움’에 대하여
도널드의 경우를 조금 더 들여다봅니다. 그 남자는 왜 아무도 모르는 숲에서 살기로 했을까요? 그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숨어들었던 거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 돌볼 용기가 없었던 무기력을 부끄러워하고 평생 자책하면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누구도 해치지 않고, 또는 세상에 나쁜 것(이를테면 공해나 쓰레기)을 더하지 않고 조용히 그저 존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에밀리의 경우는 훨씬 극적이군요. 이전에도 에밀리는 비교적 착하게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봉사하면서 이런저런 공익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집값 하락의 원흉인 낡은 병원과 공원을 밀어버리고 고급빌라 단지를 재건축하자는 주민청원에는 쉽게 서명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 공원에서 도널드를 발견한 이후 에밀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던 피오나(레슬리 멘빌)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빌라 건축업자가 네 남편이라는 이야기는 언제 할 거야?” 선행과 봉사의 이면에 권력과 이권이 작동하는 구조가 보이고, 이전에는 그냥 넘겼던 일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던 거지요. 그들이 도널드를 흉물 한가운데 소위 ‘알박기’로 버티고 있는 ‘거지’로 여긴다는 사실도요.

그 ‘거지’가 에밀리의 빌라 다락에 나타났을 때, 고상한 빌라의 주민들은 벌레를 본 듯 기겁을 합니다. 에밀리는 부끄러워했어요. 그의 부끄러움은 도널드를 비참하게 했구요. 하지만 그건 도널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고 에밀리는 고백합니다. 피오나의 소개로 만난 세무사 제임스(제이슨 왓킨스)가 자신의 빚과 세금을 무료로 관리해주는 상황에 안도하면서, 에밀리는 그가 에밀리의 호감을 마음껏 착각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어요. 도널드가 숲에서 나오기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고급빌라 바깥으로 나오는 일은 에밀리에게도 두려운 일이었지만, 에밀리는 이웃들의 위선과 이기심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로 합니다. 따라서 제임스가 아닌 도널드를 선택한 것은 에밀리에게 (다니엘 블레이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일이었습니다.

연어 양식 반대와 ‘오두막을 지킵시다’ 같은 일에 열심인 젊은 청년 에릭(휴 스키너)과 파이프 씨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특히 파이프 씨는 도널드가 그곳에 17년째 살았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는 인물입니다. 언뜻 무례하고 거칠어서 전혀 남을 생각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그가 증언을 마치자, 검사가 그에게 물었어요. “새벽 그 시간에 거기까지 가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도운 이유가 뭐요? 상식적이지 않잖아요?” 파이프 씨가 답합니다. “나도 한 때 홈리스였소.”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참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왜 ‘그렇게’ 사는 거죠?” 그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 사람인지, 함께 궁금해하는 사람인지, 그러니까 나는 과연 어느 쪽인지, 매해 ‘올 해가 가장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시간을 잠시 붙잡아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요.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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