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호 사람과 상황] “작아서, 지방이라서 ‘아직’이라고만 한다면 바뀌는 게 있을까요?”

제1호 교회 리필 스테이션 ‘마당’을 운영하는 다리놓는교회 김인규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제1호 교회 리필 스테이션 ‘마당’을 운영하는 다리놓는교회 김인규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죄책감이 반복되면 무력감이 찾아온다. 그러다 무감해진다는 것을, 쌓이는 쓰레기를 보고 깨달았다. 버려지는 일회용 마스크, 배달과 택배 주문으로 쌓이는 포장재들 때문이다.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되거나, 제3국으로 수출되었다가 긴 시간이 흘러 결국 내 몸속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은 괜찮기에 지금은 눈을 감았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가난의 문법》(푸른숲)은 쓰레기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치우는 것임을 상기하게 했다. 미비한 자원 순환 정책과 재활용 산업 구조,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쉽게 쓰고 버리는 소비자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들을 존재하게 하며 이들(특히 여성)을 착취한다고 지적한다. 깨끗하게 씻어 분리배출을 해도 햇반 포장재처럼 ‘OTHER’로 표기된 복합 재질 플라스틱과 색색의 페트병은 재활용이 어려워 결국 소각된다는 것도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다. (지난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추산에 따르면, 소각되는 플라스틱 양을 제외한 국내 폐플라스틱 실질 재활용률은 21%다.)

이에 쓰레기 수거 및 순환을 위한 정책들을 정부와 기업에 촉구하는 동시에 소비자도 쓰레기 배출을 줄이자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리필 스테이션’이 주목받고 있다. 리필 스테이션은 포장재 없는 친환경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가게를 이르는 말로, ‘알맹상점’(서울 마포구)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60여 곳이 있다(알맹상점이 제작한 ‘제로 웨이스트 숍 대동여지도’ 기준). 이곳에서는 샴푸바, 대나무 칫솔 같은 플라스틱 없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고, 세제나 샴푸, 화장품, 간단한 식재료 등을 공병에 담아갈 수도 있다.(공병을 갖고 가지 않았더라도 가게에서 용기를 대여할 수도 있는데 대부분 보증금을 받고 반납하면 돌려주는 식으로 운영한다.) 

그중 ‘마당’은 청주 다리놓는교회에 세워진 ‘교회 리필 스테이션’ 1호이면서, 중부권 전체에서도 ‘최초’다. 어쩌다 교회에서 리필 스테이션을 시작했을까? 과연 손님이 있을까? 서울에서 두 시간 넘게 차로 달려 ‘마당’이 위치한 다리놓는교회에 도착하자 건물 앞에 세워진 작은 간판과 책장, 옷이 걸려 있는 낮은 행거가 눈에 띄었다. 내부에 들어서자 1층 공간에는 칸막이 없이 보이차 가게와 리필 스테이션, 교인들이 교제하는 테이블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 담임목사이자 6년째 청주 ‘복상지기’로 활동 중인 김인규 목사는 두 가게를 동시에 꾸려가고 있다.
예배 후, 김 목사는 처음 보는 신기한 방식으로 그러나 능숙하게 보이차를 내려줬다. ‘마당’을 직접 마주하자 궁금함이 더 늘어나 생각보다 많은 것을 묻고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해 12월 6일 교회 예배당에서 진행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목회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었어요. 청주에서 다음 세대, 이 세대,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는데, 다음 세대가 교회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들 중심의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에 11시부터 7시까지 가게를 열고 있어요. 출산 휴가를 가기까지 아내는 꽃집을, 저는 보이차집을 교회 1층에서 운영하면서 함께 리필 스테이션을 지켜왔습니다.
 

요즘 주목받는 리필 스테이션을 교회에서 운영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한데요.
2년 전 주변 목사님들의 추천과 소정의 교회 활동들이 근거가 되어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 ‘녹색교회’로 선정되었어요. 그전까지는 기후위기나 기후 정의, 생태를 돌봐야 하는 교회의 책임을 잘 몰랐는데 그때부터 공부하면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죠. 예수 복음을 저는 ‘빨간 복음’ ‘예수 피’라고 표현했는데 그것만 믿어서 천국 간다고 얘기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녹색 복음’도 함께 얘기해야겠다고 깨달은 거죠. 부랴부랴 교회 안에서 플라스틱 안 쓰기, 텀블러 사용하기 등 할 수 있는 걸 실천했어요. 이후엔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이 기획한 충청 환경선교사 세미나에 참여해서 청년들과 같이 강의 듣고 나누면서 리사이클 문화와 리필 스테이션을 알게 되었고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교회 1층 한 구석에 자리한 리필 스테이션 '마당' ⓒ복음과상황 정민호

 

교인들이 가져온 장바구니와 용기들 ⓒ복음과상황 김다혜
교인들이 가져온 장바구니와 용기들 ⓒ복음과상황 김다혜

청주를 포함한 중부권에는 리필 스테이션이 없었죠?
서울엔 많이 생겼다는데 청주에도 생기려면 4-5년이 걸릴 수 있고 어쩌면 안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빨리 시작하게 된 거죠. 가까이 사는 사람들끼리 함께 플라스틱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교회에서 십시일반 돈과 마음을 모았어요. 코로나 시기, 교회가 기피의 대상이 됐는데 청년들이나 성도들, 이웃 사람들이 세제 받으러 교회에 온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어떻게든 이 시대에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게 하자는 마음으로요. 생태 운동에 나섰다기보다 목회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이 상황을 살아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됐어요.
 

세제 받으러 교회로 온다는 게 흥미로워요. 말 그대로 ‘또 다른 교회 이용법’이 될 것 같은데요.
코로나 시기 가장 부딪혔던 건 목사로서의 존재, 그리고 교회로서의 존재였어요. 앞으로 제가 못해도 35년은 목회를 해야 하는데 이 시대가 더 이상 목사를 필요로 하는 것 같지가 않았죠. 또 교회라는 공간을 굳이 고수해야 하는지 고민했어요. 온라인 예배를 하거나 작은 공간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이 둘의 공통점은 ‘쓸모’였어요. 나는 쓸모 있는 목사인가, 우리 교회가 쓸모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라는. 많은 책들과 지성인들은 ‘구독 신앙’이나 교회의 플랫폼화를 말하더라고요. 좋은 말들이지만, 다 기술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영성은 (유튜브 교회 채널이나 설교 영상) ‘구독’을 누르고 온라인 헌금을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는 않잖아요. 영성은 삶을 서로 교류하고 모방하며 살아내는 건데, 함께 배워나가는 공동체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성도들에게 영상예배는 하겠지만 거기에 매달리진 않겠다, 기술이 미진해서 교회 부흥이 안 된다면 감당하겠다고 했어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인 삶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목사가 설교만 하고 성도가 성경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플라스틱을 안 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거죠.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리필 스테이션을 해보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 교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반감은 없었지만 환영하진 않았어요. 2-3년에 걸쳐서 생태 문제를 함께 공부하고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있다는 걸 소개받았지만 정작 우리가 하자고 했을 땐 대체로 그게 뭐냐는 반응이었죠. 그런데 한두 명의 청년들이 깊은 관심을 보였어요. 제가 쉬고 싶을 때도 청년들이 정보를 공유했고요. 당시 아내가 임신 막달이어서 천천히 갈까 했는데 청년들이 제 엉덩이를 차는 느낌이 들더라고요.(웃음) 청년들이 으쌰으쌰 하는데 목사로서 받쳐줘야겠다, 애 나오기 전에 같이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중 불편함을 표시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없나요?
제로 웨이스트 관련해서는 없는 것 같아요. 어른들도 당신들이 젊었을 때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금방 동의하시죠. 동의하지 않거나 관심 없고 잘 몰라서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눈치 보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하려고 해요. 섣불리 이끌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그저 천천히 이런 삶이 있다고 보여주는 거죠. 사실 저도 일상에서 제가 세운 기준들을 다 지키지 못하거든요. 아이가 태어나고 매일 기저귀를 몇 개 쓰나 체크하고 젖병도 플라스틱인데 괜찮나 아내랑 웃으면서 씁쓸하게 얘기해요. 그런데 그걸 각성하는 것도 좋은 효과라고 생각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각성 정도를 하면서 회개했으면 좋겠고요. 그런 움직임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기업문화나 정책에 압박이 되고 산업구조가 개선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 번에 바꾸진 못하겠지만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코로나19로 생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사회 시스템, 삶의 모습을 전환해야 한다고들 하죠. 그런데 습관이 바뀌지 않는데 삶이 바뀔까요? 실제로 손님 두 명 중 한 명은 인터넷보다 물품 가격이 싼지 물어봐요. 그러면 좀 정색하면서 대답하죠. 인터넷보다 싸게 팔지 않고, 교회라서 싸게 팔자는 마음도 없다고요. 지구 보호를 위해서 비용을 더 내는 게 맞지, 싸게 사면서 지구까지 보호하려고 하면 욕심쟁이라고요. 성도들도 이게 목회에 큰 도움이 되겠냐고 물어봤어요. 그런데 교회 올 때 성경책만 끼고 오는 게 아니라 집에서 안 쓰는 플라스틱 통 가지고 와서 세제 담아가면 교회의 쓸모가 하나 더 생기는 것 아닐까요? 주변에 자취하는 청년들도 쌀 한 포대씩 사기 어려우면 여기서 파는 거 조금씩 사가면 되는 거고요. 선교적 차원에서도 해야 할 일인 것 같고 주변에 도움이 될 거라고 설득했죠. 올해(2020년)는 텃밭도 만들면서 교회 마당에 아이들이 직접 씨를 뿌리고 거두는 기쁨을 누렸어요. 이렇게 목사가 수고해야 할 일을 하면서 교회 한 귀퉁이라도 바꿔서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데 여전히 교회에서 ‘플라스틱 쓰지 말자’고 하면 이상하게 낯설어요.
교회가 영성만 훈련하고 관리하면 되지 생각했는데 “플라스틱 쓰지 맙시다” 하면 불편하죠. 교회 안에서 세제 남용하면 서로 눈치가 보이니까요. 그런데 불편하면 잘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불편하게 소비해야 하고 불편하게 생활신앙을 해야 하는데, 기술이 좋아지고 자본이 생기니까 다 편리한 삶으로 만족하면서 이게 마치 우리가 쌓아온 영성인 것처럼 착각하니까요. 그런데 코로나로 이 모든 게 헛것이었다는 것이 들통나버렸잖아요. 교회 건물이 없어도 된다고 말하지만 이런 대안적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공동체만으로는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느끼는 데 한계가 있어요. 또 그걸 다음 세대에게 가르칠 교육의 장으로서도 분명히 필요하고요. 잘 모르지만 한번 만들어보자 밀고 나가는 거죠.

원하는 만큼 썰어서 무게를 재고 가져갈 수 있는 비누. ⓒ복음과상황 정민호
원하는 만큼 썰어서 무게를 재고 가져갈 수 있는 비누. ⓒ복음과상황 정민호

도착해서 물건들을 봤는데 쌀이랑 계란을 소량으로 판매하는 리필 스테이션은 처음 봐요.
지역주민들이 만든 제철 쌀이에요. 청주는 소도시지만 동네 사람들이나 성도들이 작게 농사짓는 걸 제철에 한시적으로 팔죠. 근거리 농촌에 위치한 교회 목사님들과 교류하면서 농사짓는 분들과 연결되기도 했어요. 또 근처 사시는 저희 부모님은 닭장을 하시는데 거기서 얻은 청란을 이곳에서 팔기도 해요.

가장 궁금한 게, 자금 마련은 어떻게 하셨나요?
그렇게 2-3개월 동안 부랴부랴 준비하면서 청년들과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얘기를 나눴어요. 어차피 교회 사람들이 쓸 물품이니 멤버십 형태로 3만 원이나 5만 원 정도씩 마일리지를 쌓아서 운영을 이어가자는 얘기였어요. 그렇게 해서 절반은 동의하는 교인들의 출자금으로, 절반은 아내와 제가 교회에서 보이차와 꽃집을 운영하면서 모았던 돈에서 사비를 털어서 시작했죠.


준비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꼽는다면요.
정보였죠. 교회에서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한 사례가 없으니까요. 가게를 연 건 지난달(2020년 11월)인데 준비는 9월부터 했어요. 물건을 어디서 해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물품들이라면 대량으로 사다놓고 소분하면 되는데 친환경 제품이어야 하니까 유통할 때 가격 맞추기가 힘들어요. 저희한테 줄 수 있는 단가나 물량도 몇 백 개 단위인데 한 물품을 사는데도 몇 백만 원이 드니까요. 아내와 제가 리필 스테이션 몇 군데에 물어봐서 물품을 어디서 공급받는지 슬쩍 물어보고 그곳에 직접 연락을 했어요. 사정을 설명하고 많이 싸게 안 해줘도 되니까 소량으로만, 인터넷 가격만 맞출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작은 비누공장 사장님 도움이 컸어요. 없는 물품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인터넷으로라도 주문해놔요. 그렇게 해서라도 이어가야 하니까.
 

설교 준비에 보이차집 운영에, 리필 스테이션까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렵죠.(웃음) 교회가 크지 않다보니 담당 간사나 청년 알바 고용이 어려운 형편이에요. 저도 예배는 예배대로 준비해야 되고 운영에 올인을 못하니까 분명 한계가 있지만 감수하고 있어요. 기회가 되면 청년들 중에 알바 형태로 전담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맡기고 교회는 지원만 해주는 형태로 돌리고 싶어요. 그게 가장 간절한 소망이에요.
 

청주 독자모임 복상지기로도 6년째 활동하고 계시죠.
2014년도 즈음 지기를 처음 신청했어요. 신대원 학생일 때 담당 교수님이 ‘복음과상황 정도는 읽어라’ 하셔서 복상을 처음 접했죠. 이른바 ‘은혜 되는’ 얘기들이 많아서 계속 읽게 됐어요. 청주 지역에는 복상이 잘 안 알려져 있었는데, 청년들이랑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는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를 빌리고 청년들을 모아서 모임을 시작했죠. 그동안 다른 교회 전도사님들, 젊은 목사님을 비롯해서 청주에서 공동체를 찾는 분들이 수소문해서 오시거나 서울에서 독자모임 하시던 분들이 방문하기도 했어요. 이 청년들이 리필 스테이션을 열심히 추진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도 보수적인 교회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주제들을 복상을 통해 접하면서 목회적, 설교적 관점을 넓히고 있고요.

작년 5월 청주 독자모임 (사진: 김인규 제공)
작년 5월 청주 독자모임 (사진: 김인규 제공)

리필 스테이션을 함께 추진한 복상 독자모임 청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독자모임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저희 교회와 깊은 관련자가 된 친구들이예요. 주중에는 청주에 있다가 주말이면 서울 본가로 올라가는 친구들인데 생태 문제에도 많은 관심이 있더라고요. 주변에 살고 있어서 생활공동체로서 이곳에 비정기적으로 마일리지를 쌓죠. 그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기도 했어요.
 

그분들과 함께 예배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니 아쉬울 것 같은데요.
아쉽죠. ‘언제까지 이방인 할겨?’ 이러는데, 한편으로는 여기 등록한 청년들이라고 해서 늘 사이가 좋지는 않아요.(웃음) 거리 둘 때는 적당한 거리를 둬야 오래 가더라고요. 그 친구들 만난 지도 3-4년째인데 인생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저에게도 오고, 다니는 교회 목사님한테 가기도 해요. 한 교회였다면 오히려 서로 상처받을 일도 있을 텐데 같이 활동만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죠. 최근엔 리필 스테이션뿐 아니라 그 친구들과 교회 이름을 빼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찾다가 동네 산을 지키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부모산 사람들’이라고 플로깅(Plogging, 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스웨덴에서 시작됐다-편집자)을 시작으로 만든 단체인데 한 달에 한 번 등산하면서 지역주민들과 만나고 이곳도 소개하고 있어요.
 

손님들 가운데 교인과 일반 시민들의 비율은 어떤가요?
반반이에요. 30명 정도의 교회 공동체인데 가까이 사시는 분들이 아니니 평일에 올 수 있는 친구는 대여섯 명 정도죠. 또 이 동네 분들뿐 아니라 알음알음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일주일에 두세 팀 정도 세종에서 가장 많이 와요. 서울 문화를 아는 공무원들이 중부권에 리필 스테이션이 있다고 해서 왔다고, 물품 좀 더 준비해달라고 하고 가시죠. 아무래도 젊은층이 많아요. 아니면 젊은층이 부모님 데리고 와서 설명을 하죠. 청년들은 이걸 새로운 소비문화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몇 그램씩 사가는 걸 보면서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부모님한테 막 설명하면서 요즘엔 이러고 살아야 한다고 하고요.
 

준비 없이 온 손님들에게 포장 용기를 빌려주기도 하고, 또 그와 별개로 교회 차원에서 먹거리나 재활용 물품을 무료로 공유하는 일도 하신다고요.
교회 성도들에게 광고해서 집에 남는 락앤락, 텀블러, 쇼핑백 등을 비치했는데, 가져가서 돌려주신 손님은 아직 없어요.(웃음) 또 교회 앞마당에도 옷이랑 가방, 먹을거리를 뒀는데 다 무료거든요. 원래 취지가 공유 공간이에요.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고 가져오자는. 처음엔 성도들이 염려하시더라고요. 거지에게 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냐, 요즘 한국에서 누가 이런 걸 가져가겠냐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가져가시더라고요. 이곳에 이사 온 청년들도 여기에서 머그컵이나 책을 가져가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여길 알게 된 또래 청년은 자기가 입던 옷 정리했다고 드라이클리닝까지 다 해서 갖다놓고 갔어요. 우리 교회 청년들이 복 받았죠. 하나씩 다 가져가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교회 입구에 위치한 공유마당.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거나 안 쓰는 물건을 갖다둘 수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교회 입구에 위치한 공유마당.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거나 안 쓰는 물건을 갖다둘 수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짧지만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세종에서 오신 모녀가 생각나요. 두 분 다 교회 안 다니는 분들이었고, 딸은 교회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딸은 세종에서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죠. 어머니는 부모로서 지원해줘야 하는지 같이 고민하면서 탐방하러 오셨고요.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저는 그 딸을 응원해줬어요. 이건 해야 하는 일인데 세종이라면 운영이 될 거라고요. 그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당신 남동생은 신앙생활을 곧잘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긴 누가 봐도 교회 건물이라 예수 안 믿으면 들어오기 힘들 것 같다. 그 딸도 내리면서 그랬대요. ‘교회네? 장사 안 되겠다.’ 당연히 장사 잘 안 된다고 했죠.(웃음) 그런데 이어서 ‘교회가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다. 교회가 기후 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처음 들어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모든 어깨에서 시름을 내려놓으면서 감사했어요. 하나님이 제 마음에 목표했던 걸 보여주신 것 같아서요. 리필 스테이션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면서 교회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목회자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여주면서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얻는 것 말이죠. 정말 흐뭇한 마음이 들었죠. 200-300만 원 출자를 했는데 두 모녀가 교회에 대해 선한 인식을 갖게 되고 교회 문턱을 넘은 거니까요. 이런 일들을 더 많은 교회가 했으면 좋겠어요.
 

이곳을 기반으로 다른 시도를 꿈꾸시는지 궁금합니다.
리필 스테이션은 일차적으로는 교회에서만으로는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요. 지향점이 같은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세미나나 포럼을 개최하고 싶어요.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지 같이 공부하고 여기서 나온 성과를 바탕으로 10대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장으로 공간을 쓰고 싶고요. 실은 내년부터 우유팩이랑 건전지 모아 오기, 한 달에 한 번 전체 교인들이 나서서 동네 담배꽁초 줍기를 계획하고 있어요. 아이들한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게 정상은 아니다, 너희들이 사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계속 주고 싶어요.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청년들과 수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하는데 그 시간에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함께 알아가고 있어요. 올해(2020년)는 김누리 교수의 교육 문제에 대한 강연을 다 같이 봤죠. 4-5주에 걸쳐서 독일의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청년들이 팀을 나눠서 발제를 했어요. 또 이론만 얘기하지 말고 우리 교회 인프라로 뭘 할 수 있을지 대안을 모색하는 교육 시간표를 짜고 게임을 만들어서 전교인 수양회에서 1박 2일간 진행했죠. 어른들은 세미나를 진행하고, 아이들도 부끄러워했지만 성교육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즐거워했어요. 교회 교육의 한계를 뛰어넘자는 의도였죠.
 

리필 스테이션의 존재가 교회나 지역사회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성도들 중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자세가 변화되어야 하는 건 다 아는데 ‘아직 청주는 아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직’이라는 말이 늘 따라 붙죠. 하지만 기업을 규제하는 정책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건 일반 개인들이라고 생각해요. 그 힘들이 모여져야 하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냥 나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회가 작은데, 목사가 젊은데, 여긴 청주인데, 아직은 어렵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작은 교회니까, 젊은 목사니까 할 수 있고 청주라도 하는 거죠. 해야 한다는 걸 알면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고 신앙하는 습관에도 영향을 주죠. 알게 모르게 이전과 달리 교인들도 교회에 왔을 때 텀블러를 무조건 챙기려고 하고 집에서 여분 플라스틱 통이 있으면 꼭 가져 오더라고요. 어떤 이유 때문에 안 된다고 따지면 사실 계속 안 되게 되잖아요. 그러면 기후위기는 계속 될 거고 우리 삶은 바뀔 수 없겠죠. 많은 분들이 설교 때 일상이 중요하고 소소한 삶이 위대한 거라고 얘기하잖아요. 그 말처럼 소소한 삶 속에서 습관이 바뀌면 위대한 일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는 게 선한 싸움인 거죠.
 

교회가 운영하는 리필 스테이션의 개척자이자 운영자로서, 이후 생겨날 다른 교회 가게들에 운영 팁을 알려주신다면요.
수익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걸 기대하면 일반 카페랑 경쟁하는 교회 카페랑 똑같아져요.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어요. 가격경쟁력이나 물품 경쟁력을 따지지 말고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필요한 물품 위주로 갖다놓고 교회 안에서 그것들이 순환되면 좋겠죠. 소문이 나서 동네에서 칭찬받는 교회가 되고, 그런 교회들끼리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함께 공동구매 할 수 있으니 자연스레 물품구매 경쟁력도 생길 거예요.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일상에서 자주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요.
‘그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거죠.(웃음) 이건 답이 없어요. 매주 교회에 나가서 메시지 듣고 생각을 나눠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그 고민과 메시지가 고갈되었어요. 아픈 마음이지만 목사가 다시 회개하고 자기 설교 고쳐 쓰면서 계속 이 문제를 얘기해야 돼요. 주어진 이 시간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포기하지 말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계속 가자고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최근 아빠가 됐는데, 처음 아이를 안고 기도한 내용이 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백이었어요. 제 아이가 살아갈 이 세상도 좋은 곳이면 좋겠고요. 또 섬기고 같이 신앙생활하는 공동체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다음 세대, 그리고 가장 소박하게는 제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청년들이 없다’ ‘전도해야 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나요?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배나 메시지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요즘 청년들은 교회 문턱도 밟기 힘든 시대잖아요. 저희 가게 이름을 ‘마당’이라고 한 건 교회가 이 친구들의 마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어요. 그 모습이 리필 스테이션일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다가 예배로, 하나님 말씀으로 들어오면 더 감사한 일이고요.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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