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호 커버스토리] 복음과상황 에디터 4인의 〈소셜 딜레마〉 리뷰

 

왼쪽부터 김다혜, 정민호, 옥명호, 이범진 ⓒ복음과상황 정민호
왼쪽부터 김다혜, 정민호, 옥명호, 이범진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이야기 꽃마이크가 오랜만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10월에 가졌던 ‘90년생이 () 온다좌담에 이어 1년여 만에 내부 좌담을 가졌다. 이번 커버스토리 기획의 단초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소셜 딜레마(2020)를 접점 삼아,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여러 모로 짚어보았다. 아울러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더 광범위하고 강력해지는 시대에 잡지 매체로서 복음과상황의 역할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자문해보는 자못 비장한(?) 대화에까지 이르렀다. 좌담은 지난 114, 복상 모임방 서로마당에서 있었다.

 

 

소셜 딜레마를 본 소감은?

명호: 조금 전에 봤다. 그래서 느낌은 생생한데,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는 못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낯설면서도 참신했던 것은 구글, 페이스북, 핀터레스트, 트위터 등 세계적인 SNS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 등 핵심 관계자들이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럴까? 자기가 헌신하고 성공시킨 회사에 왜 비수를 꽂을까? 그들의 인터뷰를 씨줄로 삼고, SNS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날줄로 삼아 전개해나가는 구성도 흥미로웠다. 덕분에 아주 생생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SNS 프로그래밍과 알고리즘 자체에 사용자들의 심리를 조작하고 조정하고 통제하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제일 충격이었다.

민호: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우려를 담은 다큐였다. 다만 주목한 것은 다큐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의 경고 수위와 발언 톤이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를 보면서 SNS 사용 시간을 줄이고 싶어졌다. 그동안 미디어 전공자라는 핑계로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과감한 결단으로 스마트폰에 모바일게임부터 삭제했다. 게임으로부터 나를 구했다.

범진: 요즘 SNS에 자주 목격되는 극단적인 주장과 갈등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유익한 다큐였다. 학자들이 ‘SNS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보편화되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점점 즉각적인 감정 반응에 따라 움직이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는 유형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언급도 무섭게 다가왔다. 이런 현상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파괴와 내전을 언급하는데, 폭발 직전에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치면서 쉽게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인류 역사와 인간 본성을 진지하게 살펴야 하는 때 같다.

다혜: 3명의 SNS 조종자들이 십대 주인공의 디지털 아바타를 앞에 놓고 그의 관심을 SNS에 붙들어두기 위해 알고리즘으로 주인공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분석하여 송신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주인공의 아바타는 자신의 손을 움직이거나 걷거나 시선을 돌리지 않고, 허공에 매달려 무력하게 주어진 정보들을 받아들인다. 이 다큐를 보면서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SF영화가 생각났는데, 주인공이 슈퍼에 들어설 때 좋아하는 맥주의 할인 광고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다른 광고가 뜬다. 먼 미래를 다루는 영화지만, 지금 일상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지 않나. SNS에 접속하면 이전에 검색했던 운동화나 관련 상품들의 광고가 뜬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운 정크 비건 음식에 꽂혀 올여름 몸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요즘 SNS에 자주 목격되는 극단적인 주장과 갈등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유익한 다큐였다. 학자들이 ‘SNS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보편화되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점점 즉각적인 감정 반응에 따라 움직이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는 유형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언급도 무섭게 다가왔다. 이런 현상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파괴와 내전을 언급하는데, 폭발 직전에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치면서 쉽게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인류 역사와 인간 본성을 진지하게 살펴야 하는 때 같다."  (이범진) ⓒ복음과상황 정민호 
"요즘 SNS에 자주 목격되는 극단적인 주장과 갈등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유익한 다큐였다. 학자들이 ‘SNS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보편화되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점점 즉각적인 감정 반응에 따라 움직이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는 유형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언급도 무섭게 다가왔다. 이런 현상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파괴와 내전을 언급하는데, 폭발 직전에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치면서 쉽게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인류 역사와 인간 본성을 진지하게 살펴야 하는 때 같다."  (이범진) ⓒ복음과상황 정민호 

SNS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명호: 새로운 전자제품이나 디지털 기기에 둔감하고 무관심한 편이다. 카카오톡도 귀찮아서 잘 확인 안 하는 편인데, 이용한 지도 몇 년 안 된 것 같다. 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이 버스 안내나 사전, 길찾기 앱 같은 거다. 한때 페이스북을 업무 용도로 활용하거나 좋은 기사들이 링크되어 있어서 이용했었는데, 무지 피곤하더라. 연결, 연결, 또 연결시간과 에너지를 순식간에 앗아가는 그 연결이 엄청 피곤했다. 누군가 잘 지내는 이야기든, 잘 못 지내는 이야기든, 내가 원치 않아도 무작위로 올라오는 소식들이 피로로 다가왔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나랑 맞지 않는다는 걸 재확인한 셈인데, 지금은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다. 인스타그램 가입도 복상 때문에 했는데, 한 번도 콘텐츠를 업로드한 적이 없다. 유튜브도 복상 채널이 생긴 뒤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문기사는 주로 PC나 스마트폰으로 읽는다. 원래 인쇄된 신문을 펼쳐 읽고 가방에 넣어다니며 버스타 지하철 안에서도 읽었는데, 요 몇 년 사이에 온라인으로 확실히 바뀌었다. 요즘엔 인쇄된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경우가 드물다.

다혜: 이번 주 SNS 사용 시간이 일일 평균 1시간이다. 로그아웃을 깜빡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 실 사용량은 더 적다. 페이스북은 주로 요즘 이슈되는 게 뭔지 확인하고 메신저를 사용한다. 인스타그램은 비공개로 지인들과 교류하는 정도다. 유튜브는 운동을 하거나 큐티를 할 때 또는 정보를 찾을 때만 이용한다. 작년까지 헤비유저였는데 자기계발에 시간 사용을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타국에서 지냈을 때 SNS를 정말 많이 했다. 외로워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내 소식을 적극적으로 SNS에 알리고 싶었다.(웃음) 입사 후에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관리가 안 됐다.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 식의 댓글이나 메시지를 마주하면 피로했다. 그밖에 카카오톡, 텔레그램, 메일은 필요할 때만 체크한다. 이번 주 일일 평균 스크린 타임은 3시간이 조금 안 되더라.

민호: 현재의 내가 과거 다혜님 교환학생 수준으로 하고 있을 것 같다. 아이폰 스크린 타임으로 내 사용 시간과 유형을 확인해봤는데, 일일 평균 7시간 21분을 사용한다. 사용 빈도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톡 순이다. 하루에 핸드폰 화면을 깨운 횟수가 평균 128번이나 된다. 화면을 깨우고 처음 사용한 앱은 카카오톡, 다음이 인스타그램이다. 이런 것이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 중에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민호: 그래서 지난 토요일 아침부터 SNS 금식에 들어갔다. 5일째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유튜브 앱을 삭제했다. 나흘 동안 했는데도, 지난주 대비 사용량이 44%나 줄었다. 매일 2시간 27분이 생긴 셈이다. SNS 금식을 추천하고 싶다.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깨우고, SNS를 확인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앱을 지우니까 무심코 배경 잠금을 열더라도 터치할 데가 없어 정신을 차리게 되더라. 의식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깨우고 보게 되는 시간과 횟수는 줄이면 좋겠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보거나 다른 사람의 소식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범진: 다큐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핸드폰 알림 설정을 끄라고 해서 껐다. 다른 앱은 효과가 있는데, 카카오톡은 오히려 더 자주 들어가게 되더라. 혹시라도 연락이 오지 않았나 싶어 계속 확인했다. SNS에서 나의 정신 역량을 넘어서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때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해서 페이스북 개인 계정은 비활성화시켰다. 완전 탈퇴를 하고 싶어도 그동안의 글과 사진이 아깝더라.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나의 기록은 물론 기억까지도 페이스북에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복음과상황 에디터 4인의 스마트폰 화면. 왼쪽부터 김다혜, 이범진, 옥명호,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에디터 4인의 스마트폰 화면. 왼쪽부터 김다혜, 이범진, 옥명호,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다들 SNS 사용에 있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한 게 공통점이다.

명호: 한때 책을 홍보할 생각으로 페이스북을 자주 이용한 적이 있는데, 그때 좋아요100건 넘게 받은 콘텐츠가 있었다. 묘하게 기분이 좋고 뿌듯해지더라. 그래서 페북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나 싶었다. 지금 보니 소셜 딜레마에서 폭로한 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고 의식의 변화를 유도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밖에도 SNS, 특히 페북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와 글, 일상의 면면들이 굉장히 근사하고 멋지게 다가와서 스스로 작아지고 위축되는 심리 상태를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SNS의 장점도 분명 많겠지만, 최소한 내 경우는 멀리하는 게 더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호: SNS 사용을 조절하고 통제한다고 했을 때 기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팔로워의 경우에, 내가 반응할 수 없는 팔로워들이 있다. 그들의 소식을 보고 있지만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기조차 쉽지 않은 관계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관계들을 계속 이대로 가져가는 것이 내 역량을 벗어나는 이용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택배기사님 취재할 때 그분이 말씀하길 현실감각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감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논리를 펴거나 글로 표현하기도 어렵다고 하셨다. 내가 누군가의 소식을 접하고 바깥세상이 궁금해 뉴스를 읽을 때, 무조건 많은 정보와 소식을 접할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고 진심으로 반응할 수 있는 소식을 조절하며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SNS를 건강하게 사용하는 사례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혜: 인적/물적 자본이 없는 사람들에게 SNS는 기회의 장이나 자기 홍보의 장이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슬아 작가를 비롯해서 개인 SNS브런치같은 플랫폼을 통해 인기를 얻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기자들도 영화나 기사를 통해 못다 한 말이나 생각들을 SNS에 공유하면서 팬덤을 구축하고 자연스레 해당 언론사도 홍보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강남역 사건이나 미투운동 때도 해시태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페미니즘 담론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도 했다. 물론 SNS에서는 속도감이 중요해서 천천히 사유하고 토론하는 문화보다 반대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관행이 생겨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김주희, 속도의 페미니즘과 관성의 정치, 문학과사회, 395) 최근 SNS와 미디어 환경 변화를 다룬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가 다음으로 이직했고 이후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으로 들어간 저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범진: 대형교회나 기업의 도움 없이 단기간에 큰돈을 마련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이 가능해진 것도 SNS의 긍정적 영향이 아닌가 싶다. 순기능이 참 많다. 그럼에도 요즘엔 고민이 된다. 과연 그 장점들이 치명적 단점들을 상쇄할 정도로 나의 삶,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가? 아닌 것 같다.

"다큐에서 전 구글 디자인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용자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극단적인 프로그래밍 기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이든 구글이든 애초에 그런 설계로 만들어졌다는 뜻이고, 그동안 수집된 어마어마한 개인 정보를 통해 그런 기술은 더 정교해지고 고도화되었을 텐데, 우리가 아무리 애써봐야 그들의 먹잇감이지 않을까. 그 거대한 인공지능망과 기술력, 그 압도적인 파워를 유혹에 취약한 한 인간인 내가 과연 당해낼 수 있을까? 한낱 유저가 그것들을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옥명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명호: SNS 이용을 잘 하지 않는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건강하게 이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SNS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SNS를 만든 핵심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고려하면 우리가 이용당하는 것 아닌가? IT 전문가가 왜 스탠퍼드 대학교 설득기술연구소에서 인간 심리를 조정(설득)하는 기술을 배웠을까? 다큐에서 전 구글 디자인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용자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극단적인 프로그래밍 기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이든 구글이든 애초에 그런 설계로 만들어졌다는 뜻이고, 그동안 수집된 어마어마한 개인 정보를 통해 그런 기술은 더 정교해지고 고도화되었을 텐데, 우리가 아무리 애써봐야 그들의 먹잇감이지 않을까. 그 거대한 인공지능망과 기술력, 그 압도적인 파워를 유혹에 취약한 한 인간인 내가 과연 당해낼 수 있을까? 한낱 유저가 그것들을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음모론이지만 건강한 사용에 관한 질문 자체도 그들이 만든 거대한 매트릭스 안에 갇힌 것일 수 있겠다.(웃음) 극복하고자, 탈출하고자 질문을 던지지만 결국엔 그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민호: 내 성향이 진짜 내 것인지 의심하게 됐다.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주입한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SNS에서 어떤 글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친구에게 추천했더니 그 친구 말이 내가 본 거라서 네 타임라인에 뜬 것 같다고 하더라. 분명 나 스스로 선택한 내 의견이라 생각했는데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거다. 사회의 탈진실 현상을 진단한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 트루스라는 책에 보면, 믿고 싶어 하는 사실을 의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믿는 것, 믿고 싶은 것부터 의심해야 할 것 같다.

"내 성향이 진짜 내 것인지 의심하게 됐다.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주입한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SNS에서 어떤 글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친구에게 추천했더니 그 친구 말이 ‘내가 본 거라서 네 타임라인에 뜬 것 같다’고 하더라. 분명 나 스스로 선택한 내 의견이라 생각했는데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거다." (정민호) ⓒ복음과상황 이범진 
"내 성향이 진짜 내 것인지 의심하게 됐다.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주입한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SNS에서 어떤 글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친구에게 추천했더니 그 친구 말이 ‘내가 본 거라서 네 타임라인에 뜬 것 같다’고 하더라. 분명 나 스스로 선택한 내 의견이라 생각했는데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거다." (정민호) ⓒ복음과상황 이범진 

소셜 딜레마에서는 ‘SNS가 믿고 싶은 것만 믿게 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더 증폭시켜 정치적 편향, 양극화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체감하는지?

다혜: 어느새 내 페이스북 피드엔 소소한 일상을 올리던 실제 친구들이 사라지고 젠더 이슈나 노동, 기독교, 환경 문제 관련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꽉 찼다. 옳은 말이거나 동의하는 지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가 보여서 잘 읽지 않게 됐다. 대신 종이 신문을 구독한 지 꽤 됐다. 내 관심사뿐 아니라 다양한 뉴스들을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여유가 있는 날엔 논조가 다른 신문사들의 편집과 사설도 훑는 게 취미가 되었다. 진보적 학풍의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편향되기 쉽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덕분에 어떤 게 차별이고 혐오가 되는지 옳고 그름은 배웠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때 필요한 설득의 언어와 충분한 논의의 과정을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페이스북 밖으로 나와서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거시적인 담론도 중요하지만 미시적인 관계가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이건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친구들의 포스팅도 만나서 이야기 나누면 다른 맥락이 있고 깊어진다.

민호: 확실히 사회가 많이 변했다. 또래들이랑 여행 가서 놀고 수다 떨다가 정치 뉴스를 보고 서로 너무 다른 의견을 말하다가 끝이 안 좋았던 적이 있다. 이 친구랑은 이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사이가 멀어지겠구나 싶었다.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생길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점점 접점이 없어진다. 이 경우 어떻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범진: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때는 2012년 대선이었다.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 분위기로는 당연히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는 상황이었는데. 자연스레 부정 개표라는 음모론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끼리끼리 소통하는 문제를 진단하는 기사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양분되는 분위기다. 거의 모든 이슈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나처럼 체질적으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발 디딜 틈이 없다. 1-2년 사이에 유독 심해진 것 같은데, 이번에 다큐를 보면서 왜 그런지 정리가 되었다. 요즘 어르신들 말투가 일베 말투로 바뀌고 있다. 그런 분들과 소통할 때, 왜 설복시키지 못할까 분한 적도 많았는데 요즘은 꼭 설득해야 하는 건지 의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 의제와 담론이 가족관계를 담보로 걸 정도로 정말 중요한 진리의 영역일까? 아닌 것 같다. 앞서 다혜 기자가 얘기했듯, 거대 담론에 빠져 미시적 관계를 망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은 아닌 듯하다.

명호: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현상은 아니지 싶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정치적 견해나 입장, 이해관계에 따라 당파성을 띠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본다. 당파성이 있는데도 없는 척, 마치 중립을 지키는 양 하는 태도가 오히려 문제 아닌가. 한국 언론이 특히 그렇지 않나. 문제는 SNS가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조장한다는 것이다.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접하게 되고, 선호하는 콘텐츠로만 둘러싸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견해차가 극단으로 멀어지고 서로 적대적으로 치닫게 된다. <소셜 딜레마>에서 소셜미디어의 미래와 관련하여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 전문가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최근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총을 들고 민주당 후보 유세 버스를 포위하여 위협한 일이 있었고, 대선 이후 각 후보 진영 간 충돌을 우려하는 기사가 계속 나오지 않았나.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소셜미디어로 인한 분극화’(파편화)라기보다는 극단화가 아닌가 싶다.

"거의 모든 이슈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나처럼 체질적으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발 디딜 틈이 없다. 1-2년 사이에 유독 심해진 것 같은데, 이번에 다큐를 보면서 왜 그런지 정리가 되었다. 요즘 어르신들 말투가 일베 말투로 바뀌고 있다. 그런 분들과 소통할 때, 왜 설복시키지 못할까 분한 적도 많았는데 요즘은 꼭 설득해야 하는 건지 의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 의제와 담론이 가족관계를 담보로 걸 정도로 정말 중요한 진리의 영역일까? 아닌 것 같다. 앞서 다혜 기자가 얘기했듯, 거대 담론에 빠져 미시적 관계를 망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은 아닌 듯하다." (이범진) ⓒ복음과상황 정민호 
"거의 모든 이슈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나처럼 체질적으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은 발 디딜 틈이 없다. 1-2년 사이에 유독 심해진 것 같은데, 이번에 다큐를 보면서 왜 그런지 정리가 되었다. 요즘 어르신들 말투가 일베 말투로 바뀌고 있다. 그런 분들과 소통할 때, 왜 설복시키지 못할까 분한 적도 많았는데 요즘은 꼭 설득해야 하는 건지 의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 의제와 담론이 가족관계를 담보로 걸 정도로 정말 중요한 진리의 영역일까? 아닌 것 같다. 앞서 다혜 기자가 얘기했듯, 거대 담론에 빠져 미시적 관계를 망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은 아닌 듯하다." (이범진) ⓒ복음과상황 정민호 

SNS에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현상과도 관련이 깊겠다.

범진: 디지털 시대와 인간 사고능력의 관계를 파헤친 대표적인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10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기본 주장은 변화가 없고, 최신 연구들이 몇몇 추가가 됐다. 그중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연구가 소개되는데, 10년 동안 트위터에 올라온 450만 개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 사실을 담은 메시지보다 조작되거나 과장된 메시지가 리트윗 될 확률이 70%나 더 높았다. 쉽게 말해 정확한 이야기가 100명에게 도달하는 것은 어려운데, 가짜 정보는 아주 쉽게 수만 명에게 도달한다. 저자 니콜라스 카는 가짜 뉴스의 무분별한 확산을 두고 알고리즘이나 봇의 탓을 하고 싶겠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실 진짜 범인은 사람들이라고 꼬집는다.

명호: 그 책의 원제가 ‘The Shallows’이다. ‘얄팍한 사람들’ ‘깊이가 없는 사람들’ ‘피상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자기가 가진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분별하거나 판단할 수조차 없이 피상적인 사고 능력으로, 과감하게 가짜 뉴스를 공유하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다혜: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SNS상에서 공감한다는 말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것이 오히려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사람의 글이 내 생각과 비슷할 수는 있겠지만 차이가 분명 있을 텐데 그 속에서 차이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부재하다는 거다. 말은 늘어나지만 듣는 귀가 줄어드는 시대, 세 줄 요약과 3초 안에 관심을 끌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극단화/양극화 분위기 속에서 복음과상황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범진: 우리 SNS 홍보부터 성찰을 해봐야겠다. 우리 기사도 결국 SNS로 홍보가 될 텐데.(웃음) 양극화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찬성/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갈릴 때 복상은 양쪽의 입장을 다 담고, 중간의 입장도 담으면 좋겠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지면 구성을 통해서 계속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반대의견도 들을 수 있는 여백과 틀을 우리 지면에도 마련하는 게 오히려 독자를 더 존중하는 자세 아닐까. 요즘은 SNS를 통한 기사 공유도 좀 조심스럽다. 글의 맥락이나 여러 정서적 정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특정 문장/문단을 강조해 공유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온라인 공개 없이 매달 우편으로만 배달되는 콘텐츠의 성격과 역할이 있을 거 같다.

다혜: 힘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공론장에서 겪는 힘의 차이를 고려하는 편집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성경과 차별을 다룬 커버스토리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견인하는정체성을 가진 잡지로서, 어떻게 충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할 수 있을지가 요즘의 딜레마다. 최근 어떤 강연에서 정치인이 세상은 날카로움보다 뭉툭함이 변화시킬 때가 더 많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뭉툭함이 뭔가 싶더라. 이후 또 다른 책을 읽고 팁을 얻었는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 운동가가 아니라 반대편 입장의 어려움에 공감해주고 팁도 제공하는 마음을 움직이는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논쟁에서 이겨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더라.(웃음) 이걸 잘 못해서 반성을 했다. 책에서는 이상주의자가 아닌 실용주의자가 되라고 하는데 초반부터 급진적이 아닌 전략적으로, 속도전이 아닌 장기전으로 스스로를 잘 돌보면서 가야겠다는 팁을 얻었다. 구체적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부에서 서로 소통을 더 하고 다양한 통로로 다양한 독자들과의 소통을 늘리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복상 소식을 받아보다가 잡지 구독을 신청한 청년 독자가 있다. 이런 걸 보면 무조건 SNS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웃음)

 

이번 커버스토리 주제가 소셜 딜레마와 신앙인데, 이와 관련하여 복상의 역할이 있을까?

명호: 소셜미디어의 힘과 영향력에 맞서 우리의 역할을 지켜나가는 게 녹록치 않은 일이다. 소셜미디어는 가히 이 시대의 온라인 신()’ 아닌가. 소셜미디어는 이제 원하는 대로 우리가 움직이고 다루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저가 우리를 원하는 대로 다루고 움직이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다. 이렇듯 소셜미디어가 장악한 고도의 기술사회 속에서 복상 같은 오랜 활자미디어, 인쇄미디어가 설 자리는 분명 점점 더 좁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과 교회, 신앙과 비신앙 사이를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로서 올드미디어인 복상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을까. 그 역할은 양쪽으로부터 비난과 비판을 받을 수 있기에 늘 긴장과 스트레스가 따르는 일이다. 소셜미디어가 인간의 의식과 사고 방식, 일상생활까지 잠식해가는 시대에 복상이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쉽지 않을 거다. 그래도 살아남아 있는 한, 사람들을 조금은 더 깊이 생각하게 하고 사유하게 한다면, 얄팍하고 피상적(shallow)이 되어가는 문화 속에서 적은 무리일망정 본질을 모색하고 추구하는 일을 격려하는 역할을 꾸준히, 겸손히 감당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민호: 다큐 내용 중에 우리에게는 같이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이 필요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각기 보는 현실이 다르니까 대화로 그 현실의 차이를 좁혀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었다. 우리가 그 현실 역할을 하면 어떨까. 우리 잡지가 독자들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 자체를 담아내는 잡지가 되면 더 좋겠다.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분이 격려를 해주셨다. ‘복음과상황의 이름이 참 좋다고. 모든 복음이 상황이 되어야 한다고.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하는 복음과상황이 너무 좋다고.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정리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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