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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실패에 동참한다’는 것
[354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354호] 2020년 04월 17일 (금) 18:04:35 하민지 goscon@goscon.co.kr

 

코로나19와 중단된 현장 예배
비가 오고 눈이 와도, 태풍과 폭염, 한파가 몰아쳐도 진행했던 ‘현장 예배’를 중단한 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이 시국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접촉하는 것은 당연히 금해야 하지만, 자칫 노량진 노점상에서 확진자라도 발생되면 노점상은 전부 폐쇄해야 한다. 그래서 일찌감치 현장 예배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예배는 지속적인 현장 운동인데, 운동의 구심점이 사라지면 연대도 느슨해지는 것은 아닐지 염려했다. 물론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옥바라지선교센터(이하 ‘옥선’)보다 훨씬 큰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를 세우고 연대하는 기독 운동 단체는 옥선밖에 없기 때문에, 매주 노량진 노점이자 농성장에 와서 하나님을 부르며 상인들의 손을 잡던 기독인들의 손길과 발길이 뜸해질까 봐 걱정했다.

기우였다는 건 ‘동지들’을 보고 깨달았다. 동지는 노량진 수산시장 투쟁과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상인들에게 마스크를 드리러, 뉴스레터 <옥선301> 2020년 봄호를 준비하기 위해 상인들을 만나러, 퇴근길에 종종 들를 때마다 상인들은 “옥바라지네!”하며 반겼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 잔을 받으면 늘 그렇듯 서로 안부를 묻는다. 별것 아닌 일상적 행동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언젠가 재개될 예배와 반드시 쟁취할 승리에 대한 소망이 켜켜이 포개져 있다.

옥선 구성원은 현장 예배 대신 SNS에 성경 말씀과 묵상이 담긴 카드 뉴스를 제작해 올리고 있다. 특히 사순절 기간인 만큼 고통 속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중이다. 이외에도 노량진 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여하며 승리를 위한 방법들을 논의하고 있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진행하는 1인 시위에도 동참하고 있다. 상인들과 함께 예배는 드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고난 중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되새기며, 그 힘으로 상인들과 함께 싸워나가고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건 아쉽다. 그러나 우리 모두 느슨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실패에 동참한다 
코로나19로 예배가 무기한 연기되기 전, 나는 하나님의 실패를 목격했다. 2월 21일 새벽 3시에 동작구청이 인력 900여 명을 동원해 노량진 노점을 부쉈다.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일터이자 삶터이며 농성장인 노점들이 무너졌다. 동원된 용역들은 상인들에게 “계속 그렇게 집 없이 살아 씨××들아” “장바닥에서 굴러먹은 ×들” 같은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노점들이 치워진 자리에는 거리 미관을 위한 화분이 놓였다.

   
▲ 지난달 새벽 동작구청이 진행한 행정대집행. (이하 사진: 박김성록 제공)

상인들은 해가 뜨자마자 노점을 다시 세우고 투쟁과 영업을 이어갔지만, 그 새벽의 일로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성실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의 집과 가게가 무너지는 걸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가슴이 두 쪽으로 시리게 갈라졌다. 

하나님을 원망했다. 포클레인이 상인들이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까지 쓰레기차에 실어버렸을 때가 특히 그랬다. 하나님은 대체 뭘 하고 계셨던 건가. 무너진 노점들의 잔해더미 위에 앉아 있는 동지들 옆에 그냥 앉아 계셨던 건가. 행정대집행 이후 예배는 무기한 연기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손님도 줄었다. 상인들은 무너진 노점을 어렵게 다시 세우자마자 또 다른 고난을 맞이한 것이다.

하나님이 또 실패했다. 포클레인보다 한없이 작은 하나님은 행정대집행을 막아내지 못했다. 고양이도 살려내지 못했다. 쓰레기차에 실려간 고양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극적으로 탈출해 구조됐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생사조차 모른다. 그대로 소각장으로 갔다고 생각하면 그저 괴롭다. 다시 세워진 노점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무능한 하나님은 이렇게 항상 실패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실패에 동참한다. 이건 옥선이 자주 구호로 쓰는 말이기도 하다. 옥선 예전과 신학 위원회 위원장이자 음악가인 황푸하는 이 구호를 소재로 ‘우리는 오늘도’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옥선은 철거민들과 함께 싸울 때 늘 가슴에 새긴다. “우리는 하나님의 실패에 동참한다.”

   
▲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일터이자 삶터이며 농성장인 노점들이 무너졌다.

역설이 아닌 사실이 되는 문장
실패에 동참한다는 문장은 역설적이다. ‘실패’라는 단어의 문법적 시제는 완료상이다. 목표했던 걸 이뤄내지 못하고 끝났다는 뜻이다. 이미 끝났는데 동참한다고 말할 때부터 역설적 의미가 생긴다. 

하지만 ‘실패’라는 단어의 의미를 국어사전이 아니라 사회에서 찾는다면 ‘실패에 동참한다’는 문장은 역설이 아닌 사실이 된다. 수많은 철거민과 약자들은 매일 실패하는 삶을 살고 있다. 법과 제도와 정치인이 이들을 외면하고 배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실패’의 사회적 시제는 완료상이 아닌 진행상이다. 이렇게 늘 진행 중인 실패에 함께한다는 것은 실패의 무게를 같이 진다는 것이다. 

‘동참한다’는 단어 또한 현재시제이자 진행상이다. 변하지 않는 사회 구조의 문제, 거기서 파생된 폭력과 차별, 그로 인해 반복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실패, 그 실패에 동참하는 연대자들, 그리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실패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실패란 이름의 삶을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내고 있다.

하나님의 실패에 동참한다는 것은 결국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언제나 놓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실패에 동참한다. 하나님 또한 우리의 실패와 함께하신다. 매일 실패할 수밖에 없고 겹겹이 어려운 고난 중에 있지만 되레 단단해지는 연대로 승리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사순절 기간, 고통 속 연대의 의미를 이렇게 깨닫는다. 

 

 

하민지
옥바라지선교센터 홍보와 기획 위원회 운영위원. 사라지는 것들을 보고 듣고 읽고 기록하는 저술활동가다. 누가 사라지고 누가 보이지 않는지 탐구하다 여성과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며 살고 있다. 현재 <오마이뉴스> ‘해시태그 #청년 시즌2’ 코너에 월 1회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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