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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수도원운동’으로 세상에 참여하다
[350호 레드레터 크리스천] 도심수도공동체 ‘루트바 하우스’ 리더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
[350호] 2019년 12월 30일 (월) 10:47:01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 goscon@goscon.co.kr

워싱턴을 향해 질주하던 소년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꿈을 위해 화려한 이력을 다져갔다. 청소년 독일대사와 레이건 대통령 시절 상원의원의 수행원으로 일하며 품었던 대통령이라는 꿈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이 되어 사회 부조리와 불의를 척결하여 예수께 영광돌리겠다는 선한(?) 야심을 품고 지내던 어느 날, 그는 점심식사를 위해 국회의사당 인근 기차역으로 향하다 길가에 엎드려 구걸하는 걸인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에게서 예수의 형상을 목격한 뒤 회심을 경험한다. 그 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는 마태복음 25장 45절을 품고, 그때까지 추구해온 삶의 방법과 태도를 전면 뒤엎는다. 권력을 손에 쥐어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던 방식이 아닌,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고 환대하는 방식으로.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Jonathan Wilson―Hartgrove)는 여러 면에서 심플웨이 공동체 리더 쉐인 클레이본(34쪽)과 뜻을 같이 한다. ‘신수도원운동’(the New Monasticism movement)의 리더인 두 사람 모두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며, 이스턴 대학 재학중에 빈민과 인종 문제, 반전평화운동에 헌신했다. 인기 있는 강연자면서 다수의 책을 출간한 저자이기도 한 조너선은 2003년 이라크에서 미국의 침공을 반대하는 평화운동을 벌인 이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더햄에 도심수도공동체(urban monastic community)인 ‘루트바 하우스’(Rutba House)를 세웠으며, ‘회심 학교 프로그램’(School for Conversion)을 운영 중이다. 또한 유서 깊은 흑인교회인 세인트 존스 선교침례교회(St. Johns Missionary Baptist Church)의 사역에도 참여하고 있다. 

평화, 공동체, 수도원적 지혜의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관심사를 담은 여러 책을 썼으며, 《다시, 그리스도인 되기》(비아), 《하나님은 복으로 장사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영성이 우리를 구원할까》(이상 홍성사), 《행동하는 기도》(IVP)가 번역 출간되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이메일로 진행되었다. 

   
▲ ⓒAllison Shirreffs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루트바 하우스’나 ‘회심학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입니다. 사역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복음과상황〉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수를 따르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감사합니다. 제가 쓴 책들과는 달리 저는 아직 한국에 방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네요. 언젠가 방문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인터뷰가 장차 있을 후속 대화의 예고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선, 회심학교는 일종의 교육 센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저녁 식탁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교도소에 방문하여 수감자들과 함께 스터디를 한다거나 ‘프리덤 라이드’(Freedom Ride, 미국 남부 지방으로 버스나 기차를 타고 떠나는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여행)를 통해 사람들이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역사를 배우기도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깜짝 놀랄만한 우정을 가능하게 만들자”입니다. 

2003년 이라크 평화여행을 계기로 당신과 아내 레아가 루트바 하우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경험했던 ‘놀라운 우정’이 우리를 이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습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 공습을 감행했을 때 우리는 이라크인들과 함께 있기 위해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지요. “미국인들은 민간인 폭격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왕인 예수를 따릅니다.” 그런데 당시 현지에 함께간 일행 중 세 명이 차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는데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루트바 지역의 한 이라크인 의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3일 전 당신네 나라의 공습으로 우리 병원이 폭격을 당했지만 우리는 당신들을 치료하고 돌볼 것입니다.” 덕분에 친구들은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 것이지요.

   
▲ 루트바 하우스 출입문 기둥에 달린 표지판.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 웹사이트)

루트바 하우스라는 이름은 거기서 가져 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받았던 환대를 실천하고, 세상의 폭력을 끊어내는 데 기여하기를 소망합니다. 설사 그들이 우리의 적일지라도 말이죠. 사람들이 “왜 ‘루트바’인가?” 물을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마치 교회에서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기독교와 교회가 기득권층의 대변자가 된 듯합니다.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이 대안적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습니다. 문제는 공통된 가치와 목표의식을 지녔음에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견을 조율하고 합의해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루트바 하우스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베네딕트 수도원으로부터 온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한다니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해 대화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우리는 그 일을 1,500년 동안이나 해왔으니까요!”

우리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공동체 운동에 필요한, 역사적으로 축적되어온 지혜를 많이 배웠습니다. 베네딕트의 규칙은 하나의 훌륭한 가이드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실수와 연약함, 그리고 본질(예수)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베네딕트는 모든 공동체가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사항으로 함께 식사하는 법, 함께 기도하는 법, 함께 만나는 법을 말합니다. 공동체마다 똑같은 구조를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위의 세 가지 질문은 모임을 시작하는 모든 그룹에게 좋은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어떤 모임이 새롭게 시작될 때, 저는 정기적인 기도, 모임, 식사 일정을 짠 후 처음 6개월 동안은 이것을 지키는 데 헌신하도록 권장합니다. 그런 다음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하지 않을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 공동체 외부로부터 조언자(elder)를 초빙해서 그룹 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종종 그룹 내 개인이 놓치는 것들을 외부의 조언자는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요. 공동체가 장기적으로 건강하려면, 교회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 어떤 공동체도 예수를 따르는 ‘유일한 길’일 수는 없습니다. 외부의 친구들은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돕습니다. 동시에 친구들과 교회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마음과 영혼, 힘을 다해 예수를 따르도록 도전하는 일 역시 건강한 공동체의 일이 될 수 있지요.

루트바 하우스가 설립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늘 지켜보며 기도하는 일인데요,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시간입니다. 기업의 고위 간부가 형기를 마치고 막 출소한 사람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흑인 아이가 나이 든 백인 여인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늘 일어납니다. 함께 모인 사람 모두 이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들고 있지요. 

   
▲ '회심학교' 스태프들과 함께. (회심학교 웹사이트에서)

물론, 일상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기에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변화를 거듭해왔지요. 처음엔 이웃의 아이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일상에 변화가 생겼고, 그 후 공동체의 몇 가정이 자녀를 가지면서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공동체의 매일, 매주의 리듬은 핵심 구성원들의 삶의 단계에 따라 변화해가는데 우리는 거기에 늘 적응해야 합니다. 기본 정신은 변하지 않지만,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변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함께 식사하고, 기도하고, 만나기 위한 정기적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해왔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 시대에 우리가 공동체로 존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다시, 그리스도인 되기》가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는데요. ‘신수도원운동’의 리더로서, 책의 원제이기도 한 ‘새로운 수도원운동’(New Monasticism)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수도원운동’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참여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별히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말이지요. 변화하는 사회에서 신실하게 삶의 방식을 실험하는 작은 공동체들은 ‘수도원적’(monastic)입니다. 시대마다 공동체들이 지니는 성격과 특징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사람들을 공동체로 초대하면서 늘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예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일상의 방법과는 다른, 예수의 방법 말입니다. 제가 책에서 말하는 ‘신수도원운동’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이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적인 생활 방식이 세계 어디에나 퍼져 있는 한, 이것은 세계 각지의 교회에도 중요한 운동이 될 것입니다. 이 운동이 어떻게 보여질지를 계속 공부하는 중입니다. 세계의 여러 지역은 다양하니까요.

진정한 평화 가운데 정주(stability)하는 삶을 말할 때, 사람들은 종종 수도 서원을 하고 세속을 떠나 사는 수도사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현대 사회를 사는 보통 사람들이 이 운동을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요? 수도원적 서원(monastic vow)의 현대적 의미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수도원적 서원이란,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 그 이상을 원한다. 나는 최신 아이폰보다 우리 공동체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수입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곳으로 떠날 수 있음에도 공동체에 남아 함께 살기를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만 관철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주의 깊게 경청하는 삶 역시 수도원적 서원일 수 있지요.

신수도원운동과 지역 교회(교단 교회)의 관계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어떤 이들은 공동체 운동이 지역 교회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이 둘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수도원운동은 결코 지역 교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와 더불어 존재합니다. 사실 이 운동은 소수 운동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우리는 지역 교회와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을 도전하기도 하지만, 교회의 역사와 지혜에 대한 책임도 가지고 있지요. 즉 새로운 수도원운동은 교회를 변화시키는 것이지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페이스북 영성이 우리를 구원할까》(원제:The Wisdom Of Stability)에서 “그리스도인의 기본 자세는 머무는 것”이며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만약 정주(stability)에 대한 근원적인 필요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피조물로서 본질을 잃게 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가나안 성도’로 지칭되는, 지역 교회를 떠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들은 단지 교회를 쇼핑하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좀더 온전한 공동체나 사역자를 찾아나서거나, 기존 교회에 ‘머무르지 못하는’ 경우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정주하는 삶을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합니다만,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해 더 듣고 싶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떠나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모든 장소와 문화에서 종교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도 바리새인의 종교는 독과 같다고 비판하셨고, 이것은 바리새인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이들의 믿음을 짓누르는 것이었지요. 예수는 혼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새로운 언약의 세계로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믿음 안에서 성장하기를 요청하면서 말이지요.

   
▲ ⓒFranklin Golden

때로 성장과 자유는 ‘이식’(利殖, transplant)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수도원운동에 관한 책을 쓴 어떤 이는, 나무가 이식을 반복하게 되면 결국에는 뿌리를 내리는 능력을 상실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건강한 토양에서조차 말이지요.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전반적인 트렌드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해 왔습니다. “우리를 계속 이동하도록 만드는 시장의 흐름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어느 인터뷰에서 ‘집 문을 늘 열어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가족들의 안전이 신경 쓰이진 않는지, 여전히 그러한지 궁금합니다.
저는 언제나 문 밖으로 가봅니다. 예수께서 종종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물론 두려울 때도 있기에 종종 그분을 놓치기도 합니다만(항상 열어 두지는 않거든요), 우리의 두려움이 정당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은 중요한 감정이고, 그리스도인이 그것을 억눌러야 할 이유는 없지요. 저는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할 때마다, 사랑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 그리고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 루트바 하우스 발코니에서.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오늘날 세계는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닫습니다. IS(이슬람국가)나 중동, 북아프리카의 정치적 종교적 차이에 따른 내전이 대표적입니다. 그뿐 아니라 빈부 격차에 따른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으로 서로 적대적 증오가 증가합니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가 ‘적’으로 여기는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여러 방면으로 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에겐 신앙이 주는 통찰이 있습니다. 바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믿든지 어떻게 살고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사실이지요. 비록 숨겨져 있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그들 안의 숨겨진 형상과 연결될 때, 우리는 사랑스런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셨듯이 우리도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 그들과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다른 쪽 뺨도 대어주고, 우리의 굶주린 원수들에겐 먹을 것을 내어줌으로써 돌파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되느냐고요? 아니오. 예수께서 그러셨듯, 우리 역시 다치기도 하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세상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작동하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그분, 그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비록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의 신앙은 십자가 반대편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합니다. 슬픔의 눈물로 밤을 견디고 나면 기쁨의 아침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아마 어두운 금요일을 지나 아주 긴, 기나긴 토요일을 보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일은 옵니다. 우리는 부활의 백성들이니까요.

끝으로 한국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당신들의 부모와 조부모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를 묻지 마세요.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 아마 당신들은 하나도 동의되지 않을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거의 언제나 도움이 됩니다.  

 

 

 

심연수
본지 해외편집위원.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의 주요 저서] 

   
 

행동하는 기도 

이지혜 옮김 / IVP 펴냄 / 2010년 

쉐인 클레이본과 함께 쓴 기도 안내서. 주기도, 요한복음 17장 예수님의 중보기도, 에베소서 1장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행동하는 기도’의 실례를 보여준다. (원제: Becoming the Answer to Our Prayers)

 





 

   
 

하나님은 복으로 장사하지 않는다 

최요한 옮김 / 홍성사 펴냄 / 2012년 

자본주의 세상이 제시하는 길이 아닌,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이 의도한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책. 예수님의 다섯 가지 진술을 통해 현실에서 신념을 잃지 않는 방법을 제시한다. (원제: God’s Economy)

 






 

   
 

페이스북 영성이 우리를 구원할까

최요한 옮김 / 홍성사 펴냄 / 2013년

페이스북을 통해 너무 쉽게 관계를 맺고 끊는 시대에 저자는 1,700년 전 ‘수도원 영성’을 내보인다. 구체적인 곳에서 구체적인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 (원제: The Wisdom of Stability)




 



 

   
 

다시, 그리스도인 되기 

손승우 옮김 / 비아 펴냄 / 2016년

그리스도인이 되기 어려운 오늘날 다시금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모색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제공했던 수도원 운동과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수도원 운동’의 가치를 역설한다. (원제: New Monasticism: What It Has to Say to Today’s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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