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호 사람과 상황] 섀도우캐비닛 설립한 김경미 대표

즐거운 얼굴로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김경미 대표를 만난 후 들었던 생각이다.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정치 이슈를 이야기할 때 화를 내거나 냉소하거나 열의가 느껴지는 사람은 많이 만나왔다. 하지만 김 대표처럼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멤버십 프로그램, 소모임, 강의, 소셜 액션 등을 기획해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서로 토론하며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도록 돕는 커뮤니티 섀도우캐비닛(Shadow Cabinet)을 세웠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줌(ZOOM)과 클럽하우스(Clubhouse)를 통해 다양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을 맡은 바 있는 김경미 대표의 이력은 다채롭다. 김 대표는 한반도 평화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평화네트워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무브먼트’로서의 운동에 한계를 느껴 적을 옮겼다. 그는 정치경영연구소·정치발전소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체감했고, 서울시청에서 청년수당 정책을 수립하는 일에 실무자로 참여했다. 이후 뜻한 바가 있어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에 뛰어들었고,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행정관으로 2년 남짓 일했다.

청와대에서 계속 경력을 쌓을 법도 한데, 김 대표는 청와대를 떠났다. 21대 총선캠프 실무자로 뛰며 당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총선이 끝나고 지난해 8월 섀도우캐비닛을 설립했다. 어떤 계기에서였을까? 서울 소공동 한 카페에서 김경미 대표를 만나 이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이 물음이 시민단체와 제도권 정치를 고루 경험한 김 대표의 여정뿐 아니라 그의 꿈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언제부터 정치에 관심이 있었나.

어릴 때부터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정치인 연설문, 위인전을 즐겨 읽었다. 신문 정치면을 가장 좋아했는데, 기사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숨은 기류를 읽어내는 작업이 너무 재밌더라. 나중에 정치 관련 활동을 할 때 어려움이 찾아와도, 특별한 사명 때문이 아니라 재미 덕분에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평화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동북아평화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86세대에는 군부독재 타도가, 지금의 청년세대에는 기후위기가 이슈였듯이, 내가 학부생일 때는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 평화 이슈가 시대의 감수성이었다. ‘남북관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로 상상력이 뻗치는 때였고, 동북아평화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어 졸업 후 유학을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선배를 만났는데, 왜 우리나라가 통일이 돼야 하느냐고 묻더라. 종종 생각이 다를 때 일부러 질문을 쏟아내는 선배였고,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생각해 “통일이 돼야지.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고 그래!” 하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부끄럽더라. 유럽 통합 같은 동아시아 통합 체제를 이끌어 동북아에 평화가 오게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이에 대한 실무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로스쿨 유학을 준비하면서도 정작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래놓고 선배를 정죄하듯 나무랐던 것이다.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다. 그때 수첩에 기도제목으로 한반도 평화 문제를 잘 알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썼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김 대표는 당시 청어람아카데미(현 청어람ARMC)에서 진행한 한반도 평화 기획 강좌에서 평화 문제를 숙고할 기회를 만났다. 진행을 맡은 전문가 그룹은 남북관계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의식과 세계관을 전달했고, 그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러던 차에 평화네트워크에서 간사를 모집한다는 뉴스레터를 받았고, 고민 끝에 유학길을 포기하고 이곳에 지원했다. 당시 월급은 100만 원.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았지만, 기독교 커뮤니티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했다.

-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반도 평화에서 정치 전반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것인가.

촛불을 들거나 액션을 취해도 사회는 잘 변하지 않는다. 또한 일하면서 인권·평화·여성·환경·복지 등 우리 사회 중요한 이슈들을 놓고 씨름하는 분을 많이 만났다. 의문이 들더라. 이렇게 좋은 인력 구성이 왜 국회에는 반영되지 않는지. 이런 분들이 국회에 들어가기 쉬운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허들이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고민을 바탕으로 비례대표제 확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연구소로 몸을 옮겼다. ‘나만의 평화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선거제도를 바꾸는 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비례대표제 포럼 활동을 통해서 2012년 주요 대선 후보 선거공약으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채택되게 하는 등 적어도 한국 정치 발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게 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어느 정도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또다시 질문이 일었다. 제도라는 건 ‘절대반지’가 아니잖나. 선거제도가 바뀐다고 세상이 자동으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좋은 제도를 잘 운영하는 좋은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김경미 대표는 ‘좋은 정당’에서 정답을 찾았다. 정당의 기본 목적이 선출직 리더를 훈련·배출해, 그가 책임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정당’에 대해 고민하는 연구소로 이직한 김 대표는 또다시 한계를 느꼈다. 행정이나 입법부 경험이 없다보니 교육 프로그램이나 액션을 기획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 정책 수립 과정을 경험하고 싶었던 그는, 서울시에서 1년 반 동안 청년수당 정책을 수립하는 실무자로 일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 선거캠프에 들어갔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국정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청와대를 나와 21대 총선캠프에 실무자로 참여하면서 지역조직이 어떻게 꾸려져 있는지, 당에 한 표를 던지는 일반 시민들은 누구이며 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정치인들과 만나는지, 기본 조직당원은 어떻게 구성돼 있으며 당이 어떻게 당원을 모으는지를 배웠다. 모두 ‘좋은 정당’을 만드는 실제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서 비롯된 일이다.  

- 같은 정치 운동이더라도 시민사회 영역과 제도권 정치는 활동 방식이나 필요 자질이 다를 것 같다.

‘소울’과 ‘행정’의 차이를 느꼈다.(웃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과 ‘하게 하는’ 절차는 무척이나 달랐다. 이를테면, 청년수당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예산과 예산을 집행하기 위한 조례가 있어야 한다. 당위성뿐 아니라 예산 집행 근거가 필요한 것이다. 청년수당에 찬성하는 의원도 있고 반대하는 의원도 있을 텐데, 양쪽을 협의하게 해서 다수의 동의를 끌어내야 한다. 옳다는 이유로 혹은 다수 의견이라고 해서 밀어붙일 수는 없다. 설득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서로 의견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다루는 일이 정치와 행정이다. 

- 운동의 당위성만으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지지자 그룹은 답답할 수 있지만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은 느릴 수밖에 없다. 무브먼트 영역에선 선명함이 중요하다고 하면 정치나 행정 영역은 섬세함과 책임성, 그리고 나와 다른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당위성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 자체를 ‘상대와의 싸움에서 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는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서울시에서 일할 때 한참 쟁점이 되었던 청년수당을 예로 들어보자. 청년수당을 찬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하는 사람, 청년수당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정말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싶다면 이들을 열심히 설득해야 한다. 그게 그 의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의 책임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청년수당 반대하는 사람은 다 나쁘다’고 보면 안 된다. 이렇듯 자기 어젠다를 갖고 있으면서도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이해까지 익힌다면 좋은 리더가 될 역량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 제도 정치 쪽에서 일하고 싶은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공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 시민사회, 국회나 행정부, 언론 등 자기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과 자주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물어볼 수 있는 동료를 만들 수도 있고 국가 행정에 대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특별히 나중에 선출직 또는 임명직 리더를 꿈꾸는 사람은 막연히 ‘누군가 나를 호명해주겠지’ 해서는 절대 될 수 없다. 된다고 해도 일을 잘 해내기 어렵다. 섀도우캐비닛 홈페이지 소개글에도 담겨져 있지만 정부 운영은 기업 경영과 다르다.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일과도, 글 쓰고 주장하는 일과도 다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정책 간 연계성을 확보하여 한정된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일이다. 시민들과 국회·행정부, 기업과 단체 등 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에게 국정운영 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하여, 국가를 합리적·통합적으로 이끌어가는 일이다. 따라서 정교하고 종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팀워크가 필요하다. 체계적인 훈련과 공부 없이는 불가능하다. 독자들 중에서도 좋은 정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어떤 형태로는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우연한 기회가 올 것을 기대하거나 기다리지 말고 비슷한 꿈을 갖고 고민하는 이들을 찾아 함께 토론하고 훈련했으면 좋겠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 투기 의혹 사태’를 예로 든다면, 어떻게 토론할 수 있을까.

미래에 국가의 리더가 되고 싶거나 공적 이슈에 관심이 있다면, ‘LH 나쁜 공무원들’이라고 욕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내가 저들처럼 공적 정보를 다루는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대통령, 국회의원, 국토교통부장관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체신탁제를 도입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등의 쟁점 사안을 놓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이든 동아리이든, 섀도우캐비닛 같은 커뮤니티든 두툼한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토론하면서 지혜를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 시민사회 베이스의 활동과 행정·입법 파트의 일이 매우 다르기에 그렇다.

- 미국에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 정부의 외교적 과제를 다룬 칼럼을 읽었다. 외교만큼 설득 과정이 필요한 분야가 또 있을까 싶다. 남북 간 교착관계를 해소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바이든 정부는 인권문제에 예민하니까 북한 인권에도 관심이 많을 것이다. 진보 그룹이 이들을 만나 한반도 문제 안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전체 그림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국제사회는 북한 문제에 대한 시야가 우리보다 좁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시민들, 언론, 지지자 그룹에만 이야기해서는 안 되고, 외국의 정상과 의회, 시민 지식 그룹을 설득하는 데 힘써야 한다.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한 미 의회 청문회가 진행된 것도, 보수 그룹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하면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먼저 조성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보수 그룹이 미 의회에 가서 의원이나 보좌관을 만나 설득하곤 하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더 자주 와서 이야기하는 그룹이 한국의 주된 의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보 그룹도 미 의회 내에 연락할 수 있는 상시적 채널을 만들어서, 미국 사회와 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외교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 외에는 답이 없지 않을까.

섀도우캐비닛 세미나실에서 기획강좌가 진행 중인 모습. (사진: 섀도우캐비닛 홈페이지)
섀도우캐비닛 세미나실에서 기획강좌가 진행 중인 모습. (사진: 섀도우캐비닛 홈페이지)

- 청와대에서 나와 21대 총선캠프를 거쳐 섀도우캐비닛을 설립하게 됐는데.

내 목표는 청와대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아니다. 좋은 정당을 만드는 일이다. 은퇴할 시점에 돼서 ‘내가 무엇을 했나’ 자문했을 때 ‘독일의 사회민주당이나 기독교민주연합 같은 좋은 정당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총선 이후 국회나 행정 영역으로 가지 않은 것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용과 사퇴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기성세대에 많이 실망한 면이 있어서다. 86세대가 구축한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기보다,생각이 젊은 사람들이 정치세력화해서 국회로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치 영역 안에서 보고 배운 팁을 공유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섀도우캐비닛을 시작했다.

섀도우캐비닛이 최근 기획한 프로그램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공공 영역과 기업, NGO, 언론, 교육, 문화예술, 과학기술 등 민간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관심사와 경험, 네트워크를 공유하며 함께 예비 내각을 구성해보고, 부처별 모임을 통해 이슈가 되는 현안들을 놓고 토론한다.
섀도우캐비닛이 최근 기획한 프로그램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등 공공 영역과 기업, NGO, 언론, 교육, 문화예술, 과학기술 등 민간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관심사와 경험, 네트워크를 공유하며 함께 예비 내각을 구성해보고, 부처별 모임을 통해 이슈가 되는 현안들을 놓고 토론한다.

- 섀도우캐비닛 강의 의제들과 여러 칼럼을 통해 밝힌 생각들을 보면, 청년 세대를 향한 관심이 느껴진다.  

청년 세대가 나와 비슷한 시간을 거쳐 내가 아는 것들을 알게 되도록 내버려두는 게 선배의 역할은 아니라고 봤다. 내 경험을 요약해 가르쳐주면, 이들이 나와 선배 세대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해낼 수 있다. 청와대에서 근무했을 때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남북한 평화체제’라는 평화 이슈에서 젠더 문제가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단체사진을 보니 전부 남성들만 있더라. 그것을 보고 느꼈다. ‘지금의 인력 구성에 남성들만 있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그런데 10년 뒤에도 그렇다면, 나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여성뿐 아니라, 더 다양한 사람들, 젊은 세대들도 공적 담론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대가 되기도 했다.

-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더 다양한 의제들에 관심이 있다 보니 충돌이 일어나는 듯하다.

86세대는 군부와 전쟁을 치렀다. 광주는 지금의 미얀마와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시가 됐으면 노동·여성·동물권 등 해결하지 못한 더 많은 문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섬세하게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하는데, 리더들이 옛날 문제에 취해 다른 것들을 사소한 문제로 보는 것 같다. 물론 86세대 중에도 배우고 싶은 선배들이 있기에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다. 냉소하거나 화를 내기보다 좋은 사람들이 세대 간에 연결돼서 서로의 자원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특히 젠더 문제는 요즘 청년 세대에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나는 그게 단순히 여성-남성 간의 갈등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성과 상식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번에 생을 마감한 변희수 하사는 나와 22살 차이가 난다. 내가 성소수자였다면, 성폭력을 당했다면, 이들처럼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더라. 우리가 바꿔내지 못해서 동생들이 몸으로 부딪히고 있다고 느꼈다. ‘도움을 주지 못할지언정 누가 되지는 말아야지’ ‘목소리 내야 할 사안이 있다면 한마디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 거대 양당에 부정적 시각이 있는 청년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21대 총선 당시 남양주 선거를 뛰었다. 서울에서 차로 50분이면 들어가는 동네였다. 그곳만 해도 20대 총선이나 19대 총선 때 정의당·녹색당 현수막을 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지역에까지 출마한 당원들이 없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녹색당·정의당 같은 정당은 거대 양당에 영향력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여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거대 정당이다. 여당은 예산을 집행하고 내각을 꾸릴 권한, 군사·외교·안보·통일 등 여러 분야에서 정책결정권을 갖고 집행할 힘을 얻는다. 국정 운영을 해본 것과 해보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좋은 인재들이 거대 정당에 관심 없어서 안 가면, 시민들이 보기에 공적 마인드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 공천을 받게 된다. 미국 버니 샌더스도 무소속으로 도전했다가 민주당에 참여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월 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하다가, 민주당 내에서 세력을 조직하지 않으면 힘들겠다고 판단해 민주당 선거에 도전했다. 이 같은 전략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 변희수 하사를 비롯한 성소수자가 연이어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해 냉정하고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조직되지 않은 다수는 조직된 소수를 이길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그룹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다. 자기 시간을 들여서 의원들에게 끊임없이 전화했고, 대형교회 목사들은 설교하면서 성도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며 조직화했다. 엄청 열심히 뛴다. ‘좋다/나쁘다’를 떠나, 인풋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찬성 그룹은 그만큼 하지 못한 것이고.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대하는 목사들보다 더 많이 조직돼 있는 상황에서 국회에 의견을 제출한다면? 당연히 국회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투표할 것이다.

- 그리스도인들은 오랜 기간 제도권 정치를 정서적으로 멀게 느껴온 것 같다.

내가 비판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선거철만 되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정치참여를 해야 하나’ 묻는다. 이 질문을 보면 화가 난다. 언제까지 이 수준에 머물러야 하나 싶어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나도 보수 기독교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배경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민의 기본 소양 문제 아닌가. 시민으로서 정치참여를 하면 된다. 복음주의 역시 세상과 우리를 구분하는 정서가 있어서, 진영을 떠나 목사·리더에게 정치적 결정권을 주고 그 결정에 따라 움직이기에 그런 질문이 나온다고 본다. 당장 내년이 대선이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 중 다수가 그리스도인인 상황에서, 성소수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는데 보수 기독교만 욕하고 있다. 우리가 안 하니까 비기독인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하고 있지 않나. 비기독인들이 기독인들 대신 창조세계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고 느꼈다.

- 교회가 사회에서 ‘극우 세력’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에 경도된 사람 중에는 극좌도 있다. 어느 사회나 극우·극좌가 있기 마련이다.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태도의 차이라고 본다. 생각은 진보나 보수일 수 있다. 그런데 남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극우·극좌가 된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극우나 극좌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회의하면서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존재들이니까. 스스로가 계속 흔들리는 존재라고 인정하고,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손을 잡고 가면서.

ⓒ복음과상황 정민호 <br>
ⓒ복음과상황 정민호

-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정치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면, 어떤 노력을 기울어야 할까.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실질적으로 응원하는 일이 우선이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의원에게 단 몇천 원이라도 후원금을 보내는 일. ‘각자 시민단체 하나씩은 지원하자’는 말처럼,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당의 당원으로 가입할 수도 있다. 알아서 잘 크라고 할 수는 없다. 요즘 응원을 많이 받고 있는 장혜영 의원을 생각해본다면, 다음에 그를 다시 국회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냉정하게 말하면, 쉽지 않다. 이미 비례대표로 나간 사람이 다시 비례를 받기란 쉽지 않고, 도의상 지역 선거에 나가야 할 것이다. 전국구에서는 지지율이 높겠지만, 지역에서 민주당·국민의힘 후보와 경쟁해서 당선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도 훈련받아야 하지만, 시민들도 좋은 정치, 좋은 정치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테이블에 올라간 사람을 욕하기는 쉽지, 투표용지에 오르기까지 과정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관심 있는 사람만 관심을 갖는 것이 현실이다.

- 지금의 정치 생태계가 좋은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하나.

대선캠프에 참여했을 때 급여를 받지 못했다. 정치자금법상으로 선거캠프 스태프는 무조건 자원봉사로 일해야 한다. 후보자에게도 돈을 받으면 안 된다. 현장 경험을 쌓겠다는 마음 없이는 큰 결정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보상을 기대하면서 투자의 개념으로 뛰어드는 구조다. 번듯한 직장이 있고, 실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정치 선거캠프에 참여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또 하나, 현 비례대표 제도의 문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전면적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데, 한국은 비례성이 낮다. 비례대표제가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득표율과 의석율을 일치시키자는 것. 우리 사회와 국회가 서로 닮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비례대표제다. 물론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 논란으로 참 우습게 되었지만,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 도입은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할 과제이다.

- 정치를 향한 관심만큼 ‘정치 혐오’ 현상도 큰 것 같은데.

혐오가 크다는 사실은 그만큼 열망이 크다는 뜻일 수 있다. ‘좋은 정치’ ‘좋은 정치인’을 향한 열망이 큰데, 현재 정치세력이 충족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좋은 정치를 꿈꿔도 투표용지에 적힌 사람들이 별로라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정치는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크게 끼치지만, 인물의 변수가 크다. 실력을 갖추고 유불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신념 있는 사람, 지지자들에게 욕먹더라도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좋은 사람들이 정치하겠다고 나서줘야 하는데, 정치 혐오가 짙은 사회일수록 어렵다. ‘눈 맑고 실력 있는’ 이들이 관심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극복하는 세력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김경미 대표는 섀도우캐비닛을 열심히 꾸려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3년 이상 장기 계획은 잘 안 세운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집중하던 이슈가 풀리거나 하면 계획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김 대표는 그때그때 주어진 과정을 열심히 밟는다고 말했다. 그의 행보가 달라지더라도, 앞으로 정치 영역에서 그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터뷰 도중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역동적이고 불완전하다.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정치란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도구이며, 좋은 정치란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저작권자 © 복음과상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