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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몸, 당신의 ‘교회’에서 일어난 일
[336호 최은의 시네마 플러스] 〈스포트라이트〉(2015)
[336호] 2018년 10월 29일 (월) 16:26:29 최은 goscon@goscon.co.kr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도시 보스턴은 하나의 거대한 ‘교회’입니다. 실제로 미국 가톨릭교회의 대교구이기도 했지요. 이 ‘교회’에서 심각한 성범죄가 일어났어요. 게오건이라는 신부가 80명의 어린이를 성추행한 사건입니다. 그는 특별한 처벌 없이 전출되었고 이 점을 추기경도 알고 있었다는 증거 문건이 존재한다는데요. 지난 6개월 동안 이 사건에 대해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가 실은 기사는 단 두 건이었답니다.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부임한 편집국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은 이 사건을 가장 먼저 파헤치고 싶어 합니다. 베테랑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에 이 미션이 주어졌어요. 로비(마이클 키튼)를 팀장으로 마이클(마크 러팔로), 사샤(레이첼 맥아담스), 맷(브라이언 다시 제임스)이 함께 움직입니다. 과거의 기사 검색부터 현재 생존자들과 가해자들을 만나는 일까지, 취재를 계속하면서 이 일이 본디 각오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일이라는 것을 이들은 알게 됩니다. 몇 명의 신부가 아니라 ‘교회’를 건드리는 일이었거든요. 〈보스턴 글로브〉는 구독자 53%가 가톨릭 신자인 지역신문이었습니다.

범죄와 은폐의 패턴
작가 공지영은 《해리》(2018)에서 악마는 진부하게 하던 것을 계속하면서 오직 흉내 내고 베낄 뿐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부지런할지는 모르지만 창조적이지는 못한 것이 바로 악의 속성이겠지요. 저에게는 이 말이 악의 패턴을 읽어야 한다는 도전으로 읽혔습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만난 보스턴의 악도 그랬습니다. 거기엔 일정한 패턴이 있었어요.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어린 사람의 집에 교구 신부가 찾아갑니다. 부모는 천상의 신이 방문한 듯 송구해서 어쩔 줄을 모르죠. 약간의 도움과 위로를 전하며 신부가 아이와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몸은 물론 영혼과 믿음까지 빼앗기고 술과 약물에 의존하거나 적지 않은 경우 자살에 이릅니다. 누군가 사제를 신고해서 ‘윗선’에 보고가 되죠. 그 후 피해자 가정은 약간의 합의금을 받고 신부는 ‘병가’를 ‘당’하거나 말없이 다른 교구로 전출되고, 그가 새로 부임한 교구에서는 또 같은 패턴의 ‘사고’가 발생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 사이에 한두 단계가 추가되기도 해요. 예컨대 누군가 〈보스턴 글로브〉 같은 언론에 성추행 신부들 명단을 (스무 명이나) 보낸다든가, 재판을 청구한다든가 하는 일들 말입니다. 그래도 전체 패턴에 큰 변화를 주거나 패턴 자체를 끊어내지는 못했어요. 2001년의 스포트라이트 팀과 편집국장 마티는 그 일을 해내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신앙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큰 저항에 직면하지요. 예컨대 고교 동문인 가톨릭 관계자들이 팀장 로비에게 사건 취재를 덮으라고 설득합니다. 그들은 그래도 교회가 좋은 일을 많이 해왔지 않느냐고 말해요. 교구 신부는 강론에서 지식도 중요하지만 믿음은 더 중요하다고 설파합니다. 과거에 유사한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로비의 친구는 여기서 멈추라고 충고하며, 조용히 살고 싶다고 입을 닫고요. 협조적인 것처럼 보였던 다른 변호사 에릭(빌리 트루덥)은 오히려 사건을 덮고 합의금 일부를 챙기는 것으로 성직자들의 범죄에 기생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지요. 문건 공개 청원을 판결할 판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추기경은 또 어떤가요. 새로 부임한 마티와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그는 충고도 경고도 아닌 교묘한 말로 마티를 압박해 옵니다. 보스턴은 작은 마을이라고, 큰 단체들끼리 공조가 중요하다고 말이죠. 그러고는 교회가 최대한 신문사를 돕겠다고 말하며 가톨릭 교리문답서를 선물합니다. 마티는 신문사가 일을 제대로 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일어섭니다.

거리를 두고 보면 보이는 것들
교구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인물로 편집국장 마티 외에 변호사 미첼 개러비디언(스탠리 투치)이 있었습니다. 개러비디언은 교구 성범죄 피해자 84명의 개별 소송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데요. 개러비디언은 아르메니아인이었어요. 한편 마티는 유대인이었죠. 개러비디언과 마티가 보스턴 출신이나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점이 시사해주는 바가 있습니다. 그들은 소위 ‘교회 밖’ 사람들이었어요.

이 일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고 개러비디언이 마이클에게 말했습니다. 결국 스포트라이트 팀은 그들의 도움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신부가 보스턴에만 최소 70명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 온 가장 결정적인 도움은 보스턴 출신 기자들과 시민들이 거리를 두고 사안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회사 앞 가톨릭 재단의 모교를 매일 바라보며 출근했고 동문들을 친구로 두고 있는 로비는 물론이고, 독실한 신자인 할머니를 모시고 매주 성당에 나가던 사샤, 언젠가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교회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던 냉담자 마이클을 포함해서, 그들은 어떻게든 그 사회와 공동체로 묶여 있었습니다. 사건을 취재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고향 보스턴을 끔찍한 범행의 장소로 인지하게 됩니다.

“그냥 성폭행범들이에요!” 급기야 마이클이 외칩니다. 동성애도 뭣도 아니고, 그것은 그저 위력에 의한 성범죄였다는 거죠. 목회자의 성범죄를 다룬 한국영화 〈로마서 8:37〉(2017)에서 주인공도 그렇게 말했죠. 성범죄를 저지른 강요섭 목사에게 전도사인 기섭이 외칩니다. “그냥 범죄자예요, 형은!” 우리는 이것을 ‘상식’이라고 부릅니다.

   
▲ 영화 <로마서 8:37>의 한 장면.

교회의 ‘하나됨’을 확인하는 역설적인 방법
그리하여 ‘상식적으로’ 생각해봅니다. 범죄자를 옹호하느라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내치는 것이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는 것일까요, 범죄자로부터 희생자와 생존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똘똘 뭉쳐서 해야 할 일일까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를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 개러비디언의 말입니다. 우리가 잘 쓰는 말 ‘공동체’는 공동 운명체이기도 하고 공동 책임체이기도 할 겁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멤버들이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서서 비로소 확인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누군가 목숨을 걸고 보낸 제보를 가볍게 여기고 묵살한 것도 다름 아닌 ‘나’와 우리이고, 인생을 망가뜨릴 성추행의 피해자가 그 사람이 아니고 나일 수도 있었다는 깨달음, 성범죄 성직자 치료소가 바로 우리집 앞에 있고, 언제든 내 아이들이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뒤늦게 그들에게 찾아왔어요. 돌이켜보면 강남역 10번 출구와 팽목항의 깨달음도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왔었죠.
많이 늦었지만 이제, 한국교회의 차례인가 합니다.

 

최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고(영화예술학 박사), 중앙대와 청어람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영화 연구자로 대중영화가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부르심에 따라 비정규직 말쟁이 글쟁이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와 사회》(공저), 《알고 누리는 영상문화》(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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