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호 이슈 톺아보기]
지난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과 법률 시안을 제출한 후 이와 관련한 교계 내 논란이 뜨겁다. 이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배종석·정병오·정현구, 이하 ‘기윤실’)이 차별금지법의 법안 내용과 교계에서 제기되는 우려와 문제의식을 검토하고자 9월 12일 온라인 대담을 진행했다. 박종운 변호사(법무법인 하민)가 기조발제를 맡았고, 조성돈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의 진행으로 1시간 가까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발제 자료(<차별금지법의 약사와 2020년 법안 분석>)와 대담 영상은 기윤실 홈페이지(cemk.org)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아래 내용은 이날의 질의응답을 발제자인 박종운 변호사가 추가·보완한 것으로, 기윤실의 허락을 받아 싣는다.
앞으로 ‘차별금지법안’과 ‘평등법 시안’은 어떤 입법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
국회 소관 상임위를 거쳐 법사위에서 법조문 조정, 전체 법체계와 맞는지 등을 살핀 후 국회 본회의에 안건으로 부쳐지면 표결을 통해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차별금지법은 아직 상임위에 가지는 않았고, 평등법 시안은 이상민 의원이 대표발의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9-10월 중에 발의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밖에도 여러 건의 관련 법률이 제출될 수 있는데, 여러 법률안이 제출되면 이를 통합하여 ‘대안’(代案)으로 만들어서 국회 본회의에 올린다. 평등법 시안을 기초로 작성될 민주당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현재로선 ‘평등법 시안’을 주목해야 한다.
인권위가 평등법 권고 시안을 내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은데, 실제로 이러한 권고가 영향력이 있는 것인가?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인권 전반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크게 ‘일반 인권침해 행위’와 ‘평등권 침해 차별 행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지는 가장 강력한 권한은 ‘시정권고’이다. 최근에는 여러 정치인들에게 ‘장애인 비하 발언하지 말고, 관련 인권 교육을 받으라’고 권고했다. 강제성은 없지만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에 대해 계속 설명하고 설득하고 권면하는 것이 관련 당사자의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죄는 죄라고 말해야 하고 이는 차별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교회 설교나 기독교 학교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할 때 이행강제금이 부과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이다. 설교는 종교 지도자의 가장 기본 직무이며 본질적인 부분이다. 목사와 성도 개인은 동성애에 대한 찬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그 자체는 차별이 아니다. 예컨대, ‘너는 여자, 나는 남자’라고 구분하여 말하는 것 자체는 차별이 아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차별과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은 다르다. 문제는 괴롭힘이다. 예를 들어, 많은 이단들이 정통 교회로부터 지적과 비판을 받는데, 객관적 교리상으로 문제 삼을 수 있고 이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령 ‘신천지(교인)는 악마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상종도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위험하다. 혐오가 될 수 있고 차별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단과 정통 선교단체가 갈등을 빚었을 때, 정통 선교단체 구성원이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은 이단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선교단체 구성원이 사회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나의 의와 선민의식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는데,그것이 사회적으로는 폭행, 상해 등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 국가 입장에서는 ‘정통이냐 이단이냐’,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혐오와 증오가 발생하고 갈등이 심화되며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태가 발생하는지 여부이다.
미션스쿨에서의 동성애 관련 교육이나, 채플 참여, 직원이나 교사 채용 등에서 차별금지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채용 과정에서 ‘세례교인 이상’이라는 자격조건을 걸 수 있는가?
교회처럼 종교 기관/단체의 독립된 재원으로 종교 교육, 종교 생활만 하는 것은 종교의 영역에 국한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당 교단의 교리상 동성애가 죄이고 교단 헌법에 따라 동성애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왜 ‘동성애’라는 죄만 문제 삼고 다른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적용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고 그 점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학교가 종합대학이 되고, 교회도 지역사회를 위한 복지사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비종교적 영역과 혼재될 경우에는 복잡해진다. 교회가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 정부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아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 복지사업을 운영하는 경우, 해당 종교의 직원만 채용하는 것은 위탁의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세례교인’이라는 조건은 교회 공동의회 소집에는 필요할 수 있어도 위탁 기관에서는 사회복지 사업과 해당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뽑으면 되는 것이지 종교나 출신 교단을 보는 것은 논쟁이 될 수 있다. 미션스쿨의 강제 채플과 같이 공격적인 선교방식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채플 참여에 강제성이 전혀 없고 학생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면 어떤 취지의 설교든 들어야 한다. 다만, ‘동성애가 죄다’라는 설교는 문제가 없지만, 혐오와 증오를 선전선동하는 설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많이 거론되는 사례 중 하나가 동성애 커플에게 결혼식 케이크 판매를 거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런 상황에서 판매를 거부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닌가?
부분적인 가짜뉴스 중 하나다. 이 건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걱정된다고 해서 가짜뉴스를 확인하지도 않고 믿어버리면 안 된다. 차별 영역에 재화·용역 부분이 있다. 기성 상품은 성소수자, 외국인, 장애인, 누구에게나 판매해야 한다. 그러나 창작자의 예술적 감각, 신앙, 표현의 자유와 관계된 작품의 경우에는 논쟁이 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 케이크 건을 차별로 보지 않고 제과점 주인의 손을 들어줘서 이 사건을 해당 주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창작자의 종교, 예술, 표현의 자유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혐오와 증오, 괴롭힘 등을 행하거나 선전/선동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교계에서는 ‘동성애’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있지만,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복잡한 개념들이 있다. 성과 관련해서 차별금지법이 말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성’(性)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성별 구분의 기준은 첫째, 신체적 생식기이다. 현실적으로는 남성, 여성, 양성, 무성이 있다. 양 생식기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꽤 있다. 어릴 때 부모가 선택해서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염색체이다. XX, XY, 그리고 약간의 변형된 경우가 있다. 세 번째는 젠더라고 하는 사회심리학적 구분이다. 내 신체, 염색체적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모습과 정신, 심리적 성별이 다를 수 있다. 남이 보는 나의 성별과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성별이 다른 것이다. 수술을 통해 신체적 생식기를 바꾸는 성전환의 경우, 우리나라도 호적 정정을 할 수 있다. 수술을 하지 않고 사회심리학적인 성을 발현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보기 어려운 간성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성적지향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를 말한다. 아무리 신앙적으로 변화시키려 해도 태생적으로 동성애 성향을 갖고 유지하는 경우가 있고, 탈동성애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말씀으로는 환경적으로 선택하거나 변화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적 지향이 100% 선천적이라거나, 탈동성애가 100% 가능하다는 주장 둘 다 옳지 않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양성, 간성, 동성애자 시민들은 사회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사회적 범죄도 아니다. 모든 시민이 타고난 대로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듯, 양성, 간성, 무성의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신 삶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온전하지 못한 존재로 여겼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듯, 동성애에 대해서도 신앙적으로 ‘죄’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법적으로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지만 동성애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범죄’가 될 수 있다.
윤리적인 벽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특히 동성애를 죄라고 말할 수 없게 되면 그 이후에 많은 것들이 무너지지 않을까(동성혼 등) 하는 것이다. 차별금지 대상들(성소수자, 이민자 등)을 차별하지 않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러다 역차별이 발생할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합당한가?
'혐오’와 ‘표현의 자유’를 잘 구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동성애는 죄이기 때문에 나는 동성애 지향을 반대한다. 그런 지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동성 성행위까지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신앙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종교의 자유), 그렇다고 자기 의와 기준을 가지고 동성애자를 정죄하고 배척하고 차별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것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인권침해이다. 종교 영역 안에서는 걱정하실 것이 없다. 다만 종교와 공공사회의 접촉 지점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공격적 전도/선교의 방식,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없고 본인의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하고 외쳤던 방식들이 이제는 불편해질 수 있다. 교회와 성도들은 동성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했던 이유, 현대에 와서 그 해석과 경중이 변화되어온 역사, 요즘 젊은이들이 동성애를 개인의 영역, 개인의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상, 동성애자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등 신학적, 사회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동성애가 신앙적으로 ‘죄’라고 해서, 혐오하고 선동하고 괴롭히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종교의 자유와 다른 사람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상대방이 가진 권리의 핵심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규범 조화적인 해석 및 적용을 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교계가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합리적으로 짚고 개입할 수 있는 지점과 방식은 무엇일까?
얼마 전 목회데이터연구소 소식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종교적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인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보수 개신교인들이 목소리 높여 반대하는 것이 마치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과잉대표 되는 경향이 있다. 보수는 무조건 반대, 진보는 무조건 찬성 진영으로만 가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을 가져올 수 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필요하고, 제정될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평등법 시안이 민주당 법안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지만, 부족하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법은 친절해야 한다. 정당한 우려들은 우려가 해소되도록 구체적으로 법조문화해야 한다.
총칙 부분에 신앙·사상·양심·표현의 자유가 평등권 및 차별금지와 충돌할 경우 어떻게 규범 조화적으로 해석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고, 고용과 교육의 영역에도 남아있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어, 전체적으로 보완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만 적정한 선에서 요구해야지, 지나치게 주장한다면 법안이 만들어져도 그것을 주장한 개신교가 비판을 받게 된다. 개신교는 지금까지 누려왔던 선교 전략,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갱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동성애, 동성애자에 대해 교회와 성도들은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다 동성애자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걱정하는 게 뭔가? 커밍아웃 바람이 일어나 일시적으로 동성애자가 많아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거의 대부분 원래 동성애적 지향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 세상엔 이성애자가 절대다수이다. 문제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관계이다. 동성애자를 정말로 선교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동성애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잘 선택해야 한다.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돌이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본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먼저다. 지금부터 우리는(교회는) 오히려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전도하고 선교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계속해서 혐오하고 정죄하고 배제하고 차별하면, 그들 중 누가 개신교 교회와 함께하고 싶어 하겠는가? 개신교는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의 모습을 따라야 한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누구를 칭찬하시겠는가? 공의와 사랑으로 진실하게 대해야지, 압박하고 정죄하는 것은 선교 전략상으로도 기독교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동성애나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회와 성도들의 기본적인 태도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