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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이 ‘투쟁!’이 될 때
[351호 이웃 속으로 이웃 곁으로]
[351호] 2020년 01월 21일 (화) 15:50:09 하민지 goscon@goscon.co.kr

 

2017년 초봄 어느 날이었다. 낮엔 좀 따뜻하고 아침저녁으론 추울 때였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손님이 아닌 연대자로 간 것은 처음이었다. 용역이 곧 들이닥칠 거란 연락을 받고 새벽부터 뛰어갔다. 도착하니 연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따끈한 종이컵을 손에 쥐고 긴장한 채 용역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

용역 1·2팀은 금세 돌아갔다. 명도소송 승소 판결문을 들고 들어와 칠보수산을 당장이라도 밀어버릴 듯했지만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짠 여성 상인들과 신학생들 덕분에 잠시 설전을 벌이다 돌아갔다. 
용역 3팀은 가지 않고 ‘간을 보고 있다’고 했다. 3팀을 기다리며 수산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전에 봤던 활기찬 모습은 없었다. 많은 가게가 폐업한 상태였다. 남은 상인들은 용역이 언제 올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영업을 이어갔다. 가게를 열고 생선을 파는 일을 50년간 했다. 50년을 했으면 가게가 나고 내가 가게다. 평생을 이어온 일, 상황이 어떻든 멈출 수 없었다. 여성 상인들은 생선을 팔면서도 “5시까지는 비상이래”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포클레인이 들어온다!”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여성 상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분홍색과 노란색의 비닐 앞치마를 입은 채 익숙하게 스크럼을 짰다. 한 상인이 뒤늦게 스크럼 대열에 들어오면서 말했다. “빨간 립스틱 바르려고 했는데!” 집행이 시작되면 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한 말인 듯했다. 다른 상인들이 깔깔 웃었다. 20여 개의 앞치마가 모여 있으니 바깥 봄꽃처럼 알록달록했다. 

강제철거의 폭력은 상인들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투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폭력에 저항하는 게 일상이 된다. 상인들은 익숙하다는 듯 장사를 잠시 접고 삼삼오오 모여 철거에 대비했다. 웃을 일 없는 나날들 속에서 때때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굳은살 같은 게 박이는 것 같다. 나도 따라 웃었다가 상인들이 웃으면서도 강하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폭력에 맞서고 있다는 걸 생각했다. 50년 영업한 가게가 바서질 수도 있는 상황 앞에서 웃는다는 것은 보통의 강인함과 두려움이 아니고서야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막막할 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조용히 스크럼 대열에 들어가 상인들의 팔짱을 끼고 용역을 기다린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1971년에 생겨났다. 시장의 재산권을 가진 수협은 2004년, 시장을 ‘현대화’하기로 했다. 이 과정 중 600여 명의 상인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사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15년에 완공된 신시장은 구시장에 비해 상인들이 장사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지어졌다. 점포 사이 간격도 좁고 점포 자체도 좁아졌다. 그런데 월 임대료는 약 2배가량 비싸졌다. 2016년 3월, 수협은 이렇게 물러날 수 없다는 상인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그 이후 용역을 고용해 강제 철거를 시도하던 중 상인들에게 폭언, 폭행을 행사했다. 작년 9월 28일, 노량진 수산시장은 완전히 폐쇄됐다. 그 자리에는 카지노 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투쟁을 이어가는 상인들은 노량진역 2번 출구 근처 육교 위에 농성장을 마련했다. 출구 앞길에 천막을 치고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옥바라지선교센터(이하 ‘옥선’)는 매주 화요일 저녁 6시에 2번 출구 앞에서 상인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 상인들이 '아멘!'하는 목소리가 '투쟁!'이라고 하는 듯 강인하고 절절했다. ⓒ박김성록

상인들이 전부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나는 잘 모른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만큼 종교도 다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배드리다 보면 익숙하게 ‘아멘’이 터져 나와야 할 때 조용한 경우가 있다. 그런 풍경을 보고 상인들이 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대강 짐작한다.

한번은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아멘’을 유도했다. “믿으시면 ‘아멘’합시다.” ‘아멘’이 나와야 할 때 안 나오니 목사님도 영 어색했던 모양이다. 목사님의 유도에 따라 상인들이 함께 “아멘!” 했는데 말투나 목소리 톤이 “투쟁!”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투쟁’만 익숙하게 외쳐온 분들이 외치는 ‘아멘’은 강인하고 절절했다. ‘아멘’이 ‘투쟁’이고 ‘투쟁’이 ‘아멘’이었다.

재작년 옥선 워크숍 때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를 함께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를 향해 손들고 말했다. “우리는 현장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생각나는 대로 한 말이었는데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실제로 나는 하나님을 부르러 현장에 간다. 지금 여기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으니 하나님 빨리 와 주시라고, 빨리 오셔서 해결해 주시라고, 해결해 주시지 못한다면 같이 아파해 주시라고 기도드린다.

이런 내게 어떤 이가 물었다. 
“현장에서 예배드리면 수협이나 서울시가 듣나요? 그거 일종의 퍼포먼스 아니에요? 그게 상인들에게 도움이 되나요?” 

그렇게 묻는다면 예배는 힘이 없다. 폐쇄된 노량진 수산시장을 다시 열지도 못하고, 가난한 상인들이 부자 되게도 못하고, 엉망으로 지어진 신 시장을 무너뜨리지도 못한다. 예배 내용을 수협이나 서울시장이 듣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배는 지속적인 현장 운동이다. 상인들이 시장에서 쫓겨난 후 버려지지 않았다는 걸, 상인들 곁에 사람이 있다는 걸 매주 확인시킨다. 또한 연대를 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현장에 오도록 통로 역할도 하고 있다. 옥선은 우직하고 성실하게 화요일 저녁마다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과 함께 십자가를 세우고 있다.

   
▲ ⓒ박김성록

‘아멘’과 ‘투쟁’의 구분이 없고 현장과 교회의 구분도 없는 예배를 드린다. 십자가를 세운 현장이 교회가 되고 현장에서 외치는 ‘아멘’이 ‘투쟁’이 된다. 그렇게 하나님을 부른다. 누구보다 이 자리에 제일 먼저 와서 가난한 이의 손을 잡아야 하는 하나님을 부른다. ‘아멘’으로도 부르고 ‘투쟁’으로도 부른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예배 후 상인들이 차려 준 식탁에서 배불리 먹고 집에 가려는데 한 상인이 말했다. “고마워요. 다음 주에 또 봐요.” 기약 없는 투쟁의 시간 속에서 다음 주에 또 보자는 말이 따스우면서도 아팠다.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현장이 해결될 때까지 우리는 함께 ‘투쟁’을 외치며 예배드린다. 하나님의 빈자리를 남겨 놓고서. 


 

하민지
옥바라지선교센터 홍보와 기획 위원회 운영위원. 사라지는 것들을 보고 듣고 읽고 기록하는 저술활동가다. 누가 사라지고 누가 보이지 않는지 탐구하다 여성과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며 살고 있다. 현재 <오마이뉴스> ‘해시태그 #청년 시즌2’ 코너에 월 1회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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