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호 무브먼트 2]

 

지난 2월 청도 대남병원을 시작으로 요양병원 중심의 코호트 격리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 거주시설과 정신병원 폐쇄 병동에 갇혀 지내온 사람들이 사회 전면에 등장했다. 집단 감염 소식과 함께 시설 안에서의 일상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20년 이상 시설에서 생활한 B씨는 최근 몸무게가 42kg에 불과했다”는 어느 기사에서 이에 무관심해 온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얼마나 읽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

장애여성공감의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이하 ‘숨 센터’)은 거주시설 S와 연계해 ‘거주시설 연계 자립생활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연말 이후, 거주시설 S에서 지내는 발달장애 시설 거주인들과 최근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코호트 격리 때문에 당사자분들이 거주시설 안에서 갇혀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 4월 장애인철폐 공동투쟁단 출범 결의대회에 숨 센터 활동가들이 참석한 모습. (이하 사진: 장애여성공감 제공)

내가 활동하는 숨 센터는 거주시설 S의 거주인들을 만나기 전 우편물을 미리 보냈다.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종사자를 거치지 않고) 시설 거주인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거주인들에게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 안부를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 건강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보낸 물품은 발달장애여성들이 만든 노랫말이 적혀 있는 무지개 손수건과 (‘평등한 세상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천 마스크였다. 다시 만나는 날 무지개 손수건을 목에 두른 채 만나자는 우리들만의 약속도 했다. 지난달 말 시설 문 앞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얼굴을 본 A님은 정말 성실하게 약속을 기억하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회적 고립을 정당화하는 장애인 거주시설
거주시설은 여러 명이 집단생활하는 특성으로 인해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지로 꼽혔다. 그러자 정부 차원에서 해결책 중 하나로 ‘거주시설 1인 1실 기능보강’이 제안됐고, 지자체는 지난 3월 20일에 현황 파악을 위한 수요조사에 들어갔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이번 조치는 시설 내 감염자와 자가격리자를 위한 대책이 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거주시설을 강화하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위 인용문은 지난 3월 진보적 장애언론 〈비마이너〉에 게재된 기사의 일부다.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1인 1실로 ‘기능보강’이 되면 감염병 위험은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기존 모든 시설을 1인 1실화 하는 것은 극히 어려울 뿐더러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장애인과 노인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격리·통제하는 지금의 ‘시설화’ 시스템을 정당화하고 확장하는 일이다. 이것이 정부의 ‘해결책’이다. 장애여성공감의 이진희 사무국장은 모 일간지에 이런 칼럼을 썼다. 

“희망, 사랑, 함께, 빛, 꽃, 생명…. 장애인 거주시설의 이름은 유달리 긍정적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긍정은 장애에 대한 불행과 비극을 뛰어넘자는 부정과 극복을 강요한다. 장애인 수용시설이 아닌 주체적이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거주시설로 바꾸어 부르지만, 여전히 시설은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머무는 삶’을 뜻하는 거주가 아닌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일정한 장소에 모아 놓음’이란 수용의 상태다.” 

거주인들에게 장애인 거주시설은 어떤 곳일까? 거주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간단하게 풀어보면 이렇다. 기억의 배경이 전부 거주시설 뿐인 ‘나’가 있다. 학교 보내준다고 해서 봉고차를 타고 왔는데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거나 여태 못 갔다. 한글도 본인 이름 정도만 쓰는 정도다. 나도 독립하고 싶다. 독립하려면 돈을 열심히 모아야 한다. 교회 가는 일요일만 빼고 토요일까지 보호작업장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도 돈이 별로 없다. 이유는 잘 모른다. 선생님(시설 종사자)이 잘 안다. 나는 돈 관리를 못 하고 누가 훔쳐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내 통장은 선생님이 갖고 있다. 물건이 사고 싶을 때면 선생님이 같이 가준다. 물건 계산은 선생님이 한다. 나는 옆에 서 있다.

본디 인간은 갈등을 겪으며 배우고 실수하며 성장하는 존재다. 물론 모두가 그렇듯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잘하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존중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시설 속 장애인들은 위 이야기처럼 그러한 과정과 가능성을 박탈당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권은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에 기반한 삶의 자립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회의 태도가 순환적으로 사회적인 고립을 정당해왔다. 이 사회에서 ‘보호’받는 집단으로 규정되는 존재들은 이미 ‘문제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시설 거주인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능력이 없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아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고, 가족은 존재 여부가 불확실하고(최소한 오랫동안 찾아오지는 않았고), 한글도 잘 모르고, 숫자는 어렵고, 돈도 별로 없고, 말도 잘 못하고, 길도 잘 못 찾는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들은 개인의 결함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에 영향받은 개인이 드러낸 모습이다. 

또한 ‘독립’의 조건을 다음의 두 사람을 놓고 생각해보면 시설 거주인은 사회 속에서 살아갈 능력이 없을 거란 뭉뚱그린 생각이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적인지 알 수 있다. A는 혼자서는 밥도 못 해 먹고, 빨래 청소도 못 하고 집 정리는 해본 적도 없지만, B는 몸이 아픈 할머니,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오빠의 잔심부름도 도맡고, 엄마의 집안일을 도우며 산다. 이 두 사람 중에 독립이 가능한 사람은 누구일까?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장애 유무’에 따라 답변은 크게 달라진다. 집안일에는 소질도 없고 해볼 마음도 없는 30대 직장인이라면 집안일과는 별개로 독립 가능성은 좀처럼 의심받지 않는다. (도리어 남성의 경우라면 살림 잘하는 여성과의 결혼을 권유받을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다.) 반면 모든 집안 살림을 도맡아도 30대 발달장애인이라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해내어도 독립 가능성은커녕 흔한 수고 인사조차 받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정해진 답 외에는 그 어떤 가능성도 떠올리기 어려워 한다.

   
▲ 지난해 숨 센터의 ‘거주시설연계자립생활지원사업’ 중 ‘나의독립찾기’에 참여한 시설 거주인들과 함께 만든 탈시설 노랫말이다.

상상을 가두는 통제: ‘시설 밖은 위험해’
물론 상상을 가두는 통제는 사회뿐 아니라 시설 거주인들에게도 작용한다. 탈시설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시설 거주인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하루는 탈시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시설 거주인 한 분이 불쑥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가고 싶지. 근데 안 돼. 시설 나가면 아는 사람 없어. 서울역 가.” 시설 거주인들에겐 세상이 시설 안과 밖으로 쪼개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시설 안에서 발생하는 다른 폭력이 없으면 그곳을 나가지 않는 것이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아무 일이 없어도 시설은 장애인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주체성을 앗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활짝 열린 문을 넘어 어느 누구도 나갈 생각 엄두조차 못한다. 안전한 ‘시설 안’과 위험이 도사리는 ‘시설 밖’이라는 이분법은 시설 거주인들에게 긴 세월 쌓여왔다.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도록 말이다. 따라서 장애인인권단체와 장애인 야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만남과 관계들이 탈시설 과정에 수반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시설 거주인이 탈시설 해야 한다거나, 혹은 그럴 수 있는 조건에 놓여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설은 내재적으로 본질적 문제를 갖고 있다. 즉,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수용시설 거주인들이 ‘시설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수용시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타인 또는 국가 권력에 의해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탈시설 운동 진영에서는 이러한 이유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말한다.

범주 밖 존재들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점은 코로나19 사태로 국가가 제시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국민 행동 지침이다.  

1. 불필요한 외출, 모임, 외식, 행사, 여행 등 모두 연기 또는 취소 
2. 발열·호흡기 증상 (기침,인후통 등) 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휴식 
3. 생필품 구매, 의료기관 방문, 출퇴근 제외한 외출 자제 
4. 악수 등 신체접촉 피하고, 2m 건강 거리 두기 
5. 손 씻기, 기침 예절 등 개인위생수칙 준수 
6. 매일 주변 환경을 소독하고 환기시키기

무심코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는 지침이지만, 이를 잘 지키기만 하면 감염으로부터 안전해지는 걸까? 애초 지침 수행을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집)이 있어야 하고, 휴가 사용이 가능한 직장이 있어야 하며, 손 씻기 등이 가능한 깨끗한 물과 비누 사용이 원활해야 한다. 몇 가지 조건만 살펴보더라도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지침에서 ‘국민’이라는 범주는 아주 제한적인 것을 알 수 있다. 행동 지침에 대한 정보 접근성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어를 모르거나 서툰 외국인, 난민, 이주민 또는 시각장애인 역시 범주 밖 존재가 된다.

감염병에 취약한 조건에 처한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위생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은 사람을 탓할 것인가? 아니면 감염에 노출된 사람의 조건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쓸 것인가.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 발생 이후, 정부 대책으로 또 다시 정신병원 코호트 격리 조치를 시행한 것이 최근이다. 시설의 폐쇄성을 강화하기보다 이러한 방법의 한계와 폭력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평등을 더욱 야기하는 사회 전체 구조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겪어내고 있는 동료시민인 이들의 통제받는 몸과 배제된 안전을 후순위로 미루지 않고, 사회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더 깊은 이해를 돕는 책들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지음 / 오월의 봄 펴냄(이하) 

장애인 인권 문제를 ‘복지’나 ‘재활’ 차원이 아닌 ‘장애학’ 관점에서 조망한다. 한 사회가 장애를 장애로 명명하고 시설로 가두기까지의 역사는 물론, 당사자주의의 한계와 장애인의 노동과 자기결정권에 대해 짚어보는 전환적 사고가 담겼다.

 

 

 

 

 

 

나, 함께 산다
서중원 지음 / 정택용 사진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기획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왜 시설에서 살아야만 하는지 의문을 갖고 2005년부터 ‘탈시설 자립 생활 운동’을 해온 단체가 기획한 책이다. 탈시설한 사람, 다시 시설에 들어간 사람 등 다양한 이의 말을 곁에서 듣고 기록했다. 

 

 

 

 

 

 

어쩌면 이상한 몸
장애여성공감 지음

탈시설, 노동, 몸, 섹스, 활동보조 등을 키워드로 장애여성과 활동가가 쓴 글을 엮은 책이다. 한국사회 속 장애여성의 삶과 장애여성운동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 

 

 

 

 

 

 

 


여름
장애여성인권운동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가로, 장애인탈시설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반성폭력운동, 장애인자립생활운동, 성소수자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우리 사회 정상성 규범에 도전 중이다. 장애여성공감의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d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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