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호 이웃 곁으로 이웃 속으로]
궁중족발 김 사장님이 출소하던 날
서촌 궁중족발 김우식 사장님이 2년 형기를 마치고 만기 출소했다. 출소날이었던 6월 6일, 옥바라지선교센터(이하 옥선) 동지들과 연대인들은 전날부터 모여 김 사장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전엔 사장님이 출소한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난다는 건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다. 연대다. 사장님이 1심 국민참여재판 때 울면서 한 말을 기억한다.
“그 공간이 없으면 우리 식구는 살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건물주는 보증금 3,000만 원 가지고 다른 데 가서 장사하라고 하는데 달랑 보증금만 가지고 장사를 할 수 있습니까. 들어가는 가게의 권리금도 줘야 하고 시설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돈이 없습니다. 돈이 진짜 없어서 이렇게 됐습니다. 돈이 있었으면 누군들 이렇게 버티고 싶겠습니까. 내가 돈이 많으면 그 건물에 다시 세를 들어가든지, 건물을 사든지 해서 궁중족발을 되찾을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저는 정말 장사하고 싶고 노동하고 싶습니다. 그 노동을 하고 싶어서 그동안 버텼습니다. 결국엔 3-4평 되는 내 일하는 공간에서 쫓겨났지만 그 공간에서 저는 여전히 노동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쫓겨났는데 어떻게 다시 장사를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을 하며 울부짖는 사장님의 모습이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 말은 도시에서 사람이 어떻게 쫓겨나는지, 빈곤의 실태가 어떻게 되는지, 건물과 땅을 일구고 가꾸는 사람과 소유한 사람이 다른 상황에서 소유자의 권리만 보호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그의 말이 활동가이자 연대인인 내게 큰 충격이었기에, 빈곤의 낭떠러지 끝에 옥살이를 하게 된 사장님이 출소하는 상상만 해도 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사장님을 마중하러 가니 즐거웠다. 보고 싶었던 친척을 명절에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맑은 새벽에 동지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곧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처럼 설렜다.
준비한 현수막을 펴고 기다리는데 살이 쪽 빠진 사장님이 걸어 나왔다. 궁중족발 연대인이 결성한 브라스밴드가 동지가를 연주했다. 우리는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사장님을 맞이했다. 서로 웃고 울면서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뎌온 사람들이 갑자기 비장한 태도를 취하려니 웃음이 났다. 가족끼리 진지해지면 괜히 뻘쭘한 것처럼 말이다. 사장님께 두부를 드렸는데 하필 단단한 부침용 두부였다. 다들 웃었다. 출소날을 상상만 하면 눈물이 났는데 막상 사장님을 만나니 그냥 웃음이 났다.
콩나물국밥집으로 이동했다. 사장님께 소주를 따라 드렸다. 너무나 그리운 풍경이었다. 어려움을 함께 견디는 사람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2년 만에 드시는 소주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사장님은 소주 한 잔을 다 넘기지 못했다. “닳을까 봐 못 마시겠어”라며 소줏잔을 입에 붙였다 뗐다 했다. 하지만 주저한 것도 잠깐이었다. 몇 잔 드시더니 “이거 처음처럼이지? 참이슬 마실까?”라고 하신 것이다. 소주 입맛이 이렇게 금방 돌아오다니. 사장님이 돌아왔구나 싶었다.
고통받는 현장에서 울리는 탄식의 시
7월 6일에는 돌아온 김우식 사장님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동안은 윤경자 사장님과 예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첫 예배를 드렸을 때가 2017년 11월이다. 3년이 가깝게 옥선은 한 번도 궁중족발과 함께하는 예배를 쉬지 않았다.
옥선 예배에는 ‘현장의 증언’이라는 시간이 있다. 투쟁 당사자가 나와서 현장의 상황, 현장에서 느낀 것 등을 전해주는 시간이다. 2017년에 발간된 ‘현장 예배를 위한 옥선 기도서’ 25쪽에 따르면, 현장의 증언 시간은 주일예배 때 시편을 읽는 시간과 비슷하다.
“시편은 아름다운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상을 노래하는 말들만 있지 않습니다. 탄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폭로, 생명의 위협 앞에서의 불안, 대적을 향한 저주, 하나님을 향한 원망 등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 불평과 원망이 여과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장의 증언은 고통받는 현장에서 울리는 탄식의 시입니다.”
이렇듯 예배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현장의 증언 시간에 김우식 사장님을 모셨다. 예배 인도자였던 나는 김 사장님을 모시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예배를 계속 지키고 있었더니 너무 보고 싶었던 분이 돌아왔어요.” 돌아온 김 사장님은 “여전히 함께 비를 맞아줘서 고맙습니다. 전쟁에선 졌지만 전투에선 승리합시다”라고 말했다.
내가 한 말과 김 사장님이 한 증언을 곱씹었다. 예배를 지키고 있었더니 사장님이 돌아왔다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김 사장님의 형기는 정해져 있었고 옥살이하는 김 사장님을 위해, 옥바라지하는 윤 사장님과 함께 궁중족발을 위한 예배를 드렸을 뿐이다.
하지만 예배를 지키고 있었더니 계속 싸울 수 있었다. 예배를 중심으로 말이다. 전투에서 승리하자는 말은 새롭게 가게를 꾸려 “3-4평 되는 내 일하는 공간”을 마련해 장사하고 노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것, 여전히 벌어지는 도시 속 폭력에 저항하는 연대자로서 앞으로 함께 걷자는 것이다. 현장의 증언 순서 때 김 사장님이 한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궁중족발과 함께 예배드린 지 3년이 돼서야 예배를 지킨 이유를 예배를 드리다 깨달았다. 예배 시간에 옆 사람의 손을 잡고, 더불어 먹고 마시고, 서로를 축복하고, 함께 싸우겠다 다짐한 모든 순간이 연대였고 투쟁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예배를 지켜왔다는 것을.
예배 때 잡은 김 사장님의 손이 부드러웠다. 한창 장사하실 땐 굳은살이 박여서 거칠었다. 이제 다시 일하고 쫓겨남 없는 세상을 향해 싸우다 보면 다음 예배 때 잡은 손에는 굳은살이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민지
옥바라지선교센터 홍보와 기획 위원회 운영위원. 사라지는 것들을 보고 듣고 읽고 기록하는 저술활동가다. 누가 사라지고 누가 보이지 않는지 탐구하다 여성과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며 살고 있다. 현재 오마이뉴스 ‘해시태그 #청년 시즌2’ 코너에 월 1회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